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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112
S#1. 김안로 유배지 근처 강가 (낮)
난정은 싸늘하게 김안로는 격노하여 서로를 팽팽하게 노려보고 섰다.
나무 위에서 길상의 긴장된 얼굴이 나타난다.
김안로 : 네 이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네 어찌 천한 첩년 따위가 감히 세자저하를 시해한다는
망극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단 말이냐?!
난정 : 대감, 허면 경빈과 조정신료들이 세자저하를 갈기갈기 찢어낸 연후에 폐위시키는 짓거리를 보고만 계시겠사옵니까?!
김안로 : (치가 떨리는지 주먹을 움켜쥐는)..이, 이런 쳐죽일 년!
난정 : 대감, 노여움을 가라앉히시옵소서. 소첩은 세자저하는 물론이옵고 더불어 대감까지 구명해드리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김안로 : 뭐, 뭐라?! 니깟년이 무슨 수로?!
난정 : 처소에 들어 차근차근 말씀을 나누시지요.
김안로E : (난정의 뚫어지게 보는) 이 주도면밀한 년이 대체 무슨 꿍꿍이 속을 감추고 나를 찾아온겐가?!
난정 : (미소짓는) ..
S#2. 김안로 유배 초가 밖
길상, 긴장된 표정으로 방쪽을 주시하고 서있다.
S#3. 동 김안로 유배 초가 방 안
난정과 김안로, 침묵 속에 앉아있다.
난정 : (둘러보며) 양시론으로 천하를 쥐락펴락하시던 대감께오서 이런 너구리 굴 같은 누옥에서 세월을 낚고 계시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옵니다.
김안로E : (찌푸리다가 문득) 마음의 평정을 잃어서는 아니 돼! 이년의 속내를 알아낼 때까지는
결코 이년의 요망한 혓바닥에 홀려서는 아니됨이야!
난정 : 하긴 가슴 속에 원한을 키우고 절치부심하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인 듯 싶사옵니다.
김안로 : 거두절미하고 말해보거라. 세자저하를 구명할 방도가 무엇이냐?!
난정 : 이미 말씀 드린대로 대감과 소첩이 손을 잡고 세자저하를 시해한다면..
김안로 : 네 단매에 죽고 싶은게냐?! 어찌 자꾸만 세자저하께 망극한 말따위를 입에 담는 것이냐?
난정 : 대감, 진정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깟 허명쯤 몇 번 죽임을 당한들 무에가 중하겠사옵니까?
김안로 : 음!.. 오냐 네 말을 들어보자!
난정 : 경빈은 분명 희락당대감과 판부사대감이 세자저하를 옹립하려는 역심을 품고 있다는 역모를 조작하여
주상전하와 세자저하, 부자지간에 이간질을 획책하려 들것이옵니다.
김안로E : (진지한, 내심 놀라는) 이 계집이 거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단 말인가?!
난정 : 주상전하께오서 아무리 세자저하를 괴이실지라도 조정의 공론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난다면
희락당대감과 판부사대감은 참수를 면치 못 하실것이오며 세자저하께오서도 동궁전을 지키시기 어려우실겝니다.
김안로 : 허나 그전에 경빈은 중전마마부터 파내어 버리려고 할게다!
난정 : (쌩끗 웃으며) 분명 그리할 것이옵니다. 그런 연유로 소첩이 대감을 찾아뵈오러 이 풍덕땅까지 발걸음을 한게지요!
김안로 : 난정아, 네 나와 한 배를 타자는 말이더냐?
난정 : 예, 비록 배에서 내린 연후엔 소첩과 대감이 서로의 가슴팍에 비수를 들이밀더라도
지금은 한 배를 타야만이 경빈이란 거센 풍랑을 헤쳐나갈 수가 있사옵니다.
김안로 : ..음! 오월동주(吳越同舟)라..?
난정 : 예, 오월동주이지요!
김안로 : 허면 네 세자저하를 시역(弑逆)하겠다는 뜻은 무엇이냐?
난정 : 지금 조정의 권세를 경빈이 틀어쥐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옵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세자저하를 시역한다면 경빈이 복성군을 왕세자로 추대하기 위해 한 짓거리라고 여길 것이옵니다.
김안로 : 경빈에게 대역무도 죄를 뒤집어 씌운다?
난정 : (미소) 바로 그렇사옵니다! 그리만 되면 아무리 조정의 권세를 움켜쥐고 있는 경빈이라도 단박에 파내버릴 수가 있습지요!
김안로 : (버럭) 네 이년! 당장 물러가거라!
난정 : 대감, 어찌 이러시옵니까?
김안로 : 내 어찌 경빈따위를 도모하기 위하여 세자저하께 망극한 짓거리를 할 수가 있겠느냐?!
네 년의 요설을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 썩 물러가라 이말이다!
난정 : 호호호!
김안로 : (흠짓 노려보며) 이런 발칙한! 네 어찌 이리 요망하게 웃는 것이냐?!
난정 : 희락당대감께오서 소첩 말을 오해하시었사옵니다. 이년이 아무리 막되어 먹은 년이라 하나
어찌 감히 대통을 이으실 세자저하를 시해할 마음을 먹겠사옵니까?
김안로 : ...허면?!
난정 : (진지한 눈빛) 소첩, 세자저하의 존체는 털끝 하나 훼손치 않고 세자저하를 시해할 것이옵니다!
김안로 : 뭣이라?! 네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냐?
난정 : 믿으시옵소서! 소첩 분명 그리 도모할 것이오니 희락당대감께오서 소첩에게 힘을 보태 주시겠사옵니까?
김안로 : (보는) ...!
난정 : (보는) ...!
김안로 : 내 천변만화의 혓바닥을 놀려대는 네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난정 : 대감, 약조의 징표로 소첩의 몸이라도 내어드리면 믿으시겠사옵니까?
김안로 : 뭐라? 네 몸을 내어놓겠다?
난정 : 예, 대감께오서 소첩을 믿지 못 하시겠다면 소첩 기꺼이 몸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김안로 : 오냐, 어디 한번 네 뜻대로 해보거라.
난정 : (일어나서 옷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젖힌다)
김안로 : (흠짓) ...!
난정 : (치마고름을 풀고 치마를 벗어 젖힌다)
김안로 : ...!
난정 : (속치마 고름을 푸려는데) ..
김안로 : 하하하!
난정 : (보는) ..?!
김안로 : 난정아, 네 아무리 천하절색이라 한들 내 어찌 조카사위의 첩실을 품을 수가 있겠느냐?!
난정 : 하오면 소첩을 믿어주시겠사옵니까?
김안로 : ..?!
난정 : (쌩끗 웃으며) ..고맙사옵니다..
김안로E : (보는) 내 네년의 요설에 현혹되어 대세를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야!
난정E : (미소로 보는) 경빈을 파내버리고 난 연후엔 네놈도 무사치는 못할 것이다.
난정과 김안로, 호쾌하게 웃어댄다.
S#4. 동 김안로 유배치 초가 마당
난정,김안로E : (방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하하하- 호호호-
길상, 방밖에 서있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본다.
S#5. 중궁전 외경
윤원형E : 중전마마, 근자에 들어 난정이가 좀 달라진 듯 하옵니다.
S#6. 동 중궁전 방 안
윤비와 윤원형, 다과상을 놓고 마주앉아 있다.
윤비 : 난정이가 달라지다니요? 무엇이 어찌 달라졌다는 말씀이십니까?
윤원형 : ..아무것도 아닌 일에 벌컥벌컥 홧증을 내는가 하면 어미 자식 간에 미운털이 박혔는지
아들놈을 대할 때도 손에 회초리 드는 일이 잦사옵니다.. 삼이가 어미라면 아주 오금을 못 펴고 무서워하옵니다.
윤비 : 오라버니, 자식훈육은 엄하게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오냐, 오냐 받아주기만 하면
장성하여서도 제발로 서려고 하기 보다는 남을 의지하려는 못된 습성이 박히는 법이지요.
윤원형 : 그런 줄은 아옵니다만은..지난 번엔.. 아주 망극한 말까지 입에 담았사옵니다.
윤비 : 망극한 말이라니요? 무슨요?
윤원형 : (주변 눈치를 보며 낮게)..중전마마께오서 살아남으시려면 세자저하를 도모하시어야 한다는..!
윤비 : 오라버니!
윤원형 : 예, 마마.
윤비 : 난정이가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지극정성으로 발원드린 일이 아무 보람이 없자 마음이 헛헛해져서 그럴겝니다.
허니 당분간 난정이를 모른 척 내버려두세요.
