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개요> 한국 백경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이라 이름 붙였다는 산으로 해발 1,034m의 기봉이 향로봉(1,024m)을 거느리고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등의 자연명소를 간직한 채 정상 분지의 양수 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적상호)와 적상산성, 안국사등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안렴대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 무주 적상산성(茂朱 赤裳山城) 196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14,975㎡, 둘레 8,134m. 현재 북문지 · 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 · 군기고(軍器庫) · 대별관(大別館)이 1643년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 · 참봉 · 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신청합니다29번(문후)
환이 35번 신청합니다 (우체국)
늦었지만 신청합니다. 32번. 문예후문.
임걸령, 설화 신청합니다(양산동1, 첨단1)
신청 감사드립니다.
탑승장소 누구첨단,누구양산동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차홍 설화 양산동, 임걸령 첨단 입니다.
임걸령 친구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발목이 너무 안좋아서 쉬어야 할것같아요
다음 산행때 뵐께요 ㅜㅜ
다음 산행에 뵙겠습니다.
39번자리 신청합니다.
반갑고 환영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이로군요.
동하회장님의 400회 산행과 무위 등극을 축하드리며 설화님이 영광 대마청주 한박스 스폰합니다.
설화님~ 감사합니다.
낮 최고 기온이 섭씨 17도로써 전형적인 가을 날씨인데 구름이 많이 끼었군요.
24번 신청합니다^^
갑작스런 가정사로 임걸령, 설화 취소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두분 가정에 행복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일잘보시고,
다음에 함산 기대해봅니다.
설화님의 대마 막걸리을
많이 기다렸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