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과 국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였을때에
중국은 미국측에 경고를 줬다.
만일 미군이 계속 북진하면 자신들이 개입하겠다고 경고를 줬던 것이다.
하지만, 맥아더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병력을 계속 북진 시켰다.
당시 중국 내부에서는 한국 전쟁 참가를 대부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대만으로 장개석이 도망갔지만, 아직도 운남성에 국민당군이 저항을 하고 있었고,
운남성 이외에도 중국 대륙 곳곳에 국민당 잔당 수십만명이 중국 공산당에 저항을 하고 있었다.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국민당 잔당들이 아직도 중국 대륙 곳곳에서
계속 저항을 하는 마당에 한반도로 병력을 보낸다는 것이 도박이었다.
중국 정부 수뇌들 대부분이 국민당 잔당 문제와 함께 수십년간 이어진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한국전 참전를 결사 반대하고 있었다.
모택동과 중국 인민군 총사령관 팽덕회만 한국전 참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결사반대를 하고 있었다.
이런 반대에도 모택동은 어째서 한국 전에 참전했을까?
첫째 이유는 만주는 당시 소련의 영향권에 있어서
한국전 참가를 계기로 만주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다.
당시 만주를 통치한 것은 물론 소련이 아닌 중국이지만,
모택동의 라이벌이 만주를 통치하면서 모택동에 은근히 견제를 하고 있었다.
만주는 당시 일본이 남겨놓은 산업 인프라가 있었고, 지하자원도 많이 매장된 동네였다.
그런 알짜배기 땅이 소련이 밀고 있는 인물이 통치하니
모택동으로써 권력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택동 입장에선 만주에서의 소련 입김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소련의 참전 요구가 오자, 모택동은 이 기회에
만주에 자신의 영향력을 펼칠 좋은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전쟁 기간에 만주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대신 중국의 중앙정부의 입김이 세지면서 실제 반독립 상태였던 만주가
중앙정부의 통제에 들어갔다.
둘째는 한국 전쟁이 한국측의 승리로 돌아간다면
장차 있을 안보 불안에 중국이 떨 가능 성이 있어서 그것을 차단코자 해서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에 통일된 한국이 있다면
분명히 중국측과 마찰이 생길 운명이다. 과거에 간도지역을 놓고 싸운 전례가 있어서
통일된 한국이 들어선다면 분명 국경분쟁이 생길 수가 있다.
간도에 240만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어서 중국의 입장에선 간도의 한국인들과 통일한국이
연결되어 중국과 분쟁을 일으 킨다면 여간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셋째는 국공내전을 통해 수백만명의 장개석군을 포로로 잡은 상황이다.
이들 대부분은 옷만 바꿔 입고 중공군으로 지내고 잇는 실정이다.
이들을 민간으로 돌려 보내면 이들이 소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서
중공은 군인 신분으로 있게 하여 통제중이다.
이들의 처리가 중공 입장에서 큰 문제였다.
이때에 유엔군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는 상황이라서 중공의 입장에서 국민당군 출신 중공군을
북한 전선에 보내어 소모하는게 낫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실제로 한국전쟁 초기에 북한 전선에 참가한 중공군들 중에
국민당군 출신이 80% 이상이었다.
중공 입장에선 한국전쟁에 진다고 해도
국민당 출신 중공군이 사라진다면 그리 밀질 장사는 아니였다.
실제로 모택동은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이길 가능성은 크게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중공의 최정예 병력들은 양안에 배치되거나 국민당 잔당 토벌에 동원된 상태였다.
이들을 한국전쟁에 참가시키지 않고
아무 쓸모가 없는 애국심도 1도 없는 장개석군 출신 군부대를 참가시킨 것 보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라고 생각 안 한것 같다.
실제로 중공군이 북한에 처음 들어왔을때에
북한군과 소련고문단은 한숨을 내 쉬었다.
북한군은 자신들은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거지들도 이런 상거지들이 있냐는 식으로 보았던 것이다.
누런 군복에 30년대에 생산한 일본식 소총에 화력이라 해봐자
박격포 밖에 없었던 중공군의 모습에 북한 수뇌부들도 이젠 자신들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3류군대가 파병 초기에 큰 전과를 올리면서 38선 이남으로 전선을 내려가게 하자,
중공입장에서도 큰 횡재를 거두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간 지속됨으로써,
중국도 자신의 정예부대를 투입시켰고
전력으로 전쟁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넷째는 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기 위해서 한국전을 참전했었다.
실제로 모택동은 스탈린로 부터 한국전에 참전하면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었고
전쟁 기간 내내는 소련은 중국측에 엄청난 원조를 해주었다.
이러듯 중국은 4가지 이유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3년 동안 한국과 미국하고 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