윤원형 : 하오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행여라도 난정이가 세자저하를 도모하겠다는 말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엄상궁E : 중전마마, 세자저하 내외분 문후드시었사옵니다.
윤원형 : (놀란 가슴이 덜컹) 세, 세자저하?!
윤비 : ...
S#7. 동 중궁전 복도
방문 앞에 세자와 세자빈이 서있고 그 뒤로 박상궁과 최상궁이 서있다.
윤비E : (방안에서) 들라해라.
엄상궁 : (세자내외에게 조아리며) 드시지요.
세자와 세자빈, 방문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S#8. 동 중궁전 방 안
세자와 세자빈, 방안으로 들어선다.
윤비 : (자애로운 미소) 어서들 오세요.
세자 : 어마마마, 문후드리옵니다.
세자,세자빈 : (윤비에게 큰 절을 올리고 앉는다)
윤원형 : (윗목에 서있다가 조아리며) 세자저하, 그간 존체만강(萬康)하시었사옵니까?
세자 : (윤원형을 보며) 승후관, 참으로 오랜만에 입궐하시었습니다?
윤원형 : (앉으며) 예. 글공부에 용맹정진하느라 대궐에 발걸음이 뜸하였사옵니다.
세자 : 그래요.. 다음 번엔 꼭 장원급제를 하시어야지요.
윤원형 : 시생이 머리가 우둔하여 쉽지는 않을 듯 싶사옵니다.
세자 : 난 승후관께서 외척의 뒷줄을 버리고 과장(科場)에서 다른 유생들과 겨루어 조정에 출사하려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원형 : 황공하오신 말씀이시옵니다. 벼슬을 하려면 과거를 보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을요?
세자 : 허나 그 당연한 일이 도외시되고 조정인사가 청탁과 대신들 뒤에 줄을 서는 일로 좌지우지되니 걱정이지요.
윤비 : 세자, 조정일은 차후 논하시도록 하세요. 이 어미와 빈궁같은 아녀자는 끼어들기가 마뜩치가 않구려.
(세자빈을 보며) 아니 그렇소, 빈궁?
세자빈 : 예, 중전마마.
세자 : 황공하옵니다. 어마마마. 모두가 소자의 불찰이옵니다.
윤비 : (방문 쪽을 보며) 엄상궁, 다과상을 들이게.
엄상궁E : (방밖에서) 예.
S#9.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앞에 앉은 심정을 보며 말한다.
경빈 : 화천군대감, 윤원로를 쳐내라 한 일은 어찌되었습니까?!
심정 : 조만간 잡아들일 것이오니 걱정 마시옵소서.
경빈 : 윤원로를 쳐낸 연후엔 중전의 작은 오라비인 윤원형이도 잘라 버리시어야 합니다!
심정 : 하온데 윤원형이 같은 백두를 무슨 혐의로 잡아들여야 하올는지요?
경빈 : 죄란 뒤집어 씌우기 나름 아닙니까? 지난 번 과거에서 시관을 매수하려 했다던지 하는 올가미를 만들어 보세요.
심정 : 그리하겠사옵니다.. 하온데 신, 경빈마마께 소청이 있사옵니다.
경빈 : 기탄없이 말씀해 보세요.
심정 : 지정대감이 영의정에 오른지 수년이 되었사온데 신은 아직 의정부 문턱을 밟아보지 못하였사오니..
남들 보기가 부끄럽사옵니다.
경빈 : (미소) 화천군대감, 정승반열에 오르고 싶으신겝니까?
심정 : 경빈마마에 대한 신의 충정이 모자란 것이옵니까?
경빈 :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래요.. 내 전하께 말씀드려 화천군대감께오서도 정승반열에 오르실 수 있게 힘을 쓰겠습니다.
심정 : 황공무지하옵니다! 신, 목숨이 다할 때까지아니 대대손손 충성을 다바칠 것이옵니다.
경빈 : (미소) ...
S#10. 중궁전 방 안
윤비 앞에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윗목 쪽에 윤원형이 각기 찻상을 놓고 앉아있다.
윤비 : 빈궁도 어서 후사를 보시어야지요. 이 어미가 어린 며느리를 앞에 두고 출산을 하였으니 참으로 민망스럽구려.
세자빈 : 중전마마, 신첩은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시올 때까지는 회임을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윤비 : 뭐, 뭐라? 빈궁, 지금 뭐라 하시었소?
세자 : 어마마마, 소자는 대군아우를 볼 때까지는 후사를 아니보기로 빈궁과 약조를 하였사옵니다.
윤원형 : (차를 마시려다 놀라보는) ...?!
윤비 : 세자, 그 무슨 해괴한 말씀이오? 약조라니요?
세자 : 소자가 어렸을 적에 어마마마께오서 소자의 밝은 앞날을 위하여 회임을 하시지 않겠다고 천명하신 일이 있었다고
들었사옵니다. 소자, 그 말씀을 듣고 어마마마께오서 소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감동이 북받쳐 올랐사옵니다.
소자, 어마마마의 사랑에 미력하나마 보은을 하고 싶은 뜻이옵니다.
윤원형E : 허어, 그거 참?! 세자저하의 효심이 참으로 가상하구먼?!
윤비 : 세자가 이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세자가 후사를 보는 일은
이나라 대통을 잇는 국가의 막중대사요. 허니 추호도 그런 생각일랑은 마세요!
만에 하나 주상전하나 대비마마께오서 아시게 된다면 이 어미의 처지가 크게 난감해질 것이오!
세자 : 어마마마께만 여쭙는 말씀이오니 그런 심려는 거두시옵소서.
윤비 : 세자, 어찌..?!
세자 : 소자, 어마마마를 지켜드리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사옵니다! 어마마마께오서 대군아우를 생산하실 때까지
소자가 후사를 아니 보는 것이 어마마마를 지켜드리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하오니 소자의 뜻을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윤원형 : ...?!
윤비E : 허어, 세자의 저의가 대체 뭐란 말인가?!
S#11. 갖바치 마당
"乙亥 二月 二十五日" 사주일시가 적힌 종이.
방백인, 툇마루에 앉아 그 사주를 내려다 보며 한숨을 내쉰다.
당골네 : (다가와 눈치를 쭈삣쭈삣 살피며) ..임자, 증말 난정이한테.. 세자저하를 방자하는 비술을 일러줄 거요?
방백인 : (휙- 노려보며) 시끄러 이 여편네야! 뭘 안다고 씨부리는 게야?!
당골네 : 임자, 그만두시구랴! 난 아주 살얼음판 밟듯 불안해 죽겠소!
방백인 : 여편네야 고 주둥이 잘못 놀리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죽은 목숨!
당골네 : 그러니, 그만 두시란 거 아니요!
갖바치 : (쇠가죽 지게를 지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어찌 또 아웅다웅대시는가?
방백인 : (사주종이를 급히 집어넣으며) 혀, 형님 이제 오시오?
당골네 : 헌데 쇠가죽을 벌써 드리시는겝니까?
갖바치 : (쇠가죽 지게를 내려놓으며) 곧 세자저하의 탄일(誕日)이 다가오니
고관대작들이 비단옷과 갖신을 새로이 맞춤하려 들 터이니 미리미리 채비를 해두는 게요.
방백인 : 세자저하의 탄일이요?
갖바치 : (끄덕이며) 내달 스무닷새가 저하의 탄일 아닌가?
방백인,당골네 : (찔리는 듯 서로의 얼굴을 힐끔 보는) ...!
장대인과 복성군, 대문을 들어선다.
당골네 : (장대인을 보고) 아, 아니? 저 사람은?
장대인 : 잘들 지내시었는가?
갖바치 : (굳은 표정) 내 집엔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지 말라고 일렀거늘 어찌 또 오시었소?
장대인 : 내 오늘은 귀한 분을 뫼시고 왔네. (복성군에게) 이 자가 말씀드린 갖바치이옵니다.
복성군 : (찌푸리고 보며) 행색은 천하구먼.
장대인 : 이분은 주상전하의 장자이신 복성군이시네.
당골네E : (깜짝 놀라) 임금님의 장자?!
당골네,방백인 : (허리를 깊이 숙이는데) ..
갖바치 : 갖신을 맞춤하러 오시었으면 방으로 드시지요. (방으로 들어간다)
복성군 : (불쾌한 표정) ..
장대인 : (미소) 사람이 불퉁맞긴 하여도 경륜과 식견은 당대 으뜸이옵니다. 드시지요.
복성군과 장대인, 갖바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방백인E : (복성군을 살피며) 쥐새끼한테 발뒤꿈치를 물려 화를 당할 상이구먼!
S#12. 동 갖바치 방 안
복성군, 방문 앞에 선 채 코를 쥐며 인상을 찌푸린다.
