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준혁(19 ~ 35세, 이필모) |
성인 수경(19 ~ 35세, 윤손하) |
성인 기태(19 ~ 35세, 한상진) |
성인 종식(19 ~ 35세, 류담) |
등대로 올라가는 그 계단에 걸터 앉아 얘기하는 준혁과 수경
“준혁아. 여긴 여전하구나... 여기 이렇게 올라와서 바람을 쐬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거 같아.”
“그러니? 우리 이제 많이 쉬었으니까 다시 책보자.”
준혁은 책을 펼쳐 들며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준혁은 수경에게 “이 시는 백석의 여승이란 시야. 올해 수능에서 가장 출제가 유력한 시야.”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선생님께서도 귀가 따갑도록 얘기하셨단 말야.”
“이 시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행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승려가 된 여인으로부터 과거 자신이 살았던 이야기를
듣는... 소설로 말하자면 액자식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아마 문제가 나온다면 각 단락별로 기호를 매겨 네 단락을 뒤죽박죽
섞어 놓고 이 시의 순서를 배열하는 문제가 나올거야. 아니면 각 단락의 기호를 매겨 놓고 이 시를 소설로 옮겨 쓸 때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락이 어디인지를 묻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고.”
“준혁아... 자꾸 그런 얘기만 하니까 재미 없어. 우리 오늘은 놀러 온거잖아,”
“누가 그래? 놀러 왔다고? 오늘 우리는 야외학습 나온거라구... 야외학습...”
“너 계속 이러기야? 학교에서도 고3이라고 하루종일 공부만 시키는데 오늘은 좀 쉬면 안돼? 머리아프단 말야.”
“안 돼... 수능이 얼마나 남았다고 그러니?”
계속 책만 보고 있는 준혁에게 수경은 “나 심심하단 말야.” 말하며 들고 있던 연필을 빼앗아 등대 위로 도망치듯 올라간다.
“수경이 너 정말....”
준혁도 수경을 뒤쫓아 올라가며 수경을 잡으려하고 수경은 잡히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있어 보이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준혁과 수경은 수경의 집 앞에 섰다.
아쉬운 듯 수경은 “벌써 다왔네.”
“그러게. 어서 들어가.”
“여기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돼?”
“그러다 너희 부모님이 보시면 어쩌려고 그래? 어서 들어가.”
“알겠어. 그럼 준혁이 너도 조심해서 가.”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나서 수경은 대문쪽으로 향하는데, 준혁이 다시 부른다.
“수경아...”
수경 뒤돌아보면 “내일 잠깐 볼 수 있어? 너네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수경은 궁금한 듯 “학교 앞에서? 무슨 일인데?”
“별거 아닌데 내일 만나서 얘기해. 너한테 줄 것도 있으니까.”
“뭔 데? 내일은 내 생일도 아닌데... 지금 살짝 알려주면 안 돼?”
“내일봐... 내일 만나서 줄게...”
수경은 약간 삐진 듯 새침한 표정 지으며 “알았어. 잘가.”
수경 돌아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수경 들어가는 것 보고 준혁도 집으로 간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준혁의 동네.
준혁은 집으로 가려다 다시 발을 돌려 근처에 있는 기태네 집으로 간다.
“기태야... 기태야...”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기태가 밖으로 나온다.
“어머니 안에 계시냐?”
“배가 밤에 들어온다고 항에 일 나가셨는데... 왜?”
“잠깐 나와라. 탁구나 한게임 치자.”
“그럴까? 잠깐 기다려.”
기태는 방에 들어가 남방 하나를 걸치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공부하는데 방해하는거 아니냐?”
“아니다. 허준혁이가 이 강기태한테 도전장을 낸다는데 기꺼이 받아줘야지 공부 좀 못하면 어때?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뭐...”
“고맙다.”
“그런데 너 어디갔다 오는 길이냐?”
“수경이 만나고 왔어.”
“수경이?”
“응.”
동네어귀의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온 불은 켠 준혁과 기태는 탁구대에 네트를 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자식... 누구는 죽자사자 공부만 하는데 누구는 연예도 하고. 부럽다.”
“부럽기는... 자 받아라...”
“그래... 좋아...”
네트 사이로 한참동안 공을 주고받던 준혁과 기태...
“오호... 허준혁... 많이 늘었는데... 그렇지... 드라이브 걸고... 오호라...”
준혁이 드라이브를 거는데 기태가 백핸드로 받는다. 공이 살짝 뜨는데 준혁이 헛스윙을 한다.
“공을 제대로 보고 찍었어야지.”
“자. 다시 받아봐.”
준혁을 고개를 내저으며 “힘들다. 그만하자.”
“뭐야 인마... 벌써 힘드냐? 수경이도 만났다면서 그럼 얼굴이 활짝 피어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
“얼굴 필 일이 뭐 있냐?”
“왜? 수경이랑 싸웠냐? 안색이 어둡다.”
“아냐. 그런거... 그냥 좀 답답해서.”
“뭐가 답답해? 혹시 똥파리 때문이냐? 낮에 똥파리한테 한소리 들은거 같던데... 그것 때문이야?”
똥파리는 준혁과 기태의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준혁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는데...
그날 오후 3학년 교무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준혁을 타이르고 있고, 준혁은 고개 숙이고 있다.
“너 어쩌려고 이래?”
준혁은 대답이 없다.
