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가 어딘지는 몰라도 이웃의 情은 알고 삽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은 먼 곳에서 작정하고 찾아갈 만큼 멋진 산은 아니다. 해발 66m. 나지막한 산을 둘러보는 데 고작 30~40분이면 충분하다. 등산로도 마땅히 나있지 않다. 산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어 원래 성산이라 불렸던 이곳은 오르는 길이 서교동·망원동·성산동 사이로 듬성듬성 나 있다. 봉우리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제각기 다른 대답을 들려준다. "아마, 저기 한강이 살짝 보이는 곳이 제일 높은 곳일걸." "아니, 서울 시내 우수 조망대라고 표시된 곳 있잖아. 거기가 제일 높은 봉우리일 거야." 동네 사람도 모르고, 놀러 온 사람은 더더욱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성미산은 평화롭다. 동네 아저씨들이 산 아래 생활체육 시설에서 가볍게 아령을 들어 올리고, 한쪽 벤치에선 여고생들이 해지는 줄 모른 채 재미있게 잡담을 나눈다. 여느 서울 변두리 마을과 다를 바 없는 풍경. 4, 5층짜리 빌라들이 산 아랫마을에 오밀조밀 어깨를 맞댄 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바로 이곳,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빌라 촌을 둘러보고 있으면 다른 마을에선 쉽게 느끼기 어려운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도심 속 촌락의 기운이다. 아기자기하게 가꾸고 만들어낸 흔적이 꼼꼼히 배어 있다. 성미산 곳곳에 심어진 나무에는 자세히 보면 작은 명패들이 붙어 있다. "꽃 많이 피어라." 2010년 4월 4일 한 가족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소원이다. 성미산 산책로에는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콘크리트 계단이나 가짜 나무 문양 팔걸이 따위가 없다. 붉고 질 좋은 황톳길이 뚫려 있는 작은 생태숲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 ▲ 작년 5월 성미산 주민들이 직접 그려넣은 벽화. / 영상미디어 이경민 기자 kmin@chosun.com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벌써 16년째 자연친화적인 마을 공동체를 알차게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1994년 내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함께 돌보자는 '공동육아'에 공감해 만들어진 마을 공동체가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현재에 이르렀다. 처음 어린이집에 입학했던 아이들은 제법 어른티가 많이 나는 청년들이 되었다. 그만큼 성미산 마을 공동체도 여물대로 여물었고,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인정을 엿보는 시간
성미산 마을 여행은 성미산을 가볍게 돌아본 후 곳곳에 있는 마을 커뮤니티의 흔적을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하는 게 적당하다. 출발점은 열린학교로 지정된 성서초등학교. 동네 사람들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된 이곳은 학교와 산의 경계가 명확지 않은, 실제 열린 구조의 학교다. 성서초등학교를 오른편에 두고 직진해서 걸어가면 성미산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하나 나온다. 길 양쪽엔 2009년 5월, 성미산 주민들이 직접 그려 넣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길을 따라 성미산을 두루 산책한 후 숨은 볼거리들을 찾아보자.
성미산 마을극장(02-322-0345)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이 한창이다. 독립예술가들이 모여 공연을 선보이는 예술축제다. 홍대 앞 젊은 문화벨트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성미산 일대는 마을극장을 홍대 앞 문화행사 공연장으로 내주면서 문화벨트와 맥이 닿았다. 평범한 건물 지하에 불과하지만, 자세히 보면 시설도 꽤 좋고 객석과 무대의 구분도 따로 없는 편안한 공연장이다. 무엇보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 아이들이 무대에 직접 오를 수 있는 공연장이다. 지하 1층에 있는 나루도서관도 성미산 마을의 큰 자랑거리다. 크기는 작아도 다양한 책들로 꾸민 멋진 '지식 놀이방'이다.
- ▲ 서울 성미산 마을의 인기공간, 두레생협.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 작은나무(02-3142-0414)에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동네 소식지를 읽는 것도 성미산 주민들의 일상이다. 마을 일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며 아무 때나 와서 쓸 수 있게 10만원씩 커피값을 적립해주고 가는 주민도 있다. 성미산 마을 여행은 이런 훈훈한 '인정'을 엿보는 시간이자, 밝고 건강한 지역 문화의 현장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 ▲ 성미산 마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동네부엌을 지나 첫 번째 버스 정류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성서초등학교가 있고, 그 옆에 성미산과 성미산 어린이집이 있다. 마을극장은 도로변으로 다시 나와 성미산 마을카페 작은나무를 기점으로 찾아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