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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
기복이 심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진달래꽃 섬
목차
1. 화도 개요
2. 마을의 이름과 유래
3. 화도의 도선 운항
4. 화도 바다 이야기
5. 가깝고도 먼 섬 화도
6. 화도 둘러보기
7. 7개 마을의 이장 일
9. 화도 섬을 떠나면서
화도 개요
화도는 면적 1.207km2, 해안선 길이 7.5km이다.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 호곡마을 앞 선착장과는 불과 2km, 10분이면 닿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통영과는 4.2km이며 통영에 속한 한산도와는 1.2km 떨어졌다. 커다란 파도를 연상케 하는 3개의 구릉이 인상적인 섬이다.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에 속한 이 섬은 화도(火島), 화도(花島), 적도(赤島), 각도(角島), 어도 등 지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거제 화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인근 바다에서 바라보면 산 정상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어도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저녁노을을 받으면 붉게 빛나서 적도라 불렸다. 그러다가 봄이면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근처 방화도의 봉홧불과 근해의 등댓불로 섬이 온통 붉은 빛을 띠어 화도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에 봉홧불을 올렸다고 하여 화도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화도(花島)는 거제도 본도와 통영시 사이에 위치해 있다. 거제와 통영 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섬들이 통영시의 부속섬인데 화도는 홀로 거제에 포함되어 있다. 거제시의 부속섬이 9개인데 칠천도, 가조도, 산달도에 이어 4번째 큰 섬이 화도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거제시 둔덕면에 소속되었지만 섬 주민들의 생활권은 100% 통영이다. 여객선도 거제와 가까운 둔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영에서 하루 두 차례 운항하고 있다. 섬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들은 둔덕면 학산에서 들어온 인동 장씨와 한산도에서 들어온 충주 석씨 및 제주 고씨 등이라고 전해온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영군에서 거제군으로 편입되었다.
마을의 이름과 유래
거제문화원에서 펴낸 ‘거제문화’에는 화도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있다. 화도는 총 7개의 마을이 있는데 면포, 미포, 발포, 송자포, 염막포, 와선포, 송포(솔개)가 그것이다. 이름마다 역사와 선조들의 숨결과 삶의 방법이 스며들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 왜선이 많이 정박해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왜선포, 또한 시원한 바닷가에 신선이 내려와 누워 잠을 잤다고 해서 와선포라고도 한다.
염전이 있었던 염막포, 그 동북쪽 목섬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목화를 재배하던 미영(무명의 사투리)밭 구미를 면바꾸미 또는 면포라고 했으며, 동남쪽의 논이 있는 곳을 쌀개라 하고 미포라고 불렀다. 섬의 동남쪽 염막포와 서남쪽에 있는 바다에 밀물과 썰물 때 고기가 오갔기 때문에 죽방렴을 설치하여 고기가 들어오도록 했고, 긴 말뚝에 대발어장이 있었던 포구라고 해서 발개 또는 발포라고 한다. 그리고 녹산천의 하구와 마주보는 곳으로 송림이 울창하여 어부림이 형성되었고, 옛날 돌발(석방렴)을 설치하여 봄에 멸치와 갈치 등을 가두어 잡았던 곳인 송포, 또는 송학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화도의 도선 운항
화도 최초의 여객선은 김홍관씨에 의해서 운항되었는데 통영에서 거제 둔덕으로 가는 제1둔덕환이 직행으로 다녔다. 화도 주민들은 통영을 출입하기 위하여 노 젓는 배를 타고 거제 둔덕면 녹산 부두까지 가서 둔덕환을 탄 후 통영까지 나갔다고 한다.
화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여객선의 역사는 1962년에 운항한 광제호에서부터 시작된다. 무게 55톤 강선인 이 여객선은 정원이 100명 정도였다. 이 여객선은 아침 7시에 거제를 출발-내간-영복-실리-산후-화도 새바지-소량-고당-산달도 산전-아지랑이-동좌도-둔덕어구-화도를 거치면 통영에 10시 정도 입항했다. 그리고 2시에 통영을 출발하여 반대 방향으로 오후 5시에 거제에 도착하였다. 이 여객선은 1974년까지 운항되었고 그 이후에는 충무-연화도-납도-욕지도 노선이 투입되어 운항하였다. 지금은 육로 교통의 발달로 인해 느리고 위험한 뱃길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통영-화도와 섬들을 잇는 노선은 1일 2회 유지되고 있다.
