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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 칠레
★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 아름다운 밤...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5월 17일
맑음.
오후 3시경, 볼리비아의 험한 길을 달려 칠레의 국경 마을에 도착 하였다.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칠레와 볼리비아의 국경 부근에 있는 아따까마 사막의 북쪽 끝에 위치한 작은 오아시스 마을.
변경의 작은 마을에 불과 하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나는 왠지 이곳이 마음에 든다.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만 포장 되었을 뿐 마을 안의 길은 모두 비포장의 흙으로 된 길이다.
마을 안, 좁은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는 진흙으로 된 아담한 단층짜리 건물들,
규모가 크거나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여행객 뿐 아니라 칠레의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모두 셋이다. 우유니에서 만난 최동진님과 우리 둘.
도착하자 마자 같은 곳에 숙소를 정하였다. Residency Don Rual.
흥정에 일가견이 있는 반쪽의 활약으로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 가격으로 방을 두개 얻었다.
우리 둘이 한방 그리고 최동진님이 한방.
욕실과 부엌은 공동 사용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어 거의 우리들만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숙소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밖으로 나가보았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특별히 볼만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포장의 흙길을 따라 식민지 시대의 단층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길가에는 군데군데 가로등이 켜져 있다.
한낮에는 더위로 그저 지루하기만 하던 마을이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빛을 받자 아담하고 운치 있는 마을이 되었다.
군데군데 자리한 아담한 bar들은 별다른 장식 없어도 식탁 위에 올려진 촛불만으로도 훌륭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창 밖에서 들여다보는 카페의 분위기가 아주 그윽하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우리도 자그마한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배낭 여행객들에게 저녁 무렵 식당에서의 식사는 상당한 호사에 해당되지만,
먼 타국에서의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 금전적 지출을 감수하기로 했다.
맛좋다는 칠레의 와인도 한잔 시키고 맥주도 한잔씩……
우유니에서 약속했던 우리 세 사람의 “번개”다.
식탁 위에 켜진 촛불을 가운데로 하고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동진님은 29살의 미혼,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살 이전에 좀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1년 6개월간의 세계일주에 나섰다고 한다.
벌써 두 달을 넘긴 남미 여행으로 얼굴은 검게 타고 긴 여행의 흔적이 차림에 묻어난다.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여행을 떠난 우리지만 1년 반이라는 여행기간에,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여행을 시작한 그가 부럽기만 하다.
두 남자는 맥주에 얼큰하게 취하고 나는 음악에 취하고.
식당의 음악은 벌써 두번째 같은 판만을 틀어주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어릴 적부터 엘비스를 좋아한 나를 반쪽은 이상하다 놀려대지만 나는 엘비스가 좋다.
식당을 나와 다시 맥주 몇병을 사가지고 숙소로 향한다.
번개 뒤풀이……. 오늘 밤 일찍 자긴 틀린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5월 18일
맑음.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이곳은 지난 며칠간 우리가 했던 우유니 투어의 칠레쪽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하면 우리가 지나온 길을 정확히 반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유니 투어 외에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계곡의 모습이 마치 달의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과 ‘아따까마 사막’이다.
여행사를 통해 알아보니 두 곳 모두 투어 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출발 시간이 오후 2시라서 이곳에서 오늘 하루만 있을 예정인 우리는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어느 곳이 더 좋을지 고민하던 우리는 버스를 이용한 투어를 아예 마다하고 자전거를 빌려 하이킹을 하기로 하였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출발 시간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고,
힘이 드는 대신 마을 주변의 유적을 좀 더 여유롭게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이후론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아메바가 걱정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앞으로의 여행 중 생길지 모르는 자전거 여행을 위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오전 9시, 마을에서 자전거를 빌려 북쪽의 유적을 향해 출발하였다.
오전에는 마을의 북쪽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마을 서쪽의 ‘달의 계곡’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아따까마 사막’은 자전거로 다녀 오기에는 무리인 듯 해서 아쉽지만 포기를 하였다.
튼튼한 우리의 판다스 에이스(최동진님의 다음카페 대화명임.)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아메바와 내가 순서대로 뒤를 따랐다.
앞장서 가는 아메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가지만 아무리 봐도 어설프다.
갑자기 걱정이 몰려온다. 오늘 하루 무사히 자전거 여행을 마치게 될까?
성질 급한 내가 뒤를 쫓아 가며 계속 구박을 하자 입이 한주먹이나 나온 채로 씩씩대며 잘도 달려간다.
첫번째 목적지는 잉카 시대의 유적지인 ‘푸카라 데 퀴토르’(Pukara De Quitor),
마을에서 3 Km 떨어진 거리이지만 초행길이라 꽤 멀게 느껴진다.
한참을 달려 입구에 도착하자 관리인이 한걸음에 달려 나온다. 입장료를 받기 위해………
유적지가 담장이나 철망도 없이 외부로 개방되어 무료인가 하고 좋아하던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12세기경 잉카 제국의 요새였던 곳이다.
다른 잉카 제국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 대항하였던 이곳,
관리인이 나누어준 브로셔에 요새와 마을의 역사가 간략하게 적혀있다.
잉카의 요새였던 흔적은 돌로 쌓아 구역을 구분해 놓은 것이 전부이고 그 외에 특이한 것은 없다.
붉은 황토와 돌로 이루어진 요새에는 풀 한포기 없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정상에 올라서자 앞을 흐르는 산 페드로강 (Rio San Pedro)이 보인다.
지금이 건기임을 말해주듯 강은 수량은 눈에 띄게 줄어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도 강을 자전거를 탄 채로 건넜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이곳이 오아시스 마을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마을과 강 주변만 겨우 밭과 나무들로 둘러 쌓이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모두 사막 뿐,
그나마 모두 모래 사막이 아닌 흙으로 된 사막이란 사실이 위로가 된다.
요새를 모두 둘러보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받은 간이 지도만을 보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건기라 강의 수량이 너무나 줄어 지도상에 표기된 강이 어느 곳인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가길 한참, 마침내 길을 잃어 버렸다.
그 와중에 우리의 아메바는 자전거를 탄 채로 강을 건너다 그만 강에 빠져 버렸다.
수심이 낮아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신고있던 신발이 모두 젖어 버렸다.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그렇다며 구박하자 금새 입이 튀어 나온다.
아메바를 뒤로 하고 우선 남자 둘이 길을 찾아 나섰다.
한참동안 그렇게 길을 찾아 헤매며 여러 차례 강을 건너다 우리도 그만 신발이 모두 젖어 버렸다.
그제서야 아메바는 모두가 같은 처지가 된 것이 고소한지 웃는 얼굴이 된다.
점점 나를 닮아가는 아메바, 남 잘못되는 것을 즐거워한다. 흐흐… (특히, 내가 실수를 하면 엄청 즐거워한다.)
삼십 여분 뒤,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오후의 ‘달의 계곡’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전에 한참을 달려온 줄 알았는데 겨우 6 Km 지점에 와있다.
돌아가는 비포장의 길이 예상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다.
벌써 엉덩이의 안장에 닿는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점점 걱정이 된다. 오후에는 마을에서 12 Km 떨어진 달의 계곡까지 가야 하는데……
왕복 24 Km 의 여정이 걱정스럽다.
숙소에 돌아와 간단히 스파게티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달의 계곡으로 출발이다.
오전부터 아파오던 엉덩이가 예상보다 더 고통스럽다.
다행히 초반 7 Km 는 포장길이다. 게다가 경사가 아래로 진 길이라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 갈 때는 좋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어쩌나…… 도보 여행이나 자전거 여행의 경우, 항상 돌아오는 여정이 훨씬 힘든 법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언덕길을 계속해서 올라와야 한다니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한참을 달려 겨우 7 Km 지점에 도착, 앞으로 5km를 더 가야 하는데 벌써 모두 지쳐버렸다.
자전거를 타는 것, 아니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7 km 지점을 지나 비포장 길로 들어서자 아메바가 뒤쳐지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다 걷다를 반복하며 용케도 잘 쫓아 오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큰일이다. 남자인 우리들도 힘들어 돌아오는 길이 걱정인데 아메바는 어떻게 할지 난감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힘들어 아메바를 간수할 자신이 없다.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길가의 거리 표지판을 보니 달의 계곡까지 거의 다 왔음이 분명한데도 계곡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후, 달의 계곡 입구에 도착, 하지만 계곡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질 않는다.
입구에 커다란 표지판에 ‘달의 계곡”이라 적혀 있을 뿐……
지도상의 거리 표시는 이곳 입구까지의 거리였던 모양이다.
표지판 앞으로는 경사길이 한참 이어지고 다시 언덕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달의 계곡은 그 너머인 듯하다. 모두들 지쳐서 더는 못 간다고 아우성…….
그래도 말과는 달리 곧 다시 출발, 하지만 이제 아메바는 너무 지쳐 잘 따라오질 못한다.
그 언덕을 자전거를 끌며 정상까지 오르자 그제서야 달의 계곡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아메바는 아직도 언덕 밑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고 있다.
시간은 이제 오후 5시반, 예정보다도 훨씬 늦은 시각, 돌아가는 길의 소요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할 것 같다.
계곡에는 우리 보다 훨씬 먼저 도착한 투어버스가 여러 대 정차하고 있고 그 일행들이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주변이 모두 모래로 된 언덕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마치 달표면처럼 분화구 모양으로 솟은 것들, 달의 계곡이라 이름 붙여질 만하다.
하지만 달표면처럼 보일 뿐 경치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메바는 힘이 들어 주변을 돌아 보는 것도 귀찮다 하고 다시는 자전거 여행을 안 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도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으로 주변의 경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후, 아메바는 자전거로는 도저히 돌아갈 자신이 없다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자고 한다.
하지만 자전거 세대와 세 사람이 차를 얻어 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아메바 혼자만을 보내는 것은 불안하고…..
주변의 투어 버스들을 둘러 보았다. 마침내 인원이 적은 투어 버스 한대를 발견하고 기사에게 다가갔다.
버스에 자리가 있으니 자전거 한대와 여자 1명(아메바)을 마을까지 데려다 주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기사가 흔쾌히 응한다.
원래 투어 버스의 요금이 2000 페소, 아메바의 경우는 편도만 타는 것이므로 반값만 주기로 했다.
의외의 수입으로 기분이 좋아진 기사는 자전거를 얼른 실으라고 하고
커다란 짐(?)을 해결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였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아메바, 일이 잘 진행되자 좋아서 입이 쫙 벌어진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기운이 펄펄 넘쳐 달의 계곡의 모래 언덕들을 잘도 돌아 다닌다.
그제서야 경치가 좋단다.
판다스 에이스와 나는 힘을 아끼기 위해 멀리 돌아 다니질 않는다. 그저 돌아갈 일만 걱정이다.
앞서가는 아메바가 오라고 손짓을 해도 전혀 앞으로 가고싶지 않다. 간만큼 다시 돌아와야 하므로………
버스는 다른 여행객을 태우기 위해 출발 장소로 먼저 떠나고 아메바는 주변을 슬슬 돌아보며 출발 장소로 간다.
출발 장소는 또 하나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몸이 가벼워진 아메바, 출발 장소까지만 가면 오늘의 일정이 끝나는 아메바는 자꾸 같이 가자 한다.
