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추자도 외 중문 서귀포 제주시 문학 탐방
일시:2018년 4월 9일 월요일~13일 금요일
탐빙지:제주시, 추자도, 중문, 서귀포 등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제주시, 추자도
*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가는 길
어제 저녁 비행기 아시아나 항공으로 제주에 왔다. 하루를 유숙하고 추자도 가는 배를 승선하기 위해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아침 햇살이 곱다.
* 제주시 김만덕 객주
배를 승선하러가는 길에 도로변에서 보았다. 김만덕은 시대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 기업인이다. 돈을 벌어 전재산을 기부하여 제주도민을 살려냈다. 정조시대에 여성 최고의 벼슬에 올라 금강산을 유람하기도 했다. 김만덕(1739~1812)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만덕이 살았던 당시 조선조 정조시대에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출신지인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인물이었다. 특히 서울 장안에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던 인기 있는 유명 인사였다. 만덕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12살에 부모님이 모두 사망하여 기생의 몸종으로 의탁하였고, 다시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가무를 익혀 제주도에서 한때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 살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에다 전직 기생이었던 독신녀를, 여성에게 엄중했던 유학을 익힌 사대부들이 앞다투어 칭송하며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만덕이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었고, 그 부를 계속되는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을 살려내는데 쾌척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시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아사의 위기에 처하자, 만덕은 유통업으로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하여 제주민들을 살려내었다. 당시 만덕의 인기는 남성들만 활개치는 세상에서 여자가 홀로 많은 재산을 형성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것과, 어떤 남성보다 많은 양의 곡식(쌀 500섬)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쾌척한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뛰어난 기업가이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자선사업가로도 오늘 우리가 충분히 만덕을 기릴만하다. 그러나 만덕을 오늘날 다시 생각하는 것은 엄중한 유교 규범이 여성을 옥죄고 있던 시기에 시대와 불화하지 않고 당시 여성에게 지워진 한계를 거침없이 뛰어 넘었던 용기를 만덕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기생으로 성공했으나 가족의 명성을 더럽힌다는 질책 때문에 기적(妓籍)에서 빠져 나왔고,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기근에 처한 가족을 구함으로써 가족과 화해하였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녀로 유교 사회에서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활발해진 해상을 이용한 유통업에 눈을떠 여성기업인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던 창의적인 개척자였다.
만덕은 자신이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임금(정조)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고, 명예직이었으나 ‘의녀반수’라는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에 이르러 주변부에서부터 중심부로 우뚝 서게 되었다. 특히 정조가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소원을 물었을 때 만덕은 주저 없이 금강산 구경이라고 대답하였다. 당시 여성은 육지에 갈 수 없다는 법을 무시하면서, 집안에 갇혀야 했던 여성의 테두리를 단숨에 뛰어넘으면서 여성에게는 부인되었던 이동의 자유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또한 금강산 구경은 당시 보통 여성으로서는 꿈꿀 수조차 없었던 성공한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었다.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었고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그리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관공서가 만덕에게 편의를 제공하도록 지시하였다. 만덕이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여성으로서 놀라운 일을 행하였고 또 금강산 가는 길에 몸소 보여주고 새로운 것을 개척해나가는 용기 있는 여성 만덕을 칭송하였다. 오늘의 김만덕 객주는 아주 고요하다. 사람도 없고, 술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왔다.
* 제주시 일본 진주 철수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들어왔다가 철수했다는 내용의 표지석이 도로변에 조그맣게 세워져 있다. 씁쓸한 흔적이다.
*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이곳에서 추자도행 배를 승선하기 위해 왔다. 미리 집에서 전화로 예약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아침에 1회만 추자도에 들어가는 배다. 신분증을 제시라고 우리 부부의 배표를 구입했다.
* 제주항에서 상추자항 가는 배 승선
상추자항으로 가는 퀸스타 2호 배에 승선했다. 아주 잔잔한 바다다. 1층의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너무 복잡하여 2층 선실로 올라가서 여유있게 앉았다. 배의 내부가 매우 깨끗하고 좋다.
* 상추자항 도착
배가 상추자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항구가 아름답다. 이제 우리 부부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탐방할 것이다. 추자도은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금바리를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며,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많은 낚시인들이 찾는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 부속섬들의 대부분은 동남쪽해안이 절벽을 이루는 반면, 서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에 속하는데도 풍속은 전라도와 유사하다.
추자 10경이 있다.
1) 우두일출(牛頭日出) - 우두도(속칭, 소머리섬)의 초여름 일출 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2) 직구낙조(直龜落照) - 상추자의 서북방 최단에 거북 모양을 한 직구도가 있는데 저녁 노을이 매우 아름답다.
3) 신데어유(신데漁遊) - 하추자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의 신데에는 천혜의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4) 수덕낙안(水德落雁) - 하추자의 남쪽 끝에는 사자 형상의 수덕도가 위풍당당하게 떠 있는데, 각종 물새가 사자머리에 해당하는 섬 꼭대기에 앉아있다가 먹이를 쫓아 바다로 쏜살같이 하강하는 광경을 말한다.
5) 석두청산(石頭菁山) - 하추자도에 있는 청도라는 섬이 있는데, 마치 사람의 머리 같은 산꼭대기의 암반이 푸른빛을 띤다.
6) 장작평사(長作平沙) - 신양 포구의 해변을 가리키는데, 폭 20여m에 길이 300m의 자갈 해변이다.
7) 망도수향(望島守鄕) - 추자군도 섬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 망도(속칭 보름섬)이다.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듯 망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자군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8) 횡간추범(橫干追帆) - 횡간도는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떠가는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단다.
9) 추포어화(秋浦漁火) -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으면서도 멸치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이다. 추자군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과 잘 어우러진다.
10) 곽게창파(곽게蒼波) - 추자도와 제주 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탈섬의 또다른 이름이 "곽게" 이다. 과거 유배객들이 제주도로 들어올 때에 이 섬 앞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는 데에서 섬 이름이 유래되었다. 곽게섬 부근의 푸른 물결은 세상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른다. 그래서인지 더욱 푸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배를 타고 내린 곳은 상추자도다. 상추자도가 더 크고 명소가 더 많다. 항구의 바로 앞에 숙소를 정했다. 그리고 중식을 했다.
