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76]어머니와 아버지 생각
# 어머니(2019년 90세 별세)는 봄을 기다리는 여자였다. 봄이 오기를, 봄이 오면 좋아라한 대춘녀待春女. 삼라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돌아와야 먼가 꼬무락거리며 일을 해 ‘돈’을 맹글고, 그 돈으로 일곱 자식 뒷바라지할 생각 뿐이었다. 농한기라는 시한(겨울)을 가장 질색한 어머니는 하다못해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과 10원짜리 민화투를 치더라도 잃은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어머니와 어울린 동네 아줌씨들 하는 말이 있다. “지비(자네) 어매는 소매(오줌)이 마려우면 후딱 지비 밭으로 달려가 (거름 되라고) 일을 보고 왔네” 우리 산에는 고사리와 산취가 흔했다. 날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봄나물(냉이, 쑥, 머위, 산취, 고사리 등)을 따고 꺾어 택배를 보내거나 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맹길기도 했다. 말년 5년여를 거의 누워 있으면서도 오로지 들깨 털기 등 뒷밭 작물 걱정으로 쪽문을 나서다 넘어져 고관절에 금이 갔다. 그 사고만 없었어도 몇 년은 더 사셨으리라,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아무튼, 요즘 거의 날마다 뒷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고 산취를 뜯었다. 주말에 귀향하면 곧바로 고사리를 꺾어 어머니에게 드리면 “아가(어머니는 환갑을 훌쩍 넘긴 자식에게도 언제나 ‘아가’라고 불렀다), 어디서 고새(그새) 참 많이도 꺾었네”하면서 희미하게 웃으셨다. 고사리 따듬는(다듬는)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그 어머니, 지금은 육탈肉脫이 다 되셨을까? 대문을 들어서면 어머니의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어디에도 안계신다. 그립고 보고 싶다. 왜 꿈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으시는 걸까?
7학년(일흔이 낼모레)이 다 되어서야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환장하게 좋을 줄 처음 알았다. 꽃밭에 홍매紅梅와 홍도화紅桃花 꽃이 이리도 매혹적인 줄 처음 알았다. 작년하고도 또 다른 걸 보면 ‘늙은 게로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봄비가 촉촉하게 제법 내렸다.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앵두 복사꽃들은 벌써 이울었다. 이 비가 그치면 금세 여름이다. 봄이 너무 짧다. 산에를 오르면서, 이제부터 나는 봄을 기다리는 남자 ‘대춘남待春男’이 되기로 했다. 몇 번의 봄을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내는 이제 고사리 그만 꺾으라고 하지만, 엄나무(개두릅) 순과 두릅도 때 놓치지 말고 제때 꺾어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을 아는 이 얼마나 되리요? 잠시 행복했던 봄날이 아쉬우나, 내년, 내명년, 내내명년도 있을 터이니, 나는 노후까지 ‘마음부자’로 행복하리라.
# 이제 98세 아버지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다. 지난 5년 가까이 보행도 가능하고 총기聰氣 등 정신도 멀쩡하셔 ‘노치원老稚院’출퇴근을 하신 바람에 모신다는 것은 말뿐, 신경쓸 일이 거의 없었다. ‘노인들은 하루 앞을 모른다’는 말처럼, 지난 설 직전에 전립선에 탈이 났다. 정상인보다 3배 크기의 전립선이 요도尿道를 소변을 볼 수가 없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초고령이기에 수술은 생각도 못하고 전립선 동맥 색전술 시술을 받았다. 소변줄을 끼고 계시니, 고향집에서 모실 수 없는 상황. 여동생이 전주에 있는 보훈요양원을 알아내, 그곳에 모셨다. 크게 아플 때 치매증세가 달라붙는다더니, 금방 한 일이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치매癡呆’가 나타났다. 요양원 시설과 서비스는 최상인 듯. 이제는 그곳이 ‘당신의 집으로 생각하라’고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다. 전립선 크기도 줄어들었는지, 소변줄을 빼도 큰 지장은 없는 듯하고 적응도 잘 하고 계신 것같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에 있는 넷째아들인 나에게 하루에도 너댓 번씩 전화를 하신다는 거다. 부자지간의 유일한 소통 채널이다. 전라도 말로 ‘숭시럽다(성가시다)’고 해야 할 듯.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오직 “밥 먹어야제! 나는 방금 밥 먹었어”라는 말뿐. 그 외에 어떤 말을 해도 기억하지 못하고 반응도 없다. 에미(아내)가 왔다, 민물새우를 저수지에서 많이 잡았다, 딸내미가 제주살이를 끝내고 왔다는 말 등에도, 하다못해 “그래?”라는 식의 대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도 “식사 하셨군요. 예. 잘 계세요”라는 말만 하고, 아버지가 끊지 않은 것같아도 전화를 끊고 만다. 또 식사 후 전화가 올 것이기에. 아아-, 이렇게 아버지의 삶은 허물어져 가는구나, 여덟 살 때부터 홀어머니 모시고 자수성가해 집안을 이렇게 이뤄놓으신, 참으로 ‘큰 산’이었는데, 그래도 식사는 잘하시니까 ‘백수(99세)’는 충분히 채우시겠지만. 전화를 끊을 때마다 짜-안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