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옆게시판 안티바이블의 내용이네,,그대가 어줍지 않은 전도성(?)글귀를 올리느니 차라리 여기 있는 내용을 반박할 자료와 근거 그리고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올리게나!
논리를 펼치는 방법을 모르고 그저 주장만 한다면 그대는 여기서 과연 무엇을 얻을수 있을까??
자기만족이라면,,차라리 그대의 교인들에게 써먹게,,
여기선 안통하는 것을 알면서,,그런다면,,
자기기만 일 것이야,,
그게 그대의 종교의 실체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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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라는 것은 기독교의 신이 하느님인 성부(聖父)·예수 그리스도인 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의하면, 신성한 세위(성부,성자, 성령)는 각기 영원하며, 각기 전능하며, 아무도 다른 자보다 크거나 작지 않으며, 각기 하느님이지만, 모두가 한 하느님을 이룰 뿐이라고 한다.
이 교리에 대한 다른 설명들은 세"위"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신의 본성이 내재하는 세 가지 형태라고 강조한다.
삼위일체는 오늘날 기독교의 기본교리로써 신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기독교의 종파는 초대기독교부터, 중세시대의 영지주의,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했다.
기성의 교단들이 이런 종파를 이단으로 몰아붙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라는 것이 사실상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성교단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근거가 없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미트라의 숭배자 였던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종교회의에서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써, 신약속에서는 삼위일체를 찾아 볼수가 없다.
그리고 정작 신약의 곳곳에서 예수와 하나님이 동일한 것이 아님이 여실히 드러난다.
325년 니케아공의회(公議會)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되었으며,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추인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식 교의로 확립된 삼위일체설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우선 그 역사적 실체부터 알아야 하지만, 필자의 편의에 의해서 그 역사적 부분에 대해서는 13장의 "콘스탄티누스와 종교회의"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번장에서는 신약의 구절로써 삼위일체가 허구임을 증명할 것이다.
삼위일체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비화들은 13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신학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은 삼위일체가 성경적이지 않고, 그것이 매우 예민한 문제임을 잘알고 있다.
그러한 것은 각종 백과사전, 심지어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카톨릭의 사전에도 삼위일체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역사적인 조작임을 순순히 시인하고 있다.
권위있는 각종 사전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내린 한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백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쉬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신명기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 ... 4세기 말에 이르러 ... 삼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후 그대로 유지되었다." [NEW Encyclopaedia Britannica - Macropaedia /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세위 속의 한 하나님'이란 교리는 제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체계화되지 않았으며, 확실히 온전하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계화된 바로 이 교리가 처음으로 삼위일체 교리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사도 교부들 간에는 그러한 경향이나 사조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노력같은 것 조차 전혀 없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Mc Graw Hill]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성경에서 세 신성한 위를 합쳐서 표시한 단일 용어는 이제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트리아스] (라틴어 역어는 트리니타스)라는 단어는 주후 180년경의 안티오크(안디옥)의 테오필루스에게서 처음으로 볼 수 있다. ... 그후 얼마 안되어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 트리니타스가 나타난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하지만, 그 말 자체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삼위일체를 가르쳤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카톨릭 저작물인 '트리니타스:성 삼위일체 신학 백과사전'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사용한 몇몇 단어를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 그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용례로부터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는 그 단어들을 삼위일체 신학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Michael O'Carroll / Trinitas:A Th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Holy Trinity]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유대교에서 나온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엄격히 (하나님은 한분의 인격체라고 믿는) 유일신파였다. 예루살렘에서 니케아에 이른 길은 거의 곧은 길이 아니었다. 제 4세기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The Encyclopedia Americana]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좀 더 고대 사람들의 시대에 속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 사상들을 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합리적인 철학적 삼위일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 희랍 철학자[플라톤, 기원전 4세기]의 개념을 ...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M. 라샤트르 편. 신 백과사전. 파리]