하지만 앞에 보이는 언덕을 넘어 갔다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멀리 앞서가는 아메바를 바라보며 숙소에서 보자하고 손만 흔들 뿐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않는다.
시간은 이제 여섯시를 지나고 있고 서쪽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판다스 에이스와 나는 반대편의 달의 계곡에는 관심도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는 것만이 최대 과제이다.
아메바의 모습이 안보이자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그 후, 약 한시간 반에 걸친 돌아오는 길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약 6Km 의 비포장길, 그리고 7 Km 의 포장된 언덕길.
엉덩이를 안장에 댈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
해가 져 완전히 어두워진 도로를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리는 일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한시간 반이나 걸려 무사히 마을에 도착, 그나마 아메바를 차로 태워 보낸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숙소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기다리던 아메바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메바의 한마디 더 : 남자들을 뒤로하고 간 언덕 너머에는 커다란 모래산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정상까지 모래 언덕이 길게 이어진다.
걸어서 정상까지 가는 데에만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아주 긴 모래 언덕이다.
정상 바로 밑, 1-2미터의 길이 너무 험해 가지고 있던 카메라와 물병때문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바로 밑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만 발에 밟히는 모래 언덕의 감촉은 너무나 좋았다.
오후 내내 그렇게 고생하면 온 길이었는데…….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짧았다.
▶ 산티아고 가는 길 그리고 훌륭한 칠레의 버스, 5월 19일
흐림
정겨운 시골 마을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SAN PEDRO DE ATACAMA)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산티아고로 간다.
우선 1시간 반 거리의 칼라마 (CALAMA)로, 거기서 다시 버스를 갈아탄다.
산티아고까지 다시 21시간……
남미에 도착한 이후, 도시간 이동 시간은 최소 7시간이었다.
처음 이동 시 7시간, 그 다음 9시간, 그 다음 14시간 (버스의 고장으로 인해 실제로는 16시간).
이제 드디어 20시간을 넘긴다.
한국에서 길어야 5시간 (서울-부산)이었던 우리에게는 장시간 버스 타는 일이 정말 곤욕스럽다.
하지만 매번 비행기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할 수 없는 일…..
그나마 칠레의 최남단은 계절이 맞지 않아 우리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서 이 정도이다.
실제로 심한 경우, 40시간 혹은 60시간의 버스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칠레의 버스 시설이 무척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본 여행 책자나 인터넷의 여러 싸이트에서 칠레 버스의 시설을 칭찬하였다.
물론 장거리 여행 시 타는 고급 버스의 경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보니 시설이 정말 좋다. 아주 깨끗한 2층 버스,
그간의 페루와 볼리비아의 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좌석의 수준은 비행기의 퍼스트 클라스보다도 좋아 보이고 공간은 그 보다도 더 넓다.
(물론 퍼스트 클라스에 타본 적은 없지만..)
다리 짧은 우리의 아메바는 다리를 쭉 펴도 된다.
그것이 편한지 정말 좋아한다. 자꾸 다리를 폈다 접었다 폈다 접었다 …
물론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좁긴 하지만 무척 청결한 편이다.
좋은 버스의 시설을 위로 삼아 21시간의 버스 여행의 고단함을 이겨 보려 하지만,
역시 21시간의 버스 여행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내륙의 사막 지대인 산 페드로에서 칼라마를 거쳐 저녁 무렵,
중간 경유지인 칠레 제2의 도시 안토파가스타 (ANTOFAGASTA)에 도착 하자 차창 너머로 드넓은 대양이 펼쳐진다.
태평양이다. 넓은 태평양을 건너 그 반대편에서 다시 그 바다를 본다.
수평선 끝에 붉은 태양이 걸려 있고 바다의 끝에 걸린 붉은 노을은 정말로 아름답다.
시간은 저녁 6시가 조금 못 되었다. 한국 시간은 아침 6시 50분…
같은 해를 보면서 우리는 이곳에서 일몰을 맞이하고 한국에서는 일출을 보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겠지.….
칠레, 남북으로 장장 4300 km에 걸쳐 있는 긴 나라,
21시간의 버스 여행도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만 여행 한 것 뿐이다.
저녁 8시, 한국에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처럼 차창 밖의 도로변 표지판에서 남은 거리를 확인해 본다.
으……. “산티아고 1,160 km” 벌써 5시간을 왔건만, 아직도 16시간이 남았다.
옆에 있는 아메바는 다리 펴고 접는 일도 이제 재미가 없는지 아주 괴로운 모양이다.
이런 좋은 버스라면 21시간도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계속 밥을 안 준다고 투덜거린다.
8시 30분, 기다리던 저녁 식사가 나왔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메바는 실망스러운 저녁 식사의 양에 분통을 터트린다.
옆에서 보기 안스럽다. 밤새 얼마나 배고픔에 몸부림칠지…. 불쌍한 아메바…..
출발한 이후 줄곧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달린다.
한 줄로 길게 뻗은 도로,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고 길도 따라 계속 뻗어 있고, 길은 쉽사리 끝날 줄을 모른다.
정말 넓은 땅이다. 남미 대륙의 드넓은 땅덩어리를 보고 있자면, 정말 부럽기 그지 없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넓은 대륙의 상당 부분이 사막 지대이거나 아주 황량한 지대이므로 답답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나라처럼 조그만 국토에,
그것도 남북으로 갈려 지금은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작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부러운 일이다.
지금은 황량한 사막 지대이지만 수 십년, 수 백년 뒤에는 그들의 자손들이 잘 가꾸어
아주 넓고 살기 좋은 땅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땅이다.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합해져 지금 보다도 더 넓은 곳에서,
그리고 작은 섬과도 같은 곳이 아니라 육로로 국경을 넘어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버스는 하염없이 달리고….. 옆의 아메바는 세상 모르고 잠자고…..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 산티아고
▶ 홍어와 카푸치노 (산티아고), 5월 20일
버스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으로 간 우리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 제일 먼저 한국 식당의 위치를 물었다.
주소를 받아 들고 택시로 바로 직행. (세 사람의 버스 요금보다 택시비가 더 저렴하였다.)
우리가 찾아가는 식당의 이름은 ‘길목 식당’, 우리나라의 어느 마을에나 있는 식당의 이름이다.
택시를 타고 주소지에 도착하자 주변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주로 의류를 취급하는 상점들… 한인 거리가 분명해 보인다.
번지 수를 확인하며 찾아간 길목 식당, 이름과는 달리 규모가 상당한 식당이었고
내부가 고급스럽진 않지만 아주 깔끔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인 종업원이 반갑게 맞이하지만 한국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홍어회 확인은 뒤로 하고 우선 식사부터…….
메뉴가 없는 게 없어 흐믓한 마음으로 주문을 한다.
나는 순대국밥, 아메바는 된장찌개, 그리고 판다스 에이스는 도가니탕…….
소고기가 흔한 남미 대륙이기 때문인지 메뉴판에 나와있는 소고기류와 돼지고기류의 값이 똑같다.
도가니탕의 값도 된장찌개의 값과 차이가 거의 없다.
음식 맛이 아주 좋다. 메인 메뉴도 맛이 좋고 함께 나온 반찬, 특히 총각 김치의 맛이 너무 훌륭하다.
게다가 맛있는 반찬을 금새 비우자 마치 우리나라의 식당들처럼 반찬을 다시 가져다 주는데,
남미의 다른 식당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는 다른 지역의 한국 식당에서도 김치를 더 먹으려면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기분이 좋아 비싼 소주도 한 병 덩달아 주문…….
음식의 가격이 한국과 비슷하였으니 현지 물가 기준으로는 약간 비싼 편이었지만
해외의 한국 식당 치고는 가격이 저렴하였다.
무엇보다도 반찬을 계속 가져다 주는 한국식 인심이 반가웠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도 부르고, 소주 한 병을 둘이 나누어 마셔서 얼큰해져 마냥 흐믓하다.
계산을 하며 한국인 주인 아저씨에게 홍어회를 어디서 먹을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칠레인들은 홍어를 먹지않아 구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현지 교민들 중에도 홍어회를 먹는 사람들이 없어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삭힌 홍어와 초고추장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한 순간에 깨져버렸다.
산티아고로 오는 버스에서 내내 기대로 부풀어 있던 우리는 한 순간에 맥이 빠져버리고
홍어와 초고추장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진해진다.
그나마 맛있는 점심 식사와 소주 한잔이 위로가 되었다.
식사 후, 지난 삼일간 동행했던 판다스 에이스와 작별을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를 자고 내일 이스터섬으로 가고
판다스 에이스는 오늘 해안도시인 발파라이소로 간다.
서로 남은 여행의 안전을 빌며 아쉬운 작별이다.
다시 둘이 되었다. 도심에 숙소를 구하고 시내 구경을 나서는 순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년 중 비오는 날수가 60일에 불과하다는 산티아고의 비다.
점심 때의 술 기운이 아직 남아 몸도 나른하고 밖은 비도 오고…….
비를 핑계 삼아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이상한건 여행이 좋다고 돈 들여 고생을 자초하고 나섰는데 일정이 취소되니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군대에서 힘든 작업을 하려다 비가 와서 하릴없이 내무반에서 뒹구는 것처럼…….
아무튼 기분이 좋다. 옆의 아메바도 흐믓한 표정.
오후 내내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심심해진 우리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거리를 돌아 다녀보기로 했다.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오후부터 내린 비라서 거리에는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이한 점은 우산도 없이, 그냥 비를 맞으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이라 가끔 오는 비도 무시하는 것인가?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도 없이 빗속을 잘도 다닌다.
옷이 젖는 것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표정이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어느새 옷이 반쯤 젖어버렸다.
날도 쌀쌀해 한기가 느껴질 즈음, 갑자기 아메바가 카푸치노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나도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더운 여름날의 아이스크림 하나,
혹은 비가 오고 쌀쌀한 날의 따뜻한 커피 한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배낭을 지고나선 경우에는 아이스크림 하나,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일도 상당한 사치에 해당한다.
하루 종일 무더위 속을 헤매 다니면서 더울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먹거나
커피 생각이 날 때마다 커피를 사먹다가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 무렵의 비에 젖어 있던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잔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비오는 거리로 카페를 찾아 나섰다.
길가를 따라 커피 마실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우리가 원하는 카페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식당을 겸한 카페가 보이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된 카푸치노를 마시기 위해 커피만 파는 카페를 찾기로 했다.
잠시 후, 메인 거리를 따라 가다 카페를 찾았다.
이름은 ‘하이티’(Haiti), 카페 체인점인지 메인 거리를 따라가니 같은 이름의 카페가 한 두개 더 보인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카페는 우리가 예상한 모습이 아닌, 아주 특이한 모습이다.
이상하게도 카페 안에 좌석이 하나도 없고 손님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그것도 중년의 남성들 뿐….
카페의 내부 조명은 상당히 밝고, 바깥의 유리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유리라
밖에서 안이 훤하게 다 들여다 보인다.
카페 안에 테이블이나 좌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여러 개의 기다란 카운터 테이블만 있어서
손님들은 선채로 테이블에 기대어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커피를 나르는 종업원들은 모두 여자들로
기다란 테이블의 안쪽에 한 사람씩 서서 커피를 나르고 선채로 손님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종업원들의 유니폼인데
몸에 딱 붙는, 아주 짧은 단색의(베이지색, 빨간색) 원피스이다.
