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다완(井戶茶碗)을 부활시킨 명인을 만나다, 하동 길성도예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간 뒤 그 맥이 끊어진 이도다완은 예술적 가치는 물론 그 기능의 우수성에서 최고의 다완으로 칭송받는다. 하동의 길성도예 관장 길성과 그의 딸 길기정은 400년 전 끊어진 이도다완의 맥을 잇는 명인들이다. 평생의 작업을 전시한 갤러리를 돌아보고 다실 ‘여여헌’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그릇 빚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연과 시간, 사람의 손길이 만나 만들어진 아름다움, 이도다완
[왼쪽/오른쪽]도예가 길성이 재현한 이도다완 / 진교면 백련리의 가마 [왼쪽/오른쪽]백련리 사기아람마을의 도자기 전시 /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을 기리는 백련리 추모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동은 지리산 자락의 풍광과 섬진강의 반짝이는 물줄기, 벚꽃과 야생차밭으로 기억된다. 그릇을 빚는 도예가들에게 하동은 보물과도 같은 흙의 고장이다. 하동의 진교면 일대,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산청과 사천에 이르기까지 그릇 빚는 밑천이 되는 귀한 흙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진교면 백련리의 통일신라시대 가마터를 비롯해 옛 가마터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지금도 많은 도예가가 이곳에 터를 잡고 혼을 실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길성도예 전경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한 길성도예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기자에몬 오이도(大井戶)’의 원형인 ‘이도다완(井戶茶碗)’의 비밀을 풀어낸 도예가 길성과 그의 딸 길기정의 작업 공간이다. 임진왜란 당시 하동 일대의 도공들 대부분이 일본으로 끌려가 그 맥이 끊긴 이도다완은 400년 넘는 세월 동안 그 제작 과정의 비밀을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으로 흙을 퍼가고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이도다완을 재현해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는지 알지 못한 채 조선에서 건너간 ‘이도다완’이라 불리며 지금도 일본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왼쪽/오른쪽]이도다완의 특징인 굽에 핀 매화피 / 초벌구이를 하지 않고 말린 그릇에 유약을 입히는 과정 [왼쪽/오른쪽]유약이 마르면서 굽을 깎아낸 자리가 터지는 모습 / 일본에까지 명성이 자자한 길성의 이도다완
이도다완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빛깔이다. 비파색이라 해서 노란빛을 바탕으로 붉은색과 회청색, 살색이 감돈다. 다음은 그릇을 굽는 과정에서
굽과 바닥에 생기는 매화피(개구리 알 모양으로 생기는 결정)다. 더러는 유약으로 꼼수를 부리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이도다완이 아니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그릇의 기능이다. 그릇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이 차의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다완이 찻물을 흡수하고, 때로는 숨을 쉬듯
내뱉으며 물과 공명하는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진품 이도다완을 보게 된 길성은 도예가로서 평생 쌓은 성과를 바탕으로 이도다완 재현에
마지막 힘을 쏟기로 했다. 그릇 빚는 몸흙(태토)을 찾아 하동으로 내려와 딸 길기정과 함께 잠을 아끼고 쉼을 줄이며 그릇 빚는 작업에 매진했고,
드디어 이도다완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40년 걸친 작업을 정리한 갤러리 ‘길’과 다실 ‘여여헌’
[왼쪽/오른쪽]갤러리 ‘길’ 내부 / 승천하는 용을 조각한 길성의 작품
폐교된 초등학교에 마련한 하동의 길성도예는 도예가 길성에게 경주, 곤지암, 단양에 이은 마지막 종착지다. 분청사기에서 백자, 청자까지,
감히 흉내내기 힘든 대작부터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예술작품까지, 도예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발자취가 갤러리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방문객이 청하면 언제든 작품의 의의와 거기에 깃든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공간이다.
갤러리 왼쪽 공간에는 분청사기 작업을 주로 했던 경주
시절의 작품과 곤지암 시절의 백자와 청자, 그리고 단양에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공간에서는 이도다완을 중심으로 한 찻사발과 다기
세트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40년에 걸친 작가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
다실 ‘여여헌’ [왼쪽/오른쪽]여여헌에 전시된 다완들 / 길성도예에서 직접 만든 황차를 마시는 시간
갤러리 위쪽에는 단아한 정취의 다실 여여헌(呂呂軒)이 기다리고 있다. 길성이 직접 가꾸는 꽃나무들과 연못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정원을 지나 다실로 들어서면 길게 놓인 찻상과 벽면을 따라 정리된 다완들이 손님을 맞는다. 길성도예의 작은 차밭에서 직접 만든 황차를 마시며 좋은 그릇과 이도다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특별하다. 다완을 잡는 법, 양손으로 잡고 조심스럽게 감상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차와 다완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다.
[왼쪽/오른쪽]이도다완을 감상하는 법을 듣는 시간. 먼저 양손바닥으로 다완을 감싸고 느낀다. / 손바닥에 다완을 올려 모양을 감상한다. [왼쪽/오른쪽]굽에 핀 매화피를 본다. / 손가락 끝으로 다완의 안쪽을 느껴본다.
