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존 던 이라는 신부는 누군가 죽으면 종을 울려 죽음을 알리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병약하여 있을 때 그 종이 바로자신의 죽을 알리는 종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향하여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인류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함께 죽음을 당한 자들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죽은자가 되어 하나님으로 부터 죽은 자로서 취급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히 드러나기를 간구하였다. 살때 우리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전도하고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죽음이 닦치면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죽음도 하나님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하여 깨닫게 한다. 이 죽음의 종소리 처럼 누군가의 죽음은 바로 “너는 죽은 자로서 살고 있는 거야!” 하며 외치는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또한 나의 죽음은 누군가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되어 결굴 나의 죽음은 그를 위한 순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매일 죽어가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꿈떨거리는 욕망을 통하여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신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 혹은 모르고 있는지 체크를 하여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교회에 다니지만 나의 삶의 형태와 유형이 세상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잘 살펴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을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속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을 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접촉하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은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 살아 있으나 죽은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여 그의 말씀을 전하실 것입니다. 죽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자신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할 때 나귀를 타고 했는데, 이 나귀가 바로 신자라는 것입니다. 이 처럼 신자는 이름도 없고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로서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자신이 날마다 죽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님 없는 나로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당신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고 세상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나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삶이 어떠합니까? 당신이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생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까? 자기 스스로 세상의 경험과 지식으로 살고 있다가 “종소리가 땡!” 하고 세상에 퍼져 올릴 때 비로서 당신은 아!내가 이미 죽은 자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말씀에 따라살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당신을 향한 죽음의 종소리가 되는것입니다. 이 종소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기회를 제공 합니다. 이것이 당신을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반복된 삶이 비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의 삶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이런 장치를 이 세상 만물가운데 두셨습니다. 이것을 “레마” 라고 하지요. 온 세상을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의 레마로 들을 수 없다면 이들을 귀먹어리 라고 하지요. 이런 하나님의 세상을 볼 수 없으면 이들을 장님라고 합니다. 이 처럼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로서 별견되지 안는다면 나와 하나님은 무관하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사 죽어 무덤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그가 죽어 살아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오지 않고 죽음을 당한 후에 오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 걸어가라” 명령하심으로 그가 이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살아나와 걸어다니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는 창세기 2:7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볼어 넣어 줌으로 생령이 되는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나사로의 새삶은 과거의 삶으로 회유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새 삶 즉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으로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7 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은 그로 사는 것” 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세상을 향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을 향한 하나님 마음 입니다. 바로 나의 죽음을 알고 내가 소경이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면 이를 평화, 천국백성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