화도 주민들은 90% 이상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 가구마다 소형 선박을 가지고 있다. 이 선박은 양식업과 어업 등 수산업에 이용되지만 통영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교통수단으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이 통영과 하루 2회 운항하고 통학선이 아침과 저녁에 다니지만, 화도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역시 자가 선박이다. 육지와 가까운 섬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통학선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경남 603호이다. 15톤의 통학선은 5명의 화도 학생들을 위해 거제의 녹산부두에서 오전 7시 10분에 출항하여 12분 후에 화도에 도착하여 학생들을 태우고 나간다. 오후에는 하교 시간에 맞추어 5시 반경에 면포 부두에 내려 주고 되돌아간다.
화도 바다 이야기
‘거제문화’에 나오는 대목이다. 1960년대 중반에 마을 이장을 5년간 역임한 아랫골 강정만씨에 따르면, 화도 주변 바다가 오염이 심각하여 3년 전부터 바지락이 사멸하더니 이제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 간다며 장탄식을 한다. 옛날에 잡는 어업을 할 때는 많이 못 잡아도 늘 바다에서 그물질을 하면 고기가 잡혔다. 몇 십년 전부터 어업 기술의 발달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 방식으로 전환되어 처음에는 수입도 좋고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나없이 낡은 그물을 바다에 버리고 도시의 생활폐수가 계속 흘러들어서 바다가 황폐화 되어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화도는 바다의 안쪽에 위치하여 조건이 불리하다. 오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바깥에서 고기가 들어오기 전에 그물과 낚시로 다 잡아서 고기가 귀하다고 한다. 그분은 바다는 임자가 없는 곳으로 누구나 먼저 고기를 잡는 사람이 임자이고, 쓰레기도 함부로 버려서 어민들 스스로 자승자박한 셈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그는 정치망 4개와 수하식 멍게장 5ha가 있어서 연간 소득세 500만원을 내고 있는데 그것도 내기가 벅차단다.
배를 가지고 어장을 둘러보면 재미도 없고, 생선도 잘 잡히지 않아 자기 반찬용으로 잡으며 간혹 이웃이 생선을 부탁하면 적어도 이틀 정도 잡아서 씨알이 굵은 것으로 골라 준다며 고기가 귀하여 큰일이라고 한다.
화도의 면포 장춘생옹도 건망 4틀에서 3년 만에 이익금 5,000만원을 어민들에게 나누어 주지만 1가구당 300만원 정도가 소득의 전부라며 혀를 찬다. 화도의 근해에는 11곳의 축양장이 있는데 대부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바지락 양식장은 공동으로 수익을 올려서 그 수익금으로 가정용 수도 시설 공사비로 사용되었다. 1년 만에 채취하는 바지락은 씨알이 굵어서 맛이 뛰어나고 인기가 좋지만 이제 그것도 옛 이야기가 되었으며, 지금은 바지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감소 추세라고 하였다.
그 대신 굴양식과 멍게인 우렁쉥이를 양식하면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1987년 이후 화도 주민들 대부분은 멍게 양식을 할 정도로 큰 붐이 일어나 통영시의 다방 종업원들도 투자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마을 전체가 ‘돈 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체적인 어장의 황폐화로 폐사율이 높고 예전처럼 잘 자라지도 않아서 어업인들의 한숨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오염과 낡은 그물을 함부로 바다에 버려 바다가 오염되고 갯벌이 부패해졌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섬 화도
화도는 육지와 매우 가깝지만 뭍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섬에 속한다. 아직도 정기 도선이 없기 때문이다. 거제 본섬과 화도를 오가는 정기도선이 없어서 교통이 매우 불편한 섬이다. 화도의 미포마을에서 바다 건너 4.1km 전방에 통영항이 아련히 보인다. 화도에서 거제도 시청에 가려면 통영항으로 배를 타고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서 몇 시간 걸려 일을 보고 들어간다.
