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에서 재계 인사를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서로 안부를 묻기도 바빴는데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현재의 거물급 재계 CEO 한 사람을 나와의 인연으로 만났다는 것. 내가 기억을 못하자, 그는 "그때 그에게 '머리가 비상하여 간교할 수도 있으나 그 간교함으로 큰 뜻을 이룰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그때서야 나는 어렴풋이 그때 일이 떠올랐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중소기업 사업가였다. 은행대출도 여의치 않아 자금부족으로 부도와 파산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중 나를 만난 자리에서 그가 사업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때 내가 "언젠가 간웅이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겁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 맞서 사업을 하는 그에게 '간웅'이라니. 함께 자리했던 재계 인사는 깜짝 놀라며 "이 사람은 참 정직하고 성실하다고 소문난 사람입니다. 간웅이라니요?"라고 반문했다. 그의 말에 웃으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웅이 반드시 나쁘다는 법은 없지요. 남자라면 간웅이라도 영웅이 되어보는 게 소원이 아닙니까?"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IMF가 왔을 때 그는 슬기롭게 이겨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일어서기 시작했다. 틈새상품으로 시장을 석권했고, 인수 합병을 거듭하여 계열사를 늘리고 재계의 실력자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하게 될 줄은 아무도 생각 못했으리라. 그의 성공 원인은 빠른 두뇌회전, 순발력 넘치는 판단, 성공적인 조직 운영에 있었다. 그는 조조와 비견되는 재계의 간웅이었다.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그가 아직도 나의 '간웅'이란 말을 깊이 담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경제든 정치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간웅은 비난의 대상이다. 간사한 꾀를 내는 영웅이 간웅이라고 말하지만, 위기 대처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간사한 꾀가 바로 지혜이며, 능력이요 실력이다. 영웅이든 간웅이든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인 것이다.
간웅이 비정상적인 사도(邪道)를 걷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평가다. 현대판 간웅은 위기상황에서 결단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사람을 말한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남다른 지혜를 발휘했을 뿐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간웅의 대표 격인 조조는 어떠한가. 허수아비 어린 황제를 내세우고 정권을 잡은 간웅이라던 평가가, 지금은 기회를 잘 잡고 뛰어난 용병술로 적재적소의 인재를 배치하여 최고의 능률을 올린 위대한 CEO라는 것이 그에 대한 재평가다.
한마디로 기회와 조직관리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후세의 평가를 예견해서인지 '간웅'이라고 하는 말을 상당히 즐겼다. 오히려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간웅이 되려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야당에는 신청자가 넘쳐나고, 여당은 인재난으로 고민에 빠졌다. 출마, 불출마를 따지는 정치적 난세에 저마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명함을 내밀고 있다. 양명(揚名)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 인가. 그러나 물갈이에 내분까지 겹쳐 누가 진정 영웅인지 간웅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기다.
김정일 사망 후 단절된 남북관계,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기다. 어느 때보다도 지혜롭고 강한 리더를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을 위한 지혜로운 간웅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영암 월출산의 큰 바위 얼굴 같은 국민을 위한 인물이 나올 것인지 자못 기대가 된다.
첫댓글 듣기 나쁜말이 항상 자기 자신에게는 나쁜것은 아니니
간웅이라건 어찌 되었건 나중의 승자만이 기억 되는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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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문정우님 항상 잊지 않고 댓글 감사 합니다...^^
간웅이 아니고서야 이나라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습니까
간웅중에 간웅이 나와 이 어려운 난국을 시원하게 플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님 댓글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