갖바치, 발을 재는 도구를 꺼내들고 방바닥에 내려 놓는다.
갖바치 : 갖신쟁이 방이라 발고린내가 심할겝니다. 허나 조정에서 풍기는 역한 똥냄새에 비하겠사옵니까?
복성군 : 뭣이라?!
갖바치 : 치수를 재야 하오니 발을 내시지요.
장대인 : 복성군께오선 갖신맞춤을 하러오신 게 아닐세.
갖바치 : 허면 이놈에게 무슨 볼 일이시옵니까?
복성군 : (앉으며) 내 장대인을 통해 자네에 대해선 익히 듣고 있었네. 자네가 조정암의 스승이었다지?
갖바치 : 그럴리가요?
복성군 : 겸양치 말게. 내 자네에게 천하를 다스릴 경륜과 식견을 빌리고자 하네.
갖바치 : 허허허!
복성군 : (불쾌한) 왜 그리 웃는겐가?
갖바치 : (웃음 뚝) 복성군께오선 이놈을 역모의 수괴로 만드실 작정이시옵니까?!
복성군 : (놀라보며) 역모의 수괴라니?! 그 무슨 말인가?!
갖바치 : 복성군께오서 천하를 다스릴 경륜을 빌리시겠다면 이는 곧 대통을 이으실 세자저하를 젖히고
역모를 하시겠다는 뜻이 아니시옵니까?!
장대인 : (당황하는) ...?!
복성군 : 네 이놈! 어찌 천한 갖바치놈 따위가 종친을 기망하는 게냐?!
갖바치 : 이놈은 복성군께오서 도모하시는 역모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으니 당장 돌아가시지요!
복성군 : (울그락 불그락) 이, 이놈이! 장대인 이런 미친 놈과 마주 앉아 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돌아가세나!
(벌떡 일어서는데)
갖바치 : 복성군나으리!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하였사옵니다. 하늘을 거스르려 하지 마시옵소서!
복성군 : (휙- 나가버리는) ...
장대인 : 내 자네에게 기회를 주었거늘 스스로 차버리다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나 말게나! (방밖으로 나가버린다)
갖바치 : ...음!
S#13. 갖바치 대문 앞
복성군, 격노한 얼굴로 대문을 나오고 장대인, 그뒤를 따라 나온다.
복성군 : (대문 쪽을 휙- 돌아보며) 방약무도한 놈 같으니라구!
장대인 : (조아리며) 송구하옵니다.
복성군 : 장대인, 저놈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간 장차 화근이 될지도 모르네. 기회를 보아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입을 막아버리게!
장대인 :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복성군 : (몸을 휙- 돌려 간다)
장대인 : (대문 쪽을 돌아보고는 복성군의 뒤를 따른다) ..
S#14. 윤원형집 대문 안 마당
임서방, 대문을 열어주면 난정, 길상을 거느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임서방 : (조아리며) 이제 오십니까요, 아씨?
난정 : 서방님은 계시는가?
임서방 : 입궐을 하시었습니다요.
난정 : 입궐?.. (중문 쪽으로 걸어간다)
임서방 : (서있는 길상에게) 아씨께오서 이번엔 어딜 걸음하시었던겐가?
길상 : (묵묵히 행랑채 쪽으로 걸어간다)
임서방 : 이거야 작은아씨 곁에는 온통 소죽은 귀신 뿐이니..
S#15. 동 윤원형 초당 마당
난정, 초당 쪽으로 걸어온다.
모린, 초당방 안에서 걸레대야를 들고 나오다 난정을 보고 급히 다가와 조아린다.
모린 : 이제 오십니까요?
난정 : 삼이는 어디 있느냐?!
모린 : 안채에 드시었사옵니다.
난정 : 안채?! (안채 쪽을 휙- 돌아보는)
S#16. 동 윤원형 안채 방 안
김씨와 삼이, 다과상을 놓고 마주 앉아 있다. (*배천댁과 탄실, 한편에 앉아있다)
김씨 : (자애롭게 보며) 삼아, 오늘은 서당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삼이 : 금생려수 옥출곤강이란 구절을 배웠사옵니다.
김씨 : 금생려수, 옥출곤강이라..그게 무슨 뜻인지 새겨보거라.
삼이 : 금은 맑은 물속에서 나오고 옥은 곤륜산에서 나온다는 뜻이옵니다.
김씨 : (끄덕이며) ..그래?
삼이 : 예, 사람은 근본이 있어 선비가문에서 선비가 나오고 농군집에서 농군이 나온다는 뜻이옵니다..
김씨 : 헌데 삼아, 어디가 불편한게냐? 어찌 네 낯빛이 이리 흐린게냐?
삼이 : 저는 서당에 가기가 싫사옵니다.
김씨 : 서당에 가기가 싫다니? 네 그 무슨 말이더냐?
삼이 : 사람이 근본이 있는 법이온데 저 같은 서출이 글은 배워 무엇하겠사옵니까?
김씨 : (충격) ..사, 삼아..!
삼이 : 서당에 가면 과거도 못 볼 서출놈이 글을 배우러 왔다고 양반댁 도령들이 놀리옵니다.
다시는 서당에 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김씨 : 삼아, 그런 소리 말거라! 글을 배우는 까닭은 벼슬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갈 도리를 알기 위함이니라.
삼이 : 서출은 사람축에도 끼지 못 한다고 들었사옵니다!
김씨 : (버럭) 삼아! 네 행여라도 네 어머니가 듣는데서는 내색을 하여서는 아니되느니라!
삼이 : (글썽) 저는 어머니가 싫사옵니다! 어찌 소자에게 양반댁 도령행세를 가르치시려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사옵니다!
어찌요?! 흐흑..
김씨 : (안쓰럽게 보며) ..삼아..
삼이 : 차라리 아씨께오서 내 어머니였으면 좋겠사옵니다... 흐흑..
S#17. 동 윤원형 안채 마당
삼이E : (방안에서) 흐흑...
난정, 방문 밖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듣고 서있다.
모린, 난정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줄 모르는 표정인데
난정, 치솟는 분기를 참듯이 부르르 떨며 방문 쪽을 노려보다가 몸을 휙- 돌려 초당 쪽으로 가버린다.
S#18. 동 윤원형 초당 방 안
난정, 한손으로 이마를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얼굴 위로 떠오르는.
"INTER CUT"
1. 난정모, 난정의 책을 아궁이에다 태우는(4회 S#48의)
2. 난정, 난정모에게 "왜 날 서녀로 낳으셨세요?!" 울부짖는(5회 S#33)
난정 : (주먹을 움켜쥐며) 아니 돼! 내 결코 삼이에게만은 첩년의 자식이라는 족쇄를 내리물림 하지는 않을 것이야!
(방문 쪽을 돌아보며) 모린이, 게 있느냐?!
모린 : (방안으로 들어서며) 찾아계시옵니까 아씨?
난정 : 당장 혜화문으로 발걸음하여 방백인 아저씨를 데려오거라.
모린 : 예. (조아리고 방밖으로 나간다)
난정 : ...!
S#19. 옥매향 기방 안채 마당
심퉁,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오는데
윤원형, 헛기침을 하며 중문 안으로 들어온다.
심퉁 : (윤원형을 보고 반갑게 조아리며) 승후관나으리, 참으로 오랜만에 발걸음을 하시었네유?
윤원형 : 너도 잘지냈느냐? 내 오랜만에 같은 낙방거사 처지의 임선비를 만나 술 한잔 나누러왔다.
심퉁 : 헌데 어쩌지유? 임선비께오선 조금 전에 떠나셨시유.
윤원형 : 떠나다니, 어딜?
심퉁 : 조용한 암자로 과거공부 하시러 가신다고 했구먼요.
윤원형 : 그래?
윤원형E : 임선비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매향이 치마폭에서 벗어나려는게구먼?!
S#20. 어느 길
임백령, 괴나리 봇짐과 서책보따리를 들고 옥매향과 이별중이다.
옥매향 : 니년 날마다 뎡한수를 떠놓고 텬디신명 앞에 기원드릴 테니끼니 서방님께오선 반드시 댱원급뎨 하실기야요!
임백령 : 매향아, 내 과거급제 하기 전에는 두 번 다시 너를 찾지 않을 것이다.
옥매향 : 기래요.. 니년도 서방님 계신 암자엔 발걸음을 하디 않을 테니 공부에만 정진하시라요!
임백령 : 오냐, 내 니 정성을 헛되이 하지는 않으마!
옥매향 : (글썽글썽) ..서방님, 끼니는 거르시디 말고 꼭 탱겨드시어야 하옵네다.
