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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집념은 그의 고독
기화는 눈시울을 좁힌다. 서편으로 기우는 햇살이 눈에 부셨던 것이다. 햇살뿐만 아니라 바람에 펄럭이는 서희의 연회색 망토자락과 머리에 쓴 순백색 새틴 머플러도 눈부셨다. 서울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복장 때문이지만 긴접을 허용치 않는 위엄과 성숙한 아름다움은 너무 현란하였다. 예날의 서희는 꽃같고 구슬같이 영롱하였는데 북변의 바람 탓일까, 낯선 남의 땅, 남의 산천이기 탓일까. "너는 이곳 물정을 몰라." "..." "어디 조선뿐이겠느냐? 일본은 멀지 않은 앞날 중국도 먹어치울게야 그런 힘 앞에 네가 믿는 신령이 밤새 군량미를 쌓아주고 산을 무너뜨려 왜병을 몰살이라도 하게 한다면, 그야 모르지. 두 주먹과 심장 하나 가지고 목이 터지게 외쳐보아. 단 한 명의 왜병도 죽어넘어지진 않어. 혜관이라는 중 비록 시주걸립 하는 빈승 이나 세상사에 문리가 나 있어서 이곳 김훈장보담 시계가 넓어서 씨원하더구나." "하오나, 천한 계집이 뭘 알겠사옵니까만 장부라면 뜻을 잊고 보신만 하며 세월을 보낼 수 없는 일 아니오이까?" "나는 내 힘으로 내 잃은 것을 찾을 게야. 그래 이상현 그 선비님께서 최서희라는 계집, 천하의 악종이란 말씀 아니 하시더냐?" "설마하니," 그러나 기화는 얼굴을 붉힌다. '최참판네 여인 아니냐? 서희는 오대 육대, 최참판네 여인들의 마지막 꽃, 야차 같은 계집이지.' 상현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옹졸한 사내니까 그런 말 아니 했을 리 없지. 허나 눈썹 하나 까딱할 최서희겠느냐? 실속 한푼 없는 주제 이마빡에 핏대 세우는 무리들한테 동조할 나 아니니라. 그랬을 양이면, 그리 심약한 최서희였었다면 벌써 옛날 최참판네 내당에서 목을 매었을걸?" 입매가 뱅글뱅글 돈다. 두 눈동자에 암담한 정열이 일렁인다. 기화는 한순간이나마 깊은 착각에 빠졌다. 최치수를 대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미얀마재비 같은 최치수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가는 길을 막고 서 있는 환상이 겹친다. 그리고 착각과 환상이 썰물같이 물러간 자리에 다소곳하였던 길상이 앞에서의 서희 모습이 나부끼는 머플러처럼 흔들리며 정지한다. 지금 엇비슷한 사이를 두고 걷고 있는 여자와 그 서희는 과연 동일 인물일까. 상상할 수가 없다. 일찍이 다소곳하였던 서희를 상상해본 일이 없다. "아씨께선 잘못 생각하고 계셔요." "아무렵 어떠냐. 그러나 수모를 잊을 내가 아니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사오나 상현서방님 진심을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서방님은 아씨를 마음속으론 염려하지," 차마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은 입밖에 낼 수가 없다. 서희는 기화의 저의를 알았으나 그러나 위로받지는 못한다. 참담했었던 지난 여름이 가시처럼 핏속에 곤두서는 것을 참았을 뿐이다. 미친 듯 웃어젖히던 상현의 웃음 소리, 내 일전에 송장환이 그 위인더러 서희 하고 혼인하라 권한 일이 있거늘, 하하핫... 무서워서 싫다더군. 무서워서 말이오! 서희는 어금니를 꽉 깨문다. 관골이 움직인다. 여름만 참담하였던가. 겨울도 참담했었다. 길상과 동서하던 과부를 찾아갔었던 길목 앙상하게 여윈 여자의 얼굴, 어망이 뉘기야? 묻는 아이를 무섭게 노려보던 여자 머리엔 솜가루가 뿌옇게 앉아 있었다. 서희는 부르르 몸을떤다. 자신이 송두리째 무너지려는 찰나였었다. 어쩌면 그때는 자유를 향해 달릴 수 있는 길목이었는지 모른다. 집념의 질곡에서 풀려날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봉순아." "예." "너의 창을 한번 듣고 싶구나." 기화는 어리둥절하다. 왜 갑자기 얘기 방향이 엉뚱해졌는가 싶어서다. "어릴 적에는 재간이었지만 이젠 천기온데 어찌 아씨 앞에서," 쓴웃음을 띠는데 서희의 화제는 다시 한 번 회전한다. "조준구가 토지를 절반이나 작살냈다 했었지?" "예." "남의 손에 넘어간 그 땅 되살 수는 없을까?" "아씨께서?" "내 벌써부터 공노인을 한번 보내리니 했었다." "월선아지매 삼촌이라든 노인 말씀이셔요?" "음." "노인이지만 빈틈없는 사람이야. 젊어서부터 사방을 떠다녀서 견문이 넓고 사세에도 밝아. 