예수회의 죤 L.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서 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위격들의 본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는 희랍 철학 용어인 '위'와 '본성'이란 용어로 정의된다. 사실상 그 용어들은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정의는 일부 신학자들이 그러한 용어들과 '본질' 및 '품성'과 같은 다른 용어들을 하느님께 그릇되게 적용한 오랜 논쟁의 결과로 생겨났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성서 도해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 그러한 말은 제 4세기까지 교회의 신학에서 공식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J. D. Douglas /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 IVP]
'베른하르트 로제'는 '간추린 크리스트교 교리사'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에 관한 한 실제의 삼위일체 교리를 찾아 볼 수 없다."[Bernhard Lohse / A Short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 Augsburg Fortress Publishers, Publishing House of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에는 발전된 삼위일체 교리가 들어 있지 않다. '성서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동등한 본질에 속한다는 명확한 단언이 없다'라고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하였다....원시 크리스트교에는 나중에 신경에 상술된 것과 같은 명백한 삼위일체 교리가 없었다." [Colin Brown, Ph.D.(Edt) /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 Zondervan Pub House]
'포트만'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식적 혹은 공식화된 삼위일체 교리, 한 하느님 안에 동등하고 신성한 세 위가 있다는 명백한 가르침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 우리는 동일한 지고의 신안에, 신성한 생명과 활동의 주체인 별개의 세 존재가 있다는 식의 삼위일체 교리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Portman / The Triune God]
예일 대학교 교수 '워시번 흡킨스'는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서 이렇게 확언하였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와 바울이 알지 못한 것이 었음이 분명하다 ... 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 Washburne Hopkins / Origin and Evolution of Religion / Yale U.P]
이상은 권위있는 사전과 책들에서 내린 삼위일체에 대한 정의들이다.
여러분께 백과사전이 있다면 삼위일체를 찾아보길 바란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다 로마에서 박해받은 아리우스파의 주장처럼 성경에는 삼위일체를 무색케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등장한다.
1세기 신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로 받아들였으며 예수를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알고 있었지, 예수를 창조주와 동일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성서를 철저히 분석하여 철저하게 성경 말씀만을 신봉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예수 역시 자신이 여호와라고 말한적이 없다.
이제부터 그러한 성경구절을 파헤쳐보자.
요한 복음에 보면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30절]
이 구절은 어찌보면 삼위일체를 증거하기에 합당한 구절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오히려 이것은 삼위일체를 증거할만한 자료가 아니라,부정하는 구절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위와같이 스스로를 신격화 시키는 예수에게 유대인들이 화가나서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한복음 10장33절]
그러자 예수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 34~38절]
놀랍게도 예수는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들과 대조시키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냐고 항변했다.
개역한글판 성경의 뜻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못하다면 아래 공동번역판의 같은 구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 너희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34~38절-공동번역판]
예수는 결국 스스로를 구약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처럼(율법에 이르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다 신(神)이라고 하였는데...처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구약은 물론, 신약의 곳곳에 등장한다.
창세기 6장 2∼4절,욥기 1장 6절, 욥기 2장 1절, 욥기 38장 7절 , 갈라디아서 3장 26절, 로마서 8장 14절, 로마 8장 19절, 마태 5장 9절등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인간)을 가르켜 신(=엘로힘)이라고 한 구절도 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 82장 6절]
그럼 삼위일체에 어긋나는 다른구절을 계속 살펴보자.
길을 떠나는 예수에게 어떤사람이 "선하신 선생님....."하면서 예수를 붙잡았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장 18절]
벌써 이 한구절 만으로도 예수와 여호와가 동일한 위격이 아님을 여실히 나타내지 않은가?
그래도 믿지 못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다른 구절도 계속해서 끄집어 내겠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장 32절]
종말의 시기는 예수조차도 모르고 오로지 여호와만이 알고 있다고 언급되어져 있다.
즉, 예수와 여호와는 동등한 위격이 아닌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한복음 8장 42절]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한복음 12장 49절]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28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린도 전서 11장3절]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5장 28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한복음 5장 19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5장 20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9절]
여기서 예수는 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피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면, 그러한 기도는 의미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에게 기도하였을 것이며, 자기의 뜻이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되었을 것이아닌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장 15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위일체론자들은 "먼저 나신"이란 말은 으뜸가는, 가장 뛰어난, 가장 탁월한 이란 뜻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창조물의 일부가 아니라 창조물과 관련하여 가장 탁월한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또한 삼위일체 교리가 사실이라면, 아버지와 성령 역시 모든 창조물 중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성서는 아들에게만 이 표현을 사용한다.
