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了凡四訓 요범 4훈
* 원 요범 선생은, 본명은 원 황, 자는 곤의 이며, 자세한 이력은 제4편 말미에 있음
《第一篇.立命之學》 제1편 입명지학
余童年喪父,老母命棄舉業學醫,謂可以養生,可以濟人,且習一藝以成名,爾父夙心也。
後余在慈雲寺,遇一老者,修髯偉貌,飄飄若仙,余敬禮之。
語余曰﹕「子仕路中人也,明年即進學,何不讀書?」
余告以故,並叩老者姓氏裡居。
曰﹕「吾姓孔,雲南人也。
得邵子皇極數正傳,數該傳汝。」
余引歸,告母。
母曰﹕「善待之。」試其數,纖悉皆驗。
余遂啟讀書之念,謀之表兄沈稱,言﹕
「鬱海谷先生,在沈友夫家開館,我送汝寄學甚便。」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노모는 명을 포기하고 의술을 공부하여 업을 받들며, 이것은 양생으로 가능하고, 사람들 구제 가능하며, 또 하나의 재주를 익혀서 이름을 이루는것은, 아버지의 마음이다고 하였다.
후에 그는 자운사慈雲寺에서 어떤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수염을 길게 기른 위엄 있는 모습을 한 노인은 마치 신선처럼 가볍게 표표히 나를 듯 보였다.
나는 공경하여 예를 올렸다.
노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관리가 되어 벼슬살이를 할 운명이다.
내년이면 곧 수재秀才 시험에 합격할 것인데, 어째서 아직 글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가?
그가 어머니께서 글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신 일과, 의술을 배우러 떠나라고 명령하신 까닭 등을 노인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성씨가 어떻게 되는지, 또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성이 공씨이고 운남 사람이다.
내가 소강절邵康節 선생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정통으로 이어 받았는데, 정해진 운수로 보아 이것은 아마도 자네에게 전해 주어야 마땅할 것 같구나.
그는 돌아와, 어머니께 고하였다.
어머니 왈: "선이 기다린다." 그 수를 시험해 보아, 모든 것을 다 검사하였다.
그는 독서의 생각을 하였고, 어느 표형의 깊은 말이,
"울해곡 선생은, 심우부의 집에서 개관하였고, 나는 그 곁에서 심히 배움이 편했다."
余遂禮鬱為師。
孔為余起數﹕縣考童生,當十四名;
府考七十一名,提學考第九名。
明年赴考,三處名數皆合。
그는 예에따라 울을 스승으로 삼았다.
공이 내 수를 일으키게 되었다 : 현고동생이, 당 14명이였다 ;
부고 71명이었고, 제학고제는 9명이다.
내년에 시험을 치르며 세 곳의 이름 수의 모두 합이다.
複為卜終身休咎,言﹕
某年考第幾名,某年當補廩,某年當貢,貢後某年,
當選四川一大尹,在任三年半,即宜告歸。
五十三歲八月十四日丑時,當終於正寢,惜無子。
余備錄而謹記之。
다시 평생 길흉을 점치게 되었고, 말하기를 :
어느 해에 몇 번째 시험을 치르고, 어느 해에 보충을하고, 어느 해에 공물을 바치고, 공물 바친후 어느해이며,
당시 사천의 큰 관리를 선출되었고, 3 년 반 재임한, 즉 마땅히 돌아와 고합니다.
53세 8월14일 축시이며, 마침내 아들이 없는 것을 후회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의 비록이며 삼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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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此以後,凡遇考校,其名數先後,皆不出孔公所懸定者。
獨算余食廩米九十一石五斗當出貢;
及食米七十一石,屠宗師即批準補貢,余竊疑之。
後果為署印楊公所駁,直至丁卯年(西元1567年),殷秋溟宗師見余場中備卷,
嘆曰﹕「五策,即五篇奏議也,豈可使博洽淹貫之儒,老於窗下乎!」
遂依縣申文準貢,連前食米計之,實九十一石五斗也。
余因此益信進退有命,遲速有時,澹然無求矣。
그 이후로, 보통 시험 학교를 만나고, 그 이름의 수는 선후로 공공에 의해 그 현에 정한 것이 없었다.
