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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重塔の初層に安置されている 五大力尊は圧巻。 東には阿しゅく如来。 |
南は宝生如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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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は釈迦如来。 | 西は弥陀如来。 |
*동서남북을 향한 네 여래의 각각의 모습. 일본 法観寺
한국 칠불사 사방여래의 모습을 닮아 있다.
http://www.joyphoto.com/japanese/travel/081220/houkanji.html
*구룡관음보살도
태양의 여신을 숭배해온 일본에서 불교가 들어와도 태양에 대한 의미는 남아졌다. 대일여래(大日如来)란 이름 그대로 태양신을 불교화한 것이다. 태양신의 숭배와 구궁수는 그래서 대일여래에서 구체화된다.
대일여래(大日如来) 계통의 보생여래(宝生如来)는 밀교 금강계의 5부처 중의 하나로 남방불에 속하는 여래로 받아들여 복과 덕을 나타낸다. 대일여래(大日如来)의 오지(五智) 중에 세번째 지혜인 평등성(平等性)의 지혜를 말하는 보생여래(宝生如来)는 보상불(宝相佛),보당불(宝幢佛), 보생불(宝生佛 Ratnasambhava Buddha)등으로도 표현된다.
http://baike.baidu.com/view/1293125.htm
五智如来
金剛界曼荼 중앙의 대일여래 태양광배가 있다.
Image in center is Dainichi Nyorai
Heian Period, 9th Century, Kyōgokuji Temple 京極寺 (Tōji 東寺)
释迦牟尼佛和八大菩萨(Buddha and the 8 Bodhisattvas)
*대비승해홍관음(大悲胜海红观音. Avalokiteshvara Jinasagara)
*보생여래비천배광(宝生如来飛天光背). 일본
8. 타라(Tara) 도모(度母)-도모(桃母)선도성모(仙桃聖母)
나는 이 긴 글을 쓰면서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모자불상'이 기독교의 마리아 성모상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 선도성모상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여기 타라(Tara) 성모 즉 도모(度母)의 형태에서 찾게 된다. 인도의 타라(Tara) 여신을 티벳불교에서 번역된 것이 도모(度母)였다.
도모(度母)와 신라시조 신화에서 박혁거세 어머니로 나타나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는 같은 명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모(度母)가 불교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라면 '도모(桃母)'는 신라의 풍류 도가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일 뿐 서로 같은 '도모'인 것이다.
도모(桃母) 즉 선도성모(仙桃聖母)의 '桃'는 '어머니 타라(Tara Mother) 즉 도모(度母)를 보다 화랑의 仙道 음운에 연결시킨 결과가 '도모(桃母)'가 된 것이며 그것을 높이 칭하여 선도성모(仙桃聖母)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모(度母)와 도모(桃母)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릴 것이다. 더불어 복숭아가 성모상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추적하게 될 것이다.
티벳의 도모(度母)는 주변의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도모(度母)에서 백도모와 녹도모 등과 같이 '주변 도모의 둔갑신들'의 모습에서 숭실대 성모상의 '아홉 얼굴'의 정체와 연관될 수 있다. 성모자상의 주변 아홉얼굴은 '도모상(度母像)'의 주변 아홉 얼굴 모습으로 선도성모상을 만들 때의 한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 불상들은 태양숭배시대의 도모(度母)의 아홉 아들(또는 딸)들의 표현일 수 있다. 수월관음보살상 앞의 선재동자상이나 상원사 문수동자(국보 221호)의 머리 묶은 이미지는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상의 모양과 일치된다.
*상원사 문수보살상 (국보 제221호)
쌍머리 묶은 이미지를 하고 있다.
*필자가 추정하는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선도성모' 도모자상(度母子像)의 하나
*绿度母(Green Tara)
*녹도모(绿度母 Green Tara)
다라보살(多羅菩薩)이라고도 부른다.
도모(度母)에는 백도모 녹도모가 더 유행했지만, 오색도모의 각각의 권능의 특징을 지닌다. 홍도모는 세속의 욕심을 어떻게 긍휼과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가르친다. 청도모(Ekakati)는 티벳의 4대 불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닝마파의 수호신으로서 정신적 깨달음을 가져오고 행운을 발생시키며 모든 장애물을 헤쳐나가도록 하는데에 있어서 모질고 강인한 여성적 에너지를 표출해낸다.