'먼저 나신'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가족 중에서 장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골로새서 이전에, '...의 먼저[처음] 난 자[것]' 혹은 "장자"란 표현이 약 30회 이상 나오며, 그 말이 생물에게 적용된 경우에는 매번 같은 의미가 적용된다.
즉 먼저 난 자[것]는 그 집단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 한사람이며, "바로의 장자"는 바로의 가족 중 한 사람이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그 짐승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골로새서 1:15에 나오는 그 말에 특별한 다른 의미를 적용하는가?
그것은 성서의 용법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이미 고수하고 있고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에 기인한 것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장 58절]
위 구절도 앞에서 지적한 골로새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할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3절]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에게 큰 자리를 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수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개역한글판]의 뜻이 모호한 것을 고려해서 공동번역판을 다시 올린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마태복음 20장 23절-공동번역판]
예수는 그들에게 자리를 약속할 권한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장3절]
예수가 승천한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일컫는다.
이들이 삼위일체를 믿었다면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다윗)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장 23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1절]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린 것은 여호와라고 언급해 놓았다.
이상은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한 위격이 아님을 증거하는 구절들이다.
히브리어 단어 샤다이란 말과 희랍어 단어 판토크라토르는 둘다 "전능자"로 번역된다.
원어의 두 단어는 거듭해서 아버지인 여호와에게만 적용된다. (출애굽 6:3 ; 계시 19:6)
그러나 둘 중 어느 표현도 아들이나 성령에게 적용된 적이 결코 없다.
성령을 언급하는 몇몇 성구들은 성령이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성령이 '가르치고','증거하고','말하고','듣는' 보혜사(희랍어 paraclete- "돕는자", 신세 ; "협조자", 공동)로 언급되어 있다. (요한 14:16,17,26 ; 15:26 ; 16:13)
그러나 다른 성구들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성령으로'[침례]를 받'거나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려준다. (누가 1:41 ; 마태 3:11 ; 사도 10:38)
성령에 대한 후자의 언급은 명백히 인격체에 적합하지 않다.
전반적인 성서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성구들을 다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치적인 결론은 무엇인가?
성서에서 지혜, 죄, 사망, 물 및 피를 의인화한 것처럼, 여기 첫부분에 인용된 성구들 역시 여호와의 활동력인 성령을 의인화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아버지의 고유한 이름이 여호와라고 알려 준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라고 알려 준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에 대한 어떤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이처럼 인정한다.
"신약의 대부분의 성구들은 하느님의 영을 어떤 인물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나타낸다.
특히 그 사실을 하느님의 영과 하느님의 능력이 대응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967년 판, 제 13권, 575면) 그 사전은 또한 이와 같이 알려 준다.
"호교론자들(제 2세기 희랍의 그리스도인 필자들)은 그 영에 대하여 아주 모호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아주 비인격체로 말했을 것이라고도 상당히 기대할 수 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이제는 성령과 예수가 함께 하지않고 따로 행동한다는 구절을 언급하겠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7장 39절]
요한복음의 위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가 아직 받지 못했다는 영광이 성령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신에게서 능력을 받아 사람들에게 행하는 존재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장 55절]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장 56절]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하늘의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성령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요한 계시록 7장10절, 22장1~3절에도 예수와 여호와가 함께 등장하지만 성령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장 33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선지자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또, 성령은 예수와 하나가 아니요, 신에게서 성령을 받고 예수를 인도하기도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장1절]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누가복음 4장 1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22절]
그리고, 성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가 사용한다는 구절도 자주 등장한다.
즉, 성령은 신의 뜻을 행하는 도구이지 신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 104 장 30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主)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4절~11절]
여기서는 교회내에서 부여된 신자간의 각각의 사명을 성령의 은사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은사일 뿐이고,은사는 여러 가지일수 있지만, 신 자체는 하나라고 못박고 있다.
즉, 성령은 신이 부여하는 은사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모든 좌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장 31~32절]
위의 [개역한글판]성경 구절의 표현이 애매하므로 [공동번역판]을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그러므로 잘 들어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공동번역판]
정말로 이 구절로써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모순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성령은 예수보다 더 클것이기 때문이다.
