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1일(목)
* 시작 기도
주님...
한반도가 동서와 남북이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이념과 사상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우선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신앙도 사랑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땅에 속한 것들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으므로 마르고 떨어질 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만물 위에 계신 주님과 주의 말씀 곧 복음만이 세세토록 있을 따름입니다(벧전 1:23-25).
육신에 속한 이 몸뚱아리 역시 쇠하고 죽으면 묻힐 것이나 분명한 것은 복음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올 것을 믿습니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은 남들을 도와주는 착한 일이 아니라 복음의 삶이며 이 복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시류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그 나라를 소망하며 바라는 믿음의 뿌리가 견고하게 하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4:1-19
제목 : 그의 신하(동역자)들은 이러하니라.
1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3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5 나단의 아들 아사리야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6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이더라.
7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1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8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9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10 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그가 주관하였으며
11 나밧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12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13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그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60개의 큰 성읍을 주관하였으며
14 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15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으며
16 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17 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18 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19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그 한 사람만 지방 관장이 되었더라.
* 나의 묵상
겸손은 그리스도인에게 정말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솔로몬은 이 겸손의 덕목을 지닌 자였다.
왕상 3:7절에서 그는 자신을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을 낮추는 모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솔로몬은 수많은 백성을 다스려야 하지만 작은 아이와 같이 미련한 자기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듣는 마음’이었다.
그는 선왕인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귀담아 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그 유언대로 ‘듣는 마음’, 즉 쉐마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였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통해서 그는 산 아이의 친 어머니를 찾아주는 어려운 재판을 지혜롭게 판결할 수 있었으며, 그 재판을 통해서 ‘온 이스라엘’이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 때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수 있었다(4:1절).
폭군은 백성들의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숙이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왕은 백성들의 머리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숙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이 바로 그런 왕이었다.
그리고 솔로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운 사람들을 종교, 정치, 외교, 행정, 경제, 군사 분야에 골고루 등용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니까 나 혼자 이끌어 가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신하들 역시 하나님의 지혜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들을 동역자로 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4절에는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자들이 사독과 아비아달이다.
아비아달은 아도니야의 모반에 함께 한 죄로 인하여 제사장직을 파면 당하였다(왕상 2:27).
그런데 여기에 그의 이름이 올려진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비아달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또한 다윗 왕국 건설에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에 비록 그가 직분을 박탈당하였음에도 그의 이름을 거기에 올려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솔로몬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 위에 하나님을 두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자기 자신을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 여겼으며, 심지어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겸손이 있었다.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가장된 겸손이 아니라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자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자였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고 한 일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일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정말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저 그 겸손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복음에 빚진 자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소개하면서 자기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세우는데 힘썼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았으니까 나 혼자 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었다.
그는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수 있는 동역자들을 요소요소에 세워서 함께 그 일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무조건 사역에 대하여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 위에 그는 주님을 향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결국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무언가 깨달았다고 생각이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을 이루고자 추진해 나가면서 동역자를 세우기보다 나 혼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잔 말 말고 무조건 나를 따라와’ 라는 식이었다.
그것에 따른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쳇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라는 식으로 밀고 나가다가 벽에 부닥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안에 필(feel)이 한 번 꽂히면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밀고 나갔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이다.
은혜를 받은 자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그 은혜를 받은 동역자를 함께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았던 그 영광을 보는 것이다(요17:24).
말씀 속에서 함께 사귐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동역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곧 현재로 누리는 영생(요일1:1-4)이라는 그 진리를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복음생명선교회 대표이신 서형섭목사를 통해서 복음을 받고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서목사님 역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사역할 수 있는 동역자를 세우는 중에 나 같이 부족한 자를 또한 동역자로 세워주셨다.
나는 정말 작은 아이와 같은 자이며, 목사들 중에서도 작은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였다.
그 이유는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고 나서 지금은 국내 목회를 정리하고 베트남에 선교사로 나와 있다.
이곳에서도 주님이 주신 그 복음 전하는 일에 전무한다.
복음 외에는 결코 전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였다.
비록 작은 이민 목회지만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복 중에 복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 주님의 복이 내가 보기에는 작은 목회일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진짜 목회요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는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이곳을 통하여 온누리에 퍼져나가길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 주신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 진리 속에서 또한 동역할 수 있는 은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작고 어리석으며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께서 항상 함께하셔서 제가 속한 공동체가 주님의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함께하는 동역자들에게 크신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 교회의 동역자들도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옵소서.
그들을 존중하며 나가되 하나님 앞에서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 이루실 주님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