남은 음식을 홀로 계산하여 쌀 91석 5말을 공물을 낸다 :
그리고 쌀 71석을 먹고, 종사는 공물을 보충하는 것을 승인하고, 그는 의심스러웠다.
그후 결과는 정희년(AD 1567년)까지 양공이 반박한 결과이며, 은추명종사는 그가 장중에서 두루마리를 보고,
한탄하며 왈 : "오책, 즉 오편의 진의이다, 어찌 보교가 유교를 익사시켜 창 밑에서 늙게 할 수 있겠느냐!".
현은 신문 준공을 의지함에 따라서, 계산하여 쌀을 먹기 전에, 실제 91석 5말이다.
그는 이 때문에 믿음을 더하여 진퇴는 명이 있고, 때로는 느리고 빠르며, 그로써 구하는 것이 없다.
貢入燕都,留京一年,終日靜坐,不閱文字。
己巳(西元1569年)歸,游南雍,未入監,先訪雲谷會禪師於棲霞山中,對坐一室,凡三晝夜不瞑目。
공물은 연도에 들어가, 1년 동안 경에 머물며,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글을 읽지 않는다.
기사(서기 1569년)에 돌아와 남옹을 유람하고, 감독하지 않고, 먼저 치사산중의 운곡회 선사를 찾아, 일실에 앉아 대하고, 보통 3일 밤낮으로 눈을 떼지 못했다.
雲谷問曰﹕「凡人所以不得作聖者,只為妄念相纏耳。汝坐三日,不見起一妄念,何也?」
余曰﹕「吾為孔先生算定,榮辱生死皆有定數,即要妄想,亦無可妄想。」
雲谷笑曰﹕「我待汝是豪杰,原來只是凡夫。」
운곡이 물어 왈 : "보통 사람은 이른바 거룩하게 될 수 없는것은, 망상으로 서로 매이게 되는데,
너는 3일 앉아있어도 망상이 보이지 않는데, 왜인가 ?"
그 왈 :"나는 공선생 계산이, 명예와 굴욕 삶과 죽음 모두 정한 수가 있은 즉 망상 또한 망상일 수 없다."
운곡은 웃으며 왈. "내가 너에게는 호걸이지만, 원래는 범부일 뿐이다.
問其故?
曰﹕「人未能無心,終為陰陽所縛,安得無數?
但惟凡人有數;
極善之人,數固拘他不定;
極惡之人,數亦拘他不定。
汝二十年來,被他算定,不曾轉動一毫,豈非是凡夫?」
그게 무슨 말인가요?
왈 :사람이 무심하여 결국 음양 멍에가 되고, 무수히 얻어 안착하겠느냐?
그러나 오직 범인은 숫자가 있다.
선을 다한 사람은 수로 그를 정하지 않고 구속한다.
악을 다한 사람은 수 또한 그를 부정하게 구속하고 있다.
네의 20년래 그를 산정하고, 한 터럭도 전하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범부가 아니겠느냐?
余問曰﹕「然則數可逃乎?」
曰﹕「命由我作,福自己求。詩書所稱,的為明訓。
我教典中說﹕『求富貴得富貴,求男女得男女,求長壽得長壽。』
夫妄語乃釋迦大戒,諸佛菩薩,豈誑語欺人?」
내 묻기를 왈:"그러한즉 수는 도망칠 수 있습니까?"
왈 "목숨은 내가 만들고, 복은 스스로 구한다.시서에서 칭하는, 즉 명훈이다.
내가 전 중의 말을 가르치면서 ;"부귀를 구하면 부귀를 얻으며,남녀를 구하면 남녀를 얻으며,장수를 구하면 장수를 얻는다."