한산도와 1.2km 떨어진 화도에 들어가려면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7시·오후 2시) 다니는 ‘섬누리’호를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면 용호도-죽도-한산도 진두-동좌-서좌-비산도-화도를 거쳐 통영항으로 회항한다. 오전 배를 타면 편도 2시간 이상 걸린다. 그러나 오후 2시에 떠나는 배는 반대 코스로 간다. 통영항에서 화도-비산도-서좌-동좌-한산도-진도-죽도-용호도 순으로 통영항에 입항한다. 화도는 오전 배로 들어오면 2시간 걸리지만, 오후 배는 20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화도 주민들은 육지에 볼 일이 있으면 오전 8시 40분경에 도착하는 여객선을 타고 통영에 나가 생필품도 사고, 병원도 가고, 개인적인 일을 본 후에 오후 배로 돌아온다.
하지만 거제시에 소속된 화도 주민들은 행정적인 일을 보려면 교통이 불편하여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대부분 주민들은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60년 넘게 생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주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배를 가지고 거제시 호곡마을로 건너가기도 하고, 통영에 직접 가서 일을 보고 돌아오기도 한다. 대부분 배가 없는 화도의 노인네들은 이장에게 행정적인 일이나 생필품을 부탁하기도 한다. 배가 있으면 자가용 배를 이용하면 어려운 길은 아니다. 노인들에게는 이래저래 힘든 섬마을인 셈이다.
예전에 통영의 앞바다에 떠 있는 한산도, 해간도, 비산도, 좌도 등 거의 대부분은 통영시에 속하였다. 그러나 195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필이면 통영에 가까운 화도만이 거제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화도의 불행은 시작된 것이다. 행정구역이 거제에 편입되는 바람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통영에서는 한산도와 다리를 연결하려고 하지만 거제에서 반대를 하여 무산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2005년에 통영 정량동~둔덕 방화도~화도~한산도를 잇는 연륙교를 가설하려고 추진했지만 거제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화도에서는 통영으로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거제시가 반대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화도가 갖고 있는 해안 영역 때문이다. 부근 수역에서는 갈치와 방어, 멸치, 고등어 등의 난대성 어류가 많이 잡히며, 굴과 멍게, 미역 등의 양식도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우렁쉥이와 자연산 바지락이 많이 잡힌다.
화도 둘러보기
화도는 통영항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섬으로 한산도 바로 위에 위치한다. 화도는 모두 7개의 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의 선박들이 많이 정박했던 왜선포 마을은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곳이다. 거제대교와 통영과 한산도 쪽에서 오가는 배들을 볼 수 있는 삼거리 형식의 전략적인 마을이다. 필자는 통영에서 배를 타고 만 20년 전에 와서 1박을 했던 미포마을에 탐사선을 대고 화도를 답사하기 시작하였다.
미포마을은 화도에서 통영이 가장 가까운 마을로, 미륵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포마을 방파제에서 정면으로 보면 산 중턱을 가르는 고개를 넘어가는 포장도로가 있고, 오른쪽으로 마을로 이어지는 해안길이 있다. 남동쪽으로 호안이 있고 왼쪽으로 골목길이 있다. 집들이 몇 채 있지만 빈집들도 있고 허름한 집들이 주를 이룬다. 길은 그다지 넓지 않은 좁은 골목길 수준이다. 이 골목을 지나면 이내 밭이 있다. 이어 조금 더 가면 오르막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오른쪽으로 밭과 바다를 끼고 왼쪽으로 집이 몇 채 나란히 있는 산길 형태다. 이 마을의 유일한 도로다.
돌 축대를 낀 제법 넓은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이 있고 해안으로 떨어진다. 직진하면 본 마을로 이어진다. 여기서 아래로 이어지는 길로 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면 건너편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르막길 언덕바지에 화도교회가 있다.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다. 그 뒤로 반대편 송포마을 가는 길이 있다.