임백령 : ..매향아, 내 너를 두고 떠나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옥매향 : (눈물을 보이기 싫은지) 어서 가시라요! 어서요!
임백령 : 그래.. 내 이만 가련다. (돌아서 간다)
옥매향 : (그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르는) ...이년, 천년 만년 서방님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테니끼니
반드시 돌아오시어야 하옵네다.. 흐흑..
임백령, 눈물을 참듯 어금니를 물고 휘적휘적 간다.
S#21. 편전 마당
김희와 효혜공주, 합문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올라 편전 안으로 들어간다.
대전내관E : 전하, 연성위 내외분 드시었사옵니다.
S#22. 동 편전 방 안
김희와 효혜공주, 중종에게 큰 절을 올리고 앉는다.
중종, 반가운 눈빛으로 본다.
김희,효혜공주 : 주상전하, 그간 옥체 강녕하시었사옵니까?
중종 : 오냐, 너희들도 잘 지냈느냐?
김희 : 모두가 주상전하께오서 돌보아주신 덕분이옵니다.
효혜공주 : ...
중종 : 헌데, 옥하(*효혜공주의 이름)야 네 얼굴이 어찌 이리 상한게냐? 네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것이더냐?
효혜공주 : (눈물 글썽) ...
중종 : 허어, 네 어찌 오랜만에 입궐하여 아비를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냐?
효혜공주 : ..아바마마.. 소녀의 시아버님의 귀양를 풀어주시옵소서..
중종 : 뭣이라?! 네 지금 희락당대감의 방면을 청하러 든 것이더냐?
효혜공주 : 소녀, 김씨가문에 출가하여 시가의 중흥을 내조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왕실의 며느리를 둔 까닭에
시아버님께오서 일벌백계의 본보기가 되시어 무거운 형을 당하시었사오니
어찌 소녀의 마음이 편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아바마마께오서 아량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김희 : 신, 주상전하께 감히 아뢰옵니다. 신의 아비가 중한 죄를 지었다고는 하오나 귀양처에서 지낸지 수년이 지났사옵니다.
신의 아비도 크게 뉘우치었을 것이오니..
중종 : (단호한) 그리 할 수는 없다!
김희 : ..전하..
효혜공주 : ..아바마마..
중종 : 희락당은 국유지를 사취한 대죄를 지었느니라! 희락당이 왕실의 사돈이라 하여 방면하여 준다면
조정신료들과 백성들이 과인의 불편부당하지 못한 처사에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이는 과인과 왕실의 권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일 뿐 아니라 조정의 기강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터!
내 대의를 위하여서도 그리할 수는 없느니라! 그런 청을 하려거든 당장 물러가거라!
김희 : (눈물)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효혜공주 : ..아바마마.. 흐흑..
중종 : 어허, 당장 물러가래두!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다)
김희 : 부인.. 이만 물러가십시다.. (부축하는데)
효혜공주 : (일어서며) ..아바마마, 참으로 야속하시옵니다.. 흐흑..
김희와 효혜공주, 조아리고 방문 밖으로 나간다.
중종E : (방문 쪽을 돌아보며 마음이 아픈 얼굴 위로) 옥하야.. 이 아비가 어찌 네 마음을 모르겠느냐..
네 마음고생으로 상한 얼굴을 보니 이 아비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프구나..
허나 아직은 희락당을 불러들일 때가 아닌 듯 싶구나.. 아직은..!
S#23. 대비전 방 안
자순대비, 앞에 서있는 봉상궁을 보며 말한다.
자순대비 : 뭐라? 연성위 내외가 편전에 들어 희락당대감의 사면을 주청드렸단 말이냐?
봉상궁 : 예, 주상전하께오서 진노하시어 다과상도 들이시지 않고 두분을 물리시었다 하옵니다.
자순대비 : 허어.. 주상께오서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금지옥엽처럼 괴이시던 옥하를 물리시었다니?
이러다 부녀지간에 척이라도 지면 어찌할꼬?.. (보며) 봉상궁, 헌데 옥하가 어찌 대비전에는 들지 않는 것이냐?
봉상궁 : 연성위 내외분께오선 동궁전으로 발걸음을 하시었다 들었사옵니다.
자순대비 : 동궁전에?
S#24. 동궁전 방 안
세자와 세자빈, 효혜공주와 김희가 다과상을 놓고 앉아있다.
효혜공주 : 아바마마의 마음을 돌리실 분은 세자저하 뿐이시옵니다. 부디 이 누이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지 마세요.
세자 : 누님의 마음을 잘 아옵니다. 허나 내 어찌 조정일에 함부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김희 : 저하, 시생이 사사로운 까닭으로 아비의 방면을 청드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세자 : 사사로운 까닭이 아니라니요?
김희 : 지금 조정엔 저하를 보위할 신료들이 없사옵니다. 장차 저하께오서 보위에 오르신 연후에도
정사를 살피시기가 부담이 되실 것이 자명하옵니다. 하오니 시생의 아비를 불러들이시어..
세자 : 매형, 이나라의 군주는 아바마마이시옵니다. 이사람 역시 군주를 받드는 신하된 몸으로
어찌 어의를 꺾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김희,효혜공주 : (야속한) ...!
S#25. 김안로 유배지 근처 강가
김안로, 강가를 보고 서있는 얼굴 위로.
김안로E : ..오월동주라..? 그래 내 난정이의 손을 빌어 조정으로 돌아갈 것이야! 내 조정에 돌아가는 날,
나를 핍박했던 놈들을 김안로라는 이름 석자 앞에서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만들 것이다! 하하하-
김안로, 껄껄 웃어대는 모습에서.
S#26. 윤원형집 초당 마당
모린, 초당 주변을 감시하듯 서있는 모습 위로.
난정E : 쥐를 태워 매달라니요?!
모린 : (방쪽을 힐끔 돌아보는) ..?!
S#27. 동 윤원형 초당 방 안
난정, 앞에 앉은 방백인을 놀란 얼굴로 본다.
방백인 : 세자저하는 을해년 생도야지 띠이시다. 쥐의 사지와 주둥이를 잘라내면 흡사 도야지의 형상이 될 터이니
세자저하의 탄일날 쥐로 도야지 형상을 만들어 태운 연후에 동궁전 해방(亥方)에 매어달면 되느니라.
난정 : 그리 방자를 하면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방백인 : 세자저하의 몸이 쇠약해지시며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결국엔...
난정 : 아저씨, 틀림없겠지요?!
방백인 : 내 스승님께오서 물려주신 비책엔 분명 그리 적혀있다.
난정 : 고맙사옵니다. (연상 서랍에서 비단 염낭을 꺼내 건네며) 받으시어요.
방백인 : 아니다! 천기를 누설한 놈이 무슨 대가를 바라겠느냐?! 허면 내 이만 일어서마. (일어서는데)
난정 : (다짐받듯) 아저씨, 만에 하나 이 일이 누설된다면...?
방백인 : 그런 염려 말거라. 나도 목숨이 하나 뿐인 줄 잘 알고 있다. (방밖으로 나간다)
난정 : ..쥐를 태워 매단다? 쥐를..?!
S#28. 동 윤원형 중문 안 마당
방백인, 걸어나오다 하늘을 보며 탄식하듯 한숨을 내쉰다.
모린, 방백인의 옆을 따르고 있다.
방백인 : 허어, 천기를 누설하였으니 나도 제명대로 살기는 글렀구먼.
김씨 : (배천댁과 탄실을 거느리고 오다가 방백인을 보고) 자네는 누군가?!
방백인 : (흠짓 놀라) 예에?..
김씨 : 어찌 초당에서 나오는겐가?
방백인 : (조아리는) ..이놈은 혜화문 밖에 사는 점바치이온데 초당아씨의 부름을 받고 사주풀이를 해드리고 가는 길이옵지요.
김씨 : 사주?
방백인 : 예, 안방아씨께옵서도 사주를 한번 보시렵니까요?
김씨 : 아닐세.. 어서 가보게.. (어디론가 간다)
방백인 : (김씨의 모습을 살피다가 화들짝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 아니 이럴 수가?!
모린 : (의아하게 보는) ...?!
방백인E : 허어, 어찌 대갓댁 아씨께오서 비명횡사할 흉액이 끼어있단 말인가?! 어찌?!
모린 : (방백인을 쿡 찌르면) ..
방백인 : (정신을 차리며) 그, 그래.. 가자구나.. (김씨 쪽을 보다가 중문 밖으로 나간다)
S#29. 편전 방 안
중종, 앞에 놓인 명단(*세명씩 이름이 적힌 천거명단)을 보고 있다.
중종 앞에 도승지 강찬이 앉아있다.