한국에서 보았다면 아마도 비싼 술집의 여 종업원이라 생각할만한 복장이다.
각 카페별로 원피스의 모양이 약간씩 차이가 나고 색깔이 서로 다르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던 우리는 그런 카페의 모습이 무척 당황스러운 한편, 재미도 있다.
하지만 자리가 없는 것이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짧은 원피스 차림의 종업원이 왠지 어색해 선뜻 들어가지질 않는다.
그래서 한참을 더 찾아 보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카페는 보이질 않는다.
결국 여러 골목을 뒤진 후에야 그런 카페들 중 약간의 좌석이 갖추어져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 꼬빠까빠나 (Café Copacapana)”,
이곳 종업원들의 옷 색깔은 빨간색이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짧고 몸에 짝 달라붙는 원피스이다.
카페 안에는 기다란 카운터 테이블이 있고 손님들이 대부분 그곳에 기대어 커피를 마신다.
우리가 들어서자 낯선 동양인, 그것도 남녀가 함께 들어서는 것이 신기한지 모두들 쳐다본다.
우리는 그들의 특이한 카페가 너무 신기하고 그들은 그런 카페에 들어서는 동양인이 신기한 모양이다.
종업원들의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이 눈요기를 위함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손님들 대부분이 중년의 남성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간혹 여자 손님도 보이긴 하지만 너무 드물다.
한가지 더 특이한 점은 야한 옷차림의 종업원과 손님의 대부분이 남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퇴폐적인 음주 문화를 익히(?)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 사실이 너무나 재미있다.
내부도 아주 환하고, 커피를 가져다 주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종업원이나 손님 모두 밝고 가벼워 보인다.
손님들은 테이블에 기대어 커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인 경우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무도 치근대는 사람이 없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커피를 다 마시고 담배 한대 정도만 피우면 곧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우리나라처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가는 것이다.
이런 산티아고의 카페가 재미있어 연신 웃는 나를 보고 아메바는 그만 좋아하라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카페를 보고 있으니 연신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카푸치노를 주문 하였다. 가격은 한잔에 900 페소(한화 1천 칠백원)로 상당히 저렴하다.
(다른 커피는 6백페소에서 8백페소 정도로 카푸치노가 그 중 제일 비쌌다.)
잠시 후, 빨간 원피스의 종업원이 카푸치노 두 잔을 가져다 준다.
우리의 소주잔 두배 정도 크기의 투명한 커피잔,
그 안에 진한 에스프레소가 한잔 가득
그리고 그 위에 생크림이 잔이 넘치도록 가득 덮여 있으며 그 위에 빨대 하나가 꽂혀 있다.
스푼으로 살짝 생크림을 먹어보니 맛이 아주 좋다.
이어서 빨대를 통해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커피가 아주 진하다. 커피를 잘 모르는 나도 느낄 정도로 커피의 질이 좋다.
커피에는 설탕이 잔뜩 들어 아주 달다. 하지만 커피가 너무 진해 이렇게 마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커피에 설탕을 아예 넣어서 손님에게 가져다 준다.
진한 커피의 맛과 설탕의 단맛이 너무 잘 어우러진다.
거리를 지나다 종종 카페의 커피향에 이끌려 커피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커피의 향이 맛보다 훨씬 좋아 향 때문에 커피를 주문한 뒤
정작 맛을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카푸치노는 커피의 향과 맛이 거의 일치한다.
처음으로 맛과 향이 일치하는 커피를 마셔보았다.
아마도 질 좋은 커피를 진하게 뽑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게 산티아고의 진한 커피 맛에 감탄하다 한잔을 홀짝 마셔 버렸다.
맛있는 생크림, 그리고 달고 맛있는 커피,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커피의 농도가 너무 진한 듯해서 한잔 더 하기가 겁난다.
그제서야 좌석도 없이 선채로 커피를 마시고 가는 중년의 아저씨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들르는 것이 이해가 간다.
물론 짝 붙는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들을 보는 아저씨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정오 경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비를 핑계로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한 일이라고는 맛있는 점심 식사와 아주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산티아고의 커피를 마신 일……
산티아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우리는 단 두 잔의 카푸치노로 산티아고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한마디 더: 산티아고에서 우리가 한일은 오로지 먹는 것 뿐이었다.
카푸치노 외에도 홍어회를 먹는 것에 실패한 대신 칠레의 해산물을 먹어보려 했다.
길다란 국토를 따라 대양을 끼고 있는 칠레, 해산물이 풍부하고 해물 요리도 맛이 있다고 했다.
돈이 들기는 하겠지만 꼭 해볼 일 중의 하나,
여행 책자에 나온 곳 중 가격이 저렴한 식당들이 많다는 지역으로 찾아 나섰다.
하지만 두어 시간을 헤매고도 해물 요리를 먹는 일은 실패하였다.
물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갈 수는 있지만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실패할까 겁이나 그러질 못했다.
결국 해물 요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겨우 허기를 채웠다.
환상적인 카푸치노를 먹은 것에 만족하며……
▶
★ [산띠아고] 진짜 한국 음식 좀 먹어보자..
산띠아고는 한인촌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무척이나 큰 듯한 느낌이 든다.
한인촌으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Patronato역에서 내렸다.
이 지하철 역은 만들어진지가 오래 되지 않아서 옛날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다.
(Lonely Planet 지도에도 역시나 없다..지하철이 만들어지도록 오래된 지도를 최신판에 싣다니..)
이 인근 시장에 가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무척이나 많은데,
식당을 찾고 싶으면 아무 곳에나 가서 '인심좋은 숙이네' 식당을 물어면 알 것이다.
모른다고 하면 '아씨마켓'을 물어보면 누구나 다 안다. '숙이네'는 그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 여행팁 ■
¤ Santiago 지하철요금 : 370페소
¤ La Casa Roja 호스텔 : Dormitorio 1인당 U$9.5
¤ '인심좋은숙이네' 한국음식 가격 : 대부분 3000페소. 12시~22시. 일요일 휴무.
¤ 아씨마켓 김밥 가격 : 2000페소. 이걸 먹느니 바로 옆집의 '숙이네'를 가겠습니다요..
★ [산띠아고] 즐거운 시내 구경..
제일 먼저 간 곳은 Parque Metropolitano(빠르께 메뜨로뽈리따노)라는 곳인데,
서울로 따지면 남산공원쯤 된다. 꼭 그정도 분위기일거라고 짐작하면 틀림이 없다..
이곳은 산띠아고 사람들이 휴일에 산책을 오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소풍을 오는 그런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서 한 15분 정도를 걸어 가니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에 들러서 찌라시 한장을 얻어 나왔다.
안내원이 Funicular(푸니꿀라르)와 Teleférico(뗄레페리꼬)에 대해서 안내해주기를,
기왕 탈거면 표를 한꺼번에 사면 할인 가격이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는 올 사람들이 아니니까 다 타봐야 되지 않겠나?
갑자기 Rio de Janeiro에서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비싸기만 하고 별로 볼 거 없었던 케이블카.
매표소에 가서 가격을 보니, ㅎㅎ... 가격이 별로 비싸지는 않다. 다행이다.
그래, 별로 볼 거 없으면 가격이라도 싸야지....
Funicular 왕복, Teleférico 4회 탑승에 모두 다 해서 2300페소(약 4500원)밖에 안하네...
Funicular와 Teleférico는 둘다 한국말로는 케이블카로 번역이 되지만 이곳에서는 약간 다르다.
Funicular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땅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두개의 객차가 케이블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두개가 상행과 하행을 번갈아 가면서 운행된다.
두개의 객차는 원형의 케이블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가며,
정확히 중간 지점에서 교차하게 되어 있다.
Teleférico는 전망을 위해서 공중에서 운행이 되는 케이블카인데, 4인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메뜨로뽈리따노 공원의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걸어서나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편안할 것이다.
정상인 Cerro Santa Lucía에 가면 아주 큰 야외 성당이 만들어져 있는데,
물론 이것은 성당으로만 사용되지는 않겠지만 방문한 날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정상에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Santa Lucía상에도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 많다.
저 야외 성당 외에도 정상에는 성당 건물이 또 하나 들어서 있다.
공원을 나와서 한인촌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메뜨로뽈리따노 공원의 인근이 바로 한인촌이다. 걸어서 가면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근데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가게들이 몽땅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고픈 배를 부여잡고 그냥 Cerro San Cristobál로 향했다.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주 조그마한 산인데
산 전체가 아주 유럽적인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산책로로 뒤덮혀 있는 곳이다.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러 많이들 오는 모양이다.
입구에는 경비를 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따로 입장료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입장료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쭈삣쭈삣 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자니
경비원이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햇살이 워낙 강렬해서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정상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어 기분이 상쾌하다.
산띠아고는 현대적인 분위기가 나는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유럽적인 분위기와 건축물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
이곳 주변에는 아주 큰 국립도서관도 자리잡고 있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구경을 하다가 보니 배가 고파서 도저히 안되겠어서 Plaza de Armas로 얼른 향했다.
이 광장 주변에는 핫도그를 파는 노점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가격도 상당히 싸고 맛도 좋다.
기다란 빵에 소시지를 넣고 피클과 각종 소스, 야채를 넣어서
음료수와 함께 주는 다양한 세트 메뉴들이 있다.
선택해서 골라서 먹으면 되는데 아마도 그 빵 크기를 보면 무척 놀랄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핫도그 크기가 약 40cm 정도가 넘는다. 그걸 혼자서 길에 서서 먹는 모습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
우리는 그렇게 큰 빵을 먹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작은 거 2개와 콜라 하나가 세트로 된 것을 시켜 먹었다.
맛이 꽤나 괜찮다...가격도 790페소(약 1500원)밖에 안하네.
핫도그를 먹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광장 옆에 위치한 Chileno de Arte Precolombino 박물관인데,
이곳은 원래 어제 지나가면서 보았던 곳인데 일요일에는 무료 입장이라고 해서 오늘 들른 것이다.
박물관은 무척이나 깔끔하게 잘 되어 있으며,
남미의 고대 문명의 예술품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
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으면 이 박물관에 반드시 들러보기 바란다.
경비를 서는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금지해서 사진을 찍어 오진 못했다..
휴일이라서 그런가? 이 커다란 광장에 온통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곳곳에는 거리 공연도 이루어지고 있고 시장같은 분위기를 내는 거리상점들도 문을 열었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뒤범벅이 되어서 활기가 넘치는 이곳은 단연코 산띠아고의 핵심부라 할 만하다.
구경거리와 박물관, 주변의 공원, 시장, 각종 쇼핑센터들이 모두 밀집되어 있다.
산띠아고의 활기를 느껴보고 싶으면 휴일에 Plaza de Armas를 방문하면 되겠다..
★ 이스터 섬
▶이스터섬 그리고 모아이 (Moai)를 닮은 사람들 (To Rapa Nui), 5월 21일
흐림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남태평양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스터섬으로 간다.
이스터섬에 취항하는 유일한 항공사인 ‘란 칠레’의 비행기를 타고
오후 4시 반에 출발하여 저녁 8시경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스터섬’ (Easter Island), 남태평양의 한 가운데 위치한 섬으로 남미의 해안에서 약 3,800 km 서쪽에 위치한다.