* 상추자도 추자초등학교
상추자도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상추자도 초등학교다. 섬의 학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좋은 건물이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논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남자 아이가 아주 잘 찍어주었다. 나는 전직교사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곳이다.
* 추자도 제주 올레 18-1
추자초동학교에서 최영장군 사당으로 가기 위해 오르는 길목에 '제주 올레 18-1'이라는 길안내 표지판이 담벽에 부착되어 잇다. 추자도의 제주 올레 18-1코스는 상추자와 하추자의 명소를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추자도의 여행길이다. 제주의 대표 브랜드인 올레길 중 18-1은 상추자도 하추자도를 도는 17.7㎞길이의 코스다. 추자도의 대표적인 명소를 연결한 길이다. 완전히 걸음으로 여행하는 시간은 6~8시간이 소요된다. 상추자도의 대서리마을을 시작으로 최영장군사당, 봉글레산, 나바론하늘길, 추자교를 건너 하추자도의 묵리고개, 신양항과 모진이해수욕장, 예초리 기정 등의 이름난 명소를 걷는 코스다. 우리 부부는 지금 제주 올레 18-1길의 초입에서부터 걸어서 추자도의 알찬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 상추자도 최영장군 사당
상추자 초등학교에서 조금 올라가니 최영장군 사당이 있다. 작은 규모로 아담하게 지어졌다. 돌계단을 올라 사당에 갔다. 제주 사람들이 최영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제주시 추자면 상추자도에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다. 고려시대, 묵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로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피해 추자도에 머물렀다. 최영 장군이 추자도 사람들에게 낚시 만드는 법과 낚시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공덕을 기리며 지었다. 고려 공민왕 때의 일이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목사를 죽이는 등의 커다란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에 조정에서는 최영에게 전함 300여 척과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에 원정해서 목호들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잠시 추자도에 대피했는데, 그때 최영이 주민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이 지방 사람들이 세운 이 사당에서는 매년 백중날과 음력 섣달그믐에 제사를 지내며 풍어와 풍농을 빈다. 이곳에서 보는 추자항과 바다 전망이 근사하다. 먼 추자도에서 최영장군을 만나는 소중한 탐방지였다.
* 상추자도 봉글레산 올레길
야트막한 봉글레산의 올레길을 올라간다. 웬일인지 사람이 없다. 쓸쓸한 정도다. 우리 부부는 바다의 멋진 풍경과 산의 고운 풍경을 보며 걸어올랐다. 산정에는 정자가 있다. 돌탑도 있다. 지킴이 한 남자가 작은 초소에 있다. 높아서 상추자도 풍경이 훤히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 상추자도 봉글레산에서 본 양식장
봉글레산을 돌아서 올라갈 때에 곳곳에서 양식장을 많이 보았다. 아온한 바닷가에 설치한 양식장들이 섬의 풍요를 노래한다.
* 상추자도 봉글레산에서 바라본 나바론 절벽산과 용듬벙
봉글레산 정상에서 하산하여 나바론 절벽산으로 가는 풍경을 조망했다. 높은 절벽산 입구에 용듬벙이 있고, 그 앞에는 양식장이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비경이다.
* 상추자도 봉글레산 정상
봉글레산은 상추자도 대서리 마을 최북단에 있는 높이 85.5m의 야트막한 산이다. 그래도 섬 가운 데 우뚝 솟아 있어 큰 비경을 자아낸다. 빙글빙글 산허리를 돌고돌아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니 추자군도가 산을 감싸고 있다. 방사탑인 돌탑과 쉼터인 정자가 있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휴식하며 추자도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초소도 있고, 바다지킴이 아저씨도 있다. 우리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망원경으로 바다만 바라다본다. 아마도 추자도의 안전을 위해 바다를 지켜보는 경비원인 듯하다. 주변에는 바다가 전개되어 아름다운 산정이다. 봉글레산은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 상추자도 봉글레산 하산길
상추자도의봉글레산은 참으로 여러 가지 비경을 선사한다. 하산하면서는 상추자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주로 항구 주변에 발달한 섬의 아담한 건물과 주택들이 바다와 함께 매우 곱다. 햇살이 분사하여 선명한 조명으로 더욱 고운 빛을 발한다.
* 상추자도 나바론 절벽 가는 길
봉글레산에서 하산하여 마을길을 지나 이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분다. 도움이 아저씨가 있어 이렇게 바람부는 날 나바란 하늘길 올라갈 수 있냐고 하였더니 어렵겠지만 가 보란다. 오늘이 바람이 무척 세다고 한다. 다른 날은 이렇게 세게 불지 않았다고 한다. 그 분의 말에 용기를 얻어 오르기도 마음 먹고 입구로 향했다. 안내간판도 있고, 바다가 곁으로 보이며 아름다운 길이다.
* 상추자도 용듬벙
나바론 하늘길에 오르려고 산으로 잔입하여 첫번째로 산언덕을 오르니 바로 눈앞에 용듬벙이 전개된다. 작은 섬으로 나바론 하늘길 오르는 산길을 가르쳐주는 듯 정겹다. 용듬벙은 나바론 절벽을 바조망하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아찔한 절벽산이 영화 나바론 요새가 떠오르기에 충분하다. 용둠벙 입구에서 나바론 하늘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용듬벙에서 서 잇는 것이아니라 절벽산 초입 산언덕에서 용듬벙을 조망하고 있다. 그 풍경 또한 대단한 비경이다.