'신학 연구'에서, 예수회의 '카알 라흐너'는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God)은 성령에 대하여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 또한 문자적으로, 하나님(the God)가 성령(holy spirit)에 대하여 사용된 적도 전혀 없다." [Karl Rahner / Theological Investigations]
'신 카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에서는 분명히... 하느님의 영을 한 위 혹은 한 인격체로 나타내지 않는다...하나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 일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로 구분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야훼의 호흡이 겉으로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를 믿지도 않았으며,그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필자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 까지만 해도,초대교회의 사람들에게 삼위일체의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기원후 165년경에 사망한 순교자 유스티아누스는 예수를 가리켜 만물을 만드신 여호와와는 다른 '창조된 천사'라고 불렀다.
예수는 여호와 보다 낮은 위격이며, "창조주께서 ... 그에게 행하고 말하도록 뜻하신 것 외
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유스티누스는 말하였다.
200년경에 사망한 이레나에우스는, 인간 이전의 예수는 여호와와는 별개의 존재이며 여호와보다 낮다고 말했다.
200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의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불렀지만 여호와는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홀로 아들이 "홀로 전능하신 아버지의 바로 다음이지만, 그분과 동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230년경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버지는 아들(또 다른 존재)과 다르다. 그분이 더 크시기 때문이고, 낳은 이는 태어난 이와 다르기 때문이며 보낸 이는 보냄을 받은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 만물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셨다."라고 말했다.
기원 230년경에 히폴리투스는 "한 분이신 하느님, 처음이자 유일하신 분, 조물주, 만물의 주"라고 말하면서, 그분과 동년배(연령이 같은 자)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분은 스스로 홀로 계셨던 분이며,자신의 뜻대로,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200년경의 오리게네스는 "성부와 성자는 두 실체 ... 즉 그 본질에 있어서 두 개체"이며 성부와 비교할 때 성자는 매우 작은 빛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상의 증거를 요약하면서, 앨번 램슨은 '초기 3 세기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 널리 보급된 삼위일체 교리는 ... 유스티누스의 용어로부터 아무런 뒷받침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 말은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모든 교부들에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탄생 후 3세기 동안의 모든 크리스트교 필자들 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 성령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하다거나, 단 하나의 본질이라거나, 하나 속의 셋이라거나, 현재 삼위일체론 자들의 어떤 의미로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오히려 정 반대이다." [Alban Lampson /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따라서 성서와 역사의 증거는 삼위일체가 성서 시대와 그후 여러 세기 전체에 걸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원후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는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하다는 것이 공인된 회의였지, 성령에 대한 언급은 아예 제기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중에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아타나시우스 조차도 삼위일체를 주창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서는 성령따위는 아예 언급이 되지도 않았고, 예수의 본성에 대해서만 결론을 내렸을 뿐 이었다.
물론,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인되었다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 삼위일체가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을 숭배한다 ... 성부도 신이시며, 성자도 신이시며, 성신도 신이시다. 그러나 세신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신이 계시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신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경은 12세기까지도 동방의 교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17세기 이래로, 학자들은 아타나시우스 신경이 아타나시우스(373년 사망)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필시 5세기 중에 프랑스 남부에서 쓰여졌을 것이라는 점에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 신경은 일차적으로 6세기와 7세기 중에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9세기 독일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사용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로마에서 사용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역시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최근의 연구로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와 아를의 대주교 성 카에사리우스의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 저작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5세기경까지 갈리아 남부지방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본질에 대해서 결정이 난후에도, 예수가 여호와와 동등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한동안 우위를 되찾았으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 회의 신조를 자신의 통치 영역 안에 서 표준으로 확립하였으며, 그 공식 문을 분명히 하기 위해 기원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 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 공의 회에서, 성령을 여호와와 예수와 똑같은 수준에 놓기로 합의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삼위일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후에도, 삼위일체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조가 되지 못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반대하였으며, 그로 인해 로마로부터 폭력적인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삼위일체가 규정된 신조로 받아들여진 것은,여러세기가 지난 다음의 일 이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론이 온전히 발전한 것은 서방에서,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의 용어들로 설명을 시도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크리스트교 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그렇다면 도데체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어디에서 온것인가?