As Red Tārā she teaches discriminating awareness about created phenomena, and how to turn raw desire into compassion and love. As Blue Tārā (Ekajati) she becomes a protector in the Nyingma lineage, who expresses a ferocious, wrathful, female energy whose invocation destroys all Dharmic obstacles and engenders good luck and swift spiritual awakening.
신라의 선도성모의 정체성은 불교와 유교의 천년 역사동안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약화되어 있다. 나는 타라 성모(Tara Mother)를 티벳불교에서 도모(度母)로 번역된 타라 성모의 티벳인들의 이해를 통하여 신라시대의 선도성모의 성격과 그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티벳 불교에는 도모 즉 타라가 21가지의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21도모들이 각각의 색갈을 따로 가지며 에너지도 각각 21 가지로 다르다.고 믿어 왔다 타라(Tara) 성모의 둔갑된 각 형태들은 그녀의 가호를 기원하는 자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베푸는 여성적인 권능을 행사한다.
Within Tibetan Buddhism, she has 21 major forms in all, each tied to a certain color and energy. And each offers some feminine attribute, of ultimate benefit to the spiritual aspirant who asks for her assistance.
* 티벳의 21도모 (二十一度母,
타라(度母)의 21가지 형태의 둔갑을 통하여 세상의 고통을 이긴다는 21 Taras) 그림
타라 성모를 한자로 번역한 '度母'는 선도성모를 줄인 '도모(桃母)'와 그 음운상 같은 역사적 일치성을 가진다.
"度母"取义救度无量众生,急切有力。凡能忆念度母名号者,必得诸佛大加持力,能从种种的灾难恐惧中解脱,免除三有的痛苦,因度母之愿力,当世间越浊劣,则其救度之力越快速,摧灭魔军之力越强。度母是集诸佛菩萨事业、功德之本尊,在西藏及尼泊尔地区,累世以来有许多大修行者均修习此法得到共与不共的成就. http://q.sohu.com/forum/20/topic/2123832
도모(度母)는 티벳 여신으로서 인도의 타라성모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티벳 자체의 토착 대지의 여신, 태양의 여신이기도 했다. 티벳에서 도모(度母)는 6-7세기에 그 숭배가 크게 일어났다.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 일반적인 도모는 붉은 색 승복을 입힌다. 숭실대 성모상이 붉은 토기로 만들어진 것은 그런 붉은 승복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타라(Tara) 성모는 티벳과 중국에서 때로는 "星星"으로 불렀는데 별신을 의미한다. 불교 등의 다른 종교의 압제로 태양신이라 하지 못하여 별신으로 대신 부른 결과가 아닐까?
앞서 언급한대로 태양의 여신 숭배를 지상의 남성지배자들이 퇴색시키면서 민간의 태양신 숭배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점성신앙으로 전이했다.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 '도모(度母)'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서 각 가정의 새벽별 숭배인 정화수 신앙의 대상으로 전이되어 내려온 것라 할 수 있다. 무속에서는 지리산 성모와 함께 바리데기 오구굿에서 그대로 선도성모의 전통이 남아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의 선도성모는 고려시대에서도 살아있었다. <삼국사기>에는 '東神聖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보는대로 '仙桃聖母' 이름 그 자체가 고려시대 때까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도 경주의 서술산에 성모사까지 존재했으며 지난 70년대 완전 복원하여 두고 있을 정도이다.
<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隋喜佛事)' 제목으로 선도성모의 명칭과 그 내용이 전해져 온다. 다만 불교적으로 포교적 의도를 가진 의미로 일연이 신라 시조모가 불교를 옹호한다는 선전을 하는 것에 문제가 있긴 하다.