* 상추자도 나바론 절벽 하늘길
용듬벙을 바라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입에서부터 계단길이 계속 이어진다. 절벽의 꼭대기로 오르는 길이기 때문에 가파르다가, 완만하다가를 계속 반복한다. 우리 부부는 계단을 오르다기 잠시 멈추어 간식으로 요기하며, 휴식하며 활력을 찾곤 하였다. 간간이 숲 사이로 상추자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비경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 길은 제주 올레길 18-1에 더하여 추자면에서 직접 놓은 길이다. 추자면은 상추자 봉골레산 일대 '봉골레 노을길’과 ‘나바론 하늘길’, 하추자 돈대산 정상을 관통하는 ‘돈대산 해맞이길’과 ‘추석산 소원길’을 연결 개통해 총연장 9.3㎞의 추자도 도보여행코스를 개발했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그 중의 하나로 ‘나바론 하늘길’이다. 상추자도의 남서편 해안의 거대한 해안 절벽 길이다. 섬을 찾은 외지의 낚시꾼들이 용듬벙에서 낚시를 하며 절벽산을 바라보고는 오래 전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나바론의 요새’에서 나오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고 하여 ‘나바론 절벽’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처럼 험악하여서 사람들이 나바론 절벽으로 부르다가 그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나바론 절벽 하늘길은 그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깎아지른 절벽 위를 걷는 코스로 용둠벙에서 독산, 큰산을 지나 등대전망대까지 산능선의 바다쪽 경사면으로 2.1㎞ 구간이다. 나바론 하늘길 탐방로는 절벽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숲길로 멋진 자연의 신비를 선사한다. 숲은 그늘을 제공하며 쉼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가도가도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만 점점 거세게 몰아친다. 산정으로 갈 수록 더욱 세찬 바람이 몸을 흔든다. 두려움도 엄습한다. 우리 부부는 용기를 쥐고 계속 올라갔다. 겨우 정상 직전의 계단에서 반대로 하산하는 일행을 만났다. 참 반가웠다. 바람은 가파른 계단길을 걸어 오르는 우리를 몹시도 거칠게 흔들어댄다.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평평한 산정에 다다랐다. 정상에는 전망대라고 새겨져 있지는 않지만 바위도 있고 약간 넓은 공간이 있다. 추자도의 전경을 선사하기도 하고, 나바론 절벽을 시원하게 조망하도록 허락한다. 모든 것이 다 아슬하여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절경이다.
* 상추자도 나바론 절벽
나바론 하늘길을 한참 오르고 나니 하늘 향해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이다. 거의 수직으로 치솟은 우람한 절벽을 올려다보는 눈이 아찔하다. 줄을 쳐놓아 안전을 돕는다. 왜 나바론 하늘길인지 알게 하는 순간이다.
* 상추자도 나바론 절벽 하산길
나바론 하늘길을 타고 올라 정상에서 잠시 쉬고 절벽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 절벽을 타고 내리는 현기증 나는 각도의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남편은 먼저 내려가는데 도중에 나를 돌아보며 다시 올라가라고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침없는 바람이 몸을 사정없이 흔들어 바위절벽 또는 바다로 우리를 후려쳐서 내동댕이 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칫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남편은 자신보다 나를 더 염려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나는 지나온 가파른 계단을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았다. 아, 그건 다시는 못 가는 아찔한 길이다. 나는 남편에게 못 간다고 그냥 내려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서 엉덩이로 계단을 더듬어 조심조심 내려갔다. 계단길은 가도가도 계속 수직에 가깝도록 가파르게, 무섭게, 현기증 나게, 야속하게 이어진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의 힘든 고통을 이기고, 사람이 아닌 신의 능력을 빌어 무사히 내려가길 기도하며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절벽길 끝에 다다랐다. 휴, 한숨을 쉬며 돌아보니 그건 오늘같이 심한 바람이 계단을 후려치는 날에는 사람이 아닌 바람만이 내려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람만 아니면 그런대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제서야 왜 오늘 이곳에 등산하는 사람이 없는지 깨달았다. 남편은 자기도 무섭고 힘들었지만, 내가 더 걱정이었는데 잘 내려와서 흐뭇한 표정이다. 그리 나를 아주 대견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둘이어서 가능한 모험을 한 것이다. 누군가 추자도가 어떤 곳이더냐고 물으면 나는 말할 것이다. '거기 추자도 나바론 하늘길을 올라보라고, 그러면 답이 나온다고...' 나바론 하늘길은 정말 추자도의 전신처럼 비경과 보람과 행복을 선사하는 명소다. 우리 부부는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늘 우리는 무식해서 용감했던 거라고...' 그리고는 한바탕 웃었다. 먼 훗날 두고두고 전설처럼 이야기 하며 웃을 거라고 밤을 하얗게 지우며 애기했다. 그러나 통쾌한 이 행복은 우리를 매우 젊게 하고, 자신감을 주고, 자부심을 키워주고 여행에 대한 도전과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이제는 비교적 완만한 내리락 낮은 능선길이다. 산모롱이길에서 해군기지도 만났다. 멀리 추자도 등대도 보았다. 등대산을 거쳐 추자대교까지 갈 수도 있고, 추자처사각을 지나 영흥리 마을로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는 나바론 하늘길을 통과하고 나니 그 어떤 길도 겁나지 않아 끝점까지 가기로 했다. 여행은 늘 실망시키지 않고 나에게 큰 가르침을 부여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큰 용기와 담대함을 선물로 받은 뜻깊은 여정이다. 보잊 않는 신에게 감사하고, 나를 지켜주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이런 여행을 허락하는 나의 가족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 상추자 추자등대
산모롱이 하산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 등대가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대 박물관이 있다. 여러 가지 등대에 대한 역사물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서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도 조망하였다. 우리는 저 추자대교를 넘어 이제 곧 하추자도롤 갈 것이다.
* 상추자와 하추자를 잇는 추자교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교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는 국내서 처음 놓여진 다리다. 1972년 완공된 다리는 이후 사고로 무너졌고 지금의 다리는 95년 새로 조성됐다. 추자도의 비경과 함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우리가 선 곳은 상추자도다. 이제 여기서 하산하여 저 다리를 버스로 건너 하추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추자등대에서 본 추자교
* 추자등대에서 하산길
나바론 하늘길을 완주하고, 큰 산 작은 산을 모두 돌고돌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간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잘 닦여져 있다. 해변도로에 나가서 하추자도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 상추자도 영흥리에서 하추자도 가는 버스 승차
영흥리 마을에서 하추자도 가는 버스를 승차햇다. 기사는 어떻게 이곳이 정류장인 줄 알았냐고 묻는다. 우리는 아무 곳이나 세워주는 줄 알았다고 하니 아니란다. 사실은 지금은 여기가 정류장이 아니어서 세워줄 수 없는 곳이지만 한 달 뒤에는 이곳이 정류장이 될 예정이어서 우리가 그걸 알고 서 있던 것으로 생각하여 정차한 것이란다. 그 말을 들으며 먼 바다 가운데 섬인데도 교통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정차하여 우리 부부를 태워준 운전기사에게 고마웠다. 버스는 추자대교를 넘어 하추자도로 달려간다.
