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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4-82 사경모음
--- 문수사경반
영역수타니파타
2567. 10.11
4-6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시구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네.
오, 바라문이여,이것은 올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법이 아니네. 부처는 시구를 읋어 얻은 것을 받지 않으니,
법이 존재하는 한
이것이 (부처님들이 취하는)처신일세.
자비심 사경 합장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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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4-82
법정스님 옮김
2567. 10. 11
82
완전에 이른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시켜 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치십시오.
그것은 마침내 공덕을 바라는 이에게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고타마시여,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신, 악마, 범천들이 있는 세계에서
신, 인간, 사문, 바라문을 포함한 여러 중생 가운데서
완전에 이른 사람과 그의 제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우유죽일랑 생물이 없는
물 속에 버리십시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없는 물 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우유죽을
물 속에 버리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끓어올랐다.
마치 온종일 뙤약볕에 쬐여 뜨거워진 호미날을
물 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이는 것과 같았다.
이때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온몸이 오싹하여 두려워
떨면서 스승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숙이며 여쭈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
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부처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바라드바자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 ㅡ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ㅡ 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
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혜정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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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4-82
김운학 옮김
2567. 10 11
82
완전한 자의 대선인,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가 소멸한 자에 대해서는 다른 음식을 드리도록 하라. 이것은 공덕을 원하는 자의 복된 터전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하옵니까?”
“바라문이여, 실로 신들과 악마와 범천이 한 곳에 얽힌 세계에서 신들과 인간 그리고 도를 닦는 자, 또한 바라문을 포함한 모든 중생 가운데서 완전한 여래와 그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이 우유죽을 풀이 나지 않은 곳에 버리거나 미물이 없는 물속에 버리도록 하라.”
이리하여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미물이 없는 물속에 던져버리니 종일 햇볕에 단 쟁깃날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거리며 무럭무럭 김이 솟아나듯이 그 우유죽은 찌-찌-소리를 내며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니,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두려움에 떨며 소름이 끼쳐 부처님(스승)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쭈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키듯, 덮여있는 것을 벗겨주듯, 길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혹 ‘눈이 있는 자는 빛깔을 보리라’ 하여 어둠 속에서 횃불을 비춰주듯,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분명히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부처님에게 귀의하며, 또 법과 수행승에게 귀의하고 부처님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이신 부처님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 이윽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가다듬어 뒤에 더 없는 청정한 극치-여러 어진 남자들은 이를 얻기 위해 집을 나와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를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은 동시에 이를 입증하고 구현하여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다시는 이러한 삶을 얻을 수는 없다’고 깨닫게 되어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자비심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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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2567. 10. 11
82.
번뇌가 부서지고 의심이 소멸된
완전한 님, 위대한 성자에게
다른 음식과 음료수로 달리 봉사하십시오
공덕을 바라는 자에게 복밭이 될 것입니다.
법보행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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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석지현 옮김
2567.10.11.
82. 완벽한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오염을 다 제거하여
악한 행위를 뿌리째 뽑아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쳐야 한다.
이는 좋은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더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여실문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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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따니파타
일아 옮김
2567. 10. 11
82
번뇌가 부서지고 나쁜 행동이 고요해지고 (할 일을) 온전히 해 마친 위대한 성자에게 다른 음식과 음료로써 공양하십시요. 왜냐하면 그것은 공덕을 바라는 사람에게 복 밭이기 때문입니다."
"고따마 존자님, 그러면 저는 이 우유죽을 누구에게 드릴까요?"
"브라흐민이여, 신들의 세계, 마라의 세계, 브라흐마 신의 세계를 포함하여 신들과 인간, 사문과 브라흐민을 포함한 존재들 가운데 여래와 여래의 제자를 제하고는, 이 우유죽을 먹고 완전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브라흐민이여, 이 우유죽을 풀이 적은 곳에 버리시오. 또는 생물이 살지 않는 물에 담그시오."
그래서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살지 않는 물에 담가 넣었다. 그런데 물에 담근 우유죽은 부글 부글 소리를 내고 온통 물거품이 일고 자욱한 증기를 뿜었다. 물에 던져진, 하루 종일 달궈진 보습이 부글 부글 소리를 내고 온통 물거품이 일고 자욱한 증기를 내는 것처럼, 이처럼 물에 던져진 그 우유죽은 부글부글 소리를 내고 온통 물거품이 일고 자욱한 증기를 뿜었다.