무릇 망말은 석가대계이고, 제불 보살은 어찌 광기로 말을 하여 사람을 속이느냐?
余進曰﹕「孟子言﹕『求則得之』,是求在我者也。
道德仁義可以力求;功名富貴,如何求得?」
雲谷曰﹕「孟子之言不錯,汝自錯解耳。汝不見六祖說﹕
『一切福田,不離方寸;從心而覓,感無不通。』
求在我,不獨得道德仁義,亦得功名富貴;
內外雙得,是求有益於得也。
若不反躬內省,而徒向外馳求,則求之有道,而得之有命矣,
內外雙失,故無益。」
그가 나서서 왈 ; "맹자언: "구하면 얻을 수 있다", 이 구하는 것은 내것에 있다.
도덕인의는 힘으로 구 할 수 있다; 공명부귀는 어떻게 구하고 얻겠습니까?"
운곡왈; "맹자의 말은 착오가 없고 너 스스로 잘못 해석한것이다.너는 여섯 조상 말을 볼 수 없다
"모든 복전은, 방사형 치수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찾고, 느낄 수 없으면 통할수도 없습니다."
구함이 나에게 있으면, 홀로 도덕인의를 얻지 못하며, 또한 공명 부귀도 얻을수 없다 ;
안팎으로 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서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만일 내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며 헛되이 외적으로 구하면, 구하는 도가 있으며, 얻는것의 명이 있다,
안과 밖 둘을 잃으므로 유익하지 못하리라.
因問﹕「孔公算汝終身若何?」
원인을 묻자 :"공공산 너의 평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余以實告。
그는 사실대로 고했다.
雲谷曰﹕「汝自揣應得科第否?應生子否?」
余追省良久。
曰﹕「不應也。科第中人,有福相,余福薄,又不能積功累行,以基厚福;
兼不耐煩劇,不能容人;
時或以才智蓋人,直心直行,輕言妄談。
凡此皆薄福之相也,豈宜科第哉。
운곡왈; "네가 스스로 과제를 받을 자격이 있겠느냐? 아이를 낳아야 응 합니까?
그는 추성이 좋아 오래다.
왈 : 안됩니다.과제중 사람은 서로 복이 있고, 그는 복이 얇으며, 또 공로를 쌓을수 없으며, 기초에서 복이 후합니다.
겸하여 조바심 없는 드라마는, 사람을 용납 할 수 없습니다;
때에 재치로 사람을 덮고, 곧은 마음이 바로 가고, 경언망말을 합니다.
보통 이 모두 박복의 상이니, 어찌 과제가 마땅하겠느냐.
地之穢者多生物,水之清者常無魚;
余好潔,宜無子者一;
和氣能育萬物,余善怒,宜無子者二;
愛為生生之本,忍為不育之根;
余矜惜名節,常不能舍己救人,宜無子者三;
多言耗氣,宜無子者四;
喜飲鑠精,宜無子者五;
好徹夜長坐,而不知葆元毓神,宜無子者六。
其餘過惡尚多不能悉數。」
땅이 외설물이면 생물이 많고,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그는 좋은 깨끗하고, 마땅히 아들이없는 것은 하나다 ;
화기애애한 것은 만물을 기르고, 나의 선 노여움은, 자식이 없는 것은 두째다.
사랑은 낳고 낳는 본이며, 인내는 불육의 뿌리가 된다.
나는 희는 명절을 아끼고, 늘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구할 수 없고, 마땅히 자식이 없는 것은 3째다.
많은 말은 기를 소비하며, 마땅히 무자 4째다.
좋은 음료 정제, 마땅히 무장 5째다.
좋아서 밤새도록 앉아 있지만, 원나라의 신을 알지 못하며, 마땅히 무자 6째다.
그 나머지 과악은 많아서 셀 수 없다.