* 하추자도 모진이 몽돌해수욕장
버스에서 하차하여 모진이 몽돌해수욕장에 왔다. 아담하고 청청한 바닷물이 비경이다. 해변에는 모래가 아니라 몽돌이 가득 뒹군다. 석양이 드리워지는 바다가 큰 낭만을 선사한다. 늦어지면 안 되어서 서둘러 다음 여정 코스로 이동했다.
* 하추자도 황경한의 묘
모진이 몽돌해수욕장을 떠나 언덕진 오르막길을 올라 산길을 돌아가니 황경한의 묘가 있다. 섬의 동쪽 끝 신대산 산비탈에 있다. 가이드 없이 우리 부부는 걸어서 찾아 탐방하며 추자도에 대하여 완전히 배우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고 가는 것이다. 어럽고 힘든 여정이지만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들이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우리 부부는 이곳에 열심히 걸어왔다. 어두워지는 저녁시간으로 접어 들어서다. 장식이 없는 수수한 묘역이다. 황경한은 다산 정약용의 조카 정난주의 아들이다. 정난주는 천주교 박해 때 제주로 유배 왔다. 그 당시 추자도에 와서 이곳 예초리 마을 해변 바위에 두 살 된 아들의 이름과 사연을 적어 놓고 떠났다. 유배지에서 키우는 것보다 여기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섬의 주민 중오씨 성을 가진 이가 이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잘 키웠다. 그로인해 추자도에선 황씨와 오씨는 한 집안이라 여겨 결혼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황경한 묘에서 올라와 둔덕에 서니 저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 물생이 끝 갯바위에 눈물 형상의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그 이름이 눈물의 십자가다. 저녁시간이라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아련하게 그 형상이 보인다. 황경한 묘와 눈물의 십자가는 천주교 111번째 성지다. 내 고향 오천에도 갈매못 천주교 성지가 있다. 그외 여러 곳 문학탐방을 하며 보아온 천주교 성지다. 오늘 이곳 먼 제주도 하추자도에서 천주교 성지를 만나니 또한 보람이고 뜻깊은 순간이다. 규모는 작지만 더 많이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기를 빌며 떠나왔다.
* 하추자도 황경한 눈물의 십자가
눈물의 십자가는 황경한 묘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있다. 설명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는 2살 된 어린 아들 황경한을 저곳 바위에 두고 간 것이다. 핍박을 받으며 사는 것보다 저 순수한 바다를 보며 살라고 그리한 것이리라. 2살 어린 아기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미를 찾으며 울었을 그날을 기념하며 눈물의 십자가를 세워 후세에 그날의 아픔을 남기고 있다. 늦은 시간으로 가까이 가 보진 못 하고 조망만 하고 떠나왔다.
* 하추자도 예초리 해변 마을
눈물의 십자가가 있는 바다를 떠나 둔덕을 걸어서 올라간다. 저 멀리 바다 가운데 우리가 넘어온 나바론 하늘길 절벽산도 보이고, 봉글레산도 보이고, 추자도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마을 골목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왔다. 이제 추자도에서의 하루 여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간다. 시간이 좀 여유있어서 해변을 둘러보았다. 바다는 언제가 멋진 낭만을 선사한다. 해변 마을 예초리는 아담하고 예쁘다. 여행은 갑자기 예상 밖의 순순한 풍경을 공으로 선사하곤 한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일정에는 없었던 예초리 해변 마을에서 평안과 행복을 얻고 간다.
* 하추자 예초리에서 상추자 가는 버스
하추자도에서 버스를 타고 상추자도로 간다. 상추자도가 훨씬 크고 모든 시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의 숙소도 상추자도에 있다. 하추자도의 끝에서 상추자도의 끝으로 이동하며 추자도의 모두를 보며 가는 셈이다. 바다와 해변 모두 비경이다. 건물들도 상당히 잘 지어져 있다. 모든 정경들이 육지에서 먼 섬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워질 무렵 목적지인 상추자도 항구 곁에 도착했다.
* 상추자도 석식 해물뚝배기
저녁식사로 해물뚝배기를 먹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정말 아낌없이 풍성하게 쳐려준다. 넉넉한 인심의 해물요리가 양도 많고, 맛도 좋고, 참으로 맛있는 석식만찬이다. 두고두고 오늘의 식탁이 그리워질 것 같다. 고맙고 감사하여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새겨진다. 밤길을 걸어 식당에서 항구 가까이에 있는 숙소로 왔다. 그런데 낮에는 손님이 없었는데 갑자기 방마다 불이 켜 있고 사람들이 바깥 계단에 많이 나와 있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니, 오늘 4시에 제주로 출항하는 배가 거센 풍랑으로 떠나지 않앗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나바론 하늘길에서 거센 해풍으로 힘든 순간을 참 많이도 겪으며 간신히 넘어왔는데, 이제서야 오늘 추자도의 바람이 얼마나 거세었는지 알게 되었다. 배가 출항하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우리 부부는 장엄하게도, 용감하게도, 그 가파르고 험란한 나바론 하늘길 바위 절벽산 계단을 오르며, 내리며 완주한 것이다. 참으로 장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의 이 기쁨과 보람과 흐뭇함은 두고두고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우리 부부는 내일 추자도를 떠나기로 했다. 신양항에서 10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기고 했다. 그 연유는 오늘 배가 출항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가 떠날 예정인 목요일에 겪으면 안 되어서다. 일요일에 둘째손자 백일잔치를 해야 하는데 만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추자도에서 풍랑으로 못 간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어서다. 다행히도 오늘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의 명소를 모두 둘어보아서 나가도 된다. 오늘과 내일은 편안한 휴식으로 추자도에 머물려고 했던 것인데 제주에 나가서 목요일까지 2일 간 남은 일정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우리 부부는 속삭였다. 오늘 우리는 정말 큰 일을 했다고. 지금까지 국내여행 중에서 가장 전설로 남을 여정을 성공했다고. 나바론 절벽산 하늘길, 참 대단하더라고, 누군가 추자도가 어떤 곳이냐 물으면 거기 나바론 하늘길을 가보라고 할 거라고. 그렇게 거센 바람이 불면 가지 말아야 했던 코스인데 우리는 용기를 쥐고 넘어노라고. 어찌보면 몰라서, 무식이 용감했던 거라고. 다시 또 온다면 그렇게 바람이 불면 가지 않을 거라고. 우리의 나이가 노년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어떤 힘이 있어 무리없이 무사히 잘 넘었는지. 서로 칭찬하며 밤가는 줄 모르고 속삭였다. 남편은 내가 바람에 넘어질까 각정을 많이 했는데 잘 견뎌주었다고 고마웠단다. 나는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힘이 떨어지지 않고 잘 넘어주어서 고맙다고. 서로를 칭찬하며, 격려하며, 그리고 그 어떤 여행도 갈 수 있다고. 오늘보다 더 어려운 코스가 어디 있겠느냐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국내여행 앞으로 더 많이 하자고 붉은 마음으로 약속하며 아주 평화로운 숙면을 취했다.