그래서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두려워 떨며 머리털이 쭈삣 서며 부처님 곁으로 가가갔다. 그리고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숙이고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눈 있는 자에게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비추듯이), 바로 이렇게 고따마 존자님에 의해서 가르침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 되었습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님께 귀의합니다. 담마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님의 앞에서 출가를 하고 싶습니다. 구족계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브라흐민 바라드와자는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 바라드와자존자는 홀로 떨어져서, 부지런히, 열심히, 굳건히 머물러,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를 한 (바로 그 이유인), 청정한 삶의 위없는 목표에 이생에서 스스로 깨달아 도달하여 성취되었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고 알았다. 그래서 바라드와자는 아라한 중에 한 분이 되었다.
원호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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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혜정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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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 니파타 4-82 자림 가사단상] - 뱀의 품
4. 까시 바라드와자의 경
82. [석가 세존]
번뇌부셔 의심없엔 완전하신 붓다이신
위대하신 성자에게 다른음식 음료로써
공양함이 마땅하니 공덕바람 있는자는
진정으로 복밭될것 그대바로 알것이네
----2567. 10. 11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4-82 자림 시조단상]
번뇌 부셔 의심 없는 완전한 붓다께
다른 음식,음료 공양해 공덕 바라는 이
진정한 복밭이 되니 그대바로 알걸세
●●●더하는 말○○○
이제 진정한 내면으로의 붓다에게 공양하는
진정한 공양 공덕의 타당성을 세존께서 스스로
설명하고 계시다.
모든 번뇌를 완벽하게 부셔 버리셨으니 번뇌
일어나지 않고 그 어떠한 의심도 요즘말로 일도
없으신 그 분 붓다 여기에서 번뇌는 모든 견해의
번뇌로 사상적으로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관념
적으로 자기자신의 소견머리로 만들어 낸 아견과
아집 등을 바탕으로 한 당시 62종의 잘못된 견해로
볼 수 있으니 잘못된 견해는 결국 자기자신을 가두고
얼키설키 베베 꼬아서 스스로 빠져 나가지 못하는
그물에 걸린다.
그러니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세상의 총명한
천재도 자기자신의 견해라는 그물에 걸려 버리면
의심에 의심을 더하는 의심의 덩어리만 더욱 커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자신의 잘못된 견해에
스스로 빠져 헤매게 된다.
그러나 세존은 이러한 번뇌와 의심을 완전하게
바로 보고 아시니 이러한 인도의 최상의 신까지
공경 공양하는 붓다인 나에게 그대는 다른 음식과
음료를 따로 마련해서 공양함이 합당하며 그대가
진정으로 공덕을 바란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대 자신이 이치를 아는 사람이니 잘 사유해
보라는 뜻이다.
주고 받는 물건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복잡한
관계는 반드시 다른 속셈이나 이익이나 셈법이나
계산이 깔리게 된다.
그러나 청정한 분 열반을 얻으신 분 해탈 자재의
붓다에게는 그러한 세상의 어떠한 셈범도 전혀
통하지 않으니 석가 세존은 그러한 셈법을 이미
초월 하셨으므로 어떠한 계산이나 바램 의도적인
마음작용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순수 청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람은 마치 자갈과 흙이 함께한 밭이라면
석가 세존의 밭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비옥한
밭이니 성자이신 붓다에게 공양하며 씨앗을 뿌리는
순간 반드시 훌륭한 결과를 얻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나 자갈밭 모래밭은 돌보고 가꾸며 다시 거름도
주고 관리해야 겨우 뿌린 씨앗의 반이나 3/2밖에 얻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더 한걸음 깊이 들어 간다면 받는이기
이런 완벽한 분인데 주는 나 자신이 그러한 완벽한
분의 수행 인연을 배우고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
하고 수용하고 받아 들인다면 공양의 공덕이 계기가
되어 진리를 배우고 익히게 되니 진정으로 공양하는
공덕은 참으로 좋은 선연이 아니겠는가?
밭 가는 바라문은 완전한 깨침을 얻는 붓다의
출현과 함께 진정으로 진리의 길로 진입하니
수승한 인연이며 참으로 수승한 공양 공덕이 아닐까?
♧♧♧♧♧
숫타 니파타 [ 까시 바라드와자의 경] 총정리
[지문]이 처음나오면서 경전의 기본형식을
갖춘 정형구[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석가 세존의 말씀은 처음부터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전해지지 않고 상황과 인연에 따라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 내려
오던 것이 석가 세존의 열반과 함께 시작된
한 가지의 경전의 양식 즉 정형구가 정해지게
되는데 석가 세존이 열반하시기 전에 아난스님이
묻기를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세존께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하는 [여시아문]의 탄생이다.