이곳에서 거간업도 하고 있으니까, 나구말론 시정잡배라드라만... 신실하여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었지." "월선아지매 삼촌이시니까." 그 대답은 없고 "당분간 그 땅을 모조리 거둬들이긴... 어렵겠지. 그러나 서서히 이제부터 시작하는 게야." 서희는 실성한 사람같이 별안간 웃어젖힌다. "나 그럴 줄 알았다. 호호홋... 호호홋호, 오 년이 지나갔고 앞으로 또 오 년, 십 년 안에 나는 그 땅을 모조리 거둬들일 테니 두고보아라. 조준구놈! 이미 절반 작살이 났다구? 그랬을 게야. 나는 그놈을 알거지로 만들 테다! 아암, 그리고 말려죽이는 게야." 입매가 뱅글뱅글 돌 때 기화는 최치수로 착각하고 무서웠었는데 서희의 미친 듯한 웃음 소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애기씨는 불쌍하다, 불행한 여인이다. 마음속으로 뇌는 기화 눈에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으로 현란하였던 서희 모습은 한갓 허깨비로 보여진다. 자신을 내려다본다. 발등에서 흔들리는 남빛 비단치마, 하얀 버선발이 눈부시게 움직이는데 역시 자신도 허깨비인 것을 깨닫는다. 비로소 기화는 용정에 온 이후 처음으로 서희가 자기에게 무척 가까운 사람인 것을 느낀다. 별당 연못가에 상복 입은 계집아이 둘이 서로 마주잡고 앉았었던 그 시절처럼. 서희도 기화가 아니었었다면 미친 듯 허한 웃음을 웃었을 리가 없다. 서희는 그런 웃음을 웃은 적이 없었으니까. "절반이 작살났다지만 아주 남의 손으로 넘어간 것은 아니라 하더이다. 서울 가서 들은 얘깁니다만," 기하는 서희의 흩어지려는 마음을 부축하듯 침착하게 허두를 꺼내었다. "상현서방님이 주선을 해주셔서 저의 집에 자주 오시는 손님 몇분이 계시온데 그분들 주석에서 조준구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째서 그 사람들이 조준구 얘길 한다더냐?" "예, 모두 이래저래 관계가 있는 눈치였었고 그리고 상현서방님께서 조준구의 정체를 소상히 아시니까 자연 얘기가, 그러니까 좋은 얘긴 아니 나오지요. 서울서의 그자 행적도 빈축을 사는 모양이구요. 이일 저일 손을 대느라 장안의 친일파 졸개들 명문의 놀량패 자제들과 밤낮 어울려 다니는 것도 좋게 볼 사람이 없습지요." "그래 무슨 얘길 들었느냐?" "얘기가 아주 복잡해서 소상하게 전해드리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금도 나오지 않는 광산을 속아서 샀다는 거였습니다. 그것 사기위해 장안의 갑부 황춘배라는 사람한테 땅문서 절반을 잡히어 빚을 냈다는 얘기구요. 그 황춘배 아드님이 황태수라고 역시 저의 집에 상현서방님과 함께 오십니다. 그러니 그 말은 빈말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팔아버린 게 아니라 그 말이냐?" "하지만 갚을 길이 없으니 팔린 거나 다름없고 광산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조준구는 급한 나머지 시세 절반도 못 되게 땅을 잡혔다든가, 해서 엄청난 손해라 하더구먼요. 광산을 속아서 사는 데는 일본인도 끼여 있었다던가, 쳐놓은 그물에 걸렸다 그런 말들도 하고," "음... 이상현이 그 사람도 팔자가 늘어졌나보구나." "예?" "기방 출입이 잦으니까 말이야." "그분들은 일본 유학 갈려고 일본말을 함께 배우신다 하더이다. 그러니 자연 젊은 혈기에, 또 저를 도와주시는 배려도 있을 것이옵니다." 서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눈이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은 운홍사 절문을 들어섰다. 중이 없는 절이지만 절지기한테 법당 문을 열라 이르고 서희는 망토를 벗는다. 소복의 모습이 그림자 같고 얼굴이 창백하다. 성난 눈으로 기화를 쳐다본다. 법당안은 썰렁했다. 흑탱 한 폭에 본존도 없는 법당은 지난 여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청을 한 것하고 일진회의 이용구 소장이던 한 자 여섯 치 가량의 관음상이 한 구 더 늘은 것이다. 절지기 사나이가 놋쇠 촛대에 꽂힌 초에 불을 붙여준다. 서희는 그 촛불에 향을 사르어 향로에 꽂는다. 합장하고 배례한 뒤 몇 발짝 물러서서 예배를 울린다. 기화도 함께 예배를 울린다. 그런 뒤 정좌한 서희는 경을 외기 시작했다. 