* 상추자항 바다가 보이는 숙소
아침 일찍 일어나니 추자도가 창밖으로 상추자항과 바다 풍경이 곱게 전개된다. 흐리지만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다. 원래는 추자도에서만 4박 5일 머무르려는 계획으로 왔는데 어제 심한 풍랑으로 출항하지 못했다는 배를 보며, 우리는 오늘 추자도를 떠나기로 했다. 10시 신양항에서 제주 가는 배를 승선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서둘렀다. 아침은 어제 미리 준비해둔 간식으로 간단히 먹고 신양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숙소 바로 앞에서 탄다. 우리와 함께 유숙한 사람들도 많이 줄 서 있다. 잠시나마 정든 숙소를 떠나려니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어서 숙소 주변과 항구주변도 돌아보았다.
* 상추자항 주변 풍경
추자항 여객선 대합실이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 항구 주변에는 추자도에 대한 설명과 지도 등 여행객을 위한 안내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다. 추자도라는 영문 글자도 곱게 나열하여 배치해 두어 아름다운 정경이다. 아담한 상추자항은 이방인에게 눈부신 행복을 선사하며 이 아침 이별을 고하고 있다.
* 상추자도에서 하추자도 신양항 가는 버스
평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는 그곳 명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며 버스나 기차 , 배 또는 비행기에서 보는 곳곳의 풍경도 큰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이동 중에 잠을 자지 않고 바깥 풍경을 점으로 이어 눈과 가슴과 두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진기에 담아온다. 그 작업이 힘들고 꾸준한 인내를 요구하지만 나는 그것도 또한 여정의 한 단락으로 여기며 기쁘게 소화한다. 지금도 나는 버스로 이동하며 추자도의 곳곳 정경을 담는다. 아침의 추자도에서는 유아의 등원버스 차량이 인상적이다. 먼 섬에서도 육지와 다름없이 유아교육차량이 운행되고 있고, 아주 예쁘고 세련된 학보모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어제도 이 코스를 하추자도에서 오며 보았는데 지금도 다시 추자도의 멋진 비경을 보며 신양항으로 간다.
* 하추자도 신양항
제주항으로 가는 10시 배를 승선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추자도의 신양항 주변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둔대산 우람한 산과 바다 그리고 아담한 어촌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아낸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곳곳을 둘러보며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
*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제주항 가는 배 승선
올 때와는 다른 회사의 배다. 이번에는 한일고속 페리호다. 오늘은 바다 잔잔하여 상추자항에서도 오후에 배가 출항한단다. 날씨가 허락하여 추자도 섬 여행을 잘 하고 제주시로 떠난다.
* 제주 연안 여객터미널 도착
하추자도 신양항을 출항한 배가 1시간 정동 시간을 소요하며 잘 달려 제주항에 도착하였다. 제주항은 매우 아름답다. 주변에 여행안내에 대한 시설물을 잘 설치해 두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 제주 시티 투어
마침 제주항에서 제주시티 투어 버스 차량이 정차하여 우리는 그 버스를 승차하여 제주 시티 투어에 참여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승차했다. 곳곳에서 버스가 멈출 때 내려서 보고 다음 버스로 승차하기도 하고, 그냥 버스 안에서 눈으로 관람하기도 한다. 안내원의 방송도 있고, 의자에 부착된 자동 안내방송을 들으며, 안내팜플렛을 보며 제주를 탐방했다. 동문시장을 시작으로 제주시내와 바닷가 해변로 등을 돌며 제주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 중문 주상절리 입구 공원
제주에서 중문으로 왔다. 이곳에 있는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서다. 전에 중문에 왔을 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가지 못하고 1100고지를 횡단하는 도로를 향해 한라산으로 바로 향했던 적이 있다. 그날의 아쉬움을 늘 간직했는데 오늘은 쾌청한 날씨여서 주상절리를 제대로 볼 수 있어 좋다. 입구에는 잘 조성한 공원이 있다. 범선 모형도 있고, 예쁜 고래 모형도 있고, 야자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며 이곳이 제주도임을 읊고 있다.