동남쪽으로 이어진 포장길로 걸어가면 언덕바지가 나오고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이 언덕바지에서 왔던 곳을 바라보니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아래쪽은 거의 폐가들이고 그나마 위쪽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포마을로 들어서면 이곳은 도로명 주소가 다르다. ‘화도2길’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어 골목길을 지나면 바로 포구에 이른다.
여기서 해안을 바라보면 포구는 사각형으로 막힌 구조다. 좁은 만 안에 포구가 있고 만 입구에 방파제가 있어 바다 자체를 막은 것처럼 보이지만 출구는 왼쪽으로 나있다. 화도는 기복이 심한 3개의 구릉으로 이루어졌고, 동쪽의 화도만과 서쪽의 적암만 등 작은 만이 발달하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인데도 물양장이 포구에 비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물양장의 왼쪽 계곡 쪽으로 집터가 보인다. 돌 축대를 쌓은 흔적으로 보아 밭과 함께 집도 있었음 직하다. 여기서 호안을 따라 가면 호안 끝에 이른다. 이 호안은 항만시설로 매립해 조성된 물양장이다. 맞은편에 일자형 방파제가 있다. 여기서 맞은편에 보이는 큰 섬이 한산도다. 그 옆 오른쪽에 죽도도 보인다.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큰 섬은 통영 미륵도. 앞바다에도 멸치양식장이 있다. 일정한 하얀 선의 연속인 한가운데 부교 위 큰솥 연통이 보인다.
미포는 예전에 멸치잡이 권형망이 번성했던 마을인데 지금은 모두 떠나가고 소규모의 권망이 성행하고 있다. 마을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 멸치 흔적들이 있는데 배들이 분주히 멸치를 잡아 와 삶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주민들은 이른 새벽 4시 경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잡은 멸치를 싣고 와서 인근 가마솥이 있는 곳에 뗏목으로 일일이 옮겨서 바로 삶는다.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멸치 특유의 맛과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바다에서 잡아서 섬으로 갖고 와서 삶은 것보다는 맛과 신선도가 좋다는 이야기다.
잔교가 두 개 있지만 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마을을 바라보면 뒷동산은 거의 밭이고, 좌우로 낮은 해발의 산이 있다. 집들도 그리 많지 않다. 마을 앞 바다는 거의 운동장처럼 깨끗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교회 뒤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타고 가면 송포마을에 이른다. 내륙 쪽은 농경지로 개간되었고,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오르막 계단으로 되어있는 좁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집이 끝나는 지점에 산길이 있다. 언덕을 오르면서 바라본 마을은 정겨움이 물씬 풍겼다. 옛날에는 이 산길을 통해 건너 마을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미포의 해안길을 따라 우측으로 마을 언덕길을 넘어가면 왜선포 마을에 도착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선이 많이 정박했던 곳이라 해서 얻은 이름이다. 여기서 송포마을로 나오면 거제와 통영을 연결하는 거제대교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송포마을에서 언덕길을 내려와 마을로 가는 좁다란 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역시 사용하지 않는 우물터가 있다. 조금 더 가서 마을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학교가 있다. 숭덕초등학교 화도분교장이다. 화도길은 여기서 동쪽으로 이어진 해안길을 따라 계속된다. 그러니까 화도길은 해안도로라고 할 수 있다. ‘화도분교장’은 숭덕초등학교에서 1962년에 학산초등학교와 함께 분리되었다가 1983년에 다시 분교장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에 숭덕초등학교와 통폐합됨으로써 지금은 폐교되었다.
포구 앞에 위치한 분교의 운동장 반은 잡초지만, 반은 그런 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교사와 부속건물들도 상태는 아주 좋다. 운동장만 아니라면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학교라고 착각할 정도다. 교사와 부속 건물들은 다 무인경비시스템으로 폐쇄를 하여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잘 정돈된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텅 빈 운동장에는 그네와 시소만이 외롭게 서 있다. 우체부 일을 하는 박영찬씨는 “현재 마을 어촌계에서 분교를 임대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앞으로 섬이 어촌체험마을이 되면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고 하였다.