눈치채신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동방의 삼신사상이 그대로 기독교에 유입된것이었다.
이집트의 호루스, 오리시스, 이시스의 삼신사상이나,메소포타미아의 삼신,힌두교의 삼신등 고대 중근동에서는 삼신사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힌두교 신과 의식의 상징'에서는 힌두교의 삼위일체에 관해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시바는 삼위일체 신들 중 하나다. 그는 파괴의 신이라고 한다. 다른 두 신은 창조의 신 브라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다... 이 세 가지 작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 신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A. Partasarati / The Symbolism of Hindu Gods and Rituals / Bombay]
고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는 삼신 혹은 삼위일체의 신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라루스 신화 백과사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그와 같은 신들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한다.
"우주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졌는데, 각 구역이 한 신의 영역이 되었다. 아누의 몫은 하늘이었다. 땅은 엔릴에게 주어졌다. 에아는 물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들이 합쳐서 위대한 신들의 삼신을 이루었다."
'지크프리트 모렌츠'의 이집트의 종교'에서는 이집트의 삼신사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삼위일체는 이집트 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 세 신을 결합하여 단일 체로 취급하면서, 단수로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집트 종교의 영적 힘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Morenz, Siegfried / Egyptian Religion / Cornell University Press]
이집트 알랙산드리아출신의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3세기말과 4세기초 교직자들이 동방의 영향을 받앗을 것이다.
지크프리트 모렌츠는 "알랙산드리아 신학을, 이집트 종교 유산과 크리스트교 사이의 중재자일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기본의 '기독교의 역사'의 머리말에서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교 사상이 그리스도교에 의해 정복당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교가 이교 사상에 의해 부패되었다는 것도 동일한 사실이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신에 대한 순수한 개념은 로마 교회에 의해 삼위일체라는 불가해한 교의로 변질되었다. 이집트인들이 만들어 냈고 플라톤이 이념화한 다수의 이교 신조들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Edward Gibbon / History of Christianity]
'종교 지식 사전'은, 삼위일체가 "이교에서 빌려 온 타락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 믿음에 접목"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의 이교 사상'(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책에서도 '삼위일체'가 전적으로 이교에서 기원한 것 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제임스 헤이스팅스는 '종교 및 윤리 백과사전'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인도의 종교에서 브라마, 시바, 비슈누의 삼위일체군(群)을 접하게 되며 이집트 종교에서는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의 삼위일체군을 접하게 된다 ...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생각한 것은 역사상의 종교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최고의 실체 혹은 궁극적 실체에 대한 신 플라톤 주의의 견해이다." [Hastings, James (Editor) /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 Charles Scribner's Sons]
그렇다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삼위일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부터 347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플라톤이 삼위일체를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삼신 신앙을 포함하는 철학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이전 시대 민족들에게로 소급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들을 재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세 위격 혹은 신성한 세 위를 산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합리적 철학적 삼위일체인 것으로 보인다....신성한 삼위일체에 대한 이 그리스 철학 개념은...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Nouveau Dictionnaire Universel]
'사프-헤르쵸크 신 종교 지식 백과사전'은, 이 그리스 철학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준다.
"로고스와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들은 그리스 교부들로부터 그 형태를 물려받은 것인데, 그 교부들은...플라톤 철학으로부터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밭았다.그런 잘못과 타락한 점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교회안으로 슬그머니 들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 3세기의 교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후기에 형성되었으며,...그것이 점차 자라서 플라톤을 신봉하는 교부들의 손을 거쳐 크리스트교에 접목되었다."
기원후 3세기 말엽에는, 초대교회와 신 플라톤 주의 철학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연합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대중화된 플라토니즘'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돌프 하르낙'의 저서 '교의 역사 대계'에서 하르낙의 설명에 따르면, 교회의 교리는 '헬레니즘'사상의 토양에 확고하게 뿌리기 위해 이교적 사상을 흡수했다고 한다.
