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오늘도 진리의 영이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풍성한 은혜를 기대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본문 주해)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 사적 야망으로 왕이 되려 하고(아도니야), 대제사장이 되려 하고(아비아달), 군대장관이 되려 하고(요압),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위하여 기회주의로 행동하는 자(시므이) 들을 제거함으로 언약의 나라가 견고하여졌다.
1절 : 그런데 나라를 견고하게 한 후에 솔로몬이 제일 먼저 행한 일이 애굽의 바로 왕의 딸을 맞이하여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그는 세상의 왕들이 하는 일을 행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과 혼인동맹을 함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주위의 성의 공사가 마치도록 기다린다.
솔로몬 왕의 재위 기간은 40년이다. 그런데 초기 통치 20년을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에 매진하였다. 성전 건축에 7년 왕궁 건축에 13년이 걸렸다.
2~4절 : 산당이란 높은 곳에 있는 제단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을 하였다.
그러나 성전이 완공되고서도 산당 제사가 없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곳곳에 세워져 있는 산당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우상으로 향하여 하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산당에 대하여 선악 간에 말이 없는데 이는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라서 허용하신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따랐지만 제사는 다윗처럼 언약궤 앞에서 드리지 않고 산당에서 드렸다.
기브온 산당은 장소가 매우 넓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린다.
일천번제란 횟수로 일천 번(番)이 아니라 태울 번(燔)자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꺼번에 일천 마리의 번제물(一千燔祭, a thousand burnt offerings)을 드렸다는 것이다. 기브온 산당이 크기 때문이었다.
또는 드리는 제물이 드디어 일천 마리가 넘게 되었다는 뜻이다.
“기브온에 제일 유명한 산당이 있었으므로, 왕은 늘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그 때까지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은, 천 마리가 넘을 것이다. 한 번은, 왕이 그리로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4절, 새번역)
5~9절 :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네게 무엇을 줄까?’ 하시며 응답하신다.
그런데 솔로몬에게 응답하신 것은 일천 마리의 번제 제물 때문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언약하신 것 때문이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2~16)
하나님의 질문에 솔로몬이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다.
듣는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으로 개역성경에는 ‘지혜’로 번역하였다. 솔로몬의 이와 같은 답은 다윗 언약을 위하여 자신에게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솔로몬도 죄인이며 욕망의 사람인데 꿈속에 이런 답을 한 것은 다윗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다.
10~14절 : 솔로몬의 이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부귀와 영광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아버지 다윗처럼만 하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오래 살도록 해주시겠는 것이다.
15절 : “솔로몬이 깨어나서 보니, 꿈이었다. 그는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주님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모든 신하에게 잔치도 베풀어 주었다.”(새번역)
솔로몬이 꿈에서 깨어나 기브온 산당에서 다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지 않고, 예루살렘의 언약궤 앞에 가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한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서 무엇을 줄까를 말씀하신 것은 다윗에게 하신 언약 때문이지, 솔로몬의 일천 마리의 번제의 정성을 보시고 감동하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솔로몬은 정말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그렇게 나라를 든든히 하고서는 제일 먼저 한 일이 애굽 왕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장차 자신의 인생 말로가 나락에 떨어질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는데 20년을 써버리니,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그 기도가 무색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행보가 어처구니없어 화도 나지만, 이 솔로몬의 모습이 바로 온 세상 죄인인 인간들의 모습이요, 그 중에서 주님을 잘 믿겠다고 설치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기도 하니, 참....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의 일천 번제 이야기는 이 시대 성도들의 마음을 혼잡하게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성으로 해석하여 ‘일천 번의 예배(헌금)’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일천 번(番)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일천 마리의 희생을 번제(燔祭, 태워서 드림)로 드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번제(燔祭)거나 말거나 간에, 번(番)으로 적용시켜 천 번의 정성(대단한 정성)을 바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일천 번의 정성을 바쳐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받아내자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우상 숭배하는 모습이요, 무당들이나 하는 짓거리이다.
기브온 산당의 일천 번제 후, 마침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줄까 하시니, 그것이 솔로몬의 지극 정성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지성이면 감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 때문이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17:12~13)
꿈에 솔로몬이 한 기특한 대답도 그의 타락한 생을 본다면, 솔로몬의 실력으로 한 말이 아니라,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로몬의 본성으로는 ‘듣는 마음’을 간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기특한 말을 했을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얼떨결에 대답 잘한 베드로처럼.....(마16:16~17)
오늘날 성도의 믿음은 정성이나 제물로 올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천 번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을 믿는 믿음이다.
참 성도의 믿음은, 일천 번제의 제물, 그 썩어질 것을 드림으로 더 많은 썩어질 것들을 구하고 탐하는 마음이 아니라, 영원한 아들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는 믿음이다.
듣는 마음을 구했으나 듣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은 솔로몬의 기도가 가증스럽다.
하나님은 참 잘도 속아주신다.
그 이유는 너와 내가 이렇게 솔로몬처럼 형편없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러니 오직 영원하신 왕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라고 오늘도 참아주시는 것이다.
나를 참아주시는 주님은 오늘도 그 영원한 언약을 스스로 이루어 가신다.
(묵상 기도)
주님,
과거에 일천 번제에 마음이 끌려
그렇게 정성을 바치는 자에게 감탄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바치라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수두룩하니
복음을 가리는 사탄의 술수를 깨닫습니다.
일천 마리의 양이든, 일천 번의 제사든
탐욕의 소원은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공로는 있을 수 없고
오직 자신을 단번에 희생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을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