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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성실타공 회장(오른쪽)이 자신이 개발한 타공기계 앞에서 타공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타공 분야 경력이 35년에 이르는 베테랑 기술자이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이기도 하다. /시화공단=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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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공은 철판을 비롯해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등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구멍은 용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배열과 간격도 다르다. 이를 정교하게
가공하려면 정밀기술이 필요하다. 좋은 타공 제품은 구멍이 일정하고,이들 간의 간격도 같아야 한다. 구멍이 막히면 타공 제품을 사용한 기계의 모터에 과부하가 걸려 고장이 나거나 불이 날 위험이 높아진다. 성실타공은 국내 100여개 타공업체 중 최대 기업이다. 이 회사는 거래처가 1000곳이 넘는다. 인천공항 킨텍스 고속철도광명역사 등이 이 회사 타공 제품으로 시공됐다.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꼽힌다. 시설은 물론 서비스도 좋기 때문이다. 더욱 좋은 점은 많은 사람이 떠들어도 다른 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천장과 벽 등에 흡음판이 설치돼 있어서다. 일반인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하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 내장재가 설치돼 있고,그 안에 흡음재가 들어 있다. 소리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 구멍 뚫린 철판을 타공판(打孔板)이라고 한다. 이를 만들어 납품한 업체가 시화공단에 있는 성실타공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이동훈 회장(49)의 이 분야 경력은 35년에 달한다. 이렇게 오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 외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경북 청송 출신인 그는 11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상경,성동구 응봉동 산꼭대기에서 살았다.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됐다. 한양대 옆 중랑천 살곶이다리 부근에서 움막집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한양대 후문 옆 사근동에 동신타공이란 업체가 있어서 이곳에 사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가 1975년.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4세 때였다. 공장에서 심부름을 하고,월급 없이 밥만 먹는 생활이었다. 이를 계기로 타공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주문 제작 형태로 만드는 타공 사업은 중소기업형 업종이다. 국내 100여개 타공업체 중 최대 기업인 성실타공의 연간 매출은 자회사를 합쳐 200억원 선이다. 대부분 임가공료만으로 매출을 계상한다. 철판이나 알루미늄 등 원자재를 사서 완제품을 납품하는 제조업 기준으로 환산하면 매출이 500억~1000억원대에 이르는 셈이다.
이 회사가 타공판을 납품한 곳은 인천공항,킨텍스(KINTEX),광명 및 천안아산 고속철도역사,광명경륜장,대전월드컵
경기장 등 다양하다. 그동안 누적 수출액도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7개국에 1000만달러가 넘는다.
어떻게 타공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섰을까. 타공은 철판이나 스테인리스,구리,황동,알루미늄 등 갖가지 재질에 구멍을 뚫는 공정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구멍만 뚫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교하게 가공하려면 정밀기술이 필요하다.
이들 타공판은 내장재뿐 아니라 식품 생산라인이나 공조기기의 필터 역할도 하기 때문에 특히 금속찌꺼기(일명 이바리)가 없어야 한다. '이바리'는 타공 주위에 미세하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금속찌꺼기를 의미한다. 여기에 불순물이 걸릴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음료 제조업체에서 타공판은 알갱이가 큰 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데,이들이 이바리에 걸리면 자칫 생산라인이 멈출 수도 있고 모터에 과부하가 걸려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성실타공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35년 한우물을 팠다는 점이다. 사환으로 일하던 동신공업이 도산하면서 그는 1982년 중고기계 1대로 성실타공을 창업했다. 이때가 21세.그는 타공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려면 무엇보다 타공기계(punching machine)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타공핀의 열처리가 잘 돼야 구멍이 깔끔하게 뚫린다는 것을 알고 핀의 품질
개선에 노력했다. 그는 기술개발에 흥미가 많았다. 그의 '끼'는 사환 시절부터 발동했다. 사환이면서 여러 가지 품질 개선 아이디어를 냈던 것이다. 그러면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주먹세례였다. '사환 주제에 기계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며 공장 선배들로부터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의 끼는 사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아예 기계를 독자적으로 설계해 만들었다. 지금 시화공장 내 성실타공의 타공기계는 거의 대부분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기계보다 속도가 50% 빠른 타공기계를 개발했다. 이에 따라 생산성을 50%가량 더 높일 수 있게 됐다. 이 역시 이 회장이 직접 개발했다.
둘째,오랜 경력의 베테랑 기술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철웅 부사장을 비롯해 하명균 공장장,김상식 기술실장은 20~30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오창원 영업부장은 15년 경력자다. 장 부사장은 이 회장이 동신공업 사환으로 근무할 때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던 소년이었다. 이 회장이 끌어줘서 그 역시 동신공업에 입사한 뒤 성실타공 창업 멤버로 참여해 30년 이상 이 회장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 회장은 "타공 제품은 1차적으로 기계가 좋아야 하지만 그보다 일선 현장의 기술자들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세한 불량은 계측기기로도 잡아낼 수 없고,오로지 감(感)으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예컨대 타공 간격이 조금씩 미세하게 벌어질 경우 기계의 철판 이송 속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는데,이를 파악하는 것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타공 제품을 직접 보지 않고 기계 소리만 들어도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는지 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작업복 차림에 목장갑을 끼고 돌아다닌다. 일감이 밀릴 때는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한다. 영업부가 있지만 대부분의 주문은 이 회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기업들에 의해 이어진다.
셋째,다양한 기술 개발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메모한 뒤 이를 토대로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한다. 타공기술을 활용한 것들이다. 파종기도 그중 하나다. 배추 고추 파 등 상당수 채소는 모종을 만든 뒤 옮겨 심는다. 그래야 뿌리가 잘 내리고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이때 씨를 뿌리는 과정이 매우 번거롭다. 이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장치가 파종기다. 파종기는 국내 굴지의 농업기자재 업체를 통해 전국의 농가에 판매하고 있다. 성실타공은
건물 외장재용 알루미늄 타공 제품도 개발해 몇몇 기업의 본사 건물 외장재로 설치했다. 이 회장은 "이 외장재는 색깔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다양한 조명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목재 울타리를 대체할 타공 펜스도 개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지역의 단독주택은 대부분 앞마당에 나무로 된 낮은 울타리를 친다. 목재 울타리는 비에 젖으면 썩고 페인트가 벗겨져 흉하게 변한다. 이를 대체하는 제품이 금속으로 된 타공 펜스다. 얇은 철판이나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판을 도장하거나 도금해 만든다. 미려한 데다 썩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주택의 안과 밖을 소통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 회장은 "해마다 타공 제품 시장이 15~20%씩 커진다"며 "특히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방음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에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일밖에 모르는 그가 유일하게 하는 대외활동은 자택이 있는 서울 대방동의 소년소녀가장이나 고아원 등을 돕는 일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약속한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다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중고기계 1대로 창업할 때부터 시작돼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불우한 소년소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