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호산나 부르자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기사의 행적과 천국비유를 포함하여 그 가르치신
말씀들은 모두 공관복음(사복음서) 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의 일이지만 그것은
재림때 행하시게 될 일들에 대한 비유라는 점부터 밝히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나귀새끼를 타고 가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자 마자 성전 안에서 사고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사그리 뒤엎어 버리고 “내집은 기도하는 집이 될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완전히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예수님은 재림때 명실공히 왕중 왕이시며 예루살렘 성은 재림때 지상천국을
다스릴 통치보좌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장사꾼들을 꾸짖어 내쫓으시고 본래의
기도하는 집으로
복원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제사에 쓰일 여러 가지 동물들과 물건들을 바치라고
명하셨으나,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상전과 종의
관계에서 상명하복의
율법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친구관계, 혹은 부자 관계가 되는 게 구원이며 목적이며
본질입니다. 그리고 물질을 바치는 게 아니라 사람만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게 본질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께 본질로 바쳐질까요?
기도로 바쳐집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체널입니다. 즉 기도란 하나님의 염원과
나의 염원이 하나로 통일적으로 융합되는 “신인합일” 관계를 뜻합니다.
기도 역시 외형으로 나타냈던 종래의 그런 행위적 기도라면 율법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제는 옳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 이라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성전된 내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염원으로써만(기도로써만) 하나님과 자유한 내가
하나되는 신일합일
관계를 이룹니다.
아무 장애물이 없이 하나님과 자유한 내가 하나로 만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예수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며 그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염원과 나의 염원이 하나로 포개지는 합일이 올바른 본질적 기도이며
구원이며 천국입니다. 즉 예루살렘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며 구원의 천국이 됩니다.
그처럼 기도하는 집이 되며 구원과 천국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에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재림주도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게 됩니다.
과거엔 문자 그대로 육적이었지만 오늘날은 그것이 영적으로 풀어지기 때문에
나귀새끼는 참 볼품없는 몰골로써 오늘의 예수님이 그만큼 겸손하여 낮은 자로
오신다는 뜻입니다.
진짜 재림 예수님이 나귀새끼 타고 오시는게 아니라,
이사야에서도 예언되었듯이, 얼굴을 가리움 받고 보지 않음을 당한 것처럼
그분 자신이 멸시천대 받는 빈천한 자로 오시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즉 나귀새끼에게는 탄자가 있는데 탄자는 말씀을
뜻합니다.
때문에, 얼굴을 가리움 받고 보지 않음을 당한 것 같이 경멸스런 나귀새끼
같을지라도 그에겐 오늘날 우리들이 받아 먹고 구원 받아야할 진리의
새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진리의 새 말씀이 있는 나귀새끼 이므로,
천국보좌에 앉아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마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아이들은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며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데
반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것을 분해 했을까요?
“호산나” 의 뜻은 “구원해 주시옵소서” 입니다.
아이들이란 실제 아이들이 아니라,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한 자들로서
재림 때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을 받아드리는 택한자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오늘의 교만한 교권주의자들을 뜻합니다.
나귀새끼로 오시는 오늘의 재림주는 낮고 천한 자이므로 아무도 그가
재림주이신 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즉 재림주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연막을 치고 누설해서는 안되는 천기로 오시는 분입니다(그분은 겸손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탄 자, 즉 “진리의
새말씀” 있는데, 진리의
새 말씀을 알아보는 자들은 아이들 같이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한 자들만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그런 자들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시는
그분을 향해 “구원해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호산나” 를 외쳐
불렀던 것입니다.
즉 호산나란 그분에게 호감을 갖고 진리의 새 말씀으로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원해 주시옵소서 라는 뜻의 호산나 소리를 듣고 있는
오늘의 교만한 교권주의 자들은 몹시도 불괘할 수 밖에 없을 터이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분해 했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왕중 왕이십니다. 만일 그분이 왕 중 왕답게 명실공히 문무백관이라도
거느리고 백마 탄 황제로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다면 오늘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분히 여기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호산나” 를
불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의 재림예수님은 그런 교만한 자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멋진 백마를 타지 않습니다.
볼품없고 멸시 받는 나귀새끼를 타고 오십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청결한 택한자들(아이들)은 나귀새끼를 타신 그분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 를 외쳐 부릅니다.
오늘의 우리가 곧 그런 아이들이 되어 “호산나, 호산나!” 를 부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