학교 앞에도 넓은 물양장이 있는데 여기서 길은 갈린다. 왼쪽으로는 해안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남쪽으로 섬의 본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의 해안길로 가면 왼쪽은 텃밭, 오른쪽은 바다의 해안도로이다. 어느 정도 걸어가면 해안 쪽으로 짧은 방파제가 있다. 내해라서 그런지 물결 하나 없는 조용한 호수 같은 바다다. 부근에 창고로 사용되었던 허름한 건물들이 몇 채 있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톡 튀어나온 곶이 있다. 야산을 깎아 만든 도로다. 이 도로 주변에창고가 몇 채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지붕들이 다 드러나고 창문도 없는 말 그대로 폐가다. 대형 수족관으로 보이는 건물도 몇 채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국립공원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 도로포장 이력을 새긴 표지석이 있는데 2005년에 시작하여 2006년에 완공된 1km 거리의 화도 일주도로(비법정도)로였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또 다른 모습의 바다가 나타난다. 그러나 집은 거의 찾을 수 없고 양식장들이 주를 이룬다. 제법 길게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역시 에스(S)자 형으로 되어 있다. 바다에는 부교들이 제법 많다. 여기서는 미륵도와 통영 그리고 바로 옆 거제도 등이 다 보인다.
여기서 계속 가면 ‘송전포’라는 또 다른 포구가 나타난다. 몇 채의 집들이 있는 조그마한 포구다. 그러나 우물도 있고 집들도 몇 채 있지만 상태로 보아서는 서너 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폐가들이다. 예전에는 집들이 제법 있었을 것 같다. 조그마한 길이의 방파제와 선착장이 있다. 잔교와 부잔교가 있고, 방파제에서는 낚시꾼들이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곳 방파제에서 서쪽으로 해안도로가 이어지고 이 도로는 서북쪽의 마을에 닿는다. 분교 앞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폭이 좁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오른쪽에 최신식 보건지소가 있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멀리 떨어진 마을은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면포마을에 지소가 있는 셈이다. 7개 마을, 100여 세대에서 26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화도는 하루 평균 진료소를 찾는 환자가 10여 명에 이른다. 화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30% 이상을 차지한다. 낙도이고 노령의 인구가 많은 관계로 고혈압, 당뇨병 등 장기치료를 받는 성인병 환자가 유독 많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2층짜리 붉은 벽돌로 된 경로당이 있다. 그 옆으로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 산길로 이어지는 도로는 ‘화도1길’이다. 경로당에서 동쪽으로 가면 마을이 나타나고 방파제 입구에 여객선 대기소가 있다. 이 마을은 면포마을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건강한 섬’이란 팻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선착장 옆에 있는 마을표지석에 의하면 ‘화도마을’이라고 한다.
이 주변으로 각종 어구들이 널려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무인도인 목섬은 화도의 또 다른 볼거리다. 물이 들면 섬이 되었다가 물이 많이 빠지면 20m를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여기서 캐는 바지락은 맛이 좋고 모양도 좋아서 일본으로 전량 수출을 한다고 한다. 목섬은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며 해산물이 많이 나는 보배섬인 셈이다. 면포의 부교를 지나면 방파제가 있는데 이곳이 섬 끝머리에 자리한 염막포 마을이다. 염막포는 평지에 있는 마을로 주변 밭은 온통 굴껍질로 변해 있다. 이 마을은 굴양식과 멍게양식을 많이 한 마을답게 소형 어선들이 많이 있다.
염막포에서 발포마을로 왔다. 발포마을은 7개 마을 가운데 가장 가파른 지역에 위치하여 아직은 차량이 다니지 아니하기에 가기가 무척 어렵다. 이제 길이 나면 한산도가 뻔히 바라다 보이는 발포가 새롭게 변모될 것이다.
