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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은 다음과 같은 15가지 표징을 갖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분명한 표징들을 가지고 있는지 정직하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거듭난 사람의 표징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1서 3:10)
거듭난 주의 백성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누가 거듭났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에 충분히 말씀해 주셨다.
1.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신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조명으로 ‘신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신적인 믿음을 주셨음을 느낀다(유 1:3). 신적인 믿음이 주어진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에드워즈는 참된 회심은 거룩한 확신을 수반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들은 복음의 위대한 내용의 진리성을 확고하고, 온전하며,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는 두 견해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복음의 위대한 교리들이 다시는 그 사람들에게 의심스럽지 않으며, 더는 논쟁거리가 안 됩니다.”
2.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갖게 된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의 내적인 증거를 느끼게 된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면, 내 영에게 ‘너의 죄는 사해졌으며 너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평화를 말씀해 주신다. 내가 칭의의 상태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양자의 영이 주어졌음을 깨닫게 해 주신다(롬 8:15). 이때 세상이 결코 주지 못하는 평안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요 14:27).
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죄인이 교회로 가서 목회자를 만납니다. 밑줄을 잔뜩 친 성경을 지닌 목회자가 그를 설득하여 마침내 예수님을 믿겠다는 다짐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그가 교회를 떠나 두 블록만 걸어가면 이번에는 마귀가 다시 그를 설득해서 불신앙으로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증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죄인에게 내적 조명을 주신다면 ― 즉, 내적 증거를 주신다면 ― 누구도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이 달려들어서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써도 그는 ‘그러나 나는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내적 증거를 받은 사람은 완고한 것이 아니고 거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기독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 성령님의 내적 증거이다.
3. 생수의 강 같은 기쁨이 나타난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하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 같은 기쁨이 한없이 흘러내린다(요 4:13~14 ; 요 7:37~39). 웨슬리는 성령의 증거를 갖게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과 더불어‘ 혹은 ‘우리 영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자녀이면 후사,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임을 증거’하십니다. …… 누구든지 이러한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느끼게 될 때 드디어 ‘그의 슬픔은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그 고통이 전에는 어떠한 것이었든지, ‘그때가 이르자마자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않을 것’입니다. …… 보혜사가 오시면 ‘여러분의 마음은 기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할 것이며 또한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요 16:22).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도다.’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그것을 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만나’입니다. 고난이 심할 때에는 성령의 위로하심은 더욱 풍성합니다.”
4. 놀라운 평안을 체험하게 된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면 세상에 알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1906년 2월 서울 자교 교회에서 열린 신년 사경회고에서 어느 날 아침 회중 가운데 한 남자가 일어나 자신은 '술꾼에다 노름꾼, 사기꾼'이라고 자백하면서 죄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다음날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경험하고 “호랑이도 무섭지 않다.”라고 고백할 만큼 심령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4)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때 어떤 장로는 자기 죄를 회개한 후 마음에 임한 평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님께서 죄를 각성케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자 그는 몇 해 전 자기가 빌린 빚을 불성실하게 갚은 것이 생각났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내게 다시 다가왔습니다. 죄악의 공포로 마치 영생을 잃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면서 일어나 나의 부끄러운 죄악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든 손실들을 배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평화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하고 달콤하고 형언할 수 없는 평화가 나를 사로잡는 것 같았습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자에게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화가 항상 있다.
5.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된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영혼은 저절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미를 하게 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너무 기뻐서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했다(행 2:47).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구름을 봐도, 꽃을 봐도 모두 새롭다. 같은 하늘이요, 같은 땅이요, 같은 구름이요, 같은 꽃이지만 모든 것이 새롭고 감동스럽다.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나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마음에 천국이 임한 사람은 이미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현재에서도 맛보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하나님께 무엇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찬미가 저절로 생긴다(히 13:15).