“입학 성적이 괜찮길래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째 점수가 갈수록 떨어지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죄송하다고 말만 하면 이 점수로 서울로 갈 수 있다고 하디?”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시봉으로 준혁의 머리를 툭툭 치며 “한두번이어야 네 말을 믿지... 내일 어머님 학교에 오시라고 해라.”
“선생님... 그것만은 제발....”
“이 자식아... 어머니 편찮으시다고 해서 자율학습 빼줬으면 집에서라도 열심히 해야지... 고3이 무슨 연애질이야?”
준혁은 놀란 듯 선생님을 바라본다.
“뭘 봐 인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선생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네들 날 뭐라고 부르냐?”
준혁은 대답이 없다.
“날 똥파리라고 부른다며? 그래.. 나 똥파리다... 너 하는 짓이 냄새가 난다 이거야. 그따위로 하려면 학교 당장 때려 쳐라.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여자 꼬시는 재주가 더 있는거 같은데 나나 너희 어머니... 여러 사람 희망고문 시키지 말고 그냥 때려쳐라.”
“선생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한번만 더 기회를 줘? 어떻게 기회를 달라는 거냐?”
“보충수업 시작하면 바로 자율학습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알았다. 속는 셈 치고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테니 더 이상은 날 실망시키지 마라. 알았냐?”
“네.”
“가 봐.”
다시 마을회관 안 탁구대.
준혁의 말을 들은 기태는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그랬냐? 똥파리 성격을 몰라서 그러냐?”
“아... 모르겠다... 그냥 집이나 가자.”
기태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준혁
대문을 열고 들어오자 준혁의 엄마가 걱정이 되는지 마당에 서있다.
엄마를 보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딜갔다 이제오니?”
“끝나고 기태랑 탁구 좀 치다 왔어요.”
“준혁이... 너 나좀 보자.”
“저 피곤해서 씻고 자려는데...”
“너 혹시 지금도 수경이라는 얘 만나고 다니니?”
준혁은 대답없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엄마가 전에도 말했지만... 수경이랑 어울리지 마라... 괜히 너만 다친다. 엄마가 몇 번을 말하니? 뱁새가 황새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대체 누가 뱁새고 누가 황새라는 거에요?”
“이녀석아... 목소리 낮춰... 엄마가 없는말 하니? 너가 지금 그러고 다닐때야? 엄마는 지금까지 너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너 자꾸
이렇게 엄마 실망시킬래?”
“죄송해요. 엄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거 하나밖에 없다. 너 번듯한 대학 가는거.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더도 덜도 말고 남들만큼만... 그래서
애비 없이 막 자랐다는 소리 안 듣는거. 알지?”
“네... 알아요.”
“너 하나만 잘되면 엄마는 이까짓 병은 아무 상관없다. 알지?”
말하던 엄마는 기침을 한다.
“괜찮으셔요? 약은... 약 어딨어?”
한참 기침을 하던 엄마는 겨우 진정시키고는 “괜찮으니까 엄마가 하는 말 새겨 들어 이놈아. 딴 생각 하지 말고.”
“알겠어요.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자율학습도 다시 시작하구요. 그럼 아마 지금보다 더 늦을 거에요.”
“알았다. 넌 엄마 신경쓰지말고 남은 시간 공부나 열심히 해.”
“네... 그럼 들어갈게요.”
대담을 한 준혁은 방으로 들어간다.
준혁의 방. 좌식책상에 스탠드 켜져 있고, 책 한권 펼쳐져 있다. 카세트도 있다.
한참동안 책을 보고 있다 잠시 생각한다.
‘공부보다는 여자 꼬시는 재주가 더 있는거 같은데 나나 너희 어머니... 여러 사람 희망고문 시키지 말고 그냥 때려쳐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거 하나밖에 없다. 너 번듯한 대학 가는거.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더도 덜도 말고
남들만큼만... 그래서 애비 없이 막 자랐다는 소리 안 듣는거. 알지?’라는 엄마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공부를 하던 준혁은 책상을 물리고 벽에 기댄다.
한쪽 벽면에 세워져 있는 기타를 잡고는 가볍게 튕겨 본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카세트에 녹음 테이프를 넣는다.
목을 가다듬다가 녹음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부르는데....
Whenever I'm weary, From the battles that rage in my head
You make sense of madness, When my sanity hangs by thread
I lose my way, bit still you, Seem to understand
Now and forever, I will be your man
그런뒤 카세트에 대고 얘기하는 준혁
“수경아. 나 준혁이야. 놀랬지? 만나서 얼굴보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
이제 수능이 얼마 안남았다. 수능이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진 너도 알지?
지금은 힘들고 받아들이지 쉽진 않겠지만 시험 끝날 때 까진 만나지 말자.
많이 생각나고 보고싶겠지만 그래두 조금만 참고 공부하자.
그리고 수능 끝나는 날 등대 앞에서 다시 만나자.
그 날 지금보다는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테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안할게.
내가 하는 말 다 이해할 수 있지?
아프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이 때 안방에서 준혁의 엄마가 준혁을 부르고 깜짝 놀란 준혁은 황급히 정지버튼을 누르고 안방으로 간다.
- 다음편에 계속 -
첫댓글 잘 읽고 있어요 넘 재밌어요^.*
재미있게 보고계시다니 앞으로 신경써서 작업해야겠어요.^^
오늘 보니 제목부터가 틀렸던데...ㅋㅋ
아무튼 여러모로 부족한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져요
ㅎㅎ감사합니다^^
갈수록 재미있군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