7개 마을의 이장 일
화도는 7개 마을인데 강태순(56) 이장 한 사람이 맡아 수고를 한다. 큰 섬의 경우 대부분 마을마다 이장이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좌도나 추봉도, 용호도나 매물도, 비진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강 이장의 별명은 ‘화도도지사’인데 7개 마을을 잘 파악하여 세심히 돌아보기 때문이다. 마을이 7개이다 보니 구역이 너무 넓어서 서로 분리해도 좋을 듯한데 화도의 오랜 전통으로 그만큼 단결력이 좋다는 의미이리라.
그는 화도에서 태어나 거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교는 통영에서 다녔다. 이후 수협에서 근무하면서 4년 전에 수협지점장으로 명예 퇴직했다. 이후 여생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다 태어난 고향인 화도로 돌아 왔다. 부친의 멍게 양식업을 이어받아 바다 일을 하면서 살려는데 가족들은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반대가 많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마을 주민들 모두가 이장을 해줄 것을 권유했다. 지금은 수협에서의 경험을 살려 살기 좋은 화도, 복지 화도를 만드는데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장일을 하면서 주민들의 심부름도 하고 1t 차량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일을 돕는다. 아직도 차도가 없어 차량 진입이 어려운 발포마을에는 직접 배를 가지고 가서 일을 본다. 이처럼 마을이 곳곳에 떨어져 있는 관계로 다른 섬마을보다 배나 힘들게 일하고 있다. 맘 편하게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업무추진비 등은 현실적으로 지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화도의 심부름꾼 박영찬 목사
미포마을의 미포교회 박영찬 목사는 화도 출신으로 이장 일과 우편배달부를 하면서 화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또 한 사람이다. 지금은 이장은 하지 않고 우체부 일만 하고 이장은 다른 분이 한다. 박영찬 목사는 복지를 전공하고 이곳 화도에서 섬복지에 앞장서고 있다.
육지는 복지혜택이 넘치기에 골라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섬은 복지 개념이 없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섬복지는 예산이 몇 배로 많이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 꺼려하고 방치된 상태이다. 박 목사는 “섬주민은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다”며 “뭍에 자주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이 분들을 섬기는 일을 하지요. 이곳에 노인들을 위한 조그만 복지시설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의 심부름꾼으로 노인들이 부르면 달려가서 간단하고 소소한 일들을 해결해 준다. TV수리와 전기세, 수도세 등 여러 가지 공과금을 납부해 주고 우편물 배달을 해 준다. 그래서 그 분들과 가까이서 지내면서 외롭지 않도록 소통을 한다.
마을의 온갖 궂은일은 앞장서서 하고, 급한 일이 일어나면 그의 배가 응급구조선이 되어 둔덕면 술역리 호곡마을로 간다. 화도는 7개 마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노인네들도 돌아본다. 오늘도 편지와 택배 물품 등 각종 공과금 고지서를 들고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마을이 커서 하루해가 순식간에 넘어간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빛난다.
화도 섬을 떠나면서
화도가 속한 행정구역은 거제시이지만, 대부분 생활권은 통영시이다. 통영의 코앞에 있는 화도 사람들은 자가용 배를 가지고 시도 때도 없이 통영을 즐겨 찾는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화도는 거제와 통영 사이의 바다에 낀 샌드위치 빵이라고 하였다.
주변의 거의 모든 섬들은 통영으로 소속되어 있는데 유독 화도만이 거제로 편입되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그래서 통영으로 소속을 바꾸고 싶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거제의 혜택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화도 주민들은 불편도 말없이 참아내고 있다. 화도 주민들을 화나게 한 것은 거제시에서는 도선 하나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 호곡마을에서 불과 2km, 배를 타면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오전에는 통영에서 무려 2시간 20여분 동안 빙빙 둘러서 가야 한다. 둔덕 호곡마을에서 화도로 연륙교를 놓게 된다면 편리할 것 같다. 호곡-화도-한산도를 잇는 연륙교는 경제적인 가치가 어마어마하기에 언젠가는 실현되겠지만, 막상 화도 주민들은 통영에서 다리가 놓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거제시에서 반대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거제시 화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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