6. 신의 성품을 갖게 된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우리의 본성이 거룩하게 변화된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성령을 받은 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 온 영혼이 새롭게 되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고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7. 성령이 임한 사람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을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이라고 한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초대 교회 지도자 이그나티우스(Ignatius)에게 트라야누스 황제가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가슴 속에 그리스도를 갖고 있는 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입니다. 그분은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8.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짐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순서상 이것을 여덟 번째로 소개하지만, 이것이 거듭난 자의 가장 큰 특징이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7~8).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요, 사랑이 없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다(요일 3:10).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며, 모든 참된 신앙의 생명이고 본질이며 총체입니다.”
첫째로, 거듭난 사람은 자기 심령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롬 5:5 ; 벧후 1:8 ; 마 22:37; 롬 8:28). 웨슬리는 중생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말하였다. 웨슬리는 '90% 크리스천'(almost Christian)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전제한 후 ‘온전한 크리스천’(altogether Christian)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온전한 크리스천은 이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눅 10:27). 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온 마음을 차지하고, 모든 정서를 빼앗고, 영혼 전부를 채우며, 영혼의 모든 기능을 최대한 장악합니다.”
둘째로, 거듭난 사람은 또한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사랑은 거듭난 사람의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표지 중 하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성도들에 대한 본능적인 형제 사랑을 느낀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피니는 사랑을 거듭남의 가장 중요한 표지로 보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회심했다고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그 사람의 지배적인 성격이 아니라면 그는 참으로 회심한 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다른 면들에 있어서 훌륭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의 견해가 명석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의 감정이 깊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영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9. 거듭난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3-44).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사랑과 긍휼이 무궁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윗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에게는 어려운 의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 자는 누구든지 그것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며 쉽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9) 웨슬리도 거듭난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단언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대답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모든 육체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모든 소생들입니다.’ 또 우리는 결코 우리의 적들 혹은 하나님의 적들이나 그들의 영혼을 제외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크리스천은 그런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사랑합니다.”
10. 복음적 겸손을 가지게 된다
복음적 겸손이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가를 철저히 깨닫고,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함으로 가지게 되는 겸손을 말한다. 외식자들은 이러한 겸손을 가지지 못한다. 겸손한 척 할 수는 있겠으나,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지는 못한다. 항상 자아와 아집이 살아서 남에게 인정받고, 높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자는 근본적으로 겸손하다.
그리스도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마 11:29). 그러므로 거룩하신 주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당연히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이 넘치게 된다(갈 5:22~23). 마귀는 다른 것은 가지게 할 수 있으나 온유와 겸손은 가지게 할 수 없다. 에드워즈는 말한다. “자연적인 자기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모조품들과 구별되는, 참되고 신적이며 초자연적인 사랑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덕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며, 자기를 전멸시키는 데서 빛난다는 것입니다. 즉, 겸손에서 빛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혹은 참된 사랑은 겸손한 사랑입니다. …… 사랑과 겸손은 마귀의 영과 가장 반대되는 두 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악한 영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교만과 악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신적인 사랑의 영이나 그리스도인의 겸손의 영, 그리고 가난한 마음을 주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그가 주려고 한다 하더라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마귀는 그 스스로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본성과 가장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교만은 사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그것은 겸손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겸손과 화평이 있고, 사탄이 있는 곳에는 교만과 다툼이 있다.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한 성품에서 모든 분쟁이 일어나며, 그것으로 인하여 사탄이 기쁨을 누린다.
11.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요일 3: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요일 3:8). 사도 요한은 말했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성경은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1서 3장 9절에서 또 하나의 같은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성향은 죄로 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 속에 산다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올바른 묘사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에게는 죄를 지을 수 없는 내적 원리(principle)가 있으므로 죄를 대항하여 싸우고 투쟁할 것입니다. 새 생명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옛 성품은 새 생명을 거슬러 싸우지만, 새 생명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아주 우세하여, 그가 죄의 삶을 살지 않도록 합니다.”