중종 : 과인이 권대감의 사직으로 비어있는 우의정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천거를 받았건만 과인의 마음에 차는 인물이 없구려.
도승지, 우의정에 누가 적합할지 천거해 보시구려.
강찬 : 신의 생각엔 경륜과 식견을 따져볼 때 윤은보가 적임인 줄로 사료되옵니다.
중종 : 그래요, 윤판서가 충직한 사람이지요. 허나 성정이 너무 강직하여 조정대신들과 화합하지 못한다고 들었소이다.
강찬 : 전하, 작금의 조정신료들은 용안 앞에서 어의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지당합소이다 만을 부르짖고 있사옵니다.
이런 까닭에 전하께오선 천하가 태평한 줄로만 여기시고 계시오나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사옵니다.
중종 : ..음!
강찬 : 이 모두가 조정신료들이 전하께 직언을 드리지 못하는 까닭이오니
이번 기회에 윤은보 같은 인물을 중용하시어 곁에 두시온다면 전하의 치세가 더욱 빛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중종 : ..내 도승지의 말을 귀에 담아두리다.. 헌데 도승지, 과인이 희락당을 사면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강찬 : 시기상조라 생각하옵니다.
중종 : 시기상조라?
강찬 : 전하께오서 희락당을 사면하시온다면 희락당과 견원지간인 조정신료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조정이 또 한 바탕 어지러워질 것이옵니다. 전하, 조정에 분란을 자초하지 마시옵소서.
중종 : 과인도 도승지의 생각과 같소.
대전내관E : (방밖에서) 전하, 경빈 들었사옵니다.
중종 : 경빈이?
강찬 : (찌푸리는) ..
중종 : 도승지는 이만 물러가시구려. (천거 종이를 챙기는)
강찬 : 예.. (일어서서 방문쪽으로 가는)
S#30. 동 편전 복도
경빈, 방문 앞에 서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강찬이 나온다.
경빈 : 도승지 영감, 전하와 면대 중이시었소이까?
강찬 : 경빈마마, 오늘은 어인 일로 편전에 드시었사옵니까?
경빈 : 이사람이 편전에 드나들이 한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닌 것을
도승지 영감께오선 아직도 마땅치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려?
강찬 : (못마땅한) ..음!
중종E : (방안에서) 경빈을 들라해라-
대전내관 : 예. (경빈에게) 드시지요.
경빈 : (미소) 도승지영감, 허면 나중에 또 보십시다. (한발 앞으로 나서는)
강찬 : ...!
S#31. 동 편전 방 안
경빈, 방문이 열리면 슬픈 표정으로 방안으로 들어서서 조아린다.
중종 : 이리 내려오시구려.
경빈 : 예, 전하. (중종 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중종 : 경빈, 오늘은 무슨 일로 편전에 드시었소?
경빈 : 신첩, 효혜공주께오서 편전에 드시어 희락당대감의 사면을 주청드리시었다고 들었사옵니다.
중종 : (침울) ..그래요..
경빈 : (글썽) 전하,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옵니까?.. 신첩, 전하께오서 공주마마를 호통으로 물리시었다는 말씀을 듣고
전하를 위로하여 드리러 발걸음을 하였사옵니다.
중종 : 고맙소, 경빈.. 과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경빈 밖에 없구려..
경빈 : 전하, 차라리 희락당을 사면하시어 효혜공주의 마음을 풀어주시옵소서.
중종 : 과인도 그러고 싶지만 과인의 마음이 편하고자 조정의 분란을 자초할 수는 없소이다.
경빈 : 전하께오서는 참으로 성군이시옵니다. 전하께오선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끊어버리신 성군으로
사초에 기록되실 것이옵니다.
중종 : (싫지않은) 허허, 성군이라니요? 경빈, 내 어지럼증이 나니 너무 치켜세우지 마시구려.
경빈 : 하온데 도승지영감과는 무슨 말씀을 나누시고 계시었사옵니까?
중종 : 비어있는 우의정자리에 누가 적합한지를 논의하고 있었소이다.
경빈 : 하오면 이번엔 화천군대감께오서 정승반열에 오르시는 것이옵니까?
중종 : 화천군이요?
경빈 : 신첩, 소견으로는 전하께오선 충성심과 소신이 확고하고 이제껏 구설에 오른 적이 없는 청렴함으로
전하를 떠받들고 있는 화천군을 낙점하시었을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중종E : 화천군.. 화천군이라?! 그래 화천군이 있었구먼..
경빈 : 전하, 신첩 짐작이 틀린 것이옵니까?
중종 : 아니오, 경빈이 과인의 생각을 바로 맞췄소이다. 허허..
경빈E : (쌩끗 웃는) 전하의 마음만 읽을 줄안다면 정승 하나쯤 내손으로 세우고 파내버리는 게 무에가 어렵겠누? 호호..
S#32. 경빈 처소 마당
경빈, 금이와 상궁나인들을 거느리고 일각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봉상궁과 대비전 상궁나인들이 서있다.
경빈 : 봉상궁, 내 처소에는 어인 발걸음인가?
봉상궁 : 대비마마께오서 경빈마마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경빈 : 대비마마께오서? (방쪽을 보다가 처소쪽으로 들어간다)
S#33. 동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자순대비 앞에 앉는다.
자순대비 : 경빈, 편전에 들었다 나오는 길이라지요?
경빈 : 예, 대비마마, 하온데 신첩의 누처에는 어인 발걸음이시옵니까?
자순대비 : 이 늙은이가 경빈에게 청이 있어 들었소.
경빈 : 청이라니요, 마마?
자순대비 : 경빈, 희락당과 판부사를 조정으로 불러들여주시구려.
경빈 : (움찔 놀라는 척) 대비마마, 그 무슨 망극한 말씀이옵니까?
신첩 같은 일개 후궁이 어찌 조정 중대사에 간여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자순대비 : 경빈, 지금 주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경빈 뿐이란 것을 삼척동자까지도 다 아는 일이 아니오? 허니..
경빈 : 대비마마, 신첩에게 조정일에는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말을 내뱉지 말라고
늘상 꾸짖고 경계시켜주신 분은 대비마마이시옵니다. 하온데 어찌 이제 와서 신첩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자순대비 : 경빈.. 이 늙은이에게 맺힌 것이 있다면 풀어버리시구려. 대신.. 이 늙은이의 청을..
경빈 : 신첩, 그리는 못하옵니다! 아니 신첩은 그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설혹 주상전하께오서 희락당과 판부사를 사면하시겠다고 어명을 내리시온다면
신첩, 조정신료들에게 어명을 거두어 주실 때까지 주청을 드리라 할 것이옵니다!
자순대비 : (당혹하여) 겨, 경빈.. 네 어찌..?!
경빈 : 대비마마, 신첩은 마마께오서 신첩을 불신하시고 손지껌까지 하시었던 일을 결코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대비마마께오서 신첩의 웃전이시기는 하오나 신첩을 꺾지는 못하실 것이옵니다!
자순대비 : 뭐, 뭐라?! 네 어찌 이리 방약무도 하단 말이냐?!
경빈 : (싸늘한 미소) 대비마마, 일개 후궁한테 더 큰 봉변을 당하시기 전에 이만 대비전으로 돌아가시지요.
자순대비 : (분노로 보며) 오냐, 내 이만 돌아가마!
허나 네가 떠는 이 위세가 어디까지 가는지 내 두고 볼 것이다! (벌떡 일어서는데)
경빈 : (일어나서 공손하게 조아리며) 대비마마, 살펴 가시옵소서!
자순대비 : (울그락불그락 노려보다가 방문을 쾅- 여닫고 나가버린다)
경빈 : 흥, 두고 보긴 무엇을 두고 본단 말이오?!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호호호!
S#34. 동 경빈 처소 마당
경빈E : (처소 방 안에서) 호호호-
자순대비, 격노한 표정으로 처소에서 나오다가 비틀한다.
봉상궁 : (부축하며) 대비마마, 괜찮으시옵니까?
자순대비E : (휙- 돌아보며) 네 언제가는 내 발 밑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날이 올게다.
자순대비 : 봉상궁, 대비전으로 가자.
자순대비, 일각문 밖으로 나가면 봉상궁이 급하게 그 뒤를 따른다.
S#35. 중궁전 방 안
윤비, 찻잔을 놓고 희빈, 창빈과 마주앉아 있다.
희빈 : 중전마마, 경빈이 전하의 총애와 조정신료들의 뒷배만 믿고
날이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방약무도한 짓거리가 늘어 간다고 하옵니다.