*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
제주시에서 한라산 횡단도로 99번 국도를 타고 왔다. 중문의 여미지 식물원을 지나 중문관광단지 안으로 들어와 중문민속촌을 거쳐 제주국제컨벤션센터로 우회전하여 왔다. 제주도의 들녘도 보고 아름다운 길이다. 입구에는 아담한 공원이 있다. 입장료를 내야한다.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니 육각형의 돌기둥이 겹겹이 줄지어 서서 어느 외국 유명한 명소에 온 듯한 황홀한 착각을 선사한다. 그 육중한 돌기둥 사이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절경을 이룬다. 이곳 지삿개 해안 주상절리는 약 1㎞에 이르는 해안에 걸쳐 높이가 30m 정도인 사각내지 육각형 바위가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 신이 다듬은 듯 정교하게 겹겹이 쌓은 검붉은 육모꼴의 돌기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자연의 위대함과 절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천연기념물 제44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대포동 주상절리는 높이가 최고 40m에 이르며, 폭이 1㎞에 달해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와 더불어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지질 및 지형학적 학술가치가 뛰어나서 보호가치가 있는 곳이다. 특히, 주상절리 단애의 형성과정 중에 일어났던 해수면 변동과 구조운동, 신생대 제4기의 빙하성 해수면 변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학술자원이 될 수 있다. 주상절리는 방문객이 잘 볼 수 있도록 나무판 길을 조성해 놓았다. 오르락내리락 걸으며 비경의 주상절리 바위림과 하얀 파도와 무원한 바다 속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이 선사하는 오직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아름다움에 젖었다. 이것이 여행이라고 크게 외치는 하늘이 내 머리 위에서 축복을 분무한다.
* 서귀포 중문 주상절리 산책공원
주상절리 해안에서 올라오니 산책공원이라는 팻말과 함께 야자수와 바위가 편안한 쉼터를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하루방도 있다. 한 바퀴 크게 돌아 나왔다.
* 서귀포 서복 전시관 외경
서귀포에서 하루를 유숙하고 아침 일찍 정방폭포로 향했다. 서귀포 시사지를 걸어서 가는 길에 우연히 서복전시관을 만났다. 서복은 중국 진시황 때 사신으로 서불이라고도 부른다.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왔다. 먼저 전시관 앞마당에 들어서니 넓은 마당 양편으로 그날의 족적을 대리석 판에 부조 그림으로 새겨 설명과 함께 부착해놓았다. 그때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림문자로 평평한 자연암에 새겨진 특이한 형태의 조각이다. 서복전시관은 이러한 설화에 기초하여 정방폭포 인근에 건립되었는데 매우 큰 건물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잇는 구비문화의 큰 유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알리기 위해 서귀포시가 지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건립했다. 오늘 아침은 간간이 몇 사람만 지나간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 것 같다.외경을 보고 전시관 안으로 입장했다.
* 서귀포 서복 전시관
전시관에 들어시니 직원이 반갑게 나와서 반긴다. 잠시 설명해주어서 고마웠다. 바로 먼저 보이는 것은 진시황의 청동마차와 병마용갱의 실물 복제품이었다. 지난 해 10월 중국 서안 여행에서 진시황릉을 탐방했을 때 본 그 병마용갱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니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외 친황다오시에 있는 서복 비석 복제품, 원자바오 총리 친필 휘호가 새겨진 태산석, 허베이성 친황다오시가 기증한 서복동도상 조각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크게 서복 전시실과 서귀포시 역사관으로 나뉘어 있다. 서복 전시실은 불로불사의 꿈과 서복의 여정, 진시황제의 청동마차와 병마 용갱의 실물 복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서복 일행이 제주도 삼신산 중 하나인 한라산(영주산)에 올라가 불로초를 찾아보았지만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학자들은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시로미와 영지버섯을 불로초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후 서복은 서귀포를 떠나는데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는 등 악전고투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끝내는 일본 규슈 사가 현 부바이 해안에 상륙, 사가 현 모로토미에서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서복은 벼농사와 고기잡이 방법 등을 주민에게 가르쳐주었으며 와카야마 현 신구 시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현재 이곳 서복공원과 아스카신사에 서복궁 사당이 건립되어 있으며 서복이 일본의 초대 천황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서귀포시 역사관은 서귀포시의 연혁과 문화 유적지, 관광 문화 홍보물이 전시되어 많은 자료들이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잇고 있다. 영상실에는 불로촌의 전설과 서귀포시와 서복의 고향을 현지 촬영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동영상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의 4개 언어로 상영한다. 소원을 비는 문구를 써서 매다는 설치물도 있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공간도 있다. 서복이란 중국인을 진시황과 연결지어 잘 배우고 간다. 전시관 마당은 매우 크다. 해변을 따라 서복공원으로 갔다.
* 서귀포 서복 공원
서복 전시관 바로 곁에는 바다가 보인다. 그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제주도가 2003년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5천여 평에 서복공원을 조성하였다. 이때 서복전시관도 개관했다. 주변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쉼터 등이 나무판 길을 따라 잘 조성되어 있다. 서복팔경이라는 안내문구도 있다. 제주 바다 조망도 비경이고, 이국적인 자연풍경이 조화를 이뤄 참으로 아름다운 공원이다. 안쪽 공원 마당에는 서복 동상도 세워져 있다. 제주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중국과 연결된 유적을 본 흐뭇한 여정이다.
* 서귀포 서복 불로초 공원
서복공원을 떠난 정방폭포로 향해 가는 길에 서복 불로초 공원이 있다. 서복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찾아 나선 서복이 배를 타고 동해를 항해하여 한반도 남쪽에 왔으며 그 증거로 남해의 양하리와 서귀포 정방폭포 암벽에다 ‘서불과차(徐市過此)’ 즉 '서복이 지나갔다'라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또한 제주도의 서귀포라는 이름도 서복과 연관이 있다. 서귀포는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뜻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찾던 불로장생 약초는 중국이 원산지인 황기였다고 한다. 황기는 한약재이면서도 닭백숙에 쓰는 콩과 식물로 귀한 인삼 대신 사용한다. 진시황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여기 서귀포에까지 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서려 있는 불로초 공원을 지나며 인간의 장수를 염원하는 애뜻한 소망을 본다. 나 역시 그런 소망을 품고 살고 있다. 바로 곁에 있는 정방폭포로 향했다.