비싸다고 반드시 좋은 다완은 아니다. 손에 잡았을 때 자신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다완, 오래 두고 쓰며 주인과 교감하고 빛깔의 깊이를 더해가는 다완이 최고의 다완이다. 무심한 그릇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이도다완을 최고로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길성도예를 지키는 스승과 제자 그리고 아버지와 딸
길성의 딸 길기정은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아 26년째 도예가의 길을 가고 있다. 올해 일본 노무라미술관의 초대로 전시도 앞두고 있다. 아버지 길성에 이어 이도다완의 맥을 잇는 명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왼쪽/오른쪽]점성이 없는 이도흙으로 그릇을 빚는 작업(길기정) / 물레를 돌려 성형하는 과정 [왼쪽/오른쪽]그릇의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 / 차통 뚜껑에 채색 작업 중인 길성
점성이 없고 부드러운 이도흙을 물레에 올려 빚는 작업이 성공하기까지 길기정은 여러 번 눈물을 쏟았다고 전한다. 굽에 매화피가 생기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가마를 지키며 실험을 거듭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다른 흙을 일절 섞지 않고 단일토로 작업하고, 초벌을 하지 않고 말린 상태에서 유약을 입히는 등 이도다완의 제작 비법을 공개하는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황차를 만들기 위해 찻잎을 따는 도예가 길기정
도예관의 작은 차밭에서 직접 찻잎을 따 황차를 만들고 손님에게 대접하며 그릇과 사람이 교감하고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시간을 거름 삼고 있는 길기정은 스승이자 아버지인 길성의 유일한 후계자다. 이도다완의 비밀을 풀어낸 동지로서 아버지와 딸이 함께 이루어갈 작품세계를 기대해본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듯, 임진왜란 이후 끊어진 이도다완의 맥이 길성도예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매암차문화박물관과 하덕마을 골목길 갤러리 산책
[왼쪽/오른쪽]차밭과 다실이 함께 있는 매암차문화박물관 전경 / 매암차문화박물관 전시실 [왼쪽/오른쪽]야생차밭의 풍광이 액자처럼 펼쳐지는 무인 다실 / 차밭의 풍광을 즐기며 야외에서 마시는 홍차
악양들판 안쪽 작은 야생차밭과 함께 자리한 매암차문화박물관은 매암제다원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다. 차의 고장이자 슬로시티 하동의 매력을 느끼며
천천히 쉬었다 가기 그만이다. 차문화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임업시험장 관사로 쓰였던 건물에 들어섰다. 찻물을 끓이는 화로를 비롯해 차 주전자와 다구
등 옛사람들이 차를 마실 때 사용했던 도구와 제다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작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초록빛 눈부신 야생차밭과 다실이
기다린다. 1인당 2,000원을 내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셀프 서비스 공간이다. 직원들이 상주하지만 방문객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차 마시는 방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차 마시는 예절이나 차 우리는 요령보다는 차 마시는 시간을 즐기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다실의 운영 원칙이기 때문이다. 차밭의 풍광이 그림처럼 들어오는 다실 창가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즐겨도 좋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초록빛
차밭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윽한 다향을 머금는 것도 좋다. 직접 찻잎을 따서 나만의 홍차를 만들어보는 제다체험도 특별하다. 찻잎을 따서 비빈 뒤
햇빛에 발효시켜서 만드는데, 다실에서 제공하는 차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왼쪽/오른쪽]하덕마을 골목길 갤러리 ‘섬등’ 안내판 / 하얀 차꽃이 피어난 골목길 벽화 [왼쪽/오른쪽]벽면 가득 그려진 다완 / 돌담을 따라 걷는 골목길 갤러리 산책
매암차문화박물관 인근 하덕마을에는 골목길 갤러리 ‘섬등’이 있다. 차밭과 어우러진 하덕마을 할머니들의 기억을 벽화로 담아낸 골목길이다. 정겨운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하얗게 피어난 차꽃을 만나고 바람결에 실려온 다향을 느끼는 시간이다.
여행정보
길성도예
주소 : 경남 하동군 진교면 진양로 280-8
문의 : 055-883-8486
매암차문화박물관
주소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46-1
문의 :
055-883-3500
1.주변 음식점
하동솔잎한우프라자 : 한우구이 / 하동군 고전면 하동읍성로 9 / 055-884-1515
섬마을 : 재첩국 / 하동군 하동읍 섬진강대로 1877 B동 / 055-882-3580
태봉식당 : 참게가리장 /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17-1 / 055-883-2466
2.숙소
쉬어가는 누각 :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800 / 055-884-0151 / 굿스테이
최참판댁 숙박체험동 :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5 / 055-880-2385 /
한옥스테이
지리산팔베개 :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129 / 055-883-7779
첫댓글 찻 사발이 이쁘네요?
말차 한잔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때 배우긴 했는데 배울 수록 사발에 빠져들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