선도성모의 현몽에 따라 지혜라는 비구니가 성모를 모신 신사(神祠)로 가서 성모상 밑에 넣어둔 황금으로 불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선도성모가 불교를 지원했다는 윤색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도성모가 불교나 그 뒷 시대에 의하여 윤색 왜곡되었다 해도 우리는 '仙桃聖母'의 '도모(桃母)'을 티벳의 '도모(度母)'를 통하여 그 배경을 추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타라(Tara) 성모가 티벳 성모에서 '도모(度母)'로 표현되면서 일본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나는 일본인들이 감사의 말 표현에서 '도우모'라는 말의 기원에서 대해서 흥미를 느낀다. 혹여 그 '도우모'가 신라의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 도모(桃母)에 감사하는 의미로 '도우모'가 남아져 '도우모'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영어의 'Oh! My God'과 같은 의미로 말이다. 일본의 생활 용어들 중에는 그 어원이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이 아주 많은 것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말을 다른 한자로 윤색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일본말의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가 혹여 '도모(桃母)' 또는 '도모(度母)'에서 비롯되었다는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일본의 전통 종교에서 가장 감사해야 하는 신이 그들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성모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도의 타라(Tara)를 일본 불교에서 표현할 때는 '타라니 보사츠(타라 보살)로 표현한다. 때로 우리나라에서 '타라(Tara)' 여신을 다라관음(多羅觀音)으로도 표기한다.
만다라의 한자는 '曼陀羅' 또는 '曼茶羅'로 쓴다. 진언을 의미하는 만트라(Mantra, 眞言)도 만다라와 유사한 음운으로 들리지만, 이러한 '다라'에 대한 불교적 용어들은 불교 이전의 타라(Tara) 성모의 음운 '타라'에 어딘가 연계성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백제를 일본인들이 '쿠다라'로 부르는 것을 '큰 나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구다라'의 어원은 필자의 생각으로 도모(度母 Tara) 즉 '큰 다라(tara)'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왜국의 '큰 어머니'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오다라(意多郞)'와 '구다라(百濟)의 표현은 각각 작은 나라의 의미와 큰 나라의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오다라'와 '구다라'의 의미는 타라(Tara) 여신 주변의 다섯 아이들과 아홉 아이들의 차이는 아닐까? 일본이 백제보다 작은 나라라는 의미가 일본인들이 백제를 존칭하여 부르는 '구다라'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한반도 관련한 일본어에서 한자 표기는 발음기호도 아니며 원뜻과는 전혀 다른 한자로 표현할 때가 많다. 오다라와 구다라는 글자 그대로 '다섯 타라 = 오다라'와 '아홉 타라 = 구다라'라는 해석이 필자의 해석이다.
일본어에서 맏아들을 '타로(太郞)'이라고 하는데(둘째는 치로, 셋째는 사부로), 화랑의 랑(郞)은 본래 여성인 원화를 의미했기 때문에 타로 성모의 아들들의 숫자가 다섯이 새겨지는 급이면 '오다라(五 多郞)' 아홉이 새겨지면 구다라(九多郞)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이것을 일본어의 숫자 발음의 강력성 때문에 숫자 표기는 바뀌어 意多郞(오다라)로 표현하면서 발음은 그대로 우리민족의 발음 그대로 '오다라'로 남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백제의 '百'은 구궁수(九宮數)의 최고수인 아홉과 같은 많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백제(百濟)의 '百'을 '九'로 표현했던 것은 타라(Tara) 성모에 대한 주변 아홉얼굴의 의미로 그렇게 '구다라'로 표현했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타라'는 우리말의 '딸'과 음운이 연결되며 그것은 아사달처럼 달(達)로 표현되는 '땅'의 의미의 '따'이기도 하다. '따'와 '나라'를 합치면 '따라 - 타라(Tara)' 여신이 된다. 백제를 구다라로 부른 것은 말하자면 왜국이 백제를 그들의 '큰 어머니'나라의 의미로 '구다라'로 표현하면서 그들 나라는 성모의 다섯 딸들의 나라로 '오다라'로 백제는 아홉 딸들의 나라 즉 '구다라'로 표현했을 수 있는 것이다.
타라(Tara) 성모가 티벳에서 '度母'로 번역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발음했을까? 나는 그 발음은 '따모'였다고 생각한다. '타라'를 '딸'로 보며 그것이 접두어가 될 때는 '따(땅)'로 되어 어머니 모(母)자를 붙여 '따모'가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도성모에서 선과 성이 지위적 존칭을 형용하는 것이라 할 때 도모(桃母)만이 본 명칭이 되었을 것이고 한자의 의미는 선도적 복숭아(桃)를 썼지만, 그 뜻은 '딸 - 땅'의 의미로서 '따 어머니' 즉 '따모'로 발음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타라 성모에 대하여 표현된 도모(度母)의 상은 도모상(度母像)이라하고, 불교에서는 때로 도불모(度佛母)라고 하고 그 '불상'을 도불모상(度佛母像)이라고 표현한다. 때로 도모(度母)의 이미지를 없애려 존성불모상(尊胜佛母像)이라고 변형시켜 표현하거나 길상천모상(吉祥天母像)으로도 표현한다.