『독일 신학』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덕과 악 사이의 차이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 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부도덕한 자요, 덕을 무시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덕을 사랑한다면, 그는 덕에 순종하며, 부도덕한 것을 원수로 여기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 그는 부도덕한 일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 그런즉 만일 그가 불의의 원수라면, 그는 그의 동료에게서 불의를 발견할 때마다 그 불의를 제거하고, 그를 의로 인도하기 위하여 희생적으로 행하며, 그로 인해 고난받을 각오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의로운 자는 불의를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백 번이고 죽기를 원하는 바, 이는 단지 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2. 세상을 이긴다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세상의 유혹과 욕심을 이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4).
피니의 말을 들어 보자.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혼 속에 영접하고서도 영혼이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일은 본질상 있을 수 없습니다. 신생이 있으면 마음이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도 당연히 그 영혼 속에서 그를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은 가장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지고한 애정을 바치게 되며, 영혼을 지배하던 세상의 능력이 파괴됩니다. …… 세상을 이기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윗필드는 그의 말년에 한 설교인 “야곱의 사닥다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또한 단 1분이라도 제 마음속에 세상 사랑을 품고 지냈던 적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증인이십니다.”
13. 영적 세계를 보게 되며, 성령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 즉 영 분별을 하게 된다
거듭나게 되면 새로운 영적 세계를 보게 된다. 즉 영적인 시각과 안목이 생긴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을 보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당신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는가?
거듭난 사람은 또한 영적인 귀가 열려 성령님의 가르침을 듣기 시작한다. 요한1서 2장 27절을 보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는 사람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성령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 신령한 눈이 열리고 신령한 귀가 열리므로 산과 악,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며 살 수 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요한1서 2장 22절과 27절의 말씀은 특별히 거짓 영들을 분별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그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신 사람은 거짓 교리나 거짓 선지자, 거짓된 교인을 따라가지 않는다. 성령님의 거룩한 기름 부음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14.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성령의 비추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 평신도 할 것 없이 모두 흩어져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이는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임하셨기 때문이다.
15. 거룩한 순종과 실천이 따르게 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주님을 계명을 기쁘게 자발적으로 지킨다. 주의 계명은 그에게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 5:3). 주변에 보면,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 행실이 거룩하지 않고, 마음이 거룩하지 않고, 삶이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3~4).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행실로는 주의 계명대로 살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위선자다. 위선자를 경계하라!
오웬은 이런 위선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계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거짓으로 사랑하는 척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위선은 본인의 영혼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줍니다. 교회 안에는 위선자들이 항상 있었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거짓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위선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큰 위선은 그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반역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를 배반했던 사람은 ‘선생님 안녕하시옵나이까 하고 입을 맞추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과 겉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속임수와 음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렇게 거짓된 사랑은 드러낸 미움보다 더 나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기에 게을리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고백을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말로써가 아니라 생활 중에 실천으로써 그 열매를 입증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갈 5:22~2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남의 눈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혹은 마귀에게 스스로 속아서, 혹은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위선적으로 자신이 거듭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열매를 보고서야 참으로 그 나무를 판단할 수 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어떤 사람의 말이 아무리 현란할지라도 생활 중 거룩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성령 받은 사람은 아니다. 이런 자가 거짓 형제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16.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 나오는 영 분별
에드워즈만큼 부흥 운동을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서 요한1서 4장을 강해하면서 영 분별을 논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그는 성령의 역사임을 입증해 주는 다섯 가지 증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높이도록 역사하는 영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높이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사람들의 구주이심을 선언하는 것이 진리임”을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확신하게 하고 공고히 하신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주이심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게 되었는가?
둘째, 성령님께서는 세상을 좇게 하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성령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격려하고 죄 가운데 확고히 살도록 만들고 세상적인 욕망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사탄의 왕국의 이익에 반대하여 작용”하신다.”
당신은 거듭남으로 세상적 욕망을 이기게 되었는가?
