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수경의 학교 앞. 방학식 날이어서 그런지 이른 시간인데도 여학생들이 일제히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교문 앞에 준혁이 서있는데,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뭐냐는 식으로 한번씩 쳐다본다.
친구들과 함께 걸어나오던 수경은 교문 앞에 서있는 준혁을 발견하고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준혁에게 다가온다.
수경은 미소를 띠며 “진짜 무슨 일이야? 학교 앞에서 날 다 기다리고...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전에 왔어. 우리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
“그럼 우리 날도 더운데 팥빙수 먹으러 가자.”
“그래... 어디든 가자.”
학교 근처 제과점으로 들어온 준혁과 수경.
학교 앞으로 자신을 만나러 온 준혁이 신기했는지 수경은 연신 웃으며 물어본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야? 학교 앞에 오는거 싫어했잖아.”
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 내가 그랬나?”
“응... 그래서 이상해... 준혁이 네가 학교 앞에서 날 다 기다린다는게... 나 보고 싶어서 온거야?”
준혁은 수경의 물음엔 대답하지 않고 “너도 방학했지?”
“응... 방학이래봐야 뭐 나흘 뒤면 끝나겠지만...”
“수경이 너도 보충수업 하니?”
“응... 난 뭐 예체능계라 다른 얘들처럼 야자까지는 안하겠지만 오후수업까지는 받아야지. 준혁이 넌? 넌 방학기간에도
야자 안하지? 어머니 때문에...”
“아니... 수능도 얼마 안남고 엄마도 좀 괜찮아지셔서 다시 시작하려고...”
“그래? 그럼 이제 예전처럼 자주 못 만나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우리 내일 서울갈래?”
“서울은 왜?”
“너 서울대 가고 싶다며... 난 연세대 음대 가고 싶은데... 미래에 우리가 다닐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가보지 않을래?”
“뭐하러... 아직 시험도 안 봤는데 어딜 갈 줄 알고... 안 갈래.”
“간김에 명동도 가보고, 남산도 놀러가고 하면 좋잖아... 너 혹시 돈,,,”
가는 비용이 걱정돼서 안가려는 거냐고 말하려던 수경은 혹시나 준혁이 자존심 상해할까봐 말을 멈춘다.
“앞으로 너 야자시작하면 만날 시간도 별로 없을테구... 그래서 난 바람도 쐬구 갔다오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거 같아 그런건데... 그런데 오늘 준다는건 뭐야?”
딴생각 하던 준혁은 “응? 뭐?”
“오늘 나한테 뭐 줄 거 있다고 만나자고 했자나.”
“아... 그거...” 이제야 생각난 준혁은 가방 안에서 테이프를 꺼내 수경에게 건낸다.
“무슨 테잎이야? 시중에서 파는건 아니고 녹음테잎 같은데....”
“응.. 별거 아냐?”
“뭔데 그래?”
“수경아... 우리 그... 아니다. 집에가서 들어봐.”
수능 끝날 때까지 그만 만나자고 얘기하려던 준혁은 차마 말을 하지 못한다.
수경은 준혁에게서 받은 테잎을 가방에 넣는다.
준혁은 “목도 축이고 했으니까 우리 어디가서 맛있는거 먹을까? 밥 먹고 나서 내가 영화도 보여줄게...”
“준혁이 네가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는 거야?”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오늘은 내가 다 해줄게...”
수경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준혁이 오늘 너 이상하다.”
“뭐가?”
“학교 앞에서 날 기다린것도 그렇고, 항상 시간없다고만 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준다니까... 이상해...”
준혁은 일어나며 “이상할 거 없어... 나흘 방학도 방학이라고 기분 좋아서 내가 쏘는 거니까 따라 오기나 해.”
수경은 준혁을 따라 일어나며 옆으로 가 팔짱을 낀다.
준혁은 놀라 수경의 팔을 빼며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수경은 웃으며 “누가 본다 그래? 아무래도 내 생일... 오늘로 바꿔야겠다.”
수경의 말에 준혁도 웃으며 어딘가로 향한다.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수경의 집에 도착한 준혁과 수경.
“준혁아. 오늘 정말 즐거웠어?”
“그래. 늦었다. 얼른 들어가.”
응... 집까지 가는데 30분정도 걸리지?“
“이따 전화할게.”