그 이후 모든 경전의 형식은 제일 먼저 이 구절로
시작하게 되는데 숫타 니파타의 대부분은 이런
형식을 따르지 않고 시와 시의 대화 즉 대부분 게송
으로 되어 있거나 설명이 긴 [지문]이 함께 한다.
이러한 형식은 초기불전에 자주 나타나는 형식으로
시만 전해지다 설명이 첨부되고 경전의 정형구인
[여시아문]이 갖추어지면서 완전한 한 종류의 경전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런한 의미로 본다면 [까시 바드라
와자의 경]은 그 모든 경전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처음 시작의 [여시아문]과 설명 그리고 7개의 시
설명이 가미된 마무리 [지문]으로 지문의 내용이
시의 내용보다 길다.
오백개의 쟁기에서 500은 눈썰미로 보기에 많구나
정도의 숫자이지 정확한 500개가 아니다.
인도인들이 자주사용하는 500은 500대의 수레,
500명의 상인, 500명의 군사, 500명의 도둑,
500명의 여인, 500명의 외도, 500명의 제자,
500명의 아라한등의 표현이 그와 같다.
석가 세존께서 처음 깨달음을 얻고 다섯명의
수행자를 깨침으로 인도하고 야사라는 귀족
청년과 그 친구 그 지역의 귀족청년 50여명이
출가하여 제자가 되고 당시 불을 섬기던 세 사람의
가섭 형제와 그의 제자 1000명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부처님의 제일, 제이의 제자인 [상수제자]
사리불과 목련스님은 회의론자의 문하에 있다가
그의 동료 250명과 함께 출가하게 되는데 단순한
계산으로만 하더라도 대승경전의 [여시아문]과
시작하여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하셨다는
1250명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과장되거나 잘못된
표현이 아닌 역사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수 많은 제자가 36세의 젊은 붓다 즉 석가
세존이 깨침을 얻은 후 몇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당시의 종교계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고 젊은 귀족
청년들의 단체 출가는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사회
문제가 될 정도의 엄청난 사건으로 젊은 석가 세존은
당시의 폭풍의 눈 같은 중심인물 이었을 것이다.
당시 정치로 보면 전제군주의 정복군 왕이 큰 나라를
형성하고 작은 나라들은 그 나라의 소속이 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석가족은 나라이긴 하지만 당시로
볼 때 아주 작은 나라였던 것이며 종교 사상적으로
보면 지배계급인 전통바라문의 제도 아래 엄격한 계급
신분사회에서 진보적인 세력인 사문의 단체가 서서히
형성이 되고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상인들이 막대한
장사와 무역을 통해 축척된 부가 이러한 신흥 진보
종교인 사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니
만약 중국으로 비유하자면 제자백가의 춘추전국시대
같은 양상과 비슷했으리라.
그러한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종교계의 스타가
바로 36세의 석가족 출신 크샤트리아 계급의
고타마 싯타르타 였으니 모든 정치, 종교, 경제가
전환하는 시기에 신선하고 새로운 가르침으로
바람을 일으킨 우리의 스승이다.
작은 나라 출신이긴 하지만 귀족이니 계급으로도
밀리지 않는데다가 당시 내노라는 종교자
지도자들이 젊은 석가 세존의 제자가 되고
그 많은 제자들을 돈 많은 상인과 신흥세력등이
지지하니 다른 큰 나라의 국왕, 왕비, 공주, 왕자,
장군, 대신, 귀족, 부호, 평민등이 줄줄이 석가
세존과 제자를 청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며
출가까지 하는 진풍경이 연출 된다.
당시 전통적인 종교 사상계는 두 종류의 큰 흐름이
주류였는데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가르침
위주의 [선정주의]와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행위를
위주로 가르키는[고행주의]였는데 석가 세존은
이러한 큰 흐름의 두 가르침을 모두 섭렵하고
그들이 진정한 깨달음도 최상의 진리도 없음을
확신하신 후에 홀로 수행정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 앉아 완전한 깨달은을
얻고 스스로 붓다임을 선언 하신다.
출가 하신지 6년째 되는 해이며 세상의 나이로
36세가 되는 때였다.
석가 세존은 출가 이전에도 다른 사상과 종교
철학 문학 논리학 제왕학 무예등을 모두 익혔으니
한 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유망한 청년으로 작은
나라지만 왕자로 나라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보더라도 뭐하나 빠지지 않고 무엇하나 부럽지 않은
훌륭한 젊은이 였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일반 세속의 사람과 다른 저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으니 양모가 생모가 아님도 알고 종교와
철학 사상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삶과 죽음이란
근원적인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고 다른 세상의
어떤 학문도 가르침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출가하여 수행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완전한 열반
해탈을 얻어 붓다가 된다.