셋째, 성령님께서는 성경을 높이고 사랑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성경을 매우 존중하게 되고, 성경의 진리와 신성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역사하는 영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넷째, 성령님께서는 영적인 참된 실제를 참으로 보고 느끼게 하신다. “예를 들어 역사하고 있는 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그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평소보다 더욱 민감하게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인생은 짧으며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다면, 그리고 그들의 본성의 죄와 행동으로 지은 죄가 매우 많음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건전한 교리에 일치하는 다른 진리들을 확신케 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이 역사하는 그 영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의 참된 실제를 나타내 보여줍니다.”
다섯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 겸손한 사랑을 하게 하신다.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영으로 역사한다면, 그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강조했다. “참된 성령의 표지로 제시한 이 마지막 표지를 사도는 가장 뛰어난 표지로 말하는 듯이 보입니다. 사도는 기타 모든 다른 표지들보다 사랑을 훨씬 더 많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이 책을 1741년에 저술했다. 이때는 제1차 대각성 운동(1740~1742)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각성이 끝난 1746년에 출판한 『신앙 감정론』에는 더욱 깊고 예리한 영 분별이 나온다. 그것은 이 책 2부에 나오는 에드워즈 부분을 보라.
17. 조나단 에드워즈의 『참된 미덕의 본질』에 나오는 영 분별
에드워즈는 성령과 사탄의 영을 구별하는 가장 뛰어난 표지로 사랑을 말했다. 기독교인이 가지는 사랑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이 1755년에 저술한 『참된 미덕의 본질』이다. 이 책은 깊고 영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책으로, 에드워즈는 이 책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큰 명성을 누리고 있다.
에드워즈는 “참된 미덕은 보편 존재(다른 말로, 존재 일반, Being in general)에 대한 호의(benevolence)에 가장 본질적으로 존재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보편 존재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존재이신 하나님과 모든 ‘지성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즉 에드워즈는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의 사랑의 대상은 온 인류에 미친다. 이것이 이 책의 논점이다. 다시 말하면, 보편 존재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가운데 포함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기독교인이 발휘하는 사랑을 ‘만족적 사랑’(complacence)과 ‘호의적 사랑’(benevolence) 이 둘로 나누었다. 거듭난 사람은 택함 받은 거룩한 성도들에게는 ‘만족적 사랑’을 갖게 되고, 모든 인간에 대해서는 ‘호의적 사랑’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에드워즈는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거듭난 사람이라고 보았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과 모든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에드워즈의 가르침이다.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 거듭남의 표지라는 것은 윗필드, 웨슬리도 강조했으며, 성경에도 자주 나온다. 즉 거듭난 사람의 사랑이 미치는 범위는 원수까지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 5:44~45).
이상으로 거듭난 자의 표징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끝으로 윗필드의 말을 들어 보자. “편벽되지 않게 자신을 점검해 보아 자기 영혼 속에서 앞에서 말한 표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천사가 자기에게 말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그의 용서가 하늘에서 인친 바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가 저에게, ‘아들아, 힘을 내라. 네 죄가 사함 받았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을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이러한 신적인 은혜들을 보았고, 제 영혼 위에 하늘의 성품이 인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그 표징들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또 우리 속에 계시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표징들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흰 돌 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또한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가 하늘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보증들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도 윗필드처럼 말할 수 있는가? 진실로 그러한가?
http://cafe.daum.net/minjaehong/GtuM/15?q=%B0%C5%B5%EC%B3%AD%20%20%C7%A5%C2%A1&re=1
첫댓글 구원 보장 - 구원 취소, 환난 전 - 후 휴거, 정치적 입장 차 등으로 서로 싸운다면, 형제를 비방하고 미워한다면 거듭난 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요?
사도들도 논쟁을 하긴 했지요..바울과 바나바도 하지만 그것은 자기 고집이나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였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했다고 볼수 없지만..정도의 선은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주장 하시는 것들도 성경을 근거들로 하시는데..중요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저는 목회자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성도입니다. 개인적으로 구원취소라는건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긍휼또긍휼 논쟁 이후 교제를 단절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거듭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긍휼또긍휼 마태복음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셨으니..청함은 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죠. 유다,데마도 그렇고 신약에 은근히 그런 사람들이 꽤 있죠..확실하게 거듭난 자는 아니라는 겁니다. 예정론적 측면에서 택정 받은 사람은 아니죠. 말씀이나 기도를 통한 감화감동과 성령의 거듭남 내주는 다르거든요..거듭나지 않아도 청함받은 사람도 말씀보고 은혜받을 수도 있고 기적도 체험(입신,환상,기도응답 기타 등등)하고 기도도 하지만..성령의 내주(거듭남)가 없는 사람은 구원받은게 아닙니다.