지리산의 성모상과 관련하여 '길상봉' 또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성모를 길상천모(吉祥天母)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서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보우하사'의 그 하느님은 '하늘어머니'였던 것이 보다 오리지날인 셈이다.
다른 글에서 보다 상세하게 밝히겠지만, 화엄사의 효대(孝臺)는 지리산 성모자상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화엄사 효대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바라보면 길상봉(吉祥峰)이 보인다고 했는데 그것은 지리산 성모를 길상천모(吉祥天母)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태양숭배 여신 신화가 지상의 권력자들의 등장으로 약화되면서 하늘(태양)에 대한 신화는 북두칠성이 대신하는 흐름으로 변화되어 갔다.
모계사회의 태양숭배 신화가 점차 지상의 강대한 권력자들의 출현으로 남성화되면서 '태양의 여신'은 지상의 지배자가 '태양의 아들'이 강조되면서 태양 자체도 남성신으로 변모된다. 유대교의 여호와도 남성신 같지만, 창세기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모두를 가진 공동성의 존재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여호와신이 보다 원천적으로는 여성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남성화되는 과정에서 '부부신'이 등장한다는 것은 누차 논했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와는 그 천지창조 내용에서나 신의 이름의 음운에서나 유대교의 여호와와 일치한다. 그런데 중국의 여와(女媧)는 '여신'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여호와도 창세기의 부부신 위치 이전에는 여성신이었으며 특히 태양의 여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케 해준다.
태양신과 북두칠성 숭배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태양의 여신이 남성신화화 되면서 하늘에 대한 숭배는 태양을 비켜가면서 북두칠성으로 대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상의 지배자들은 태양의 여신을 격하시키는 대신에 민간의 북두칠성 숭배는 관대하게 대리숭배감을 느끼도록 관용한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북두칠성은 고대 천문신화적 숭배에서 후대에 나온 대형 종교들 사이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남아진 원시신앙이다. 그 잔존 능력에선 태양숭배보다 훨씬 막강한 생존능력을 보인 북두칠성 숭배는 아메리카 인디안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도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다. 기독교 바이블 계시록에서 말하는 '7 천사'는 본래 태양숭배 시대의 여신 문화에서 나타나는 7선녀(또는 7 여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화수를 떠놓고 새벽별에게 비는 것은 물론 사찰 뒤의 칠성각 신앙의 먼 배경은 태양의 여신 숭배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상여꾼이 매기는 만가의 내용도 '북망산을 향해 가는 혼'에 대한 내용을 아직도 부르고 있다.
바리데기 굿을 비롯하여 무속에서도 북망산의 북두칠성은 '칠성님'으로 신의 존재로 살아 있다. 그 프로토타입은 태양의 여신 성모와 아홉 별들이 지키는 그로토의 저승인 대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방산의 산은 성모 산신이 그로토 안에서 기다리는 곳이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지상에서 7공주 또는 일곱처녀 이름으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칠성신'은 여신이었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태양의 여신 시대의 잔재임을 말해준다. 때로 무속에서 일곱아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7녀(공주, 딸 또는 처녀) 신화의 부수적 의미로 가미된 후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 이야기는 태양숭배시대의 태양의 여신 숭배의 잔재이다. 그러나 백설공주가 '공주'로 강조되면서 '일곱 난장이'는 '칠공주'의 대신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동양으로 말하자면 '일곱 난장이'는 태양의 여신 또는 여산신을 호위하는 일곱 나찰녀(羅刹女)에 해당한다.
마하바라타(Mahabharata) 경전에서 봉황인 가루다는 여섯 아들이 있었고 그 가루다는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金翅鳥) 봉황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설공주는 가루다의 서양버전화된 내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태양의 여신 잔재로 '칠성 여신'의 의미는 그렇게 지상에서 남성 지배자의 권력 이야기 스토리의 부수화된 내용으로 설화나 무속적 사설에 전해져 온다.