* 서귀포 정방 폭포
정방폭포는 우리 부부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가족여행 왔을 때 탐방했던 곳이다. 기억이 아득하지만 주변이 그때와는 많이 변했다. 잘 조성해 놓았다. 해변 절벽에는 노송이 바다를 향해 목을 늘이고 수목이 울창하다. 천지연, 천제연과 더불어 제주도내 3대 폭포중의 하나로 서귀포시 중심가에서 약 1.5㎞ 떨어져 있다.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라는 것이 가장 큰 가치다. 규모도 높이 23m, 폭 8m, 깊이 5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다. 제주특별자치도 지정문화제기념물 제44호다. 가까이 가기도 전에 벌써 진입로 산길 사이로 보이는 폭포가 비경을 선사한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조금 걸어가니 웅장한 폭포음과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엄하다. 낙차하는 풍경도 비경이고 푸른 바다로 흘러드는 풍경도 비경이다. 모두 황홀한 광경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영주십경의 하나로 삼았다. 폭포 절벽에는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서불에게 동양의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어 오도록 하였으나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정방폭포의 절벽에 지나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을 새겨져 있다. 조금 전 보았던 서복 전시관에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포라고도 부른다. 앞바다에 있는 난대림이 울창하여 남국의 정취를 드리운 숲섬, 문섬, 새섬, 범섬이 있다. 전에 왔을 때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에 들어갔던 문섬이 보인다. 그때는 두 아들이 어려서 돌보며 다녔는데, 또한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효도관광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아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며살고 있고, 우리 부부 둘만이 온 여행이다.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정방폭포의 절경도 새로이 보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름을 아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웅장한 정방폭포 앞에서, 폭포의 광음과 하얀 물줄기의 분사, 도란거리는 바위 군락들 사이에서 우리 부부는 참으로 큰 행복을 엮었다. 그 옛날 결혼 10주년인 1989년의 추억에 오늘의 결혼 39주년인 2018년의 추억을 더하여 차곡이 쌓아 가슴 깊이 담아간다. 먼 훗날에는 오늘을 그리워 하겠지. 그때 우리 부부는 다시 또 여기 오리라 다짐하며 아쉬운 걸음을 옮겼다.
* 서귀포 천지연 폭포 입구
주차장에서 천지연 폭포까지는 제법 걸어야 하는 산길이 이어진다. 예전에 왔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산길 주변에는 지루하지 않도록 계곡을 따라 제주의 여러 가지 유적에 대한 안내와 유물이 설치되어 있다. 아름다운 나무 숲과 함께 상큼한 산책길이다.
* 서귀포 천지연 폭포
비경의 숲길을 걷는 것도 독특한데, 그 끝에서 만난 천지연 폭포는 아주 독특한 비경을 선사한다. 제주도에는 폭포가 많은데 그 중 규모나 경관에서 으뜸인 곳이다. 서귀포의 옛 포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온 곳에 기암절벽이 선경을 이룬다. 각종 아열대, 난대성 상록수와 양치식물이 빽빽이 우거져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계곡의 길이는 약 1㎞쯤이다. 계곡에 낙차하는 폭포는 높이 22m, 너비 12m다. 기암 사이로 수심 20m의 푸른 천지연 연못에 하연 물줄기가 지축을 흔들며 내리꽂힌다. 자연의 원형을 보존하는 표본지역으로서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어 일체의 벌목·식물채집·야생동물 포획 등을 금하고 있다. 담팔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연못 속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천연기념물 제27호의 무태장어가 살고 있다. 서귀포시는 기후가 따뜻하고 경관이 수려하며 역사유적이 많은 관광지다. 수학여행 온 학생단체도 있고, 많은 사람들로 열기 가득하다. 신선이 내려오는 것 같은 폭포의 신비 앞에서 모두 황홀한 행복에 젖는다.
* 서귀포 새섬, 새연교 가는 길
천지연 폭포에서 나와 새섬으로 가는 새연교로 걸어갔다. 주변 바다에는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오징어잡이 배도 있고, 새연교와 함께 진풍경을 이룬다.
* 서귀포 새연교
이곳은 우리 부부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새연교 앞에 서니 그 이름값 만큼이나 곱고 아름답다. 2009년 9월 28일에 개통됐다. 제주 서귀포항과 새섬 사이에 제주의 전통 떼배인 '테우'를 모티브로 형상화한 다리다. 대한민국 최남단이며 최장의 보도교다. 아치형으로 굽어진 오르막 다리의 길을 오르니 서귀포 항구가 비경을 선사한다 새연교의 건설은 서귀포항이 시드니와 나폴리에 못지않은 세계적 미항으로 도약한다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외줄케이블 형식의 길이 169m, 폭 4~7m의 사장교다.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높이 45m의 주탑 등에 화려한 LED 조명시설까지 갖췄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고운 야경도 보고 싶다. 커다란 탑이 높이 솟구쳐올라 장엄하다. 새연교를 걸으며 바라보이는 서귀포항을 비롯해 문섬, 범섬 등의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의 풍경은 절경이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으로 쉽게 간다는 깊은 뜻도 담고 있다. 총면적 10만 2천여㎡의 무인도인 새섬은 난대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새섬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1.2㎞의 산책로와 광장, 목재데크로(路), 자갈길ㆍ숲 속 산책로, 테마 포토존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꾸며졌다. 특히, 새연교가 개통됨에 따라 새섬 도시 자연공원을 전면 개방되어 제주도 서귀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연주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 부부도 지금 새연교를 넘어 새섬으로 가고 있다.
* 서귀포 새섬
새연교와 자연스럼게 연결된 새섬으로 들어왔다. 우거진 열대식물들이 청청한 바다와 함께 이국적인 비경을 자아낸다. 새섬을 바라보는 서귀포 항구와 시가지 풍경도 아름답다. 조도라고도 한다. 제주도 서귀포항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새연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옛 서적에는 초도, 조도, 모도로 표기되어 있다. 억새풀인 새[茅]가 많아서 '새섬'으로 불렀는데, 한자로는 '초도(草島)' 또는 '모도(茅島)'라 하였다. 억새풀인 '새'를 나는 '새'로 오인하여 '조도(鳥島)'로 잘못 음을 빌려 표기하기도 했다. 나도 새가 많이 사는 새섬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억새풀인 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연교를 바라보며 걷다가 숲속을 지나 돌아가니 문섬이 눈앞에 보인다. 잠수함을 타려고 대기중인 배도 있다. 전에 왔을 때 우리 가족도 저렇게 잠수함을 승선했다. 그날의 훈훈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작은 새섬을 한바퀴 돌며 참으로 행복했다.