여기에서 붓다는 앞에서 연각[독각]이라는 부처님을
이야기 했듯이 인도의 종교인과 일반인에게는 성자로서
존경하는 같은 대상으로 보통은 [선정주의]수행자나
[고행주의]수행자로 대표되고 바라문계급의 경우
세상을 떠나 출가해 두 종류의 전통적 수행단체에서
수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홀로 유행하며 수행한다.
만약 석가 세존이 당시의 이러한 두 흐름을 섭렵하지
않고 홀로 수행했다면 아마 연각[독각]과 같은 부류로
밖에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초기불전에 강조하는 홀로 수행하는 출가자의 삶은
전통적인 습관에서는
1. 스승을 모시고 시봉하며 배우는 시기인[학생기,수학기]
2. 집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인 [가주기]
3. 숲 속에 머물며 은둔 생활을 하는 [임주기]
4. 부부가 함께 출가하여 유행하는 [유행기]
이 네종류의 삶은 당시 바라문계급의 일반적인
생활습관으로 요즘으로 보면 바라문계급의 교육
제도와 복지제도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농부인 밭가는 바드라와자가 석가 세존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출가가 가능한 것도 위에
예시한 수학기와 가주기를 이미 완수했기 때문이며
앞에 예시한 젊은 귀족 청년들은 학생기 즉 수학기로
보는것이 타당하며 그런 관점에서 세존도 수학기와
가주기를 거친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니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인연이 갖추어 진다면 임주기나
유행기를 통해서 준 출가자의 삶을 누리게 되며 그
시기에는 구걸과 유행을 하며 지내기 때문에 어쩌면
순서상으로도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학기와 가주기에서 기본적인 학문이나 세상의
삶을 이미 체득 경험하였으니 임주기나 유행기는
더 높은 가르침 더 완전한 가르침을 구하는 시기이니
진정한 스승 완전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밭 가는 바드라와자는 사문 고따마에게 공양을 하는
인연으로 인하여 진리의 팩트가 분명한 농사의 비법과
수행의 비법의 비교 비유를 통해 뼈속까지 사무치는
분명한 메세지를 그 자리에서 체득하였으므로 삼보에
귀의하며 구족계를 받고 출가해 아라한이 되는 결론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까시 바드라와자의 경]은 초기불전의
기본형식부터 시작하여 삼보에 대한 귀의 깨달음에
대한 찬탄의 정형구와 깊이 고찰 사유해 본다면
시와 시 사이에 숨어있는 수행방법의 스킬은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다.
씨앗, 비, 멍에, 쟁기, 쟁기 날, 자루, 몰이 막대, 끈,
황소등을 비유한 믿음, 감관의 수호, 지혜, 부끄러움,
마음, 정진, 마음조절, 해탈을 나타내는 절묘한 비유는
짧은 시의 행간과 행간 그리고 주석까지 참고해서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상황과 사람 인연의 적절한 만남에서 나온 이러한
법문은 진정으로 사자후이니 밭가는 농부는 참으로
복 많은 사람이다.
여기에서도 등장하는 황소 [소치는 다니야]에서
등장한 소 그리고 마음은 아마도 중국의 참선하는
곽암스님의 심우도의 연원과 연결해서 본다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수행이라는 마음닦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관통되고 초월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보여진다.
마음닦음, 마음챙김등은 수행의 핵심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행의 휘날레는 역시 해탈이며
완전한 열반이다.
추후 [해탈지견]이라는 단어로 정립되고
[무여열반]으로 정리된다.
가능하면 전문 불교용어를 피하여 글을 쓰려
하였으나 완전하게 보편화 된 적절한 표현이
없다보니 이해한 대로 아느대로 풀어서 썼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문용어에 익숙한 불자들은
위해 [ ]안에 표현해 두었으니 참고 바랍니다.
총정리는 앞의 시와 가사단상, 시조단상과
더 하는말을 읽어보면 어느정도 감을 잡을것이라
예상되지만 더하는 말에서 못했던 말이나 더 강조
하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총정리에서
다루니 이점 번거롭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밭가는 바라문 바드라와자 님이시여
그대는 참으로 희유한 인연 세존 뵙고
출가해 깨침 얻어서 성자되어 해탈하니
세상의 모든것 다 버려 뛰어넘고
완전한 열반을 체험한 수승한 인연
부처님 훌륭한 제자 농부중 제일일세
----2567. 10. 11 법주도서관 & 자주선림 교수사 자림 심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