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방부는 16일 밤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코프(하르키우)에 있는 국제 의용군(외국인 자원 병력)의 임시 기지를 공격했으며, 피격된 건물에는 프랑스인들이 많았다고 17일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이 공습으로 국제 의용군이 주둔하고 있던 건물이 완전히 파괴됐으며, 6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명 이상이 다쳐 의료기관으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르코프시 군정청은 16일 밤 10시쯤 러시아의 S-300 미사일 2발이 날아와 휴업 중인 의료시설과 인근 건물을 파괴하고, 약 1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손된 하르코프 의료시설/캡처
전쟁 중인 나라들이 자국의 폭격 효과와 피해를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날 하르코프 공습 결과도 양측의 주장을 100% 다 믿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러-우크라 간의 폭격 공방전에선 늘 그랬다.
관심을 끄는 것은 러시아가 이번 폭격의 목표를 '국제 의용군 집결지'로 발표한 점이다. 그것도 용병부대의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프랑스다.
러시아 현지의 몇몇 언론은 지난해 중반 쯤, 프랑스인 100명이 우크라이나의 국제 의용군에 편입돼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과 계약을 맺고 월 500 유로를 받거나, 최전선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 월 3,000 유로를 받는다고 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에 의하면, 2022년 2월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우크라이나는 84개 국에서 11만6,000명 이상의 외국인 병력을 유치했다. 가장 많은 출신 국가가 폴란드와 미국, 캐나다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한 병력의 규모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 프랑스 의용군 집결지가 왜 러시아군의 폭격 대상이 됐을까? 공교롭게도 그 시점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겹친다.
키예프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기자회견하는 장면/사진출처:러시아 TV채널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이 16일 저녁에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영공 방어를 위해 장거리 미사일 '스칼프'(SCALP) 약 40기와 세자르 곡사포, 폭탄 수백 개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러시아의 전쟁 승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내달에는 키예프(키이우)로 가 영국이 최근 서명한 것과 유사한 양자간 안보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12일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와 안보 보장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영국 총리실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해 정보 공유와 사이버 안보, 의료 및 군사 훈련, 국방 산업 협력 등 영국이 지원할 범위를 공식화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우크라이나 현지에서는 '속빈 강정'이라는 인색한 평가도 나왔다. 다만, 영-우크라 안보협정이 G7 국가 중 최초라는 점에서, 또 프랑스가 곧바로 뒤를 따르는 것만 봐도 그 의미는 적지 않아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 중 대(對)우크라 지원의 핵심은 '스칼프' 미사일 제공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이 미사일은 영국에서는 '스톰 섀도', 프랑스에선 '스칼프'로 불리는데, 사정거리는 약 250㎞에 이른다. 프랑스는 스칼프 미사일 50기를 이미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바 있다.
스톰 섀도 혹은 스칼프 미사일(위)와 이 미사일 공격으로 파손된 러시아 흑해함대 '케르치 아스콜드'호/사진출처:위키피디아, 텔레그램
스톰 섀도 혹은 스칼프 미사일의 효용성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 작전에서 확인됐다. 러시아의 흑해함대나 세바스토폴 기지 공격시 이 미사일로 재법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새해 군사전략을 '방어 태세'로 변환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군에게 스칼프 미사일은 앞으로 '기습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다.
영국과 프랑스의 대 우크라 안보협정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추가 지원이 막힌 상태에서,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대우크라 지원책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유럽 차원에서 우크라 지원을 주도해온 EU는 지난달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총 500억 유로(약 73조원) 상당의 우크라이나 장기 지원안에 합의할 계획이었으나, 친러시아 성향의 헝가리에 의해 일단 무산됐다. 내달 초 정상회의를 갖고 이를 승인할 작정이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계속 제동을 걸고 있는 상태다.
미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대우크라 추가 지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은 (의회으로부터 예산 승인을 받지 못해) 이제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자 지원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와 안보협정을 체결하고, 군사지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유럽의 군사·경제강대국인 독일은 아직 대우크라 지원에 미적거리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17일 우크라이나 측이 간절히 원하는 타우러스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재적의원 666명 중 찬성 178명, 반대 485명, 기권 3명였다.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의회의 벽을 넘기에도 한참 못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