이스터섬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거주지도 약 1,900 km 떨어진 섬이라 하니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곳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섬에 산재한 거대한 석상, 모아이(Moai)로 인해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이스터 (Easter) 라는 섬의 이름은 네덜란드의 제독이 1722년 4월5일, 부활절 (Easter) 에 섬을 발견한데서 유래한다.
1888년 이후로 칠레에 속해졌고 공식 명칭은 스페인어로 빠스꾸아섬 (Isla de Pascua) 이며,
현지 섬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라빠 누이’ (Rapa Nui = 큰 섬)혹은 테 피토 오 테 헤누아 (Te Pito O Te Henua= 세계의 배꼽)라 한다.
이 섬에 처음 정착한 이들은 폴리네시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며
네덜란드의 제독이 처음 이섬에 상륙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몸에 갖가지 색을 칠한 붉은 머리의 백인 원주민이었다고 한다.
남미를, 그리고 수많은 지역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했던 백인들의 이야기에 익숙한 터라 백인 원주민이라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오후 비행기라 숙소에서 빈둥거리다 정오가 다되어 숙소를 나서 공항 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둘러 보았다.
칠레의 수도에 위치한 국제 공항인데도 비교적 한산하고 터미널에 취항하는 항공사의 수가 상당히 적다.
칠레의 경제 규모가 아직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오르고, 드디어 이스터섬을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이스터섬을 거쳐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간다.
두 섬 모두 유명 관광지로 물가도 비싸고 비행기 티켓의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인지
승객들 중 우리 같은 젊은 배낭객은 드물고 대부분 사,오십대 이상의 여행객들이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가 가진 원월드 항공권으로 이스터섬으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터섬 항공권만을 따로 구입하는 경우의 가격은 상당히 비싸 젊은 여행객들에게는 다소 무리다.
출발 전 비행기 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우리 앞에 앉은 승객은 자리에 반쯤 걸터 앉은 채로 주변의 승객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 소란스러움에 그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저씨의 생김새가 이스터섬을 유명 관광지로 만든 ‘모아이’(Moai)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닮았다.
백인이라기에는 너무 검은 피부색, 약간 큰듯한 네모진 얼굴에 눈도 코도 크고 특히, ‘모아이’처럼 귀가 커다랗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얼굴을 한 사람들이 상당수 보인다.
여인네들의 생김새도 그렇지만 특히, 남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모아이를 닮아 있다.
중년의 아저씨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바로 직전까지 마치 시골 마을의 직행버스를 탄 듯, 연신 주위를 돌아보며 떠든다.
비행기 안이 시끌시끌하지만 별로 불쾌하지않고 마을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더욱 재미있는 일은 비행기가 이스터섬에 도착할 때 벌어졌다.
약 다섯시간 반의 비행 (시차로 인해 시간상으로 세시간 반)을 마치고 비행기의 동체가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는 순간,
모아이를 닮은 아저씨를 비롯한 상당수 승객들(아마도 이스터섬 주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어리둥절해하는 주변의 승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렬히 박수를 친다.
아마도 안전한 비행과 도착을 축하하는 듯하다.
처음 보는 모습에 일순 황당해 하던 나머지 승객들도 마을 사람들의 유쾌한 모습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리고
승무원들은 익숙한 듯 같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우습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같이 각종 사고가 흔한 세상에 마을로의 무사 귀환은 축하할 일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비행기를 내려 짐을 찾아 게이트를 빠져 나온 순간, 우리는 또 한번 미소를 지었다.
게이트 바로 맞은편에는 마을의 각 숙소에서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부스를 설치해 안내를 하고 있는데,
부스안의 몇몇 청년의 모습이 영락없는 모아이다.
부스를 설치한 대부분의 숙소가 우리와 같은 개별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저렴한 pension 이나 inn 이지만
값비싼 이스터섬의 물가를 입증하듯 이들마저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우리는 그 중, 저렴한 두 곳을 골라 비교하며 흥정을 하였다.
우리가 묵기로 한곳은 ‘타케나 인’(Takena Inn), 더블룸이 미화 30불, 다른 남미 도시들의 거의 두 배내지 세배의 가격이다.
비수기라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어 25불에 해주겠다는 것을
아침 식사를 포함하지 않는 조건으로 18불까지 깎았다.
모아이를 닮은 주인 청년은 다른 투숙객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우리를 차에 태웠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벌써 밤 11시, 산티아고의 시간은 새벽1시 이다.
겨우 두시간의 시차인데도 남미 대륙의 시간에 적응됬던 우리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 돌아본 마을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고,
어둠으로 바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이곳이 태평양 한 가운데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엄연히 남태평양 한 가운데 섬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태평양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다는 사실에 왠지 기분이 좋다.
▶ 태평양 한 가운데… (Rapa Nui), 5월 22일
맑음
아침 8시, 날씨가 너무나 좋아 식사도 하기 전에 바다를 보러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100여 미터를 걸어 나가니 바다가 보이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시야가 깨끗하다.
하지만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양의 한 가운데이어서인지 파도가 꽤 세다.
해변을 걷다가 이스터섬에서 처음으로 모아이를 보았다.
작은 어선이 정박해있는 포구 앞, 여기 저기 파손됬던 흔적이 있는 모아이가 홀로 서있다.
목 부분에는 부러진 것을 다시 붙여 놓은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둘이서 해변을 거니는 도중, 택시 한대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차를 빌리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루에 미화 25불, 차종은 일제 소형 짚차로 통상의 가격보다 훨씬 싸다.
숙소에서 알아보았던 가격은 8시간에 30불, 하루 종일 빌리는 경우는 돈을 더 주어야 하고 여행사를 통할 경우는 그보다도 더욱 비싸다.
당장 차를 보기위해 따라 나섰다.
빨간색의 일제 소형 짚차, 좌석이 네개이긴 하지만 넷이 타기에는 너무 작아보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차가 꽤 낡았다.
차가 낡았다며 가격을 더 깎아보려 해보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인 듯……
지금의 가격도 불만스러운 가격은 아니어서 계약을 바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식사도 하기 전에 우리는 차를 인수하였다.
이스터섬을 일주하려면 차가 필요하다.
이곳은 택시를 제외한 대중 교통 수단이 없어 여행객들은 여행사의 투어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대절 또는 차를 렌트해서 섬 관광을 해야 한다.
대여되는 차는 비포장 도로가 많은 이스터섬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로 짚차가 이용된다.
종종 도보로 일주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우리는 차를 빌리기로 하였다.
일제 스즈끼 짚차를 타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기어는 수동, 운전면허를 딸 때 수동으로 해 보고는 처음 하는 수동 운전이다.
기억을 더듬어 출발을 해보지만 변속을 하려는 순간, 차가 덜커덩…….
차고에서 10미터를 지나는데 시동을 두번이나 꺼트렸다.
할 수 없이 기어를 2단에 놓고 툴툴거리며 숙소를 향해간다.
옆에 앉은 아메바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메바는 면허도 오토 차량용이라 한번도 수동으로 운전을 해 본적이 없으니 그저 나만 바라보는 수밖에………
숙소에 도착해서도 차는 한바탕 덜컹거리고 나서야 멈추고……
늦은 아침을 빵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10시가 다 되서야 본격적인 섬 일주에 나섰다.
다행히 길가에는 차가 적어 2단으로 가는 차로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빨간 일제 짚차를 타고 털털거리며 모아이를 보러 간다.
섬의 중심지인 항가 로아 (Hanga Roa) 마을을 출발해 섬의 동쪽으로 향한다.
처음 행선지는 원주민들의 전설의 왕 ‘호투 마투아’(Hotu Matua) 일행이 상륙한 지점이라는 아나케나 (Anakena) 해변이다.
가는 동안 언덕만 만나면 시동을 꺼트린다.
지나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언덕길에서 뒤로 차가 굴러 내려가니 아메바는 무섭다고 난리 칠만도 하다.
그렇게 털털거리며 사십 여분을 달려 해변에 도착하였다.
지금은 우기 (6월-9월)이자 비수기여서 사람이 없지만 성수기에는 휴양 지역으로 인기가 높다는 곳이다.
작은 해변에 주변이 야자수로 빙 둘려져 있어 경치가 상당히 좋다.
하얀 모래 사장의 모래도 무척 고와 날이 덥다면 물놀이 하기에 무척 좋아 보인다.
햇볕은 무척 따갑지만 수온이 차가워 물속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해변의 뒤편으로는 ‘아후 나우나우’ (Ahu Nau Nau)가 자리잡고 있는데
커다란 모아이들이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 원주민의 말로 ‘아후’ 는 Platform을 의미,
섬 전체를 둘러싼 모아이들은 대부분 기다란 돌 단(Platform)위에 놓여있어
모아이의 명칭 앞에는 ‘아후’란 말이 붙어있다.
섬 전체에 산재한 모아이들, 섬 전체로는 1,000 개 이상의 모아이가 발견되었고
크기는 3.5 m의 작은 것에서 10 m를 넘고 50톤 이상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본 모아이는 오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아보였다.
이런 모아이들이 처음 세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68년,
스위스인 다니켄이 원주민들을 조사해 거석들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발표했을 때였다고 한다.
모아이의 재질은 너무 단단하여 쉽사리 다룰 수 없고 크기도 원주민들이 세우기에는 너무 커서
원주민들이 세운 것이 아니라고 하며 외계의 지적 생물체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책으로 발간되어 큰 관심을 끌었고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모아이를 보기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이스터섬은 호화 유람선들의 경유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학자들의 연구 결과, 석상의 재질은 화산암으로, 쉽게 조각할 수 있고
거대한 석상들도 ‘Y’ 자의 지렛대를 사용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이동도 하고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거석들이 마을의 원주민들에 의해 세워졌음이 입증되어
다니켄의 주장은 장삿속에서 나온 허황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지금은 외계인의 이야기가 거짓임이 밝혀져 신비감은 많이 없어졌지만
나중에 밝혀진 모아이 제작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모아이에 얽힌 전설은 여전히 흥미로워
섬에는 연중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모아이에 관한 전설은 마을 사람들의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는데 다음은 그 중의 하나이다.
전설의 왕 ‘호트 마투아’, 그는 단이족(귀가 작은 부족)의 왕으로
한 여자를 두고 사랑 때문에 벌어진 장이족(귀가 큰 부족)과의 전쟁에 패한 후
이곳 이스터섬으로 건너와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
그러나 장이족은 다시 이곳을 침략해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이들은 단이족이 반란을 일으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대규모 건설 작업 (모아이 건설)을 감행,
단이족이 농사 지을 시간을 제외하곤 모아이를 만드는 노동에만 전념케 했다.
그런 이유로 섬 안의 모아이들은 커다란 귀를 가진 장이족의 모습을 하고있다.
한편, 장이족은 사람을 잡아먹는 습관이 있어 단이족의 아이를 곧잘 잡아먹었다.
이에 참다 못한 단이족이 또 다시 전쟁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장이족이 싸움에 패하고, 권력을 되찾은 단이족은 탄압의 상징이던 모아이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섬안의 모아이들은 파괴되었고 근대에 와서야 상당수 복원되었다.