창빈 : 신첩도 그리들었사옵니다. 경빈이 편전에 무시로 드나들면서 조정인사에 간언을 올리는 일이 잦으니
조정인사가 경빈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 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사옵니다.
윤비 : 허니, 이사람 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희빈 : 예에?
윤비 : 경빈을 불러다 회초리라도 치란 말인가?
창빈 : 중전마마께오서 따끔하게 꾸짖으시오면..
윤비 : 아니야, 아니야! 공주만 내리 셋을 생산한 중궁이 욱일승천의 기세가 오른 총관후궁을 가르치려 들었다가는
내 머리채라도 잡으려 할게다.
희빈E : (충격) ..중전이 세 번째 따님을 생산하신 후로는 기세가 꺾이시었다더니 그 말이 참이었구먼..
내 당분간은 중궁전에 발을 떼고 경빈의 곁에 서있어야 함이구먼.
창빈 : 중전마마, 하오면 경빈의 패악을 두고만 보실겝니까?
윤비 : 왕실의 큰 어른이신 대비마마께오서도 감당하시지 못하는 경빈을 내 어찌하겠는가? 지켜만 볼 수밖에..
창빈E : (안쓰러운 듯 글썽) ..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만 생산하시었어도 이리 되시지는 않으시었을 것을..?!
S#36. 동 중궁전 복도
난정, 방문 앞쪽으로 다가온다.
난정 : 마마님, 고하여 주시지요.
엄상궁 : 지금은 희빈과 창빈마마께오서 들어계시오니 곁방에서 잠시 기다리시다 나중에 드는 게 좋을 듯 싶네.
난정 : 아니옵니다. 마침 잘 되었사오니 지금 고하여 주시지요.
엄상궁 : 알았네.. (방문쪽에다) 중전마마, 윤승후관 작은안으서 들었사옵니다.
S#37. 동 중궁전 방 안
희빈과 창빈, 흠짓하는데.
윤비 : (찻잔을 내려놓으며) 들라해라.
난정, 방문이 열리면 방안으로 들어서서 윤비에게 큰 절을 올린다.
난정 : (희빈과 창빈을 보며 조아리며) 두 분 마마를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그간 대안하시었사옵니까?
창빈 : 오랜만일세. 무고하였는가?
희빈 : 자네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색이 더욱 피어나는구먼.
난정 : (앉으며) 과찬이시옵니다.
윤비 : 난정아, 네 어찌 입궐을 한 게냐?
난정 : 중전마마, 소첩 하직인사를 여쭈러 들렀사옵니다.
윤비 : 하직 인사라니? 네 또 어딜 떠나가길래?
난정 : 소첩, 묘향산에 아들만 점지해 주신다는 영험한 부처님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윤비 : 난정아, 네 또 내 대군생산을 위한 불공을 드리러 간다는 말이냐?
난정 : 예, 마마.
윤비 : 그리할 게 무에 있누? 내 또 한번 공주를 생산하여 망신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회임을 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희빈E : 암요,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요.
난정 :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사옵니까?
창빈 : 신첩도 묘향산 영험한 부처님 소문을 들은 듯 싶사옵니다.
윤비 : 그래요?.. 허면 내 난정이에게 당부할 말이 있으니 두 분 빈들은 이만 물러가세요.
희빈,창빈 : 예. (일어나서 조아리고 방문쪽으로 가는)
희빈 : (난정에게) 나중에 또 보세나.
창빈 : 잘 다녀오시게나.
난정 : (조아리며) 나중에 뵙겠사옵니다.
희빈,창빈 : (방밖으로 나가는) ..
윤비 : 난정아, 다가와 앉거라.
난정 : (윤비 앞에 바짝 다가앉으며 낮게) ..마마, 경빈을 도려내는 일을 결행할 때가 되었사옵니다.
윤비 : 때가 되었다..? 허면 언제 결행하려는 게냐?
난정 : 내달 스무닷새날로 택일하였사옵니다..
윤비 : 내달 스무닷새라면..세자의 탄일이 아니냐?
난정 : 예, 마마! 소첩 세자의 탄일에 경빈을 도모할 것이옵니다.
S#38. 복성군 사가 외경
복성군E : 이게 다 무엇이냐?
S#39. 동 복성군 사가 방 안
휘황찬란한 패물함과 비단필 등이 놓여 있다.
복성군과 윤씨, 혜순옹주와 혜정옹주가 앉아있다.
혜순 : 무어라니요? 내달 스무닷새가 백돌이의 생일이잖아요?
혜정 : 언니, 불경스럽게 어찌 세자저하의 아명을 함부로 부르시는게요?
혜순 : (흘기며) 얘는? 불경스러울 것도 많다.
복성군 : 허면 이것이 다 세자의 탄일 하례물이란 말이냐?
혜순 : 예. 아무리 우리 동생이지만 세자는 적통대군이고 우리야 뒷방후궁의 자식들이니 예의를 갖추어야지요?
윤씨 : (복성군을 보며) 서방님, 우리도 하례물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복성군 : 내 장대인에게 일러둘 테니 염려마시구려.
복성군E : (뭔가 벼르는) 암! 이번이 세자께오서 마지막으로 맞으시는 탄일이 될 것이니
호사스러운 하례물을 바쳐드려야지! 하하하.
S#40. 중궁전 방 안
난정, 윤비를 보고 말한다.
난정 : 사단이 벌어지면 모두가 경빈의 소행이라 지목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경빈은 중전마마를 의심할 것이옵니다.
윤비 : 그럴게다.
난정 : 소첩은 지금 중전마마께 하직인사를 올린 연후엔 도성을 떠날 것이옵니다.
윤비 : 중궁전에 쏠릴 의심을 피하겠다는 말이냐?
난정 : 예. 장대인이 소첩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사오니 그리해야 할 것이옵니다.
윤비 : 허면 세자의 탄일에 누가 일을 도모한단 말이냐?
난정 : 염려마시옵소서, 소첩이 쥐도 새도 모르게 도성으로 돌아와 입궐한 연후에 소첩의 손으로 성사시킬 것이옵니다!
윤비 : 세자의 탄일에는 궐내 출입을 엄격히 막을 것이거늘 네 무사히 입궐할 수 있겠느냐?
난정 : 믿으시옵소서! 반드시 소첩의 손으로 경빈의 목을 쳐낼 것이옵니다!
윤비 : 오냐, 난정아, 내 너를 믿을 것이야!
윤비, 난정의 손을 굳게 맞쥐어준다.
S#41. 윤임 관아 숙사 방 안
윤임, 심각한 표정으로 서찰을 읽고 있는 얼굴 위로. (*윤임 옆에 김제학과 채무택, 허항이 앉아있다)
김안로E : 조정에서 까치가 반갑게 울어댈 것이오니 그때까지는 은인자중하시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경거망동하시면 결코 아니 되실 것이옵니다.
윤임 : (갸웃하며) 조정에서 반가운 까치가 울어댈 것이다?
김제학 : 그 뜻은 전하께오서 조만간 우리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이실 것이란 말씀이 아니옵니까?
윤임 : 글쎄요.. 이사람도 희락당대감께오서 무슨 일을 도모하시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구려.
허나 지금은 희락당대감의 말씀을 믿고 기다릴 수 밖에요!
김제학과 허항, 채무택,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S#42. 김안로 유배지 초가 방 안
김안로, 난을 치고 있다.
김안로, 붓끝을 거두며 화선지 속의 난초를 들여다 본다
(INSERT) 난초 위로 난정의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 겹쳐진다.
김안로E : 정난정이라.. 천하절색의 미모 뒤에 무서운 독가시를 감추고 있는 계집이야..
이번 일을 성사시킨 연후엔 난정이 이년부터 끝장을 내버려야 할 것이야.
김안로, 난초를 그린 화선지를 구겨 화로 속에 던져버린다.
불길에 휩싸이는 난초 그림에서.
S#43. 김안로 사랑채 마당
난정, 방문 앞에 서있는 모습 위로.
S#44. 동 김안로 사랑채 방 안
김희, 앞에 서있는 황서방을 놀란 표정으로 보고 말한다.
김희 : 뭣이라, 윤승후관 작은 안으서가 아버님의 서찰을 전하러 왔다?
황서방 : 예. 분명 그리 말하였습니다요.
김희 : 어서 들라 하게.
황서방 : 예. (방 밖으로 나간다)
S#45. 동 김안로 사랑채 마당
황서방 : (방에서 나와 마당으로 내려 서며) 드시랍니다.
난정 : 고맙소. (방 안으로 들어간다)
황서방 : (난정의 신발을 바로 놓는데)
효혜공주 : (다가오며) 황서방.
황서방 : (돌아보며 조아리는) 예, 마마.
