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진화와 우주대폭발(빅뱅) 이론이 하느님의 존재에 반하지 않는다면서 ‘창세기를 읽으며 하느님을 마법지팡이 든 마법사처럼 상상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연설이 하느님을 부정하는 게 아님은 당연했고,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가 있어 진화와 빅뱅이 가능했다고 강조해 신의 존재를 드높였습니다. 몇 대목만을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대목을 읽을 때, 하느님을 전능한 마법 지팡이를 든 마법사인 양 상상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that was not so). 하느님은 존재들을 창조하시고서 각각에 부여한 내적 법칙에 따라 그것들이 발전하도록 놓아두셨습니다. 세상의 기원이라고 오늘날 제시되는 대폭발우주론은 신적 창조자의 관여(intervention)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진화는 창조의 개념과 충돌하지 않는데 그것은 진화가 나타나려면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흔히 갈등과 대립의 틀로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각에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은 신선한 느낌을 줄 만했습니다.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는 이번 교황 연설이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유사과학을 두둔하는 경향을 보였던 이전 교황 베네딕트 14세의 흐름에 마침표를 찍을 만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함께 전했습니다. 사실 교황이 직접 나서 진화론과 빅뱅우주론이 하느님의 존재와 불일치하지 않는다는 연설을 행한 것은 당연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반세기 훨씬 전에 교황 비오 12세(Pope Pius XII)가 행한 1951년 연설이었습니다.
비오 12세는 1950년 회람서신을 통해 ‘창세기의 설명과 다윈 진화론이 반드시 화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요지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견해를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51년 11월22일에는 교황청 과학원에서 ‘종교는 비유기물인 우주 물질의 창조와 진화를 말하는 현대 과학과 모순되지 않는다’며 빅뱅우주론과 다른 여러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다루는 장문의 연설을 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성경에서 창조를 말하는 대목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데 동의를 이루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창조의 엿새를 순수하게 비유적인 의미로서 해석했으며, 근현대의 일부 가톨릭 저자들도 창조가 행해진 “날들(days)”을 지질학적 시기로 받아들였고,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비난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세기를 쓴 영적인 기자는 하느님이 사람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이 익숙한 표현으로 의미를 전해주신 바를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