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수)
* 시작 기도
(시 17: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주님...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온 나라가 이념적으로 양극화 되어 있어 총선에 출마한 그 사람들의 됨됨이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편인지에 몰두하여 표를 주는 시대입니다.
물론 이 땅에 있는 누구라도 주님의 말씀 안에서 의인이 없음을 압니다(롬 3:10).
그러하기에 모든 자들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자기들의 분깃을 받은 자들이요 또한 내가 바로 그러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것으로 배를 불리는 자들이며 그 남은 것으로 또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대단한 일인 양 어깨를 들썩이며 자랑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기 잘 날 맛에 살아가는 자들 같습니다.
물론 나는 그들과 같이 선거에 나가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재능이 있지도 않지만 이 땅에서 행하는 그 모습은 그들과 비할 바 없이 악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 선거의 모든 일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사오니 주께서 인도하사 선한 길로 이끄소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수렁에서 건져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조용히 나리는 이슬비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듯 주님이 나리는 성령의 단비로 종의 마음을 만져주소서.
죄로 달려가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나는 주 안에 주님은 내 안에서 하나되는 연합의 삶이 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진리임을 오늘도 확증하는 삶을 이끄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3:16-28
제목 :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여자들에게 주라.
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20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 나의 묵상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은 그 번제를 기뻐 받으신 후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물으실 때,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하였다.
오늘 본문의 에피소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네가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약속 후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창녀 두 명이 솔로몬 왕을 찾아 왔다.
아이 문제로 인하여 왕에게 송사를 하기 위함이다.
두 여자가 사흘 상간에 동일하게 아들을 낳았는데 한 어미가 밤에 잠을 자면서 몸부림을 치다가 갓난아기를 깔아뭉개서 죽였다.
그래서 몰래 그 죽은 아이를 가져다 다른 어미의 옆에 누이고 그 어미의 살아 있는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 옆에 뉘었다.
살아 있는 아이의 친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서 젖을 먹이려고 보니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 아이는 자기 아들이 아닌 것이다.
서로 산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싸우다가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믿는 자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잘 아는 것으로 일명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이야기이다.
여기에 나오는 창녀는 곧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표한다.
창녀는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는 자로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창녀 둘이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식과 관련된 싸움이다.
자식의 생명이 걸린 싸움이라면 엄마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목숨 걸고 싸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싸움의 결말이 나지 않자, 그들은 이 사건을 가지고 솔로몬 왕에게 찾아온다.
솔로몬은 왕으로써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창녀 둘이 상소를 하였다.
그것도 자식의 생명과 관련된 소송인만큼 더욱 그렇다.
모든 백성들의 이목이 왕의 판결에 집중되어 있다.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주 지혜롭게 판결하여 산 아이의 친 어미를 찾아 아이를 돌려준다.
솔로몬은 심판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솔로몬의 재판이 하나님의 지혜로 판결하여 의로운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역시 의롭다.
(계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때 이 세상의 음녀를 심판하신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은혜로 돌보신다.
따라서 회개의 기회가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 심판주 되신 주님의 심판은 긍휼이 배제된 추상같은 심판이다.
그 심판은 의로운 심판이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이 임하기 전 이 땅에서 그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 받을 그분의 은혜는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이다.
이생에서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땅의 지체는 죽이되 하늘을 향한 우리의 영혼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살전 5:4-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지금은 마지막 은혜의 시간임을 기억하자.
나는 주님의 심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관념적으로만 생각했던 자이다.
마지막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래도 나를 아시니까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은혜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은혜는 이생에서 끝난다.
기회는 이 땅에서 말고는 없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면 잔치하는 집의 대문은 닫힌다.
늦게 온 자들이 아무리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을 하여도 소용없다.
더 이상의 긍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호통치면서 쫓아내신다.
문을 닫는 날이 분명히 온다.
솔로몬의 재판과 같이 산 아이의 어미와 죽은 아이의 어미를 분명히 판단하신다.
그 때는 늦다.
때는 지금이다.
지금이 곧 긍휼을 베푸시는 때이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신랑이 오셔서 문을 닫기 전에 지금 그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내 자신을 보면 도무지 긍휼을 바랄 수 없는 자이다.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보아도 용납할 수 없는 자인데, 어떻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라면 나는 영벌에 처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은 나를 용납하시고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겨 주셨다.
주께서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모든 사람 안에 포함이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지금 베푸시는 은혜 안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은혜로 구원받았고 은혜로 새 언약 백성이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들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것이 새 언약 백성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계명이다.
나는 아버지 품속에 거하기에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다.
나의 자의식은 사라지고 오직 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다.
이것이 지금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인 것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영생의 빛)을 얻었네. 할렐루야!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자요, 음녀였던 나를 주님은 불구덩이 속에서 건지사 살리셨습니다.
우묵한 죄의 구덩이에 빠져서 헤매며 살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정말 주님의 이름을 천 번을 불러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출 수 없나이다.
그것은 내 죄를 바라보는 비참함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은 주님의 따스한 손길을 체험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죄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사 나를 살리시고 자녀 삼아주신 은혜의 눈물입니다.
그 은혜 속에 거하기 원합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사오나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바로 나의 소망입니다.
이제는 나를 장악하여 주옵소서.
산 아이를 가르려던 솔로몬의 칼로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정욕을 따라 행하는 나의 옛 습관들을 잘라냅니다.
말씀의 검으로 잘라 주옵소서.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주의 말씀과 주의 보혈로 나를 정결케 하옵소서.
나의 눈을 순결하신 주님께로만 고정되게 하시고, 주님의 얼굴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