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외 2편)
신 휘
한 일 년 쇠죽을 잘 끓여 먹이고 나면 아버지는 송아지의 콧살을 뚫어 코뚜레를 꿰었다. 대나무나 대추나무를 깎아 어린 소의 콧구멍에 구멍을 낸 뒤 미리 준비해둔 노간주나무로 바꿔 꿰는 작업이었다.
코뚜레는 단단했고, 어린 소의 코에선 며칠씩이나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소는 이내 아픈 코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오래지 않아 한결 유순하고 의젓한 소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놈을 몇 달 더 키운 뒤 일소로 밭에 나가 부리거나 제값을 받고 먼 시장에 내어다 파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오십이 다 된 나는 지금까지 코뚜레를 꿰지 못한 어린 소로 살고 있다. 누가 밖에 데려다 일을 시켜도 큰일을 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나 같은 얼치기를 제값 주고 사 갈 위인도 세상엔 없을 것 같았다.
삶이, 그것이 힘들어 앓아눕는 날이 많을수록, 막 코뚜레를 한 어린 소 한 마리 나 대신 엎드려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꿈에 자주 보인다.
뻘밭
물때를 놓쳐버린 고깃배처럼 먼 생의 수평선만 하염없이 보고 서 있다가 더는 출항할 뭣도 없이 지는 해에 그만 발목이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버려진 이곳이 바로 내 생의 뻘밭 아니면 어디겠습니까.
주걱
주걱 하나 닳아 없애는 데 꼬박 사십 년이 걸렸다는 어머니는 부엌 한켠에 신주단지 모시듯 입이 뭉툭한 밥주걱 하나 걸어놓고 사셨다.
⸺ 목숨이란 실로 이와 같다
모질고 찰지기가 흡사 밥의 것과도 같거니와, 그 곡기 끊는 일 또한 한 가계의 조왕을 내어다 버리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대저 쇠로 만든 주걱 하나를 다 잡아 먹고도 남는 구석이 밥에게는 있는 것이다.
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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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휘 / 1971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5년 계간《오늘의 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 『운주사에 가고 싶다』 『꽃이라는 말이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