"사실상 교회는 자체 내에 헬레니즘식 추론, 미신적 견해 및 이교의 신비적 숭배 관습을 합법화하였다." [Harnack, Adolf / Outlines of the Sitory of Dogma / Little Brown & Co, Boston]
'삼위 일체설의 교의를 믿지 않는 성명(聲明)'에서 '앤드루스 노턴'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교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근원이 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임을 발견할 수가있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리가 아니라, 후기 플라톤 학파가 꾸며낸 것이다."[Norton, Andrews / A STATEMENT OF REASONS FOR NOT BELIEVING THE DOCTRINES OF TRINITARIANS / Brown, Shattuck, And Company / Hilliard, Gray, And Co.]
삼위일체론은 복음서나 서신들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그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들에게,기존의 교회는 떳떳하게 성경구절을 내밀며 그들을 잠재울수 있을텐데 말이다.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종파를 비판할때,그 들의 수혈거부나 집총거부 등에는 당당하게 비판을 하면서도, 삼위일체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묵묵무답이다.
가끔씩 삼위일체를 증거한답시고,내놓는 구절이 몇 개 되기는 하는데, 다음 부분에서 다루기로 하자.
교회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니, 말일성도 그리스도 교회니, 하는 종파들에 대해 비방하는 주요근거가 삼위일체설을 부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위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신 여러분들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느정도 의문감이 생겼으리라본다.
그렇다, 성경에 삼위일체는 없다.
종교회의에서 투표로 결정된 사항일 뿐인 것이다.
필자는 예전에 기독교사이트에서 안티활동할적에 여호와의 증인과 여러번 만난일이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수십개의 성경구절을 끄집어 내서 삼위일체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삼위일체가 성경에 나온다고 성경구절을 끄집어 낼 자신이 있는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들이 제시하는 방대한 양의 성경구절에 비해서, 기독교계가 제시하는 삼위일체의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고,그나마 억지주장에 가깝다.
이미, 신학을 공부한 신학생들과 목사들 자신도 성경에 삼위일체가 없고, 그것은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실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럼 기독교계가 제시하는 삼위일체의 근거를 소개함과 동시에, 그것을 필자가 반박해 보이겠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장 6절]
신약에는 삼위일체에 상반되는 수많은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구절만큼은 놀랍도록 삼위일체에 합당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상의 오류일뿐이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KJV성서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Philippians 2: 6 -KJV]
해석하자면,
"그는 신의 형태로 존재했으며, 신과 동등됨을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빌립보서 2장 6절 KJV판]
여기서 희한하게 '약탈'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졌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구절에는 '약탈하다'라는 단어인 'Harpagmon'(하르파그몬)이라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헬라어의 '하르파그몬'의 어근인 'Harpazo'는 '약탈하다','강탈하다','잡아끌다'라는 뜻인데, 기독교인들은 이 단어를 '휴거'라는 용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Harpagmon'은 '동등하다'라는 뜻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로버트슨 니콜'의 '해설자의 그리스어 성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하르파조'(Harpazo)혹은 하르파그몬을 포함한 어떤 파생어가 '가지고 있는' 즉 '보유하는'의 의미를 나타내는 성구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항상 '탈취하다','강제로 빼앗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의미인 '취하려하다'에서 '굳게 보유하다'라는 온전히 다른 의미로 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W. R. Nicoll / The Expositor's Greek Testment.]
즉, 예수는 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신의 말씀을 전하고 신처럼 행동했지만), 신과 동등함을 나타내는게 약탈이 아니라고(=신을 모독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상의 오류일뿐인 것이며, 오히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구절인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삼위일체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05]
위에서 바울은 사람과 여호와 사이의 중간에 존재하는 자가 예수라고 말한 것이다.
즉, 인간 보다는 높으나, 하나님보다는 낮은 것이 예수이다.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1절]
요한복음 1장은 삼위일체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역시 번역상의 문제일뿐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함께계셨으니-'함께'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는 본디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의미이며,마주보고 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를 뜻한다."
즉, 함께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한다.
게다가 말씀은 여호와를 향해서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위의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은 없다.
즉, 삼위일체의 교리가 아직성립하지도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겠다.