평이한 음성으로 정구업진언을 왼 서희는 금강경을 송하기 시작한다. "여시아문하사오니일시에불이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하가여-대비구중천이백오심인으로구하시다이시에세존이식기에착의지발하기소입-사위대성하사걸식하실세," 조금 물러서서 손을 맞잡고 기화는 독경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드높으면서 쇳소리 없는 둥근 음성이 법당 안을 가득 메운다. 촛불이 곧게 발돋움하듯 천장을 향해 타고 향에선 하늘은 몇 줄기 자연이 맴을 돌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고수보리하사되제보살-마하살이응여시-항복기심이니소유일체중생지류에약난생-약태생-약습생-약유생-약무색-약유상-약무상-약비유상-비무상을아개영입무여열반하야," 일진의 바람, 바람 소리와 함께 법당 문풍지가 운다. 촛불이 좌우로 흔들리고 향연이 어지럽게 흩어진다. 낭랑한 독경 소리, 관음상만이 요지부동이다. '나는 이 세상에 뭘 하러 나왔는가. 몸단장하고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나왔나? 가무로 사내들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왔나. 어릴 적엔 좋은 옷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기쁠 줄 알았었지. 엄마가 무서운 눈으로 날 보든 것을, 때리든 엄마 마음도... 부평초 같은 서러움, 죽어서 망령 되면 난 어딜 갈까?' 어릴 때 쌍계사 명부전에서 본 지옥변상의 탱화 생각이 난다. 어린 마음이 마구 떨리던 그때 일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서희의 손을 잡고 절마당에 뛰어가면서 '애기씨!' '왜 그래.' '이 세상에서 말입니다. 나쁜 짓 하믄 아까 본 그런 지옥에 떨어진다 안 캅니까? 우리도 지옥 가믄 우짤고요? 내사 마 무서바서 벌벌 떨었십니다.' '나는 안 무서. 염라대왕 불러다가 야단을 칠 테야. 수동이랑 돌이랑 복이 삼수 또오, 또오 육손이 김서방 길상이 또오 개똥이, 모두 다아 데리고 가지, 몸둥이를 들려가지고 날 따라가는 거야.' '치이, 개똥인 덩신인데요?' '동네 사람 다 데리고 가지 뭐. 난 안 무서!' '그라믄 나는 우짤꼬?' 기화는 바닥에서 스며든 차가움에 몇 발짝 발을 떼어놓곤 한다. 차츰 기화는 부처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소복한 서희 뒷모습만 보인다. 금봉채에 진주를 박은 국화잠이 쪽머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유연한 두 어깨, 물결처럼 부드럽게 잡힌 치마의 주름, 그의 아름다움은 그의 권위요 아집이요 숙명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위엄과 집념은 그의 고독이다. 일사불란 독경하고 있는 서희의 모습은 애처롭다. 책에 열중할 때는 책이 부처님일 것이요, 자수에 열중할 때는 바늘이 부처님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신도 인간도 존재치 않았는지 모른다. 절마당 쪽에서 얘깃소리가 들려온다. 부친 최치수의 피 때문일까. 묘향산 북변에 묻힌 어미의 배신 때문일까. 서희는 독경을 끝내고 일어섰다. 침착해진 얼굴이다. 망토를 입고 머플러를 머리에 감고 법당 밖으로 나서며 서희는 절지기와 얘기를 하고 있는 최기남의 처를 흘긋 쳐다본다. "어이구! 지금 막 부인께서 와 계시다는 말을 들었던 참입지요." 까무잡잡한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며 호들갑이다. "그간 안녕하섰어요?" 서희로서는 매우 상냥한 편이다. "네, 덕분에. 부인께서는 더욱더 아름다워지시고 뵐 적마다 참말 우리 조선 사람들의 자랑입니다요, 네." 투박스런 외투를 입었는데, 아첨이 과히 밉잖다. "자랑될 게 뭐 있겠소, 친일파로 지목된 사람이?" 비꼬는데 서희는 교묘하게 자기 자신의 위치를 천명한다. 일본 영사관 서기 최기남의 처에게. "부인께서 그러신다면 우린 어쩌게요? 앞잡이니 주구니 매국노니 별의별 말을 다 한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릴 보호해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일본 영사관밖에 더 있겠습니까?" 최기남의 처는 적이 만족해한다. 마치 백만 군병을 얻은 것처럼. "그럼 일 보십시오. 먼저 가보겠소."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데 "아, 아닙니다. 저도 일은 다 보았세요. 함께 가겠세요." 