雲谷曰﹕「豈惟科第哉。
世間享千金之者,定是千金人物;
享百金之產者,定是百金人物;
應餓死者,定是餓死人物;
天不過因材而篤,幾曾加纖毫意思。
운곡 왈 ; "어찌 과제를 생각하겠느냐.
세상에서 천금으로 형통한 것은 정한 바 천금의 인물이다.
형통한 백금으로 만든것은 정한 바 백금의 인물이다.
굶어죽음에 응하면 정한바 굶어 죽는 인물이다.
하늘은 재에 따라서 과가 없으며, 의사를 까다로울 수 있다.
即如生子,有百世之德者,定有百世子孫保之;
有十世之德者,定有十世子孫保之;
有三世二世之德者,定有三世二世子孫保之;
其斬焉無後者,德至薄也。
汝今既知非。
즉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백세의 덕이 있으면, 정한바 백세 자손이 보호된다.
열 세의 덕이있으면 정한 열 세의 자손이 지키게 된다.
3세 2세의 덕이 있으면 정한 삼세 2세의 자손의 보호가 있게 된다.
그 참수에는 후자가 없고, 덕이 얇게 된다.
너는 지금은 이미 아는게 아니다.
將向來不發科第,及不生子之相,盡情改刷;
務要積德,務要包荒,務要和愛,務要惜精神。
從前種種,譬如昨日死;
從後種種,譬如今日生;
此義理再生之身。
장래 과제를 발하지 않거나, 또 서로 아이를 낳지 않고, 다 정을 바꾸고;
일은 중요히 덕을 쌓고, 황무지를 감싸며, 사랑을 화해하고, 정신을 아껴야 한다.
예를들어 어제 죽는 것과 같이 이전의 모든 것에 따르고;
모든 종류는 후에 따르는데 예를 들어 오늘 태어난 것이다 ;
이 의리는 몸을 재생합니다.
夫血肉之身,尚然有數;
義理之身,豈不能格天。
太甲曰﹕『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活。』
詩雲﹕『永言配命,自求多福。』
孔先生算汝不登科第,不生子者,此天作之孽,猶可得而違;
汝今擴充德性,力行善事,多積陰德,此自己所作之福也,安得而不受享乎?
易為君子謀,趨吉避凶;
若言天命有常,吉何可趨,凶何可避?
開章第一義,便說﹕
『積善之家,必有餘慶。』
汝信得及否?」
남편과 살과 피의 몸은 여전히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의리의 몸이 어찌 하늘을 찌를 수 있겠는가.
태갑 왈 ; "하늘이 죄를 지으면 여전히 거역할 수 있다.
자기 죄를 지으면 살 수 없다."
시운:'영언은 목숨 걸고,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
공선생은 네가 등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것은, 이 날에 죄악을 행하여, 여전히 거스르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미덕을 확장, 좋은 일을 수행, 더 많은 음과 미덕을 축적, 자신의 축복, 안도의 즐거움없이?
역은 군자의 모략되고, 추길 피흉 한다.
만일 천명이 항상 있다면, 길은 어찌 쫒을수 있고, 흉악한 것은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첫 번째 의를 열고, 편하게 말했다 :
적선의 집은, 반드시 여유있는 경사가 있다.
당신은 믿고 얻어서 부정합니까?
余信其言,拜而受教。
因將往日之罪,佛前盡情發露,為疏一通,先求登科;
誓行善事三千條,以報天地祖宗之德。
雲谷出功過格示余,令所行之事,逐日登記;
善則記數,惡則退除,且教持準提咒,以期必驗。
그 말을 믿고, 경배하고 가르침을 받다.
과거의 죄 때문에, 부처님은 먼저 과학에 등록하기 위해, 준설을 위해, 마음껏 공개;
천지조종의 덕을 갚기 위해 선한 일을 삼천조로 맹세하다.