예수가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언급한 [골로새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필립 B. 하너는 '성서 문헌지'에서 '특성을 나타내는 무관사 서술 명사; 마가 15:39과 요한 1:1'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것과 같이 "동사 앞에 무관사 서술어가 나오는" 절들은 "의미상 주로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로고스(말씀)가 테오스(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절은 '말씀은 하느님과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Phillip B Harner /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따라서, 이 구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테오스라는 단어에 정관사(호)가 없고 그 단어가 그리스어 문장에서 동사 앞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한복음 1장1절을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번역자들도, 동사 앞에 단수 무관사 서술 명사가 나오는 다른 구절들을 번역할 때는, 부정관사(a, an)를 주저없이 사용한다.
따라서 「KJV」에서는 모두 요한 6장 70절에서 가롯 유다를 '마귀'(a devil)로 언급하며, 요한복음 9장17절에서는 예수를 '예언자'(a prophet)로 묘사한다.
예수회의 죤 J.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서 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엄밀히 말해 '말씀은 하느님[=아버지]과 함께 계셨고, 하나의 신성을 지닌 존재이셨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즉,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말씀(로고스)'는 '만물에 앞서 태어난 창조물'이지, 여호와와 같은 본질의 것이 아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과 마찬가지로 '신의 창조의 시작'일뿐인 것이다.
요한복음의 '시작'(희랍어, 아르케)이라는 말은 예수가 여호와의 '창조를 시작하신 자'가 아니라, 신의 모든 창조물의 시작으로서 예수는 신의 첫 번째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계에서 제시하는 또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1서 5장 5~8절]
이것 역시 삼위를 표현한 구절이 아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을 증거하는 구절로, 그는 물과 피로써 온것이라고 증거하는 구절일뿐이다.
'물'과 '피'가 어떻게 '성부'와 '성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즉,'성령'의 감화를 받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야하며, 주의 성만찬에 참여하여 십자가의 피를 나누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삼위일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구절이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6절,26절,누가복음 1장 35절,마태복음 28장 19절등의 구절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이 한구절에 모두 등장한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오죽이나 삼위일체를 증거할만한 구절이 없으면 그런 것을 내세울까?
'맥클린톡'과 '스트롱'의 '성서, 신학 및 교회 문학 백과 사전'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그런 구절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성구는 그 자체만으로는, 언급된 세 주체의 인격성 또는 동등성 또는 신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M'Clintock, Rev. John and James Strong /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 / Baker Book House]
예를들어 아래와 같은 구절도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디모데전서 5장 21절]
위의 디모데전서에서는 한구절에 '하나님'과 '예수'와 '천사'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와 '천사'들은 삼위일체를 이루는가?
그것으로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또한,삼위일체론자들은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에서 신의 명칭이 복수형으로 등장한다는 것으로 삼위일체를 증거하려고 한다.
복수형인 '엘로힘'과 '우리'라는 신의 언급이 삼위일체의 암시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하게 그것은 신학적으로 히브리어에서 여기에 나오는 명사의 복수형은 존엄 혹은 탁월성을 나타내는 장엄복수형이다. (참조. 성 조셉편 「성서 사전」, 330면; 「신 가톨릭 백과사전」, 1967년판, 제5권, 287면.)
그 말은 하나의 신(神) 안에 여러 위들이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예를들면, 잠언 1장 20~33절에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복수 명사로 나타냈다.
즉, 장엄복수의 표현인 것이다.
'"지혜”는 통상 단수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복수로 나온다. 이는 (인간이나 사물의) 본성 또는 성격을 강조하는, 이른바 ‘강조형 복수’(라틴말에서는 pluralis intensitatis)이거나, 가나안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새번역성서 주석.1992.분도출판사]
또, 사무엘상 28장 13절에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라는 구절이있다.
이 구절은 사무엘의 영혼과 만나 보려고 했던 사울에게 접신한 무녀(巫女)가 사울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의 '신'은 엘로힘으로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유령 즉, 영적인 존재를 말한 것이다.[뉴톰슨 관주 주석성경-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1986. 성서교재 간행사]
여기서도 장엄복수가 쓰여졌다.
