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대부호가 된 인물 / 3/10(일) / 다이아몬드 온라인
종종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사실 일본에서는 실로 40~50년만인 것을 알고 있는가(일본의 버블기에는 자산가격은 올랐지만 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적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본연재에서는, 로렌스·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절찬한 인플레이션 해설서 「우리는 아직,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로부터, 인플레이션의 정체나 투자에의 영향이라고 하는 개소를 엄선해 소개한다.
●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부유한 사람·손해 본 사람
인플레이션은 엄청난 대가를 수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집계적인 경제 데이터를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례로서 1918년부터 1923년에 걸친 독일의 (분명히 극단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를 보자. 1914년 이전의 물가 수준이 평균 100이라고 하면 1923년 말 정점 때의 물가 수준은 무려 142조 9050억 5544만 7917까지 상승하였다.
이 화폐가치의 대폭락에 얽힌 에피소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1병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면 2병째 값이 올라 버린다고, 맥주를 2병 동시에 산 남성( 「시간은 금이다」의 견본과 같은 예다). 규제된 월세 수입이 급속히 치솟는 수선 비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빈곤으로 전락해 버린 부유한 집주인.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장서를 모두 팔아야 했던 학자.
그러나, 집계 데이터는, 이러한 개개인의 체험한 트라우마를 덮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의 1인당 소득은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부터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악몽이 최고조에 이른 1923년까지 실질 기준으로 7.8% 하락했지만 영국의 1인당 소득은 같은 기간 내내 크게 하락한 것이다.
확실히, 동원 해제는 영국의 경제활동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국은 독일이 겪은 것과 같은 재정적 곤궁에 거의 시달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독일의 생활수준 저하는 집계상 영국에 비해 완만하게 보였을까?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극단적인 패배자와 승리자를 낳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의 답이다. 특히 입장이 위태로웠던 것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명목상의 페이퍼에셋[현금, 채권, 증권 등 종이자산]이 휴지조각처럼 되어가던 자산가들이다.
반대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자산(공장 등)을 구입하고 상품을 비축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재물을 쌓았다. 뭐니뭐니해도, 몇 시간 후에는 가치가 큰폭으로 줄어드는 마르크건물로 차입을 실시할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이 통화 대혼란을 목격한 현명한 대출자라면 이를 메우기 위해 눈뜨고 볼 수 없는 고금리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사전에 현명한 글자는 없었다. 그 할인율은 1922년 초 연율 5%에서 1923년 초 12%, 같은 해 9월 90%까지 확실히 상승했는데, 그 단계에 이르자 독일의 인플레이션율은 터무니없게 돼 있었다. 적당한 수치를 고르고 뒤에 몇 개의 0을 더하면 그리 멀지 않은 값이 된다.
이런 정부에 얽매인 불합리할 정도로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은 대기업은 사실상 돈을 듬뿍 받고 차입을 하는 셈이었다.
이들의 채무는 며칠만 있으면 탕감된다. 마치 꿀단지를 무한정 구할 수 있는 곰과 같아서 그런 대기업과 그 경영자들은 갑부가 됐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는 하루 이자율이 30%로 들쭉날쭉했다. 바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영국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페이데이' 대출[다음 급여를 담보로 한 초단기·초고금리 대출·서비스]의 궁극판이라고 할 수 있다.
● '타임'의 표지를 단 독일의 인플레이션왕
이 화폐 대혼란 속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의 최대격으로 꼽히는 것이 후고 디터 슈틴네스(1870~1924)다. 1922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에 따르면 '그는 이렇다 할 비즈니스 기법도 없는 룰 강둑의 뮬하임 회사의 창립자' 라는 마티아스 슈틴네스의 손자였다.
하지만 후고는 선대보다는 비즈니스 수완이 뛰어났다는 듯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석탄 관련 기업을 차린다. 곧바로 운수업에도 손을 벌리고, 다수의 배를 구입해 강이나 바다를 통해 자사의 석탄을 수송해 갔다.