섬에 관한 전설은 여러 가지 설들이 구전으로 전해져 정확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모아미들이 섬사람들의 손으로 제작되었음이 입증되고
두 부족간의 전쟁의 흔적도 섬 곳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전설의 줄기는 맞는 듯 보인다.
장이족과 단이족의 전설을 담고 있는 거대한 모아이,
다리는 없이 몸통만 커다랗고, 커다란 얼굴은 각이 지고,
턱은 앞으로 뻗었으며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본 모아이의 모습이 약간은 실망스러웠지만
모아이에 얽힌 전설로 인해 그 모습이 훨씬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아후 나우나우’를 뒤로 하고 다시 차를 출발하였다.
이제 슬슬 수동 기어의 차량에 적응이 되어 가나 싶더니 언덕에서 또 시동을 꺼트렸다.
그래도 한적한 이스터섬의 비포장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는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언덕에 차를 세우고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며 바닷 바람을 맞는다.
지금 이순간, 모아이의 신기함보다도 시원한 남태평양의 바닷바람이,
그리고 그 바닷바람을 맞으며 낡은 짚차를 몰아가는 기분이 훨씬 좋다.
해변을 돌아 돌아, 털털 거리는 짚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한 마디 더: 소문으로만 듣던 이스터섬의 물가는 정말로 비쌌다.
다른 남미 지역에 비해 배도 넘는 느낌이었다.
마을 식당의 음식값도, 길가에서 파는 바나나의 가격도 다른 지역의 두 세배는 되는 듯……
재미있는 것은 남태평양 한 가운데임을 말해 주듯,
거리의 좌판에서 1미터 오십은 족히 됨직한 커다랗고 싱싱한 참치를 통째로 놓은 채 팔고 있었다.
이곳 이스터섬의 전형적인 요리는 싱싱한 참치를 요리한 것이라 한다.
첫날은 비싼 물가에 놀라 먹어 보질 못했지만 섬을 떠나기 전에 필히 먹어볼 작정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 이틀째 (Rapa Nui), 5월 23일
맑은 후 차차 흐림
오늘도 날씨가 아주 좋다.
지금 계절이 우기라 일주일의 반은 비가 온다고 하는데 이틀 연속 날이 좋다.
더구나 차를 빌리기로 한 이틀 모두 날이 좋으니 운이 아주 좋은 셈이다.
시차 탓인지 어제 저녁은 9시부터 잠이 쏟아져 (산티아고 시간으로는 밤 11시이므로 취침 시간임)
바로 잠자리에 든 뒤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열두시간을 잤으니 당연히 몸은 개운하고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늦은 아침 식사를 서둘러 해결하고 10시 무렵 숙소를 나섰다.
어제는 첫날이라 두,세 곳의 모아이만 들러 섬을 가볍게 둘러 보았지만
오늘은 차를 빌리는 마지막 날이라 보고 싶은 것은 오늘 내로 다 보아야만 한다.
먼저 숙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이스터섬의 인류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Anthropological Museum Sebastian Englert’,
박물관의 이름은 독일인 인류학자 ‘Sebastian Englert’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류학자이자 35년간 섬의 교구 신부를 지냈던 그는 섬의 문화 유산들, 종교적 유물 등을 수집하며 이스터섬 연구에 몰두하였던 사람이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안에는 그가 수집한 여러 가지 유물들과 함께 이스터섬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섬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섬 사람들이 어떻게 모아이를 만들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과 설명들……
이런 연구 덕에 외계 생물의 유물이라는 이야기가 거짓임이 밝혀져 뭇 사람들의 관심은 멀어졌을지는 모르지만
모아이 유적의 진실과 제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게 되었으니 섬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털털거리는 짚차를 타고 섬 안의 나머지 모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외계생물의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신비감이 걷혀진 모아이는 예상보다도 훨씬 덤덤하다.
모아이를 보는 즐거움보다는 섬 전체에 흩어져 있는 모아이들을 찾아 다니며 보게 되는 이스터섬의 풍광들이 더욱 우리를 흐믓하게 만든다.
해변을 따라 절벽과 바위들로 이어진 해안선, 그리고 거친 파도가 아주 시원하다.
섬의 서쪽에서부터 남쪽 해변을 따라 가며 크고 작은 모아이를 지나 ‘아후 통가리끼’(Ahu Tongariki)에 도착했다.
섬에 흩어져 있는 모아이들 중 가장 커다란 군을 이루고 있고,
모아이들을 받치고 있는 석단의 길이가 200m 에 달하여 그 위에 모두 15개의 모아이들이 올려져 있다.
각각의 모아이 규모는 4, 5m의 크기에서 큰 것은 10m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모두 서기 9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세워진 것들이라 한다.
섬 전체의 모아이들은 서기 400년에서 1680년 사이에 만들어 졌는데
11세기경에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섬 원주민간의 전쟁 후 파괴되었던 모아이들, 그리고 다시 1960년의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1955년에서 1996년에 걸쳐 일본의 재정적 지원을 받은 칠레의 고고학자들이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관계 때문인지 일본에서 열렸던 오사까 국제 박람회에는 작은 모아이 하나가 대여되어 전시되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은 섬 관광 안내소에서 나누어 주는 안내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과거사로 인해 늘 경계의 대상인 일본,
싫고 좋고를 떠나 국제 사회에 기여하려는 부자 나라, 일본의 위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좋은 결과로 다시 일본에 돌아갈 것이기에 부러움이 느껴진다.
바다를 등지고 있는 ‘아후 통가리끼’를 지나 맞은편에 위치한 ‘라노 라라쿠’ 화산 (Rano Raraku Volcano)으로 향한다.
옛날, 원주민들이 모아이를 만들던 곳으로, 섬의 모든 모아이들은 이곳에서 채취한 돌로 만들어져 각각의 위치로 운반되어진 것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자 수많은 모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아이의 채석장이었음을 증명하듯 얼굴만 만들어진 것, 바위에서 잘라내기만 한 것, 완성 직전의 것 등
가지각색의 모아이들이 라노 라라쿠 언덕의 경사면을 차지하고 있다.
모아이들의 사이를 지나 언덕의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모아이의 모습, 원주민들이 그것을 다듬고 운반하던 것이
마치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해변을 따라 세워진 수많은 모아이보다, 이곳 채석장에 버려진 미완의 모아이들이
장이족과 단이족의 전설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슬슬 시장기가 느껴진 우리는 숙소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과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양이 약간 작기는 하지만 저녁을 기약하며 다시 출발,
아직도 우리가 보지 못한 모아이가 많이 남아 있지만 같은 모아이를 계속 보는 것이 싫어 모아이는 이제 그만 보기로………
섬 안에 몇몇 유적을 돌아 서남쪽 끝에 위치한 또 다른 화산 라노 카우 화산(Rano Kau Volcano)을 향해 출발했다.
‘Rano’는 화산을 의미하고 ‘Kau’는 넓다는 의미,
화산의 가운데에는 호수가 생겼다고 하는데 그 지름이 1 km 정도 된다고 하니 꽤 큰 화산인 모양이다.
차를 몰아 마을 옆을 통과해 20여분을 달린 후 다시 산비탈을 돌아 10여분을 더 가자
‘라노 카우’ 가 있는 ‘오롱고’ (Orongo)가 나타났다.
‘오롱고’의 의미는 ‘The place of messenger’ ,
실제로 라파 누이 섬사람들은 이곳에서 ‘마누 타라,(군함조)가 오는 것을 감시 하였다 한다.
그리고 18세기 무렵 이후에는 마을의 ‘탕가타 마누’ (Tangata Manu = Bird Man) 의식이 벌어지던 성역이라 한다.
다음은 박물관에서 본 ‘탕가타 마누’ 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이것은 일종의 성인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8세기 이후에 의식의 성격이 바뀌어 1년 기한의 신성한 왕,
탕카타 마누 (Bird Man: 신이 변신한 모습이라 여김.)를 선출하는 의식이 되었다.
이 의식을 주최한 것은 섬의 전사 계급 사람들이었고,
권력을 물려받는 귀족들과는 달리 이들은 이 의식을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의식은 신성한 섬, 모투 누이 (Motu Nui)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롱고’곶의 정상에서 벌어졌다.
계절이 봄으로 바뀌고, 오롱고 바로 앞에 위치한 ‘모투 누이’에 알을 낳기 위해
‘마누타라’ (군함조)가 날아 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의식이 시작 되면 전사들은 각각 자신의 부하를 한 명씩 지명하여
모투누이섬에서 마누타라 알을 갖고 오도록 했다.
이들 중 마누타라의 알을 가장 먼저 발견한 자가
알을 머리 위에 묶은 바구니에 넣고 오롱고까지 헤엄쳐서 돌아온다.
그러면 그를 보냈던 전사가 정해진 의식을 거쳐 신적인 존재, 탕가타 마누가 되어
1년 동안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탕가타 마누가 되면 1년 동안 탕가타 마누의 주거지로 은거하여
부인도 가까이 하지 않는 등, 엄중한 금기에 싸여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 의식이 행해지고 수주일이 지나면 비로소 섬 사람들이 마누 타라의 알을 취하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오후 무렵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는 오롱고의 정상에 다다르자 완전히 흐려져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바람도 꽤 거세지고 희뿌연 안개로 둘러 쌓인 오롱고는 왠지 스산하다.
정상 부근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 보지만 화산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후, 정상의 왼쪽 편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드디어 ‘라노 카우’ 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의 중앙에 위치한 호수, 지름이 1 km에 달하는 호수와
그 호수를 둥그렇게 둘러싸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라노 카우’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난다.
화산은 섬의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지 않고 바다쪽으로 치우쳐,
한쪽 부분이 완전히 바다와 맞닿아 있다.
더욱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부분은 다른 곳에 비해 움푹 들어가 있어 그 사이를 통해 바다가 내다 보인다.
태풍이라도 오게 되면 그 경계를 넘어 바닷물이 들이 닥칠 듯한 모습이다.
라노 카우는 ‘탕가타 마누’의 의식이 아니더라도 라빠 누이의 성역이 될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산을 지나 바다쪽으로 좀더 나아가자 바로 앞에 신성한 섬, ‘모투 누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롱고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모투 누이’는 신성한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난 후라 섬의 모습이 더욱 신비스러워 보인다.
대양과는 달리 비교적 얕은 수심을 보여주듯 섬 주변의 바다 색깔이 유독 아름답다.
모아이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와서 약간은 평범한 듯한 모아이의 모습엔 작은 실망을 하고
아름다운 섬 풍경, 특히 오롱고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
우리 아메바는 ‘라빠 누이’라는 섬의 이름이 너무 좋다고 연신 섬 이름을 다시 되새긴다.
잔뜩 흐린 오롱고 주변, 천천히 돌며 근처에 있다는 ‘탕가타 마누’의 모습이 새겨진 바위를 찾아 보지만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원주민 청년이 다가와, 우리가 있던 구역은 국립 공원 지역이니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고 하며
입장권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국립공원에 돈도 안내고 들어온 모양이다.
들어올 때 작은 건물과 그 옆의 짧은 담장 이외에 아무런 문이나 건물도 없었고
차를 건물 앞에 세우고 바로 들어오는 동안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
섬의 다른 유적지처럼 무료인줄로 알고 들어왔던 것인데……..