@긍휼또긍휼 마태복음7:21-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TheMan 아무래도 거리를 두는 것이 맞겠죠.
@긍휼또긍휼 거듭난 자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군요.
@TheMan 예수님께서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죠..
@긍휼또긍휼 두려운 말씀입니다.
@TheMan 네 정말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전에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었는데 이렇게 좋으글 올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부분 공감하나 제게는 사랑의 힘이 아직 부족함을 느낌니다.
주님 제 모습을 보게해 주세요 회개하게 해주세요 흑흑
여기서 말씀하는 거듭남의 징표는 충만한 열매의 상태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안에 거하고 성령께 순종하며 자랄때 자연스럽게 나타날것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목표이 되거나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예수님안에 충만히 거하는것이 우리가 바라는것이지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주신것이 아닙니다. 그분안에 거하면서 자라가면 됩니다.
모든분들이 여기서 말씀하신 이러한 열매가 모두 맺어지길 기원합니다.
거듭나 생명을 가진 자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즉 구원받은 자들만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긍휼또긍휼 아멘! 다만 거듭난 이후 바로 이러한 열매를 기대할순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성화의 결과물로서 신앙가운데 자라가면서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열매들이닌까요. 여기 모든이들이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시길 기대합니다.^^
@doodoo 하지만 거듭나면 거듭나기 전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죄에 종노릇하고 마귀 아래 있던 사람이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죄에 종노릇하던 옛사람을 장사 지냈으며 새마음과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는데 예전과 다를바가 없다면 이상한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완벽한 상태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거죠..
@긍휼또긍휼 예수님을 믿는 간증을 보면 여러 다양한 방법들로 만나는것을 봅니다. 불같이 뜨겁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차분히 인격적으로 만나는 분들도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차츰차츰 변화되면서 자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땐 한2년간은 예배끝나고 담배피며 나왔고 술마실때 기도하며 마시고 룸싸롱가서는 호스테스를 술취해서 전도한다고 주절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기다려주셨고 저는 많이 변화되었고. 주의 일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뜨거운 분들도 계시고 점차 자라는분도 계십니다. 획일적이진 않은것 같습니다. 변화의 시간은 각각 다를수있습니다.
@doodoo 네..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시간차와 개인차가 있을순 있지만 정말 거듭난 자들은 다 저런 외적 증거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긍휼또긍휼 아멘! 감사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전혀 죄를 안 짓는다 - 완전성화론인데 이단 사상입니다. 저런 가르침은 전부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마귀의 종들이 속이는 말입니다.
성향의 근본적 변화를 말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죄를 버리고 회개하는 것도 심판이 두려워 죄를 좋아하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려서 마지못해 억지로 했지만 ...거듭난 자들은 죄 자체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거룩함과 진리를 사랑하는 성향으로 본성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죄와 싸우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거듭남이 뭔지도 모르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체험해 보질 못해서 전혀 이해를 못하고 반대만 합니다. 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반영한 것이죠. 스스로의 영적상태를 반영해 성경을 해석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긍휼또긍휼 초대교회 사도들과 참된 성도들 그리고 2천년 기독교사의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그렇게 믿고 참된 중생을 경험하고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 유명한 청교도들과 재침례교도들도요..그들을 원수의 종들이라 칭하시면 ourdailybread님께서는 어디 소속이십니까?! 야고보서와 산상수훈이 교회와 무관하다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말보회는 국어책과 윤리책 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빛 되신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내주하고 더욱더 빛으로 나아가는 자는 작은 죄도 가벼히 여길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