무당은 본래 여성이었으나 그 의상은 나중에 때로 남성의 사령옷을 입게 된 것은 이 세상의 권력의 힘이 무속적 굿의 '심리적 효과'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울러 무속의 신에 대한 숭배가 남성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가장 오래된 종교로서 무속은 여성신을 여성 무당이 불러내며 일곱 공주 또는 일곱 딸 또는 일곱 처녀들의 이야기가 그 속에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 무당이 여성인 것은 우주모가 성모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아홉의 과정이 일곱으로 변화하는 시대적 영향을 충분히 논했다. 칠공주나 일곱 딸들 일곱 아들들, 일곱 난장이 설화들은 모두 태양숭배시대의 구성(九聖) 아홉이야기에서 살아남은 ㅂ구두칠선 숭배의 잔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첫수도인 흘승골성(또는 졸본성)으로 추정하는 환인현의 오녀산성(五女山城)과 거기에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성정산(城頂山)의 <황조가> 전설의 화희(禾姬)와 치희(雉姬)는 결국 칠선녀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신화이야기 128 봉황(凰鳥)은 태극(太極)이다: 오작과 오녀산성 그리고 북두칠성(北斗七星)>에서 이미 상세히 다룬 바가 있다.
오녀산성이 높은 절벽은 칠선녀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미국 와이오밍주의 데빌스 타워(Devil's Tower)의 높은 바위 절벽에 전해져 오는 인디안들의 칠선녀 이야기 또한 여신숭배시대의 잔재로 북두칠성에 연결된 신화의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위스칸신주 55번도로 상의 메나미니(Menomini) 인디안 보호구역 내에도 일곱 처녀의 전설이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견우직녀 이야기도 사실은 남녀 이야기만이 아니라 '칠선녀'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보름달 폭포에 내려온 선녀들의 수는 칠선녀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견우직녀 이야기가 이미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칠월 칠석날' 신화라는데서 드러난다. '七夕'의 七은 북두칠성을 닮아 있고 '夕' 또한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함께 표현한 이미지로 보인다.
스토리 내용에서도 까마귀와 까치라는 의미로 오작(烏鵲)이 칠석날 하늘로 올라가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오작(烏鵲)은 필자의 판단으로 태양숭배시대의 여신 봉황의 잔재인 오작(五雀)의 신화가 남성신화시대로 옮겨 오면서 오작(烏鵲)으로 전이된 것으로 생각한다. 칠공주 또는 칠선녀가 남성 지배자의 부대적 존재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오작(五雀) 또한 남성적 계급 칭호로 변천되어갔다고 할 수 있다. 즉 봉황의 이미지를 가졌었던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오작이 용의 이미지인 황제의 관직으로 표현되는 신화적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고대 태양숭배시대의 여신 신화에 기반했던 7선녀 신화는 남성화된 불상을 강조했던 불교의 도입으로 5소불, 7소불, 9소불의 이미지로 불상 주변의 호위 역할을 하도록 배치되기 시작했다. 필자가 지목한 일본 모자불상인 카리테이모가 낳는 자식이 다섯, 일곱 또는 아홉으로 때로는 1백 5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지리산 성모나 제주도 외돌개 전설에 나오는 설문대 할망 전설에도 나오는 1백 또는 5백 명의 자녀를 두는 것과 같은 축소 또는 확대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심지어 열나한, 오백나한, 등의 불교의 표현들도 무속에 남아 있는 여신숭배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백불, 오백불, 천불, 만불 등은 태양숭배시대의 여신이 낳은 자손의 숫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며 만신이 만불로 바뀌어 실제로 만상을 모셔놓은 사찰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근원은 태양숭배시대의 천문숭배 즉 구성 숭배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무속에 전해오는 7공주의 대표적인 신화는 바리데기 공주 설화에 남아 있다. '바리데기'라는 것은 사람이 죽은 뒤 49일 만에 지내는 진오귀굿에서 불려지는 무당들의 노래인 무가라고 한다. 49제란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기 전의 중음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티벳의 <사자의 서>에 나오는 중음계(바르도)의 기간이기도 하다. 죽어서 저승에 갈 수도 있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중음계는 오귀굿의 노래에서 저승으로 간 신을 불러내는 무당의 굿 노래의 무대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바리데기를 단순히 동화적으로 '버린 공주'라든지 '돌팔이'에 연관시켜 '돌바리 공주' 등등의 낱말풀이 식의 의미로 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바리데기에는 하리티 여신은 물론 바위 그로토와 함께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9. 바우덕이와 바리데기의 유래는 그로토(Grotto)의 바위 동굴 여신
바리데기의 어원은 여러가지 설로 나뉜다. 나는 바리데기 설화는 기본적으로 태양숭배시대의 여신문화의 한 줄기를 보존하고 있는 무속적 서사무가의 전승으로 해석한다.