“응... 그래...”
테잎을 듣고 난 수경이 받을 상처가 걱정되긴 했지만, 수경이도 자신이 내린 결정을 이해하고 따라줄거라 생각한 준혁은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는 대도 반겨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준혁은 엄마의 방 문을 열어 본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 저 왔어요. 주무셔요?”
살짝 잠에서 깬 엄마는 “응... 몸이 좀 힘들어서 잠깐만 누워 있는 다는게 깜빡 잠이 들었구나... 밥은?”
“먹고 왔어요. 저 씻고 들어가서 공부할테니까 주무세요.”
“그래. 오늘 방학이면 내일부턴 안깨워도 되는거지?”
“알아서 할게요. 주무세요.”
준혁은 방문을 닫고 나간다.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안방 문을 열고 전화기 코드를 뽑아 방으로
가지고 가 다시 코드를 꼽는다.
같은 시각 수경의 방
넓은 방 안에는 책상과 침대, 옷장 등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있다.
방 안에는 오디오며 TV, 컴퓨터까지 없는게 없어 한 눈에 보기에도 부잣집 외동딸의 방이라 생각할 만하다.
가방에서 준혁이 준 테잎을 꺼내 카세트에 넣는다.
카세트가 돌아가자 준혁이 목을 가다듬는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Whenever I'm weary, From the battles that rage in my head
You make sense of madness, When my sanity hangs by thread
I lose my way, bit still you, Seem to understand
Now and forever, I will be your man
준혁의 노랫소리에 수경은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뭐야 이게...” 하지만 표정만큼은 마냥 좋은 표정이다.
준혁의 노래는 계속 흘러 나오고 수경은 눈을 감은 채 미소를 띠며 계속 듣는다.
그러다 준혁의 목소리가 나오자 수경은 놀라는데...
“수경아. 나 준혁이야. 놀랬지? 만나서 얼굴보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
이제 수능이 얼마 안남았다. 수능이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진 너도 알지?
지금은 힘들고 받아들이지 쉽진 않겠지만 시험 끝날 때 까진 만나지 말자.
많이 생각나고 보고싶겠지만 그래두 조금만 참고 공부하자.
그리고 수능 끝나는 날 등대 앞에서 다시 만나자.
그 날 지금보다는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테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안할게.
내가 하는 말 다 이해할 수 있지
점점 어두워지는 수경의 표정, 준혁의 말이 끝나자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책상에 엎드려 계속 운다.
그 시각 방안에서 계속 책을 보던 준혁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시계를 본다.
시계는 열한시를 향해 가고 있다.
전화기를 들어본 준혁은 신호가 제대로 가고 있는걸 확인하고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그러다 수경이 생각난 준혁이 다시 전화를 잡고선 수경에게 전화를 한다.
불이 모두 꺼진 수경의 집에 전화벨이 울린다.
그때까지 계속 울던 수경은 전화벨 소리에 놀라 시계를 보는데 열한시가 넘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깰까봐 책상에 있던 전화기 수화기를 얼른 드는데 울음이 그치지 않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수화기 넘어로 준혁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여. 여보세요.”
겨우 울음을 진정시킨 수경은 “여보세요. 누구세요?”
“수... 수경이니? 나 준혁이야...”
“네가 이시간에 무슨 일이니?”
“나 집에 잘 들어왔다고... 혹시나 걱정할까봐 전화했어.”
“내가 네 걱정을 왜 해? 너랑 나는 이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그래 할 말이라는게 그 말이었니?”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한다며? 네가 원하는게 이런거였니?”
“수경아... 내 뜻이 그게 아니라는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아니.. 난 몰라.”
“수경아...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도 아파... 하지만 우리 조금만 참고 시험 끝나는 날... 등대에서 만나자. 기다릴게”
“싫어. 난 이제부터 허준혁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도 마음 아파하지말고 시험 끝나도 기다리지마... 안나갈거니까...”
“수경아... 제발 이러지마...”
“이제 할 얘기 없지? 끊을게...”
수경은 전화를 끊고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준혁도 그런 수경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는데......
- 다음편에 계속 -
첫댓글 준혁이의 마음이 느껴져요
사랑하지만 미래를 위해 잠시간 이별을 택하는 것... 남자의 마음은 그런데 여자들 마음은 어떨런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