효혜공주 : 지금 방 안에 든 아낙이 뉘신가?
황서방 : 윤승후관댁 작은 안으서가 대감마님의 서찰을 가져왔습니다요.
효혜공주 : 뭐라? 윤승후관 작은 안으서가 아버님의 서찰을?!
효혜공주, 갸웃하는 눈길로 방쪽을 돌아본다.
S#46. 동 김안로 사랑채 방 안
김희, 서찰을 펼쳐보고 있다.
난정, 그런 김희의 얼굴을 빤히 보고 앉았다.
김희 : (서찰을 접으며) ..음.. 아버님께오서 어찌?
난정 : (미소) ..희락당대감께오서 서찰에 무어라 적으시었사옵니까?
김희 : 아버님께오서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라 하시었네.. 내가 자네한테 해줄 것이 무엇인가?
난정 : 소첩, 다음번에 들러 청을 드릴 것이옵니다. 오늘은 남의 이목이 있으니 이만 물러 가겠사옵니다. (조아리고 일어서는데)
김희 : 이보게, 자네가 내 아버님과는 무슨 인연이 있길래 아버님께오서 이런 서찰을 보내시었는가?
난정 : (쌩끗 웃으며) 소첩이 일전에 희락당대감을 귀양을 떠나시게 하였습지요.
김희 : 뭣이라? 자네가 내 아버님을?!
난정 : 하온데 지금은 희락당대감의 목숨을 구명할 구명줄 노릇을 하고 있사오니 참으로 기구한 악연이옵지요.
김희 :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난정 : 상세한 것은 희락당대감께오서 도성에 돌아오신 연후에 여쭈어 보시지요. 하오면 이만.. (방 밖으로 나간다)
김희 : 기구한 악연?! 악연이라?
S#47. 동 김안로 사랑채 마당
난정, 미소를 띄우며 방에서 나와 대문쪽으로 간다.
효혜공주, 한편에서 난정의 뒷모습을 보다가 방문쪽으로 다가선다.
효혜공주 : 서방님, 소첩이옵니다.
김희E : 들어오시오.
효혜공주 : (방 안으로 들어간다)
S#48. 동 김안로 사랑채 방 안
김희,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효혜공주, 방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효혜공주 : 서방님, 윤승후관 작은 안으서가 어인 까닭으로 아버님의 서찰 심부름을 온 것이옵니까?
김희 : 나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알듯 모를 듯한 말만 내뱉고 돌아갔소.
효혜공주 : ...?!
S#49. 경빈 처소 방 안 (낮)
경빈, 남곤과 찻소반을 놓고 침묵 속에 마주 앉아있다.
남곤, 불안한 표정으로 경빈을 힐끔 보는 얼굴 위로.
남곤E : (불안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는 겐가?
경빈 : (찻잔을 내려놓으며) 영상대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을 들어 보시었습니까?
남곤 :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요?
경빈 : 부처님께오서 세상에 나시면서 일갈하시었다는 말씀이지요! 영상대감께오선 이 말뜻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남곤 : 만물과 억조창생이 조화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어찌 독존을 입에 담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런 연유로 불씨의 교리가 천지간의 조화와 낳아준 부모도 모르는 허무맹랑한 잡설이라
사대부들로부터 배척 받는 게지요.
경빈 : 그래요? 헌데 영상대감께선 어찌 혼자 독존하시려는 겝니까?!
남곤 : (흠짓) 예에? 마마, 그 무슨 말씀이시온지?
경빈 : 근자에 영상대감께오서 세자를 폐하고 복성군을 왕세자로 추대하는데 마음이 흔들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남곤E : (얼굴이 굳는) 화천군이 내게 등을 돌리고 고자질을 하였구만!
경빈 : 대감이 누구 덕분에 영상자리에 오르시었는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 하시려는 겝니까?!
남곤 : (당혹스러운) ..마마.. 배은망덕이라니요?!
경빈 : 영상대감, 두길 보기를 하시려거든 차라리 사직을 청하세요!
남곤 : (놀라) 사, 사직이요?!
경빈 : 왜요?! 이사람이 영상대감을 파직시켜 드리기를 바라시는 겝니까?!
남곤 : (충격) ...마, 마마.. 어찌?..
경빈 : 대감의 발명따위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남곤 : (굳은 표정) ..예.. 하오면 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일어서는데)
경빈 : 영상대감! 다음번 입궐하실 때에는 사직상소를 들고 편전에 드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남곤 : (조아리고 힘없이 방문쪽으로 걸어가는데) ..
경빈 : (들으라는 듯) 암, 지금껏 부귀공명을 누릴 만큼 누렸으니 물러날 때도 되었지!
남곤 : (눈을 움찔 감았다 뜨고는) ...! (처참한 표정으로방 밖으로 나간다)
경빈 : (방문쪽을 보며) 장상궁, 들게!
금이 : (방문이 열리면 들어서는) 찾아 계시옵니까?
경빈 : 곁방에 뫼신 화천군을 드시라 해라.
금이 : 예, 마마. (방 밖으로 나간다)
S#50. 대궐 일각
남곤, 자괴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축 쳐져 걸어오고 있는 얼굴 위로.
남곤E : 명색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에 앉은 자가 일개 후궁의 호통 한마디에 벌벌 떠는 꼬락서니라니?!
내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꼬?
맞은편에서 장순손과 김극핍이 걸어오다가 남곤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멈춰 선다.
남곤 : 대감들, 어디로 발걸음을 하시는게요?
장순손 : (경계하듯) ..빈청에서 회의가 있어서요.
남곤 : 회의라니요?! 이사람도 모르는 신료들 회의가 있다는 말씀이오이까?!
김극핍 : 화천군대감께오서 주재를 하시는 자리이오니 화천군께오서 나중에 영상대감께 무슨 말씀이 있으시겠지요.
허면 늦었사오니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장순손 : 나중에 또 뵙겠사옵니다.
장순손과 김극핍, 남곤에게 조아리고 피하 듯 총총히 가버린다.
남곤 : (장순손과 김극핍의 뒷모습을 보며) ..화천군이라?!
(끄덕이며) 그래, 화천군이 나를 밀어내고 내 자리를 꿰어차려는 게구먼! 내 자리를!
남곤, 해소기침을 쿨럭이며 쓸쓸한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간다.
S#51. 경빈 처소 방 안
경빈과 심정, 은밀하게 마주 앉아있다.
경빈 : 영상대감이 사직을 청한 뒤엔 화천군께오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에 앉으시게 될 겝니다.
심정 : 신, 마마께오서 베풀어주신 광영에 신명을 다바쳐 충성하겠사옵니다.
경빈 : 화천군대감, 이번에 복성군께오서 세자를 밀어내고 새로운 왕세자로 추대된다면
화천군대감의 가문은 대대손손 광영을 누릴 것입니다!
심정 : 신을 믿으시옵소서!
경빈 : 예, 내 화천군대감을 믿지요!
S#52. 대비전 방 안
자순대비, 앞에 앉은 중종과 윤비에게 격앙 되어 말한다.
자순대비 : 주상, 경빈이 정사를 농단하는 짓거리를 언제까지 내버려두실 겝니까?
중종 : 경빈이 정사을 농단하다니요?! 어마마마, 대체 그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자순대비 : 주상, 경빈이 조정의 인사를 쥐락펴락 하고 일개 후궁주제에 안하무인격으로 대궐을 휘젓고 있습니다.
주상, 경빈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장차 세자한테 무슨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중종 : 어마마마, 말씀이 과하시옵니다. 소자는 뉘게서도 경빈을 폄훼하는 말은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
윤비 : ...
자순대비 : 허어, 이리 답답할 때가 있나? 주상의 지근에 경빈이 심어놓은 자들이 주상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겝니다.
어찌 그걸 모르시오이까?
중종 : 어마마마, 소자가 양어의에게 일러 대비전에 보약을 지어 올리라 하였사오니 심기를 편히 가지시옵소서.
자순대비 : 주상, 이 어미를 망령난 늙은이 취급을 하시는 겝니까?!
중종 : 어마마마, 소자의 뜻은..
자순대비 : 내 주상과 더 말씨름하고 싶지 않습니다. (윤비를 보며) 중전께서는 이 늙은이의 말을 믿으시겠지요?!
중전께서 경빈의 막되먹은 짓거리를 주상께 진언 드리시구려!
윤비 : ...
자순대비 : 어서요, 중전!
윤비 : 신첩은 전하께 아무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자순대비 : 뭬요?! 중전께서도 경빈의 눈치를 보시는 겝니까?!
윤비E : (무표정) ..대비마마,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경빈이 좀 더 높은 곳에 올라섰을 때 밀쳐버려야
다시는 일어설 수가 없을 겝니다!