구름 계곡은 매일 등록 할 수 있도록, 그 업적을 표시했다;
선은 기수하고, 악은 퇴출하고, 반드시 시험할 수 있도록 주술을 고치도록 가르친다.
語余曰﹕「符錄家有雲﹕『不會書符,被鬼神笑。』
此有秘傳,只是不動念也。
執筆書符,先把萬緣放下,一塵不起。
從此念頭不動處,下一點,謂之混沌開基。
由此而一筆揮成,更無思慮,此符便靈。
凡祈天立命,都要從無思無慮處感格。
어여 왈 :"부록가는 전함이 있다: "부적 글을 할 수 없다, 귀신의 미소에 당한다."
이는 비전이 있는데, 그냥 읽지 않으면 된다.
집필 부적 글은, 먼저 만연을 내려놓고, 흠잡을 데가 없다.
그 생각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아래 한 점은, 이것으로 혼돈의 기초를 엽니다.
그 때문ㅇ이며, 한 번의 스윙으로, 다시 생각우려없이,이 부적은 영이 됩니다.
보통 하늘의 입명을 기원하는 것은 모두 생각없이 염려없이 느껴야합니다.
孟子論立命之學,而曰﹕『夭壽不貳。』
夫夭壽,至貳者也。
當其不動念時,孰為夭,孰為壽?
細分之,豐歉不貳,然後可立貧富之命;
窮通不貳,然後可立貴賤之命;
夭壽不貳,然後可立生死之命。
맹자는 입명의 학을 말하며, " 요절과 장수는 둘이 아니다."
무릇 요수는, 둘에 이르는 것이다.
의당 그것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을 때, 누구는 요절이 되고, 누구는 장수가 되는 것인가?
세분화하여, 풍겸(농사가 잘된 해와 잘되지 않은 해)은 둘이 없고, 그 후 부자와 가난의 명이 설 수 있다;
궁통은 둘이 없고, 그후 귀 천의 명이 설 수 있습니다;
요수가 둘이 없고, 그후 생사의 명이 설 수 있다.
人生世間,惟死生為重,曰夭壽,則一切順逆皆該之矣。
至修身以俟之,乃積德祈天之事。
曰修,則身有過惡,皆當治而去之;
曰俟,則一毫覬覦,一毫將迎,皆當斬絕之矣。
到此地位,直造先天之境,即此便是實學。
汝未能無心,但能持準提咒,無記無數,不令間斷,持得純熟,於持中不持,於不持中持。
到得念頭不動,則靈驗矣。」
세상살이는 오직 죽고 사는 것이 무겁고, 죽어도, 모든 것이 거꾸로 가야 한다.
몸을 가다듬는 것은 덕을 쌓고 하늘을 기원하는 일이다.
수리라고 하면 몸이 악을 다 하였으니, 모두 다스려야 한다.
그것은 한 푼도, 한 푼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 잘라야 합니다.
이 위치에, 직접 선천적 인 상황을 만들, 즉, 이것은 실제 학습이다.
당신은 무심하지 않았다,하지만 당신은 주문을 제기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억, 중단하지, 순수한 숙달을 유지, 보유하지 않습니다,
유지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영이 있다.
余初號學海,是日改號了凡;
蓋悟立命之說,而不欲落凡夫窠臼也。
從此而後,終日兢兢,便覺與前不同。
前日只是悠悠放任,到此自有戰兢惕厲景象,在暗室屋漏中,常恐得罪天地鬼神;
遇人憎我毀我,自能恬然容受。
그는 초호 학해는 날이 바뀌는 것이 범이다.
필멸의 부를 내세우려 하지 않고, 명령을 깨닫고 말하다.
그 이후로, 하루 종일 떨고, 이전과는 다른 느낌.
전날은 유유히 방치했을 뿐이니,이곳에는 자기의 전진이 심하고, 암실집에서 새어나가면 하늘과 땅의 귀신을 불쾌하게 할까 봐 두렵다.