비리데기는 불교에 연결된 바라춤의 '바라'와도 관련될 수 있다. 바라는 중동의 찰바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속에서 제왕맞이 굿에서 사용하는 악기이다. 바라를 사용하여 바리데기를 불러내는 것이다.
1) 바리데기와 '바라춤'
바리데기 오구굿에서 저승의 수문장과 결혼한 바리데기를 불러내는 의미는 일종의 제왕맞이이고 그것을 불러내는 악기로 바라(발) 계통의 정주(씻김굿의 무구)를 사용한다. 정주는 사슴뿔이 달려 있어 그것이 놋종발을 울려 소리를 내게 하는 무속적 바라의 하나이다.
바리데기가 기대하던 아들을 낳지 못한 결과로 나온 일곱번째 딸(공주)로 버림을 받았다는 것과 저승에서 아들을 일곱 낳아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스토리는 바리데기 오구굿이 아기를 낳도록 '성모'에게 기원하는 생산 굿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쇠뿔과 바라(심벌)를 연결한 티벳의 샹(Shang) 악기와 같은 계통으로 볼 수 있는 사슴뿔로 울리는 정주 즉 경쇠는 놋사발 중앙에 구멍을 뚫어 2-3 가닥의 30 - 50센티미터 끈으로 연결하여 사슴뿔 끝에 구멍을 뚫어 연결한다. 정주가 없을 때는 단순히 수저로 놋그릇을 치기도 하고 놋그릇 뚜껑 두 개를 서로 가장자리를 부딪쳐 정주 소리를 내게도 한다.
노재명의 <전남 무속음악의 정주악기 연구>에서도 지적했듯이 전라남도 무속음악의 정주 사슴뿔 채는 아기 못낳는 사람이 애를 낳게 해주는 제왕맞이(지왕굿, 지앙맞이)와 제석굿에서 주도적인 악기로 중요하게 쓰인다.
http://blog.naver.com/ecustomer?Redirect=Log&logNo=120048459363
사슴 뿔 채로 정주 즉 바라를 치면서 제왕맞이를 하는 제석굿은 그대로 바리데기 오구굿에 연결된다. 바리데기의 제왕맞이 굿 즉 오구굿은 일본의 카리테이모와 연결이 된다.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訶梨帝'란 바로 제왕모를 맞이하는 일본식 제왕맞이 오구굿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카리테이모(訶梨帝母)에서도 '오구'는 중요한 의미로 제왕에 연결된 말이다. 황해도 무속에서도 제석거리 굿에서 경쇠를 울리는데, 사슴뿔 대신에 버드나무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속에서 '제(帝)'란 저승의 신모(神母)를 의미하며, 고대 인도와 관련하여 번개(도르쩨 Dorje)신인 인드라신을 번역할 때 도르쩨의 '쩨'를 '帝)'로 번역한 경우도 볼 수 있다.
무구 명칭인 정주는 '바라'의 일종으로 그 바라를 치는 오구굿이 '바라데기 - 바리데기'로 명칭이 전이되었을 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된다.
정주에 사슴뿔을 사용하는 것은 쇠뿔과 달리 사슴뿔은 봄에 나서 자라 겨울에 떨어져 다음해 봄에 다시 솟아나는 것으로 아기를 낳는 생산의 신에 연결된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바리데기오 관련하여 또 하나의 관련은 그로토에 연결된 '바위'와의 연관성이다. 우리의 전통 무속과 관련한 놀이가 남사당패이다.
2) '바우덕이'와 신명 춤인 '덩더꿍'의 유래
남사당의 꼭두쇠 '바우덕이'와 '바리데기'는 어딘가 연관성이 있다. 남사당이 길게는 신라의 화랑 무속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은 면이 있다. 남상당의 그 꼭두쇠가 여성인 바우덕이의 춤은 기본적으로 무당춤이며 신라 화랑도의 효시였던 여성인 원화(源花)에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원화(源花)는 그로토 암호(巖戶) 바위 안에 모셔진 선도성모(仙桃聖母)와 관련된 위치라 할 수 있다.