* 서귀포 항구 풍경
새섬에서, 새연교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하구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어는 외국여행 못지 않은 비경을 선사한다. 새연교에서 내려와 항구 주변을 따라 걷는 길의 풍경도 아름답다. 풍요로운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훌륭한 시가지 풍경이 또한 풍요를 선사한다. 내 조국의 풍성한 바다 뜨락이다.
* 제주도 용두암 야경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왔다. 밤이다. 숙소를 용두암 근처로 정했다. 전에도 왔지만 이번 여행에서 용두암을 탐방하기 위해서다. 저녁식사를 숙소에서 중국식으로 불러 마치고 용두암으로 나갔다. 해변에 용의 형상으로 서 있는 용두암 바위가 조명을 받아 우람하게 서 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곁에 있는 용연의 야경을 보기 위해 해안 길을 조금 더 걸어서 갔다.
* 제주 용연 야경
용연은 처음 온 곳이다. 야경이 아름답다 하여 이 밤중에 온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조명의 야경이다. 곡선의 긴 다리가 수시로 바뀌는 형형색색의 조명 옷을 입고 물 위에 고운 색시로 서 있다. 다리 위로 올라가 건너 보았다. 꿈길을 걷듯 황홀한 불빛과 낭만의 다리다. 용연의 참 모습은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숙소로 왔다.
* 제주 바위섬 펜션
바위섬 펜션 숙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간단히 하였다. 용두암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바위섬 펜션이 참으로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름도 아름답고, 내경과 외경 모두 고운 풍경이다. 다음에 우리 가족이 오면 또 이곳에 머물고 싶다.
* 제주 용두암
언제 와도, 언제 보아도 비경의 바위다. 어젯밤에 보았던 용두암이 오늘 아침에는 더욱 용감한 자태로 우리 부부를 맞이 한다. 전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주변 시설이 잘 갖추어 정비되어 있다. 가는 길도 그렇고, 바위 주변 내려가는 길도 잘 되어 있다. 제주시내 북쪽 바닷가에 있는 용두암은 높이 10m가량의 바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씻겨 빚어진 모양이 용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용두암이라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용 한 마리가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자 화가 난 한라산 신령이 활을 쏘아 용을 바닷가에 떨어뜨려 몸은 바닷물에 잠기게 하고 머리는 하늘로 향하게 하여 그대로 굳게 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소원이던 한 마리의 백마가 장수의 손에 잡힌 후, 그 자리에서 바위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주변에서는 해녀가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월읍에서 용두암에 이르는 아름다운 조망의 해안도로도 있다.해변 도로를 따라 보기도 하고, 아래의 길로 내려가서 바닷가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아주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다. 이제 용두암의 용감한 기상을 모두 가슴 깊이 생생하게 담아간다. 자랑스런 내 조국의 자연유물이다.
* 제주 용두암 해변공원
용두암 주변 언덕 위에는 해변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소나무와 여러 식물들이 도로변를 따라 늘어서 있어 고운 풍경이다. 제주를 알리는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이 해변공원에서 용두암을 바라보는 것도 큰 비경이다.
* 제주 용두암에서 용연 가는 길
지난 밤에도 걸어왔던 길인데 낮에 보니 밭도 있고, 무덤도 있고, 제주의 축소판 길이다. 밭둑은 돌로 쌓아있고, 벌써 마늘이 파랗게 자란다. 육지의 마늘보다 훨씬 빠른 성장이다. 밭 곁에 무덤이 있는 것도 이국적인 풍경이다. 아담한 마을을 지나가며 걷는 길이 참으로 곱다.
* 제주 용연교
지난 밤 야경을 보았던 그 다리다. 불은 사라졌지만 늠름한 자태다. 사랑의 열쇠도 많이 걸려있다. 용연, 즉 용의 연못과 연결하는 다리다. 용연교를 건너 용연으로 간다. 다리 위에서 좌로는 바다가 우로는 용연이 비경을 선사한다.
* 제주 용연정
용연교를 건너자 용연정이 있다. 숲 사이로 아름다운 정자다.
* 제주 용연 비취빛 벼랑에 새겨진 옛시
용연 계곡으로 가는 길에 본 시비들이다. 밭길을 지나가자 잔디 위에 많은 시비들이 서 있다. 돌에 새겨진 유명한 시들이다. 아름다운 조경이다.
* 제주 용연 산책길
시비를 보고 용연 계곡이 보이는 숲속 산책길로 들어섰다. 짙푸른 물이 그야말로 용의 연못, 아니 신선의 기운이 서려 있는 속세를 벗어난 절경이다. 용연은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명승지로 제주시 서쪽 해안 용두암에서 약 200 m 지점에 있는 호수로 용이 놀던 자리다. 한천의 하류지역으로, 높이 7∼8 m의 기암계곡이며, 바다와 이어져 있다. 옛날 용의 놀이터였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용연야범의 장소이다. 용연의 계곡물은 산등성이부터 바닷가로 흐르며,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다. 나무로 연결되어 있는 용연 다리에서는 정자와 어우러져 있는 계곡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데, 용연에 살고 있는 용이 승천하여 이곳만큼은 비를 내리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오색물결빛이 아름답고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절벽과 물속의 바위들의 모습이 수려하다. 또한, 선인들이 풍류를 즐긴 장소로 유명하며 마애명이 절벽에 새겨져 있고 용연야범축제가 매해 열리는 곳이다. 용연 계곡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깊다. 바위와 우람한 나무들이 더욱 신선의 경지로 이끈다. 참으로 잊지 못한 내 조국의 명소다.
* 제주 국제공항 출발
제주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육지에서 먼 섬 제주도는 항상 외국여행 온 기분으로 멋진낭만을 선사하는 섬이다. 지금 떠나지만 우리 부부는 또 찾아올 것이다. 그떄도 역시 새로운 낭만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 김포 도착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이것으로 이번 제주여행은 잘 마무리 되었다. 행복한 제주의 자연과 역사와 문학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