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8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어둠에 속하지 않고 낮의 아들이자 또한 빛의 아들이라 하셨습니다(갈 5:5).
이 말씀 앞에서도 제 자신이 부족한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칠흑 같은 밤과 어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땅에 속한 지체들이 보이는 것인데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등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부정함과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사 나의 첫 자리인 죽은 흙임을 알고 주님 앞에서 납작 엎드리게 하소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별 것이라도 있는 양 자꾸만 고개를 쳐들려합니다.
이런 나에게는 오직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필요하오니 주의 십자가로 나를 묶으소서.
나의 실존을 알고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드러내려는 자기 의가 얼마나 강한지 그것이 나를 살려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못함을 알면서도 고개를 들려합니다.
이 시간 나 자신을 부인하고 죽은 흙의 자리로 내려가 주의 십자가와 무덤에서 주님과 연합한 자로 서게 하소서.
그곳에서만 영원한 생명으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사오니 다른 것에 눈을 돌리거나 귀 기울이지 않게 하소서.
영원한 주의 나라가 오늘 나의 심령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2:36-46
제목 : 네가 어찌하여 내가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않았느냐?
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39 3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어떤 사람이 시므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에게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게 하고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라히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자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45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 나의 묵상
사람에게 있어서 말이란, 곧 그 사람 자신을 일컫는다.
말은 곧 인격이며 또한 다른 사람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다.
특히 왕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추상같은 왕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쉐마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 되는 언약 공식인 언약 관계가 유지된다(출 6:7).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쉐마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러면 언약 관계가 깨져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으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그들을 부르셔서 다시금 쉐마할 것을 명령하신다.
이스라엘은 잠시 순종하다가 또 떠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들과 시내산 언약에서 모압 언약으로 다시금 세겜 언약으로 갱신하시고 그들을 품어 주시다가 더 이상 안 된다고 판단되실 때 그들을 바벨론 포로로 보내신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을 모독했던 시므이를 용서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므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다윗 왕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신발도 제대로 갖춰 신지 못하고 급하게 맨발로 왕궁에서 도망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시므이가 그런 비통한 심정으로 도망가는 다윗에게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면서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삼하 16:7-8)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향하여 시므이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이런 자를 살려둘 수 있겠는가?
그것도 비록 쫓겨가는 신세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왕으로써 말이다.
이런 시므이를 보던 신하 아비새가 다윗 왕에게 “이 시므이를 한 칼에 죽여버릴까요?” 하니까 다윗은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한다.
(삼하 16:10-12)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통하여 나를 깎고 다듬고 빚으시는 정이나 조각칼로 사용하고 계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다윗 왕에게 용서를 받았고, 또한 솔로몬 왕에게도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솔로몬은 용서하는 대신 조건을 둔다.
그것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너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 이후 3년 정도는 시므이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그의 종 2명이 가드로 도망치게 되고 그 사실을 시므이가 알고 나귀를 타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자신의 종 2명을 찾아 데리고 왔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벗어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서 왕의 명령에 쉐마하지 않은 일과 그 책임이 어느 누구에게 있지 않고 시므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브나야를 보내어 죽인다.
시므이는 왕의 명령에 쉐마하지 않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음을 면치 못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언약을 여러 차례 갱신함에도 불구하고 쉐마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에게 완전한 언약인 새 언약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을 성취하신다.
(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이 성취하신 새 언약의 대가는 죽음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 것처럼, 쉐마하지 않았던 시므이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다.
그 죽음은 쉐마하지 않고, 불순종한 내가 받아야 하는 죄의 대가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게 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다.
그리고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새 언약을 말씀하시고 그 다음 날 십자가에서 새 언약을 성취하신다.
쉐마하지 않는 자의 결말은 비참한 죽음이다.
그런데 이 비참한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시고 우리를 살리셨다.
하나님은 용서라는 끝없는 사랑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당신의 아들과 맞바꾸신 것이다.
내가 바로 시므이가 아니고 누구인가?
왕의 명령에 쉐마하지 않은 죄,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는 내가 그동안 끊임없이 먹고 마시던 죄가 아닌가?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왕의 명령을 선포하신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아들이신 주님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데, 나 같은 자가 어떻게 아들이 선포하는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지키기보다 어기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 내가 죽어야 마땅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나를 용납하시고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당신의 아들을 삼아주시기까지 하셨다.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아버지께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천 번을 불러도 내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다.
이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살자.
그것만이 아버지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다.
오늘도 그 사랑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같은 죄인을 어찌하여 살리셨습니까?
죽어 마땅한 죄인,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을 주님은 용납하시고 아들 삼아 주셨습니다.
먹고 마신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죄인데, 그런 나를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버러지 같은 나이지만, 이제는 주님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았던 그 영광을 저도 보기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 안에서 주님을 보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오늘도 나의 죄 됨을 깨닫고 다시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불쌍한 죄인을 긍휼히 여기사 오직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주님의 긍휼과 자비만이 자의 양식이요 생수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로 살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베푸신 사랑을 감사하나이다.
아들을 제게 주심을 정말 감사하나이다.
주를 향한 나의 찬양과 사랑을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