표가 없음을 확인하고 일인당 5천 페소(미화 약 7.5불)를 요구한다.
5천 페소, 유적의 가치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돈이 분명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볼 만한 곳이었지만 한번의 입장료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래서 순간, 정색을 하며 입구에 아무도 없어 모르고 들어왔다, 이제 알았으니 나가겠다고 하며 재빨리 걸어 나왔다.
청년은 머쓱해 하며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고
우리는 방금 전의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입장료를 아끼게 된 것이 흐믓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바위에 새겨진 ‘탕가타 마누’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입장료를 아꼈으니 ‘탕가타 마누’는 마을 근처의 모조품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차를 돌려 오롱고를 빠져 나가는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일정이 다 끝난 후에야 비가 내린다.
막상 생각해 보면 섬 전체에 있는 모아이들을 보는 것이 지루할 법도 했는데,
곁들여 보는 섬의 경치가 좋아 지루한 줄 모르고 이틀이 지나갔다.
시간은 벌써 저녁 6시, 옆에 있는 아메바는 오늘은 참치 요리를 먹자며 어디를 갈 것인지 궁리를 하며 신이 나있다.
비를 맞으며, 털털 거리는 일제 짚차를 몰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몇 마디 더:
1) 돌아와 식사를 하며 생각해 보니 헷갈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운 좋게 국립 공원의 입장료도 안내고 구경을 잘 한 것인지,
아니면 영악한 사기꾼이 우리를 속이려 하는 것을 어리버리한 우리가 운 좋게 빠져 나간 것인지……..
오롱고의 입구에는 입장료 간판이나 안내판도 전혀 없었는데,
그리고 앞선 여행자들이 입장료를 냈다는 소리도 들어 본적이 없고……..
모르겠다. 어찌 됐든 운은 좋은 것이겠지.
2) 오늘도 참치 요리를 먹는 것은 실패했다.
식당 가격이 비싸서 돌고 돌다 결국 집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하필 오늘 참치가 다 떨어졌다고 한다.
오늘도 참치 요리를 먹는 것은 실패다.
할 수없이 다른 생선으로 대체, 그래도 식당의 음식 맛이 좋아 저녁은 즐거웠다.
3) 시차를 핑계로 오늘도 밤 9시에 잠자리로……
쏟아지는 졸음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잠을 많이 자 좋긴 하지만 어찌 좀 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 빈둥빈둥…… 빈둥빈둥……… (Rapa Nui), 5월 24일
비
빈둥빈둥…… 빈둥빈둥…… 하루 종일 숙소에서 빈둥거린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에도 그치질 않는다.
이제 이곳에서 보고 싶은 것은 모두 보았다.
게다가 차도 없으니 비오는 섬을 돌아다니는 것도 마땅치 않아 하루 종일 숙소에서 빈둥거린다.
우리말고도 숙소에는 빈둥거리는 일행이 몇 명 더 있다.
이곳으로 오는 항공편은 일주일에 단 두 번, 그래서 도착 하는 날과 떠나는 날도 정해져 있다.
우리는 수요일 날 도착, 그리고 월요일 출발의 일정이다.
그 사이에는 비행기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 없이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선택의 여지 없이 하는 휴식이지만 너무 흐믓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아홉시 기상, 이틀째 열 두시간을 자니 몸 컨디션은 더 이상 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우리의 훌륭한 식욕 덕에 무엇이든 잘 먹으니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자고 있다.
점심 무렵,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며 해먹은 밋밋한 소스의 스파게티도 싹싹 긁어 먹고……
오늘은 토요일, 우리가 묶고 있는 숙소 ‘타케나 인’에서는 매주 토요일 투숙객들을 위해 저녁을 제공한다고 한다.
저녁 무렵 모든 투숙객들이 모여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어서 재미도 있지만 무엇 보다도 무료라는 것이 반가웠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우리나라의 장마비처럼 온 종일 비가 내린다.
한국에서라면 부침개라도 부쳐 먹으면 딱 좋을 날씨다.
저녁 시간만 기다리며 빈둥빈둥……… 여행지에서 빈둥거리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저녁 여섯시, 식사 시간에 맞추어 투숙객들이 모두 모였다.
한국인은 우리 둘, 젊은 미국인 여자 한명, 콜롬비아인 남자 한명, 스위스 자매 둘
그리고 폴란드인 부부까지 모두 여덟이고 그 동안 기상 시간이 서로 안 맞아 폴란드 부부는 처음으로 얼굴을 본다.
모두들 기다란 식탁에 빙 둘러 앉고 한쪽 끝에는 ‘타케나 인’ (Takena Inn)의 젊은 주인이 앉았다.
식탁에 앉으며 만찬의 내용을 보고는 아메바가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연신 싱글벙글, 이틀 동안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참치 요리였다.
더군다나 관광객 대상의 식당이 아닌 일반 가정의 요리 (‘타케나 인’은 식당을 겸한 곳이 아니어서
요리는 젊은 주인의 어머니가 해주었다.)를 맛보는 것이어서 더욱 즐거웠다.
식탁의 요리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이 담긴 정성스러운 것이었다.
삶은 참치, 그리고 그 위에 평범한 소스를 얹고 이스터섬에서 나는 야채와 곁들여 먹는 것이었다.
소스가 참치와 잘 어울렸고 싱싱한 참치를 사용해서인지 맛이 아주 담백했다.
우리들은 풀 한쪽 남기지 않고 깨끗이 식사를 끝내고 나머지 사람들도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식사와 함께 주인이 가져온 보드카 비슷한 술 한병, 그리고 몇몇 사람이 술을 더 가져왔다.
다들 한잔씩 따라 술을 마시며 서로 얘기를 나눈다.
처음 몇 분, 우리 둘은 완전히 벙어리 신세였다.
주인이 영어가 익숙치 않자, 모두들 스페인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한다.
남미에 온 뒤로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구사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지만
이번처럼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모두들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이야기가 좀 진행이 되자 스페인어와 영어를 같이 사용해
스페인어 한 마디 모르는 우리도 즐거운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폴란드 부부, 처음으로 폴란드 사람과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동유럽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우리, 특히 아메바는 동유럽 사람과의 대화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영어와 스페인어를 너무 능숙하게 구사하고,
아주 부유해 보이는 옷차림으로 보아 일반 서민은 아닌 듯 보였다.
폴란드에 진출했던 ‘대우 자동차’ 때문에 한국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끝에 우리의 외환 위기 때 폴란드의 대우 자동차가 완전히 파산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폴란드에 진출해 낯선 한국을 익숙하게 해준 한국 기업, 파산하지 않고 잘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기업의 흥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뒤를 이을 또 다른 한국인들의 진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었다.
새삼, 기업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술병에 술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이 더욱 친근해지고 즐거워진다.
미국에서 온 여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며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 다시 직장을 구하는 일이 걱정스럽다고 한다.
아메바와 나는 돌아가면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위로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나선 우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좀 쑥스럽긴 했지만
우리가 건넨 위로의 한마디가 그녀의 기분을 좋게 했는지 자신을 여행 이야기를 아주 즐겁게 한다.
우리의 앞날에 대한 축복의 말도 잊지않고…….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9시가 다되어 가고,
모두들 흥이 한참 오르는 즈음이지만 우리는 졸음이 쏟아진다.
지난 이틀을 9시면 잠자리에 들었더니 오늘도 여지없이 졸린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해서 견뎌보려 애써 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하고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이스터섬의 독한 술에 얼큰해지고 사람들과 주고 받은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훈훈하다.
평소 술이 아주 약한 아메바는 겨우 반잔을 마시고도 술 취한 흉내(?)다.
어찌 보면 좋은 일, 적은 양의 술로도 그리 즐거울 수 있으니…….
▶ 여전히 빈둥빈둥…… 빈둥빈둥……… (Rapa Nui), 5월 25일
비
밤새 잠깐 그쳤던 비가 아침부터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오늘도 기상 시간은 여전히 아홉시, 삼일째 열 두시간씩 잤더니 컨디션이 아주 좋다.
잘 먹고 잘 쉬었던 탓인지 아메바의 얼굴엔 윤기가 빤짝 빤짝…………
포동포동한 얼굴을 하고 아메바는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린다.
방을 나서면 바로 넓은 거실이 있고 그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어 이틀째 숙소에만 있는데도 별로 갑갑한 줄 모른다.
빈둥빈둥…… 빈둥빈둥……
저녁 무렵이 되자 드디어 날이 활짝 개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일출과 일몰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날마다 아침 아홉시에 일어나니 일출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일몰의 모습은 삼일째부터 보려 했지만 비가 계속 와서 못보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다행히 저녁 무렵부터 날이 완전히 개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이어서인지 맑은 날에도 하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더니 오늘 저녁은 구름 한 점 없다.
숙소를 나와 마을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후 타하이’로 향했다.
‘아후 타하이’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사람이 석양을 보기위해 나와있다.
‘아후 타하이’의 오른편 언덕으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석양을 기다린다.
10여분 후, 6시가 되자 수평선에 걸린 해가 붉게 변하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섬 하나 없이 깨끗하고 그에 맞닿은 하늘도 구름 한 점 없더니
수평선과 맞닿은 부분에서야 구름이 몇 조각 걸려있다.
석양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넓고 깨끗한 석양은 처음인 것 같다.
해가 붉어질수록 바다색은 점점 검어지고 마침내 태양의 붉은 빛이 절정에 달하자 모두들 감탄의 소리를 내뱉는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7시가 다되어 갈 무렵, 숙소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제 같이 저녁을 했던 미국 처녀가 오늘 저녁 비행기로 다음 여행지인 ‘타이티’로 간다.
숙소에서 7시 무렵 떠난다고 했으니 지금 가면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 하니 떠날 채비를 끝내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러 들어 왔다고 하며, 그 동안 날씨가 흐려 석양을 못 보았던 그녀에게
우리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간밤에 친해진 숙소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 때문인지 얼굴에 아쉬움이 역력하던 그녀는
사진을 보여주는 우리를 덥석 껴안기부터 한다.
단 며칠을 같이 지낸 자신을 배웅하기위해 일찍 들어온 우리가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어제 저녁 서로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오늘 저녁 서로에 대한 작은 마음 씀씀이,
어찌 보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기에 서로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차가 도착하고, 짐을 싣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그녀를 배웅하며
여행 후 돌아가면 일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겠다는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서로에 대한 작은 마음 씀씀이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한 마디 더: 석양을 찍은 사진과 마지막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며 적어준 그녀의 이메일 주소는
영문으로 ‘kim’으로 시작 되었다.
두번째 이름과 성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첫 이름(First name)은 ‘Kim’ 이었다.
그녀도 한국에 그런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다며 웃었는데………
아메바는 혹시, 그녀의 핏줄이 한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냐며 엉뚱한 상상을 한다.
▶ 이스터섬을 떠나며………, 5월 26일
맑음.
오늘은 우리가 이곳 이스터섬을 떠나는 날이다.
어제 Kim (미국인 처녀)을 태우고 타이티로 갔던 비행기가 오늘 이곳으로 다시 와 승객을 태우고 산티아고로 간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짐을 챙겨 출발 준비를 마쳤다.