함부르크, 로테르담, 뉴캐슬에 사업장을 차리면 여러 산업회사의 이사가 됐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는 이미 억만장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장에 불과했다. 전시 중에 그의 재산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대망의 독일의 승리를 지탱하기 위해, 복수의 사업을 수직 통합해 거액의 코스트를 삭감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천하일품이라고 해도 좋았다. 전후가 되자 독일의 많은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국내 볼셰비키의 반란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반볼셰비키 기금(Antibolschewistenfond)에 자금을 제공해, 1920년에는 국회의원으로의 선출을 완수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신생 나치당에 자금을 대줬는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그의 공감대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초인플레이션 와중에 그가 꿈도 꾸지 못할 큰 부자가 됐다는 것이다.
이미 진정한 국제 기업가가 된 슈틴네스는 강한 외국 통화를 담보로 독일 마르크화를 차입했다. 이른바 거액의 보조금을 받고 사업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었다.
1923년 3월 프랑스의 룰 점령 직후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그는 국제적 명성을 확고히 한다[*1].
기사는 슈틴네스를 「석탄왕, 억만장자, 현재의 독일의 "제왕"」 이라고 소개해, 「국제 정치라고 하는 중간 지대에서 암약하는 인물들의 다분히 빠지지 않고, 그 또한 어느 진영이 정점에 서든 승리를 잡는 입장에 있다」라고 끝맺었다[*2]. 다른 곳에서는 그는 인플레이션왕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그런 슈틴네스의 대두도 항생제가 없다는 것이 화근이 되어 갑작스러운 끝을 맞이한다. 1924년, 아무 변화도 없는 담낭 수술 직후에 급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사업 DNA 일부는 독일 철도와 RWE(독일 에너지회사)에 숨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제국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의 일화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면서도 인플레이션에 관한 불후의 교훈을 준다. 많은 사람들은 패배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비민주적인 부의 재분배 수단이 될 수 있다. 비록 경제 전체를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킬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fdbad0a09bb1720726cb56d36f41a94160a2e13b?page=1
ドイツのハイパーインフレで大富豪になった人物
3/10(日) 6:0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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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Photo: Adobe Stock
たびたびニュースを騒がせている「インフレ」。実は日本では実に40~50年ぶりであることをご存じだろうか(日本のバブル期には資産価格は上がったが、物価はほぼ上がらなかった)。インフレを経験として知っている人は少ない。そんななか、これから物価が上昇していく時代に突入しようとしている。
本連載では、ローレンス・サマーズ元米国財務長官が絶賛したインフレ解説書『僕たちはまだ、インフレのことを何も知らない』から、インフレの正体や投資への影響といった箇所を厳選して紹介する。
● ドイツのハイパーインフレで富んだ人・損した人
インフレはとてつもない代償をともなうことがある。しかし、その代償は集計的な経済データを見るだけでは理解しにくい場合もあるのだ。
一例として、1918年から1923年にかけてのドイツの(明らかに極端な)ハイパーインフレの事例を見てみよう。1914年以前の物価水準が平均100だとすると、1923年末のピーク時の物価水準はなんと142兆9050億5544万7917まで上昇した。
この貨幣価値の大暴落にまつわるエピソードは枚挙にいとまがない。1本目を飲み終えるまで待っていたら2本目が値上がりしてしまうからと、ビールを2本同時に買った男性(「時は金なり」の見本のような例だ)。規制された家賃収入が急速に高騰する修繕費用に追いつかず、貧困に転落してしまった裕福な家主。パン一切れを買うために蔵書をすべて売り払わざるをえなかった学者。
しかし、集計データは、こうした個々人の体験したトラウマを覆い隠すものでしかない。実際、ドイツの1人当たり所得は、第一次世界大戦末の1918年から、ドイツのハイパーインフレの悪夢が最高潮に達した1923年にかけて、実質ベースで7.8%下落したが、イギリスの1人当たり所得は同期間にずっと大きく下落したのだ。
確かに、動員解除はイギリスの経済活動に巨大な影響を及ぼしたが、それでもなおイギリスはドイツが見舞われたような財政的困窮にほとんど苦しまずに済んだ。ではなぜ、ドイツの生活水準の低下は集計上、イギリスと比べて緩やかに見えたのだろう?