허둥지둥 따라붙는다. 절문을 나섰다. 해는 산마루에 아슬아슬 걸려 있었다. "절 일을 맡으셔서 수고가 많소." "수고랄 건 없으나 네, 시초 우리가 설동해서 시작한 일인 만큼 그냥 내버려두고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세요? 뭐니뭐니해도 절 일이라면 부인의 도움이 크지요." "시주 좀 한 걸 가지고 뭘 그러시오." 기화는 잠자코 걷는다. 세정에 빠른 기남의 처는 기화에게서 풍겨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는지 묵살한다. 하기는 서희에게 일구월심 관심을 쏟다보니 안중에 기화가 없었는지 모른다. "하여간에 그 송씨댁 자부 때문에 지가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는 셈인데 하 참, 중이 없는 절 있으나마나 안 그렇습니까요, 부인." "그 스님은 아주 가셨소?" "갈 수밖에 별도리 없지요. 듣자니까 훈춘에 있다던가, 일을 저질러도 유분수 아니겠습니까? 하기는 중도 사람이고 보면 상사병에 안 걸린다 장담할 수 없는 일이죠만, 그러니 왜중처럼 조선의 중들도 장가를 가야 할까봐요." 서희는 쓴웃음을 띤다. "가숙이 있었다면 본연스님도 상사병에 걸렸겠습니까? 또 한 곳에 느긋이 발붙였을 거구요." "그도 그럴 법하군요." "꽤 신도들도 생기고 잘되나부다 싶었는데 글쎄, 우리 조선 사람들한텐 뭐니뭐니해도 불교가 젤 아니겠세요? 야소교다 천도교다 뭐다 하고 판을 치고 있는 이곳에 젤 형편없는 게 불교인데 그나마 중까지 도망쳐버렸으니." 줄 한 끝을 잡고 힘껏 잡아당기듯 여자는 화제를 놓지 않는다. "절의 형편도 딱하게 되긴 됐지만 그보다 송씨네 집안이 더 딱하게 됐세요. 쑥밭이 됐지 뭡니까.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지금 당주는 변변치가 못하지요. 우리끼리니 하는 말입니다만 사람은 작은아들 편이 똑똑하지 않아요? 우릴 못 잡아먹어서 악악거리지만요." 서희 얼굴에 아까 쓴웃음과는 다른 엷은 조소가 번진다. "큰아들은 위인이 인색하고 속도 좁구요, 재물을 아낀다고 모이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더군요. 사업이 연달아서 실패라지 뭡니까? 가정이 불화하여 그렇기도 하겠지만요." 하다가 최기남의 처는 사방을 둘러본다. 여전히 기화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건지. 이런 여자의 경우 저보다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시기심은 자신의 신분과 비교해본 뒤 발로되고 그것은 선망이 아닌 모멸로 표현되는 모양이다. 최기남의 처는 목소리를 줄였다. "글세 들리는 말로는 송씨댁 자부 몸에 매자국 가실 날이 없고, 부정을 했으면 갈라서버리는 게 상식 아니겠세요? 그것도 아니고 하여간에 사내가 못나도 아주 형편없는 위인," "학교는 잘돼 나가잖소?" "그건 그런 만한 사정이 있다더군요. 죽은 송병문 씨가 큰아들 사람됨을 알고서 따로 작은아들 몫을 갈라놨다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학교에다 밀어넣었다는 거지요. 학교라는 게 무슨 돈버는 일입니까요? 그러니 당장엔 기름이 돌아서 잘되는 것 같지만 한두 해 지나면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니겠세요? 이래저래 집안은 쫄딱 망하게 돼 있세요. 송병문 씨 그 양반 생시에는 길에서 우릴 만나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마치 똥이라도 본 듯 침을 뱉았답니다. 용정에선 그 사람을 모두 우러러봤구요. 그렇지만 집안이 망할러면, 아 글쎄 그것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것 헛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못난 큰아들 매질도 매질이고 아 글세 아편을 내외가 한다잖세요?" "그건 그렇고 아주머닌 영사관의 일본 여자, 그러니까 영사 마누라를 아시오?"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쥐어박듯 서희는 딴전을 폈다. "안다면은," "친분이 있으신가 그 말이오." "아암요, 알다마다요. 바쁠 때는 가서 일도 도와주고 지가 일본말은 조금은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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