또,열왕기 상 18장 27절에는 '바알'을 가르켜 복수인 엘로힘으로 지칭한 구절도 있으며,사사기 16장 23~24절에는 블레셋인들의 '다곤'신도 엘로힘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수의 거짓 우상 신들을 언급할 때, 엘로힘(신들)과 엘로헤(~의 신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출애굽기 12: 12, 20: 23)
출애굽기 4장 16절, 7장 1절에서는 모세는 아론과 파라오에게 자신이 하나님(엘로힘)의 역할을 하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즉,엘로힘이나,복수적인 신의 명칭이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희랍어에는 '존엄 혹은 탁월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에서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은 엘로힘에 대응되는 말로 '호 데오스'(단수형)를 사용하였다.
예수가 신명기 6장4절을 인용하여 말한 그의 대답이 들어 있는 마가 12장29절에도 마찬가지로 희랍어 단수형 '호 데오스'가 사용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장엄복수일뿐이다.
예수회 수사 에드먼드 포트먼은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이렇게 인정한다.
"구약은 ... 성부이자, 성자이자, 성령인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하여 명백하게 든 혹은 넌 저시 시사해 주는 방법으로든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 어느 성서 필자도 지고의 신안의 삼위일체의 존재를 어렴풋이 라도 알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 ...구약에서 인격체들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나 전조 혹은 베일에 가린 표지들을 찾는 것은 성서 필자들의 말과 의도를 넘는 것이다." [Edmund Portman / The Triune God]
'성서 사전'의 '월리엄 스미스'는 구약의 복수적인 신의 명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엘로힘이, 지고의 신 안에 있는 위들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것이 라는 괴상한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문법 학자들이 장엄의 복수라고 부르는 것이나 하나님의 힘의 충만함, 그리고 하나님이 나타내는 능력 전체를 지적하는 것이다." [William Smith / A Dictionary of the Bible / The S. S. Scranton Company.]
'미국 셈어 셈문학 저널'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단수 동사 술어와 결합하며, 한 정사로 단수 형용사를 한다.그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엘로힘이란 칭호는 창조 기록 가운데 35회 나오는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행하신 것을 묘사하는 동사는, 언제나 단수이다.(창세기 1: 1~2: 4) 따라서, 엘로힘은 위대함과 위엄을 묘사하는 장엄의 복수로 설명되어야 한다." [The American Journal of Semitic Languages and Literatures]
'신 카톨릭 백과사전' 역시 같은 의견을 말한다.
"성 삼위일체 교리는, 구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많은 성경의 구절들을 나열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는 여호와와 동등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미 나열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볼때 신약의 기자가 복음서들을 작성할 때까지만해도 삼위일체의 교리가 기독교에 정립되지도 않았음을 알수가 있다.
오히려 각각의 삼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점만 더욱 부각된다.
이번장을 쓰면서 필자는 예전에 만났던 여호와의 증인을 여러번 머릿속에 떠올렸다.
개신교들은 과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그들을 이단이라고 부를 자격이나 갖추엇는가?
개신교도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료를 반박할 자신이 있는가?
종교개혁당시 카톨릭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개신교는,
당시의 카톨릭으로부터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이라고 불렸었다.
카톨릭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신교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국교가 되었던시절 영국의 청교도들은 믿음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동하기까지조차 했다.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산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던가?
카톨릭에게서 이단이라고 배척받았던 개신교가, 이제는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서로간에 이단이라며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진짜 배척받아야할 기독교의 이단이 있다.
이XX목사처럼, 신도들을 현혹시켜서 물질과 육체,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사이비목사들, 이런 자들은 이단으로 배척당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교리가 약간 다르다는 것으로 배타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한국의 카톨릭이 "개신교는 이단입니다"라고 주장하는걸 보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한심한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이단은 없다!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기독교의 추한 모습만 있을뿐.
성경을 자기멋대로 해석하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십일조나 걷어가는 주제에, 그대들이 이단이라고 과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나 갖추었는가!
첫댓글 기독교는 모두가 이단인 터에 이단이 따로 있겠소? 여호와나 예수나 다 같은 악신이니 그 이름으로 추종하는 자는 모두가 악인들일 수 밖에 없다오. 가증스러운 위선 인간들로 가까이 안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오. 나는 교회 앞을 지날 때면 항상 침을 뱉는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