사람을 만나 나를 미워하여 나를 망쳐버리면, 자기가 용납할 수 있다.
到明年(西元1570年)禮部考科舉,孔先生算該第三,忽考第一;
其言不驗,而秋闈中式矣。
然行義未純,檢身多誤;
或見善而行之不勇,
或救人而心常自疑;
或身勉為善,而口有過言;
或醒時操持,而醉後放逸;
以過折功,日常虛度。
내년 (1570 AD) 예부 시험과, 공 씨는 세 번째, 첫 번째 시험을 계산;
그 말은 불찰하지만, 가을은 중식이다.
그러나 의로움은 순수하지 않고, 많은 잘못을 감지한다.
또는 선을 보고 용감하게 행동하지 않거나, 사람들을 구원하고, 종종 자신을 의심한다.
또는 선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입으로 말했다;
또는 깨어있을 때, 술에 취해 방치;
과로로, 일상의 허송세월.
自己巳歲(西元1569年)發願,直至己卯歲 (西元1579年),歷十餘年,而三千善行始完。
時方從李漸庵入關,未及回向。
10년 이상 지속된 나이(1579년)까지 자신의 나이(1569년)가 소원을 빌었고, 삼천 명의 선행이 시작되었다.
시방은 이진희에서 관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오지 못했다.
庚辰(西元1580年)南還。
始請性空,慧空諸上人,就東塔禪堂回向。
遂起求子願,亦許行三千善事。
경진(기원전 1580년) 남반.
성공을 청하고, 혜공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탑선당에서 돌아오게 하였다.
자식의 소원을 빌고 삼천 선한 일을 하다.
辛巳(西元1581年),生男天啟。
余行一事,隨以筆記;
汝母不能書,每行一事,輒用鵝毛管,印一朱圈於歷日之上。
或施食貧人,或放生命,一日有多至十餘者。
至癸未(西元1583年)八月,三千之數已滿。
複請性空輩,就家庭回向。
九月十三日,複起求中進士願,許行善事一萬條,丙戌(西元1586年)登第,授寶坻知縣。
신사(1581년)는 남 천계를 낳는다.
메모와 함께 나머지 라인;
여모는 책을 쓸 수 없고, 한 줄 한 줄씩 거위털관을 쓰고, 한 주를 일주 위에 인쇄한다.
또는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 또는 하루에 10 개 이상의 사람들을 넣어.
계미에 이르러 8월(1583년)까지 3,000개가 가득 차 있었다.
성적인 빈손을 다시 모시고, 가정에서 돌아오다.
9월 13일, 중진사원을 구하고, 선행을 약속하고, 1만 건의 선행을 하고,
병술(1586년)가 제1위에 오르고, 보령지현을 수여하였다.
余置空格一冊,名曰治心篇。
晨起坐堂,家人攜付門役,置案上,所行善惡,纖悉必記。
夜則設桌於庭,效趙閱道焚香告帝。
汝母見所行不多,輒顰蹙曰﹕「我前在家,相助為善,故三千之數得完;今許一萬,衙中無事可行,何時得圓滿乎?」
남은 공간에 한 권의 공백을 두면, 이름을 치심편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당에 앉으면, 가족들은 문역을 하고, 사건에서 행한 선악을 잘 기억해야 한다.
밤에는 상이 법정에 세워져 조독도 분향제제를 하였다.
당신의 어머니는 많은 일을보고, 말했다 :
"나는 전에 집에 있었다, 좋은 일을 돕기 위해, 그래서 삼천의 수는 끝났다;
오늘 만 원이니, 그중에서 할 일이 없니, 언제 원만하게 될 것인가?
夜間偶夢見一神人,余言善事難完之故。
神曰﹕「只減糧一節,萬行俱完矣。」
蓋寶坻之田,每畝二分三厘七毫。
余為區處,減至一分四厘六毫,委有此事,心頗驚疑。
適幻余禪師自五台來,余以夢告之,且問此事宜信否?
