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공간·자기
불교의 ‘선禪’에서는,
‘즉금·당처·자기卽今·當處·自己’
즉,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살아간다’
는 것을 설하고 있다.
맹자에,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있다.
“천시(天時, 타이밍)는 지리(地利, 공간적 우세)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입지 조건도 ‘인화人和’에는 미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의미 정도의 맹자의 말이다.
시간적인 운도, 공간적인 조건의 혜택도
다 필요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인간들의 ‘인화人和’가 없으면,
조직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돈오요문』에, 원 율사가 찾아와,
대주 스님께 물었다.
“화상은, 도道의 수행에 있어,
어떤 특별한 것을 하십니까?”
대주 스님이 답한다. “그럼, 하고 있지.”
“어떤 것을 하고 계십니까?”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자는데.”
“그런 것은,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스승이 하고 계시는 것은, 그것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 다른데”
“어디가 다릅니까?”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에, 대개 밥을
먹지 않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고,
잘 때도 진짜 안 자고,
여러 가지 생각만 학 있지,
그래서,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원 율사는 입이 막힌다.
이런 글에는 꼭? 힐문이 나온다.
“그러면, 낮에 근무시간에 졸리면,
그냥 자면 되겠네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어젯밤에 푹 잤으면, 근무시간에 졸릴 이유가 없다.
우리들이, 지금 해야 할 것을 분명히 해두고 있으면,
배가 고팠을 때,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잘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선禪’이다.
선은 기이한 특별한 일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禪은 자기에게 맞는 禪이 있는 것이다.
대주 화상이 말하고 있는 것, 정말 맞지 않은가!
정말 쉬우면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것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불의 말씀 소개한다.
“과거를 좇지 말고,
미래를 원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현재의 사항을
현재에 있어 잘 관찰하고
초조하지 않고 동요하는 일 없이
잘 판별하여 실천해야 한다.
단지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것인가.”
『中部經典』 131
또 하나 소환한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s는,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라고 말하고 있다.
라틴어의 ‘carpe’는, 동사 ‘carpo’의 명령형이다.
이 동사는, ‘꽃이나 과실을 딴다’의 의미라고 한다.
꽃에도 과실에도 최적의 때가 있다.
그리고 날을 찾기에도 최적의 때가 있는 것이다.
“그 때를 놓치지 마!”라고,
호라티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맹자나 대주 스님이나 석가모니불이나
다 통하는 점이 있다.
천운(시간)과 지운(공간)이 아무리 좋아도,
그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화합이다.
시간도 공간도. 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내 앞의 있는 사람은
다 관음보살의 화현이다.
그것을 만드는 자, 누구일까?
바로 자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