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종근을 만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지난여름 광복절 직후 개학했다. 고3은 그 이전 개학하여 2학기가 이미 시작되어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후 추석 연휴와 시월 초 국경일이 지났다. 학교마다 학사 일정이 다르다만 우리 학교는 시월에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고3에겐 기말고사이고 고1·2는 1차 고사 첫날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국어는 여느 교과보다 더 주목받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내 나이도 연륜이랍시고 같은 교과 젊은 여교사들로부터 대우를 받는 편이다. 고사원안 편집에서나 나이스 등재에서 한 발 비켜 서 있게 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여태 몇 차례 옮겨간 근무지에서 고사원안 출제와 채점에서 흠결이 나오지 않음은 다행이다. 물론 다른 부분에서도 촉 잡힐 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렷다. 그래도 늘 시험 앞에서는 평가자나 평가 당하는 이나 부담이었다.
정기고사 첫날 오전 내리 세 기간 고사 감독을 했다. 내가 맡은 교과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도 짜여 있어 한가한 틈새가 없었다. 요즘은 고교생을 둔 학부모도 학교를 탁아소로 생각하는지 시험기간에도 점심밥을 먹여 보냄을 요청하는 모양이었다. 종전엔 시험기간 학교 급식소에서 점심 식단을 짜지 않았는데 지난해부터 점심밥을 먹여 집으로 보낸다. 덕분에 어떨 땐 나도 한 끼 해결한다.
가을날 정가고사 첫날 마지막 시간은 문학 수행평가였다. 고전시가 원문 몇 구절을 현대 감각에 맞게 풀어 기술해보라는 문제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이해가 되는 학생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결하고 있었다. 교실을 둘러온 후 난 급식소가 덜 혼잡할 때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정기고사 첫날 학년 단위 담임들끼리 점심자리가 엮인지라 담임 아닌 교사들은 어디 끼일 자리가 없었다.
우리 학교 급식소 식단은 매 끼마다 성장기 십대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식단이라 자부한다. 한 달 식대가 학부모 스쿨뱅킹 계좌로 얼마씩 빠져 나가지는지 몰라도 아주 좋은 영양식이지 싶다. 내 기준으로는 육류 반찬이 넘친다고 본다. 이날 차림은 검정콩밥에 두부북어국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닭강정과 소스는 아예 집질 않았다. 햄에 섞어 볶은 감자도 햄은 지우고 칸을 채웠다.
점심 식후 적막이 감도는 교무실에 우두커니 있는 것도 문제 교사다. 나는 아침에 쓰고 온 우산을 챙겨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마침 행정실의 학교 살림꾼 주사가 나를 보더니만 “오늘은 어디 좋은 데 나가십니까?”라고 물어왔다. 나는 “바깥엔 비가 오는데 뭘 ….”이라고 응수했다. 일본 열도로 따라 올라가는 가을 태풍의 간접 영향이 아니었다면 나설 행선지가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접한 일기예보로 서운하진 않았다만 날씨가 궂지 않았다면 마음에 둔 일정이 있었다. 나는 백화점 쇼핑이나 영화관에 들려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다. 이맘때 갯가나 내륙의 계절감 물씬한 5일장 탐방을 나서고 싶었다. 내가 찾아가기로 꼽은 5일장은 안민터널 지나 진해 경화장이나 대산 들녘 낙동강 건너 밀양 수산장이었다. 점심 식후 비가 부슬부슬 오고 바람이 불어 난감했다.
나는 교문을 빠져나와 무작정 걸었다. 비바람이 세차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로수 은행잎은 물들지 않아도 은행열매는 거의 다 떨어져가는 즈음이었다. 평소 출퇴근 동선과 달리 사림동 주택가를 걸어 사격장과 창원의집 사이를 지났다. 그때 골목을 지나다 두어 차례 들린 국수집 간판이 보였다. ‘안집국수’였다. 내 보기엔 차도와 떨어진 반지하 골목 안집이라고 정직하게 내건 간판이었다.
국수집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국수는 사양하고 부추전으로 곡차를 시켰다. 내가 혼자 잔을 비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파란 생탁병엔 왕종근이 생긋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돌아가신 할머니는 경주 박씨로 친정 외가가 개성 왕씨였다. 선친의 진외가가 왕종근은 집안이다. 그대는 고향의 벽화산성 선산 벌초를 내가 조카와 하는 줄 아는가? 1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