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故 박상철 친구를 기리며, epilogue
상철이 친구야!
내 네게 살아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쓴다.
한 갑자 세월 전으로 거슬러 1960년 봄에 우리 문경중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하면서 우리 인연이 됐었네.
3년을 같은 교정에서 어울리다가, 1963년 봄에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는 오랜 세월 소식이 끊기고 말았었네.
그랬던 친구가 열여덟 해 세월이 흐른 후인 1978년쯤에, 지금의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전신인 서울지방검찰청영등포지청에서, 내가 말단 검찰수사관으로 있을 때였던 어느 날, 내 앞에 불쑥 나타났었지.
“원섭아! 내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까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내게 그렇게 하소연을 했었어.
바로 그날 저녁으로, 우리 권커니 잣거니 긴 시간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보냈었지.
각설하고, 그날의 만남으로 우리들의 인연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꿰어졌고, 그 꿰어진 인연으로 자주 만났었어.
자주 만나다 보니 우리들 우정은 더욱 두터워졌고,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서울 강동 쪽에 사는 친구들을 주축으로 해서 결성된 ‘강동회’의 같은 회원으로도 수시 어울렸지.
그 이외에도 일부러 이 친구 저 친구를 불러내서 질펀한 술판을 벌이는 인연으로 발전했었던 거야.
세월은 주마등처럼 흘렀고, 이제는 재미있게 살 나이가 됐다 싶은 때였는데, 뜬금없는 소식 하나가 내 심장에 비수로 꽂히고 말았네.
바로 친구가 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는 그 비보였어.
내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일요일인 2021년 10월 3일 오후 7시 29분을 막 찍고 넘어가는 시각이었어.
우리 같은 동기동창인 권영식 친구가 내게 전화를 해서 그 소식을 전해줬었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이렇더라고.
“상철이가 갔데여. 이를 우째만 좋아여.”
그 순간, 그동안 친구와 엮어왔던 많은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었어.
그 중에는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연도 있었어.
그 중 하나만 여기 적어놓네.
9년 전으로 거슬러 2012년 1월 어느 날의 일이었지.
그날 나는 친구가 터 잡아 사는 경기 양평에 있는 등기소에 볼일이 있어 그곳 양평까지 갔었다가, 언뜻 그곳 강상공원에 높이 뜬 연을 볼 수 있었어.
연이라고 하면, 친구 아닌가 말일세.
문득 친구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
‘저기 저 높이 오른 연이, 혹시 내 친구 상철이가 띄운 연 아닐까?’
그런 생각에까지 이어졌어.
확인해봐야 했어.
그래서 일단 방향을 바꾸어 그곳 강상공원으로 찾아들어가 봤었지.
멀리서 봐도 확연하더라고.
내 배만한 똥배였으니 말일세.
참 반가웠었네.
그날 우리는 뜨끈뜨끈한 국밥으로 점심끼니를 때웠고, 그동안 쌓였던 숱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두텁게 쌓았었지.
친구는 이날, 정말 고맙게도 국밥 값을 덮어써준 것으로도 부족한 듯, 귀한 선물까지 해줬었지.
바로 내 사랑하는 손녀에게 전해주라면서, 방패연 하나 건네준 것이 바로 그 선물이었어.
그 방패연 선물은, 내 사랑하는 손녀에게 할아버지인 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했는지, 친구는 아마 모를 거야.
그렇게 고마웠던 친구를, 이승에서는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나를 슬프게 해.
친구야!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만 슬퍼질 것만 같아.
그렇다고 슬퍼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
생각을 오지게 먹어야겠어.
그래서 딱 정했어.
이러기로 말이야.
미안하지만, 내 친구를 이젠 그만 잊어야 겠어.
어차피 나도 머잖아 뒤따라 갈 것이니, 섭섭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곧 우리 만나세.
친구야!
첫댓글 총 열한 편을 쓰셨는가?
상철이 친구를 향한 그대 우정을 다 녹여여 부었는가?
시간이 우릴 떠밀면,
차츰 잊혀지면서 우리도 상철이가 먼저 간 그곳 어디쯤에 있겠지...
큰사람! 큰인물! 한 걸음에 사라지다!
아깝고!, 아쉽다!
그래서 그리워질 때가 있을 것 같다.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