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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호무역 장벽 높아져 한국 수출전선 타격
“기업-정부간 보호무역주의 트렌드 맞춰 대응책 마련해야”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무역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선진국의 경기가 둔화됨에 따라 신흥국마저 수출 여건이 어려워지고 금융시장 불안까지 가중되면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를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자국 산업을 보호·발전시키기 위해 수입 금지, 보호 관세 부과, 국내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의 방법으로 국가가 무역 활동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자유무역주의와 반대적 성격으로 자국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국가가 국내 산업을 보호·육성하면서 무역을 통제하는 것이다.
보호무역은 경제가 나빠질 때 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유무역주의를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가 내부에서는 늘 보호주의 주장이 힘을 얻는다.
자유 정책이 폭넓게 자리 잡은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자국 상품과 기업에 대한 보호여론은 높다. 최근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해당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한다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정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美 보호무역주의 후폭풍 거세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국내 산업에도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근 ITC 결정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1987년 이후 26년만의 일로 이번 결정을 계기로 오바마 정부가 보호무역주의 행보를 본격화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대공황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수입하는 2만여개 품목에 대해 최저 100%에서 최고 400%까지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이후 전세계 보호무역주의의 신호탄이 됐다.
미국의 높은 관세 적용에 자극받은 영국, 프랑스 등 경쟁국들은 앞다퉈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스무트홀리법에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는 이후 국제 교역 붕괴와 대공황 심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4년 제정된 미국의 통상법은 긴급 수입제한, 불공정 무역관행 제재, 지적소유권 등 자국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징후를 강하게 보여왔다는 점에서 국내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수출 품목에도 영향력이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2기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자동차, 섬유산업은 국내산업 보호정책과 수입규제 조치가 강화됨에 따라 국내 산업계에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그동안 비교적 탄탄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오던 한국산 철강, 전자, 자동차 등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제 철강가격지수를 보면 지난해 5월 212.2에서 올해 5월 194.7로 떨어졌다. 올 연말에는 184.2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또 철강, 석유화학, 석유제품 등은 수출물량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출 단가 하락에 따른 수출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뿐 만 아니라 한국산 냉장고, 세탁기, 변압기 등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덤핑판정 또는 관세부과 조치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한국산 전자기기류에 대한 미국 수입액은 급감했다. 올해 초 ITC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레트로닉스 등 국내 가전 3사 세탁기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를 최종 확정했다. 이는 강화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미국은 보호무역주의 행동을 보여왔던 터라 이번 ITC 판결을 계기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될 수도 있어 자동차, 철강, 섬유 등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관련 업계는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수입자동차와 국산 부품 사용비율 65% 미만 차량 등을 대상으로 공산품세(IPI) 세율을 30% 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외국산 차량에 대해 폐차처리 비용을 차값에 매기는 ‘사용세(utilization fee)’ 부과에 들어갔다.
●무역의존도 높은 한국, 피해도 많다
갈수록 거세지는 각국간 보호무역 전쟁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국시장을 지킨다는 이유로 한국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각국 무역당국의 칼끝이 날카롭다.
최근에는 각국의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관세, 비관세 조치 등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무역규제 뿐 아니라 수출제한조치까지 등장하고 있다.
보호무역 조치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관세인상, 수입절차 강화, 자국산 사용 의무화, 반덤핑, 세이프가드가 바로 그 것이다. 경제위기에 처한 선진국은 무역흑자국인 한국에 대해 통상압력을 강화화고 있고 신흥국도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6월부터 재정부 시행령에 따라 스테인레스스틸에 수입관세를 10% 부과하고 있다. 멕시코는 올해 초 전면 폐지했던 철강 품목에 대한 관세를 최근 들어 286개 품목에 대해 3%의 관세 재적용에 들어갔다.
이같은 각국의 무역보호주의 기조는 한국경제에는 부담이다. 한국과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신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57.4%로 중국(27.7), 일본(15.3%), 미국(14%) 등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보호주의 조치는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09년부터 올해 7월까지 1890건에 달했다. 한국기업 대상 국제특허소송은 2004년 37건에서 2011년에는 159건으로 증가했다.
한국 기업들은 무차별적인 소송·조사·관세부과에도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법원에 한국 기업이 당한 소송은 117건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LG전자가 31건, 현대자동차·팬택·하이닉스도 10건 안팎의 소송에 시달렸다.
특허전쟁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기업의 지식재산권 경쟁력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물품 수입을 금지하거나 통관 시 압류조치 등의 형태로 자국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향후에도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소송과 통상마찰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기업 및 제품의 경쟁력이 강화됨에 따라 IT 산업 등에서 특허소송과 지식재산권 관련 통상 분쟁이 확산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한국 기업과 정부가 새롭게 등장한 신보호무역주의 특징과 추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체계적 대응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보호주의 정책 및 수입규제 조치 강화’
세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보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코트라가 전세계 주요 66개국에 설치된 자사 무역관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24개국에서 44개의 보호무역 조치를 새로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들은 지적재산권과 반독점법, 기수표준 위반 등 주로 내국법에 기준해 한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그간 무역자유화 기조에 따라 철폐됐던 관세는 다수의 신흥시장에서 다시 부활되고 있다. 수입품에만 차별적 특별세 도입 및 연장 등을 통해 실질적인 수입관세를 올리고 있다.
선진국의 보호무역조치에 신흥국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은 세관 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고 있고 브라질은 컴퓨터 핵심부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2015년까지 적용키로 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보호주의 정책을 가장 많이 도입한 국가는 러시아로 모두 64건이었으며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인도 순이었다. 적용 품목수로 보면 베트남과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순으로 가장 많았고 대상국가로 보면 중국이 으뜸이었다.
이처럼 수입규제 방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관련 이슈가 환경이나 안전, 기술 등 무역 외적인 부분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국내기업들에게 과중한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경쟁법 강화·환경 규제 등 선진국의 무역 장벽이 강화되면 중국 등 신흥국이 이를 모방해 단기간에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신보호무역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입관세 인상이나 특별세 도입, 자국산 사용의무 부과, 수입절차 강화 등 수입상품의 경쟁력 약화에 초점을 맞춘 간접적인 조치까지 포함하면 규제는 훨씬 많아진다.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국내 중소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 및 특허와 관련된 전담부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3년 정도 지속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관련된 움직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무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