숙소의 승합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온 집안 식구들(주인집)이 모두 쫓아 나온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어리둥절해 하던 우리는 그 이유를 공항에 가서야 알았다.
같은 숙소에 머물던 스위스인 자매도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섬을 떠나는데,
모두들 그 자매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섬에서 5일간 머물렀던 우리와 달리 그 둘은 약 2주간을 ‘타케나 인’에서 머물며 주인 가족들과 같이 지냈던 것이다.
섬의 관광은 사실 이,삼일 이면 충분하였을 테니,
그 이삼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집에 쉬며 식구들과 어울려 살았던 모양이었다.
‘타케나 인’의 젊은 사장도, 같이 나온 누이 동생도
그리고 그 외의 식구들도 단순히 손님이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숙소에서 스위스 자매들이 귀여워하며 같이 놀았던 대,여섯살의 꼬마는
둘이 게이트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게이트로 들어와 비행기로 향하던 자매들은 공항의 철조망 밖까지 쫓아와 손을 흔드는 꼬마와 가족들을 보더니 결국 같이 울어버린다.
비행기 탑승구의 계단을 오르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훌쩍인다.
옆에서 보는 우리도 코끝이 찡하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 두 자매에게는 이스터섬이 모아이로 기억되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닐 것이다.
이스터섬의 멋진 풍광과 모아이에 대한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는 우리는 따뜻한 추억까지 안고 돌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여행을 하면서 얻는 가장 귀중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따뜻한 기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 더: 오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에 산티아고에 도착,
사실 우리는 지난번 보지 못한 산티아고의 관광지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맛본 ‘길목 식당’의 맛있는 총각 김치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 마자 길목 식당으로 직행, 이번엔 비교적 싼 소고기 값을 보곤 불고기를 시켜 먹었다.
총각 김치가 다 떨어져 아쉬웠지만 새로 나온 깍두기도 그에 못 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은 언니들이 가득한 카페에서 찐한 카푸치노 한잔, 역시 일품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직전, 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산티아고의 카푸치노를 한잔 더, 역시………
★★칠레 여행정보
# 칠레 어디가 좋은가?
금나라 : 푸에르또 나탈레스
은나라 : 이스터 섬
- 이미지
멘도사에서 산티아고로 국경을 넘어갔는데,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광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상당히 좋았으나 국경넘을때 많은 시간이 소요(약 3시간) 되었음.
편안하고 평온한 분위기이며, 안전해 보여서 남미에선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보여짐.
- 날씨
우리가 여행한 10월달의 산티아고는 따뜻한 봄날씨이며, 이스터 섬은 좀 더웠지만 무진장 좋았음.
뿌에르또 나탈레스는 남쪽에 위치한 곳인데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매우 추움.
- 물가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하나 남미에선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임.
돈 대비 질로 따지면 매우 만족스러워서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진 않았음.
- 환전
훼손되거나 '1996년 AB', '2001년 CB'로 시작되는 $50, $100, 미국 달러 환전 안됨.
- 음식
슈퍼마켓에 홍합캔을 파는데, 우리나라 홍합 삶아놓은 맛이랑 같아서 생각보다 괜챦음.
2,500페소(약 5,000원)정도하는 연어 스테이크 정말 맛있고, 양 무지많음.. 너무 많아서 놀랄정도로..
오죽하면 남은걸 포장해 와선 저녁으로 또 먹음.^^
우리가 간 레스토랑만 양이 많은건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정도 양의 연어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3~ 4만원 이상은 들지않을까 생각됨..
- 한국 슈퍼
* 아씨 마켓
주소 : Antonia Lopez de Bello 326 (산티아고)
전화 : 777-5254 (일요일 공휴일 휴무.)
김밥, 떡, 김치, 밑반찬, 삼겹살, 오뎅, 만두, 햇반 등도 살 수 있는 굉장히 큰 슈퍼임.
-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남미를 여행한 배낭여행자라면 누구나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곳인데...
보통 유명한 'W'코스를 '4박 5일' 일정으로 트레킹을 하는데, 우리의 경우 체력도 안되고
시간이 모자라서 'C'코스만 돌고왔음.
트레킹을 해보니 최소 5박 6일은 해야 'W'코스를 제대로 다 보지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음.
낮엔 무거운 짐을 메고 계속 강행을 해야되기에 무지 덥지만, 밤엔 뼈가 시릴정도로 상당히 추움.
대단한 각오와 마음에 준비를 하고 트레킹을 해야될 듯..
엄청 고생하고 힘은 들었지만, 평생 잊지못할 트레킹이였음.
(*** 자세한 내용은 여행기'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첫째날~ 넷째날' 을 참고 하시길...***)
- 숙소 (* 곤 바뇨:개별 욕실/ * 신 바뇨:공동 욕실)
(산티아고/ 체 라가토 호스텔)
6인실 도미토리 9달러(호스텔카드 할인 가격임.)
* 신 바뇨. 아침 포함. 인터넷 공짜인데, 한글이 전혀안됨_._;; 부엌 시설 매우 좋음.
위치도 매우 좋음. 1층은 상당히 시끄러우니 필히, 2층 방을 달라고 해야함.
전화 : 6991493
위치 : LOS HEROES 지하철역에서 1블럭 위치
(이스터 섬/ 코나 타우 호스텔)
더블 12,480페소(24달러/ 호스텔카드 할인 가격임.)
* 곤 바뇨. 아침 포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시몬스 침대라 너무 편안하게 잠들수 있음.
깨끗하고, 전망좋고 조용해서 쉬기에도 딱! 좋음.
주소 : AVAREIPUA S/N(공항에서 무료 픽업)
(푸에르또 나탈레스/ 데니카)
트윈 8,000페소
* 신 바뇨. 아침 포함. 주인 아주머니 친절하시고, 위치 좋음.
부엌 사용가능하나 오븐이 옛날 방식이라 불조절이 안되서 곤란함.
전화 : 5661412170
주소 : O'HIGGINS,NO 707
사이트 : http://www.chileaustral.com/danicar
- 경비 내역
(* 1페소 = 약 2원)
교통 -> 139,200원
숙박 -> 296,140원
식비 -> 106,810원
간식 -> 91,690원
투어 -> 224,600원
기타 -> 54,400원
- 칠레 19일 총결산
총 912,840원
* 1인당 1일 평균 체제비 약 24,022원
★ [산뻬드로] 달의 계곡, 소금으로 뒤덮힌 사막 |
2006.03.11
산뻬드로가 유명한 것은 인근에 위치한 Atacama(아따까마) 사막때문인데
이 사막은 특이하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산뻬드로에서 여행자들이 주로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달의 계곡 구경가기(투어, 자전거, 샌드보딩 등), 용암 분출구인 Geiser 구경, 아따까마 사막 구경,
그리고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우유니 사막 투어...
욕심같아서야 다 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 달의 계곡과 Geiser 구경을 가기로 결정한다.
산뻬드로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거의 정석처럼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단 중간이 사막이라서 직행하는 교통편이 없고,
가려면 아마 다른 지방으로 우회를 해야 한다.
또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투어는 남미에서 빼먹어서는 안되는 코스로 인식되어 있으므로,
여행을 갔다면 한번은 반드시 해줘야 하는 것이다...
여행사를 돌아 다니면서 물어보니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는 아무 여행사에서나 다 취급하지 않는다.
허가받은 몇개의 여행사에서만 취급하는데 내가 여행한 당시에는 4곳에서 운영했다.
이 허가는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알려줘봤자 별로 소용이 없어서 쓰지 않겠다.
현지에서 직접 알아보는 것이 제일 좋다.
처음 방문한 여행사에서는 우유니 투어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볼리비아 투어에 대해서 들어보니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를 하면
굳이 Geiser를 보러가지 않아도 될 듯해 보였다.
볼리비아 투어 중간에 Geiser를 방문하는 코스가 있으니까..물론 다른 Geiser이긴 하지만..
그래서 여행사에 다시 가서 Geiser는 취소하고 환불을 받았다...물론 수수료 물고...쩝.
아까워라...내 수수료!!
이래서 사람은 서둘러서 하면 항상 낭패를 보는 법이다.
오후에 달의 계곡으로 가기 위해 간단히 준비를 하고 집합 장소로 나갔다.
투어용 미니밴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다. 앞자리에는 운전기사와 가이드 두명이 자리를 잡고...
가이드는 젊은 남자인데, 말을 무척이나 천천히 하는 사람이다...
스페인어를 느리게 하니까 정말 이상하게 들린다.
이 사람은 투어 내내 묘령의 여자 두명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하면서 접근하더니
결국은 그 두사람을 파티에 초대했다.
아마도 현지인과 여행자 간의 가벼운 엔조이를 즐기고 싶었을지도.
달의 계곡은 계곡이라고 하기는 사실 좀 이상하고, 그냥 광활한 사막 산악지대이다..
처음 가이드가 우리를 이끈 곳은 마을에서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달의 계곡 전체의 전망을 보기에 좋다고 한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감상을 해야 하는데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먹구름이 끼면서 번개들이 치기 시작한 것이다.
날씨가 나빠졌서 비가 왔냐고? 아니다...비는 전혀 오지 않았다. ㅎㅎ.
멀리서 먹구름 사이로 번개들이 치는데 엄청나게 많은 번개들이 쉴새없이 쳐대는 바람에
그 광경에 모든 투어 참가자들이 넋이 나가버렸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번개가 많이 치는 걸 비도 안맞으면서 구경하긴 처음이었다.
사람들 모두 달의 계곡이고 나발이고 간에 번개 구경하느라 가이드 설명은 귓등으로도 안듣는다.
모든 사람들이 번개 한번 찍어보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사실 이 번개라는 놈은 그냥 카메라 들이댄다고 찍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번개 찍는데 성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처음 방문한 전망대를 뒤로 하고 다시 한참 차를 타고 이동한 후
가이드와 여행자들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달의 계곡을 둘러보기로 한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이곳 날씨는 정말 사막이다!! 더워 죽겠다!!
이전에는 우리가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하게 되는 전형적인 사막을 전혀 느껴본 경험이 없는지라
이런 강렬한 햇살과 뜨거운 바람, 푹푹 빠지는 모랫길에 약간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풍경에 감탄하고 열기에 지치면서 얼마간을 걸어가니 왼쪽으로 DUNE이 나타난다.
"이야....저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걸어가는데
DUNE 위로 3명의 남자가 힘겹게 보드판을 들고 걸어서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샌드보딩을 즐기려는 남자들이다...
우리는 밑에서 그사람들이 어떻게 샌드보딩을 즐기는지 구경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한참을 힘겹게 올라간다...
그러다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였는지 보드를 장착하기 시작하더니만 관두고 다시 또 이동한다.
그러기를 한참을 하더니만 드디어 보딩을 시작하는데,
푸핫.... 왜 저런 것을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광경이 연출된다.
보드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하자마자 몇 미터도 가지 못해서 굴러서 떨어진다. 떼굴떼굴....
그렇게 힘겹게 올라가더니 모래언덕에서 굴러 내려 오다니...그것도 몇미터도 못 굴러 내려오고.
그걸 직접 해보지 않거나 구경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왜 터무니없는지 모를 거다.
