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트라’
믿었던 상대에게 속아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너무 분해서, 이가 갈리고 속을 썩힌다.
그럴 때, 우리는,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임)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썩는다는 말에는, ‘부패腐敗’와
‘발효醱酵’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화와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마찬가지로, 어떤 글이나 생각은
정신을 부패시키고, 또는 그 반대로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자기 마음을 살리고/죽이는 발효와 부패는,
즉 자기자신의 마음의 변화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뭔가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화의 진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때,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발견하고
전가시키면, 마음은 부패하고,
자기 스스로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때 우리의 마음은 발효한다.
그 마음발효법 중에 제일 쉽고
편안한 방법 하나 소개한다.
그것은 바로 ‘만트라mantra’이다.
‘만트라’는 범어로, ‘만man’은 ‘마음’을,
‘트라tra’는 ‘도구’를 의미한다.
말그대로, 만트라는 ‘마음 도구’이다.
‘만트라’는 ‘진언眞言’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본래, 고대인도 바라문교에 기원이 있는 말이다.
바라문교에 있어 바라문(성직자)의 역할은,
축사祝詞를 창唱하여 신神들을 추겨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들은 기분 좋은 마음이 되어,
마음이 들떠 인간에게 이익을 주신다.
혹은 재난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것이다.
단, 그 축사는, 최적의 말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최적의 말이 곧 ‘만트라’이다.
물론 그것은 진실이 아니면 안 된다.
거짓말을 하여 신들을 칭예해도,
신들은 기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만트라는 ‘眞言’인 것이다.
나의 만트라는 ‘南無 그대로’이다.
나타나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그렇게 만트라를 창하는 것이다.
니버의 기도가 생각난다.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평화, 믿음)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