ドイツのハイパーインフレが極端な負け組と勝ち組を生み出したから、というのが1つの答えだ。とりわけ立場が危うかったのは、インフレのせいで名目上のペーパーアセット〔現金、債券、証券などの紙の資産〕が紙くず同然になりつつあった資産家たちだ。
逆に、レバレッジを活かして資産(工場など)を購入し、商品を備蓄することができた人々は、財を築いた。なんといっても、数時間後には価値が大幅に目減りするマルク建てで借り入れを行うことができたのだから。
当然ながら、この通貨の大混乱を目の当たりにした賢明な貸し手なら、その埋め合わせとして目も当てられないほどの高金利を要求するだろう。
しかし、政府の辞書に「賢明」の文字などなかった。その割引率は、1922年初めの年率5%から、1923年初めの12%、同年9月の90%まで、確かに上昇したのだが、その段階になると、ドイツのインフレ率はとんでもないことになっていた。適当な数値を選び、後ろにいくつかゼロをつけ加えれば、そう遠くない値になる。
このような政府に紐づけられた不合理なほど低い金利で融資を得られた大企業は、事実上、たっぷりとお金をもらって借り入れを行っているに等しかった。
彼らの「債務」は数日もすれば帳消しになる。まるで、ハチミツ壺が無限に手に入るクマみたいなもので、そうした大企業とその経営者たちは大金持ちになった。
しかし、中小企業にとっては、日利30%などザラだった。まさに、世界金融危機以降、イギリスで大きな物議を醸した「ペイデイ」ローン〔次の給料を担保とした超短期・超高金利のローン・サービス〕の究極版といえよう。
● 『タイム』の表紙をかざったドイツのインフレ王
この通貨の大混乱のなかで巨万の富を築いた人物の筆頭格に挙げられるのが、フーゴー・ディーター・シュティンネス(1870~1924)だ。1922年版の『ブリタニカ百科事典』によると、彼は「これといったビジネス手法も持たないルール河畔のミュールハイムの会社の創設者」であるというマティアス・シュティンネスの孫であった。
しかし、フーゴーは先代よりはビジネス手腕に長けていたらしく、20代前半の若さで石炭関連の企業を立ち上げる。すぐに運輸業にも手を広げ、多数の船を購入して川や海を通じて自社の石炭を輸送していった。
ハンブルク、ロッテルダム、ニューカッスルに事業所を構えると、いくつもの産業会社の取締役となり、第一次世界大戦の勃発時にはすでに億万長者となっていた。
しかし、それは序章にすぎなかった。戦時中、彼の財産はみるみる膨らんでいった。待望のドイツの勝利を支えるため、複数の事業を垂直統合して巨額のコストを削減する能力にかけては天下一品といってよかった。戦後になると、ドイツの多くの事業家たちと同様、彼もますます国内のボリシェヴィキの反乱に不安を募らせていた。
そこで、彼は反ボリシェヴィキ基金(Antibolschewistenfond)に資金を提供し、1920年には国会議員への選出を果たす。アドルフ・ヒトラー率いる新生ナチ党に資金を提供したのかどうかは憶測の域を出ないが、彼の共感はその方向に向いていたようだ。
しかし、議論の余地がないのは、ハイパーインフレの最中、彼が夢にも思わないような大金持ちになった、ということだ。
すでに正真正銘の国際実業家になっていたシュティンネスは、強い外国通貨を担保に独マルクの借り入れを行った。いわば、巨額の補助金を受け取って事業利益を追求しているに等しい状態だった。
1923年3月、フランスによるルール占領の直後、『タイム』誌の表紙を飾った彼は国際的名声を確固たるものにする[*1]。
記事はシュティンネスを「石炭王、億万長者、現在のドイツの“帝王”」と紹介し、「国際政治という中間地帯で暗躍する人物たちのご多分に漏れず、彼もまたどの陣営が頂点に立とうと勝利をつかむ立場にいる」と締めくくった[*2]。その他の場所では、彼は「インフレ王」として名を馳せるようになった。
そんなシュティンネスの台頭も、抗生物質がないことが災いして突然の終わりを迎える。1924年、何の変哲もない胆のう手術の直後に急死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その後も、彼のビジネスのDNAの一部はドイツ鉄道やRWE(ドイツのエネルギー会社)に息づいているとはいえ、彼の帝国は崩壊した。
しかし、彼のエピソードは、最も極端な事例ながらも、インフレに関する不朽の教訓を与えてくれる。多くの者は負け組になるが、勝ち組に回る者もいる、ということだ。
インフレは、強力とはいえ完全に非民主的な富の再分配の手段になりうる。たとえ経済全体を破壊しなかったとしても、そのなかで暮らす多くの人々を破滅させる力を持っている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