그 뜨거운 날씨에 샌드보딩을 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려면
직접 보드를 대여해서 자전거의 뒤에 싣고 달의 계곡까지 가야만 한다.
그 거리는 날씨가 좋을 때도 가기 힘들 정도로 먼데다가 이곳 날씨는 사람을 태워 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힘겹게 가서도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걸어서 모래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투자를 하고 올라가서는 고작 몇미터만에 굴러서 내려오는 놀이를 하다니..
나같으면 절대 저런 과도한 투자를 하면서까지 즐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달의 계곡은 단순한 사막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물론 누구나 당장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뭐냐하면 색깔이 이상하다... 왜 저렇게 하얀 색을 띄냐고? 짐작해보라...뭘까?
그렇다.... 소금이다.
칠레 북부부터 올라가면서 볼리비아, 페루를 여행하기 시작하면 이 소금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소금과 관련된 유명한 관광지가 몇몇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 달의 계곡부터, 우유니 소금사막, 티티카카의 짠 소금물 호수..
그럼 이곳은 왜 이렇게 소금과 관련된 것들이 많을까?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전에 이곳이 바다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대홍수를 믿는 편이고, 이 동네의 짠 소금은 그때의 영향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나 카톨릭은 아니다...
그런 대홍수의 전설은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달의 계곡에 가면 바닥에 엎드려 소금을 맛보기도 해보자...정말 짠지 어떤지...
물론 당연히 짜지!!
달의 계곡에 가면 '세 마리아'라는 것이 있는데, 사진과 같은 것이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왜 저것이 마리아인지 절대 짐작하기 힘들지만
기도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지금도 나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톨릭인 남미에서는
저런 자연 조형물에서조차 자신의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진에서처럼 두개의 돌기둥만 남아 있는데 하나는 얼마전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중간에 아주 조그마한 오두막같은 공원 매표소에 들러서 공원 입장 티켓을 구매한다.
티켓을 사려고 하는데 바람이 무척이나 거세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면서 모래를 온 천지에 뿌려대는데 그 위용이 장난이 아니다.
달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굉장히 큰 모래언덕이 있는 곳이다...
이 모래언덕을 따라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면 달의 계곡에서 가장 좋은 일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달의 계곡이 위치한 이곳은 고산지대라서 걷는 것도 적잖게 숨이 차오르는데
이 모래언덕까지 올라오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저 건너편까지 무너지는 모래를 밟으면서 올라가야 한다니...
에잉....내가 누구냐? 성의없는 여행자가 아니더냐? 가지 말자!!
"그냥 다른 쪽에서 봐야지."
달의 계곡은 Lonely Planet에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 많이 간다.
그러므로 대부분 출발은 오후에 하며, 혹시나 오전에 출발하는 투어가 있으면 사지 말길 바란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일몰은 항상 감동적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런 붉은 기운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같은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는게 아닐까?
달의 계곡은 중남미 여행을 해보지 않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사실 이곳이 그런 유명세를 탄 이유는 아마도 여행가로 알려진 한모씨가
자신의 책에서 이곳을 극찬한 이유가 크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모씨가 극찬한 것은 이곳 자체의 매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이곳에서 재미있게 보낸 자신의 경험에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전혀 볼거리 없는 허명만 있는 곳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여전히 달의 계곡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환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환상의 쓴 잔을 원샷할 각오를 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의 계곡을 가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하겠다.
비용도 얼마 들지 않으면서도 남미에서 드문 모래사막과 소금사막을 같이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멋진 일몰도 함께...
감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막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라면 그냥 풍경만 감상해도 좋다.
■ 여행팁 ■
¤ 달의 계곡 투어비용 : 3000페소. 공원입장료 제외.
¤ 달의 계곡 공원입장료 : 1500페소.
¤ 달의 계곡을 갈때는 가능한한 물을 많이 가져가길 바란다
★ 산티아고에서 가장 엠빠나다를 잘 만든다는 가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Manuel Montt역과 Pedro de Valdivia 역 사이에 있는 Information Center 바로 뒤에 보면
작은 시장 상가가 있고(아마 Mercado de Provincia..)
그 안에 Tinita라고 하는 엠빠나다 가게가 있습니다.
보시면 산티아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보실 수 있을 실 겁니다.
보통 하나에 750 페소 정도 하고, 가게 앞에서 앉아 먹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산티아고 외각에서 직접 큰 화로에 구운 엠빠나다와 맛이 비슷했는데,
시내에서는 그만한 가게를 찾아보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혹시 Information Center를 가시거든 꼭 거기서 엠빠나다를 드셔보세요..
★ [스크랩] [192]칠레, 아타카마 소금사막
아타카마 소금사막
오늘은 아타카마 소금사막을 거쳐 고산 지역에 있는 소금호수로 간다. 어제 여행사를 몇 군 데 들려보았는데, 여러 여행사 중에서도 Pachamama란 여행사의 여직원이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가격도 다른 여행사보다 저렴하게 할인을 해 주었다. 우리는 ‘Lagunas Altiplanicas'코스를 1인당 18,000페소에 예약을 했는데, 여행사에 따라 20,000~24,000페소로 가격이 조금씩 다 다르다.
‘Lagunas Altiplanicas'투어의 내용을 보면 오전 8시에 출발하여 Laguna Chaxa, Salar de Atacama, Socaire Lagunas, Altiplanicas, Miniques, Miscanti, Talar, Tuyajta, Toconao 등으로 이름도 매우 생소한데, 주로 고산 지대에 있는 소금호수와 소금사막을 돌아보는 것이다. 알티플라노 지역의 소금호수와 고산지대에서는 플라밍고를 비롯하여 구아나코, 비쿠냐, 알파카, 라마 등 안데스 지역의 야생동물도 관찰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알티플라노Altiplano는 페루 남부에서부터 볼리비아, 칠레에 거쳐 있는 해발 3600~4200미터 이르는 고원지대를 말한다. 고원은 몇 개의 분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티티카카호수와 우유니 염호, 그리고 이곳 아타카마 사막 부근에 있는 염호와 소금사막을 포함하고 있다. 티티카카호수를 비롯해서 알티플라노 지역에 있는 호수들은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없어 대부분 증발되거나 흘러가다가 소실되고 만다.
아침 8시에 산 페드로를 출발한 우리는 황량한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 하얀 눈이 덮인 듯 한 소금벌판으로 들어갔다. 미니버스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로 유럽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이다. 소금사막에 다다르니 살이 타 들어가듯 햇볕이 더욱 강열하게 느껴진다. 아내는 선크림을 나에게 건네주며 제발 좀 많이 바르라고 말한다. 아내의 닦달에 나는 인절미에 콩고물을 바르듯이 선크림을 잔뜩 발랐더니 미니버스에 탄 여행들이 나를 보고 깔깔 거리며 웃는다. 아내도 내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듯 웃더니 제발 좀 골고루 문지르라고 타이른다.
우리를 태운 봉고차가 소금사막 깊숙이 들어가 어느 호수에 정차를 한다. 이정표를 보니 'Laguna Chaxa'라고 표시되어 있다. 산 페드로에서 65km 떨어진 Toconao 남서쪽 25km지점에 위치한 차사호수는 아타카마 소금사막의 중심으로 플라밍고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소금이 뭉쳐서 수많은 돌기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얼음 돌기를 보는 것 같아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소금호수에는 여기저기서 플라밍고들이 뭔가를 쪼아 먹고 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이곳의 플라밍고들은 짠물에서 서식하는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멀리 안데스의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떤 산은 아직도 연기를 품어내고 있는데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라스카르Lascar 활화산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먼 옛날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태고의 지구를 보는 것 같은 흥분에 휩싸이며 플라밍고고 한가로이 날고 있는 소금호수를 바라보았다.
★ [스크랩] [194]칠레, 안데스산맥에 사는 구아나코
드라이버는 자동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는 시간을 주며 설명이 이어진다. 구아나코Guanaco는 낙타과 동물로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알파카나 라마, 비쿠냐와 비슷한 야생동물이다. 예전에는 안데스 산맥 전역에 서식하고 있었으나 고기나 털을 이용하기 위해 마구 잡아서 그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낙타보다는 사슴에 가까운 체형을 하고 있으나, 낙타와 달리 등에 혹이 없고, 다리와 목이 길며 꼬리가 짧다. 구아나코는 시속 50Km 이상을 질주하며 위험 할 때는 그 보다 더 빨리 달려갈 수 있단다. 이런 오지에서는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속력이다. 구아나코는 마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앞에 모델이라도 된 듯 긴 목을 하늘로 치켜들며 뽐내고 서 있다. 사람이 목을 만져도 태연하다.
구아나코와 비슷한 동물로는 비쿠냐 Vicuna라는 좀 더 작은 동물이 있는데, 연한 황갈색의 털이 달려있고 하복부는 백색으로 해발고도 3600~5400m에 서식하고 있으나 전멸 위기에 놓여 있어 구경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라마Llama는 몸 크기나 뒤 발꿈치 아래쪽에 타원형 털이 없는 부분이 구아나코와 비슷하여 처음에는 같은 종으로 여겼으나 몸빛은 보통 흰색, 또는 흰색에 갈색으로 오늘날에는 구아나코와 별종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평지에서부터 해발고도 5000m의 반사막 지대에서 사육되며 짐을 운반하는 가축이 되었다는 것. 통상 50kg이하의 짐은 운반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알파카Alpaca는 라마보다 약간 작으며 머리가 비교적 짧다는 것. 털을 얻기 위해 4000~5000m고지에서 주로 방목되고 있다고 한다. 알파카는 2년마다 털을 깎는데 가볍고 열 차단 효과가 뛰어나 파카, 침낭, 고급옷의 안감으로 사용된다는 것.
멀리 보이던 라스카르 화산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라스카르의 봉우리에서는 여전히 연기를 펑펑 품어내고 있다. 최근까지도 수차례에 걸쳐 폭발하는 가장 활동성이 있는 활화산이라고 하는데… 혹시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는 중에 터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 [스크랩] [195]신비의 소금호수-Tuyajto
우리는 이미 해발 4000m 고지까지 올라 온 것이다.
고지대로 올라 갈수록 바람은 점점 더 강해진다.
하늘이 산과 맞닿은 것 낮게 보인다.
손을 뻗으면 하늘을 잡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창밖에는 노란 색의 고산 식물들이 놓은 융단처럼 깔려 있다.
마치 노란 살색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땅의 빛깔은 뽀얀 우유 빛이다.
멀리서보면 분명 눈 같은 데 가까기 다가서면 하얀 소금이다.
산봉우리에는 녹아내리다 나은 눈도 분명이 있다.
난두가 사라진 언덕 등성이를 넘어서니 눈앞에 하얀 눈으로 덮인 것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로 난 외길을 따라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모두가 소금이다.
소금은 마치 눈꽃처럼 결빙되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호수를 모자이크처럼 장식하고 있다.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고도가 높으니 산소 부족으로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소금호수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숨이 차서 걷기가 힘들다. 모래밭에 털석 주저 앉아 세상을 본다. 주변은 모두 5000m가 넘는 화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들이다.
가장 힘들 때 나타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
투야히토! 정말 너는 알 수 없는 신비한 호수야!
★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한 아름다운 미스칸티와 미니케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