자순대비 : 중전, 주상 앞에서 이 시어미를 정신 나간 늙은이로 만드실 셈이요?!
윤비 : 황공하옵니다.
자순대비 : 주상, 경빈에게 죄를 물어 당장 경빈을 내치도록 하세요!
중종 : 어마마마, 고정하시옵소서.
자순대비 : (씩씩대며 노려보며) 그래요, 그만 두십시다! 이만 물러들 가세요!
중종 : 어마마마..
자순대비 : (등을 돌려 앉으며) 물러들 가시래두요!
중종 : (윤비에게) 중전, 이만 물러가십시다.
윤비 : 예, 전하.
중종 : 어마마마, 편히 쉬시시옵소서.
중종과 윤비, 조아리고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간다.
자순대비 : (방문쪽을 휙-노려보며 연상을 쾅- 치는) 이 늙은이의 말을 허투루 듣다간 크게 후회를 하실 것이외다!
S#53. 동 대비전 복도
자순대비E : (방 안에서) 종사가 위태로울 수도 있음이요! 종사가!
중종과 윤비, 걱정되는 표정으로 방쪽을 돌아본다. (*봉상궁 뒤편으로 대전내관과 김상궁, 엄상궁과 오상궁이서있다)
중종 : (봉상궁에게) 봉상궁, 대비마마께오서 심기가 크게 불편하신 듯 하니 자네가 성심으로 살펴드리게.
봉상궁 : 예, 그리 하겠사옵니다.
중종 : (한숨을 내쉬며) 가십시다, 중전. (대전내관과 김상궁을 거느리고 앞장 서면)
윤비E : (방문쪽을 돌아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치는) 대비마마께오서 경빈을 도려내는데 힘을 보태주실 테니
참으로, 참으로 잘 되었음이야!
윤비, 엄상궁과 오상궁을 거느리고 중종의 뒤를 따른다.
S#54. 빈청 안
심정, 앞에 앉은 장순손과 김극핍, 이항과 판서급 이상의 신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심정 : 대감들, 맡으신 소임은 추호도 빈틈 없이 추진하시고 있으시겠지요!
김극핍 : 예, 심려 거두시옵소서! 온 조정이 똘똘 뭉쳐 은밀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이항 : 하온데 영상대감께오선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심정 : 영상대감은 우리가 탄 배에서 내리시었소!
일동 : ...?!
심정 : 지금은 복성군이냐, 세자저하냐 양자택일 밖에는 없소이다!
누구든 혼자만 살겠다고 망설이거나 두길보기를 하는 자는 용납지 않을 것이외다!
장순손 : 암요, 지당하오신 말씀이시옵니다! 큰 일을 도모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자들은 가차없이 치워버려야지요!
일동 : (결연한 얼굴에서) ...!
S#55. 윤원형 안채 큰 사랑채 방 안
난정, 윤지임 앞에 큰 절을 올리고 있다.
윤지임 : 작은애야, 네 정녕 또 떠나려는게냐?
난정 : 아버님, 모두가 중전마마의 대군아기씨 생산을 위한 일이옵니다.
윤지임 : 그래.. 내 중전마마와 가문을 위하는 너의 가상한 뜻을 잘 아니 말리지는 않겠다만..
네 집을 자주 비워 삼이와 격조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구나.
난정 : 이번 백일불공만 끝내고 돌아오면 아버님 봉양과 삼이 훈육에 소홀함이 없도록 할 것이옵니다!
윤지임 : 오냐, 그래 무탈하게 잘 다녀오도록 하거라.
난정 : 예, 아버님!
S#56. 동 윤원형 초당 방 안
난정, 보료 위에 앉아있는 윤원형에게 말한다.
난정 : 서방님, 경빈이 무슨 망동을 저지를지 모르오니 소첩이 없는 동안 두문불출하시고
조정 일에는 마음을 쓰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윤원형 : 걱정 마시구려. 내 은인자중하며 서책과 씨름하고 있으리다. 내 이제야 글눈이 트이니 글 읽는 재미가 새록새록한 게
하루라도 서책을 붙들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을 듯 하외다.
난정 : 소첩, 서방님의 그 말씀만 믿겠사옵니다.
윤원형 : 그래요, 집 걱정은 마시고 모쪼록 잘 다녀오시구려.
S#57. 동 윤원형 대문 앞 길
난정, 모린과 길상을 거느리고 계단을 내려와 가마에 오른다.
난정을 태운 가마가 어디론가 떠난다.
딱부리, 한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난정의 가마가 떠나는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간다.
S#58. 장대인 사랑채 방 안
장대인, 앞에 선 딱부리를 보고 말한다.
장대인 : 난정이가 도성을 떠났다?
딱부리 : 예, 어르신. 묘향산으로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하옵니다.
장대인 : 불공이라?!
딱부리 : 예, 교꾼들이 분명 그리 말했사옵니다.
장대인 : 애썼다, 나가 보거라.
딱부리 : 예. (방 밖으로 나간다)
장대인E : (미소가 스치는) 조만간 천지가 경동할 사단이 생길 줄도 모르고 참으로 지극정성이로구먼!
S#59. 어느 길
윤원로, 관복차림으로 사인교를 타고 가는데. 앞에서 낯익은 사헌부관헌1(*)이 다가온다.
사헌부관헌1(*) : (사인교 앞을 막으며) 잠시 멈추시지요.
윤원로 : 아, 아니 자네가 어인 일인가?
사헌부관헌1(*) : 장령어르신, 어딜 가시옵니까?
윤원로 : 퇴청하는 길일세.. 헌데 자네는 근자에 뉘를 감찰하길래 이리도 바쁜 겐가?
사헌부관헌1(*) : 장령어르신이지요.
윤원로 : 뭬, 뭬야 나를?!
사헌부관헌1(*), 손짓을 하면 사령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사헌부관헌1(*) : 사헌부로 끌고 가라!
사령들 : 예!
사령들, 윤원로를 사인교에서 거칠게 끌어내린다.
윤원로 : 이놈들! 이거 놓지 못할까?! 네놈들이 어찌 감히 나를 잡아가는 게냐?!
사헌부관헌1(*) : 뇌물을 받은 죄이옵니다!
윤원로 : 뭬, 뭬야?! 뇌, 뇌물!
사령들, 윤원로의 양팔을 잡고 거칠게 끌고 간다.
박희량, 한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S#60. 윤원형 대문 앞 길
사헌부관헌3(*)의 지휘로 사령들이 윤원형을 대문 밖으로 끌고 나온다.
임서방과 하인들이 안절부절 울상이 되어 보고 섰다.
윤원형 : 대체 사헌부에서 어찌 백두인 이 사람을 잡아가려는 게요?!
사헌부관헌3(*) : 지난번 과거에서 시관을 매수하려던 혐의요!
윤원형 : 뭬요? 시관을 매수해?!
사헌부관헌3(*) : 어서 끌고 가라!
사령들 : 예!
사령들, 윤원형을 계단 밑으로 끌고 가는데
김씨, 배천댁과 탄실을 거느리고 급하게 대문 밖으로 나온다.
김씨 : 서방님, 대체 이 무슨 일이옵니까?!
윤원형 : (김씨를 돌아보며) 부인, 걱정 마시오! 내 죄 없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실 터이니 곧 풀려날 것이오! (끌려간다)
김씨 : (걱정스럽게 보는) ...!
S#61. 중궁전 방 안
윤비, 앞에 선 엄상궁을 노한 표정으로 보며 말한다.
윤비 : 뭐라?! 어쩌고 어찌해? 사헌부에서 내 오라버니들을 잡아들였단 말이냐?
엄상궁 : (울상) 예, 마마..
경빈E : (웃음소리) 호호호-
윤비 : (어딘가를 휙-노려보며) 경빈, 네 년이 정녕 나를 흔들어대고자 함이더냐?!
S#62.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깔깔깔 웃어댄다.
경빈 : 중전, 내 기필코 중전을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애걸복걸하게 만들어 줄 것이외다! 두고 보시오, 호호호-
S#63. 성문 앞 길
모린과 길상이 배행하는 난정의 가마가 성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S#64. 동 난정의 가마 안
난정, 결연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빈의 웃음소리.
경빈E : (사방에서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호호호!
난정, 움찔하여 사방을 둘러보다가 독기서린 표정으로 변하는 얼굴 위로.
난정E : 오냐, 실컷 웃어두거라! 내 도성으로 돌아오는 날, 경빈 네 년의 목이 떨어질 것이야!
난정, 독기서린 표정으로 어딘가를 휙- 노려보는 얼굴에서 스톱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