師曰﹕「善心真切,即一行可當萬善,況合縣減糧,萬民受福乎?」
밤에는 일신인을 꿈꾸며 선한 일을 끝내기 어렵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곡식 한 칸만 줄이면, 모든 것이 완성될 것이다. 가보암의 밭은 무당 이분삼십칠밀리이다. 나머지 구역은 1할4푼6밀리로 줄었고, 이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경악스럽다. 환각여선사는 다섯 대에서 왔으니, 남은 것은 꿈으로 전하고, 이 문제에 대해 편지가 있는지 묻는다.
스승은 "선심이 참되다. 즉, 일행은 만선이 될 수 있고, 상황은 현에 합하여 식량을 줄이고, 만민은 복이 있다?"
吾即捐俸銀,請其就五台山齋僧一萬而回向之。
孔公算予五十三歲有厄,余未嘗祈壽,是歲竟無恙,今六十九矣。
書曰﹕「天難諶,命靡常。」
又雲﹕「惟命不於常」,皆非誑語。
나는 즉, 은을 기부하고, 5대 산재 승려 만 원에 대해 돌아오라고 부탁합니다.
공공은 오십삼세에 과가 있다고 계산했는데, 여전한 것은 생명을 기원하지 못했는데, 나이는 무사하여, 지금 육십구세이다.
이 책은 "하늘은 멸시하기 어렵고, 운명은 평탄하다"고 말합니다.
또운: "평소보다 생명이 없다"는 말은 말이 아닙니다.
吾於是而知,凡稱禍福自己求之者,乃聖賢之言。
若謂禍福惟天所命,則世俗之論矣。
나는 재앙이 자신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이 현자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화복이 하늘의 생명이라면, 세속론이 있을 것이다.
汝之命,未知若何?
即命當榮顯,常作落寞想;
即時當順利,常作拂逆想;
即眼前足食,常作貧窶想;
即人相愛敬,常作恐懼想;
即家世望重,常作卑下想;
即學問頗優,常作淺陋想。
당신의 명은, 아직 안다면 무엇입니까?
즉, 명예를 위해 살고, 종종 외로운 생각;
즉시 부드러운 때, 종종 역상;
즉, 눈앞의 만족한 음식은, 종종 가난한 생각;
즉,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종종 두려움으로 생각합니다.
즉, 가족은 큰 기대를 가지고, 종종 낮게하고 아래 생각이다;
즉 학문이 매우 우수하여, 늘 얕게 초라한 생각을 한다.
遠思揚德,近思蓋父母之愆;
上思報國之恩,下思造家之福;
外思濟人之急,內思閒己之邪。
務要日日知非,日日改過;
一日不知非,即一日安於自是;
一日無過可改,即一日無步可進;
天下聰明俊秀不少,所以德不加修,業不加廣者,只為因循二字,耽閣一生。
雲谷禪師所授立命之說,乃至精至邃,至真至正之理,其熟玩而勉行之,毋自曠也。
먼 생각 덕을 부양, 가까운 생각은 부모의 부름;
윗생각은 나라의 은혜를 생각하고, 아래생각은 가족의 복지이다.
외사는 제인의 급한 사정이며, 내사는 한가한 자기의 악이다.
일의 중요함은 매일 그 죄를 알고, 매일 개과한다;
하루는 옳고 그른지 모른다, 즉, 하루는 자신의 편에 있다;
하루는 과가 없고 바꿀수 있다, 즉, 하루는 걷지 않고 나아간다.
천하가 똑똑하고 준수한 것이 적지 않으니, 소이 덕은 수리하지 않고, 업은 넓지 않은 자는 오직 두 글자를 따라 평생을 지체하기 위한 것이다.
운곡선사가 수여한 명설은, 심지어 정령이 심오하고, 진실이 바로 이치에 이르며, 그 숙달과 노는 것이지, 스스로 행하는 것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