'바우덕이'는 태양숭배시대의 지신(大地之母)가 거하는 바위가 움푹 들어간 그로토(grotto)의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풀이한다. '덕'이란 '구덕 - 구덩이'의 의미가 있는 우리말로 '바우덕이'란 움푹 들어간 바위 토굴인 그로토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우덕이는 구체적으로는 실제 있었던 남사당패 꼭두쇠 춤꾼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그렇게 지어질 때 이미 신내림을 받은 이름으로 무속적 전통의 이름인 바우덕이로 이름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동굴에 들어가 있는 것을 불러내는 춤이 우즈메 무당춤이다. 그러한 무당의 춤은 아마테라스가 들어가 있는 동굴 즉 그로토인 '바우덕'에서 불러내는 것이 바우덕이의 춤인 것이다. '바우덕'(바우덕이)은 암호(巖戶)에 대한 순수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상세히 다루겠지만, 지장보살의 '지장(地藏)'이란 표현도 언덕진 바위 토굴에 있는 보살의 의미를 가지는 그로토의 배경을 가진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무당춤 또는 그 장단을 '덩덕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로토의 여신을 불러내는 '땅 덕 안에 있는 궁(宮'의 의미가 되는 '땅덕 宮'에서 '땅덕 궁 = 덩덕궁'으로 전이되었다고 생각한다. 신명나는 '덩더궁'의 기원은 오랜 태양숭배시대의 대지지모의 여신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석굴암 자리는 불교가 석불사를 짓기 이전에도 태양숭배와 관련된 성모 여신의 암호(巖戶) 사당이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주제는 따로 필자가 쓴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석굴암은 인공적으로 만든 굴이라고 하지만, 본래 바위가 작고 얕은 굴로 되어 있었고 그 자리가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해돋는 방향과 함께 바위 안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석굴암 바닥 밑으로 물이 흘러가고 있고 그것이 석굴암 내부의 습도를 조절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샘물을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개수하면서 덮어버려 습기가 차서 석굴암 내부를 부식시키는 문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바위 샘물이 가졌던 본래의 의미는 바위 암호의 샘물이 가지는 신비한 여신의 의미를 지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암호관음(巖戶觀音). 얕은 바위굴에 안치되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석굴암의 본래의 모습은 이러한 암호(巖戶)의 구조로 그 안에 여신을 모셔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그로토는 지형적으로는 땅의 바위 동굴이지만, 때로 저승을 의미하는 동굴이기도 하다. 즉 바리데기에서 무당이 바리데기를 이 세상으로 불러내는 것이 바리데기의 오구굿(오귀굿)이다. 바리데기가 저 세상의 '바우덕(그로토)'에서 나와야 저승의 명약을 가지고 나와 이 세상의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바리데기'는 바우덕이와 같이 '바리 덕'의 의미를 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바리데기의 '바리'란 무엇인가? 흔히 바리데기의 '바리'를 황석영의 최근 소설 <바리데기>(2007 창비)에서처럼 '버리다'의 우리말에 어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바리데기의 어원에는 보다 깊은 문화인류학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풀이한다.
'바리'는 '하리티(Hariti)' 여신의 '하리'가 '바리'에 연결되었을 수 있다. 고대 인도 불교에서 하리티는 자식을 보살피는 성모 여신이다.
'바우덕'이 그렇듯이 '바리데기'는 그로토 안의 여신이 성모이기 때문에 자식을 거느리고 보살피는 신이다. 그래서 바리데기 설화는 일곱 공주 이야기이면서 저승에서도 일곱 아들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아이들의 어머니 신 이야기인 것이다.
인도 초기 불교의 하리티 여신이 우리나라에서 바우덕이와 유사한 음운으로 그로토의 의미를 기지는 '바리데기'로 표현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리티(hariti) 성모를 일본의 카리테이모 성모를 힌두교의 칼리(Kali) 여신에서 '카리테이모'에 연관시켰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오귀굿의 무가적 사설인 바리데기 설화는 하리티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바우 덕'의 그로토 여신의 음운에 연결시켰다고 생각한다.
바리데기 오구굿에서 바리데기 여신을 불러내는 것으로 무당들의 조상인 무조신(巫祖神)이라는데서 지리산 성모 또는 선도성모의 무조여신(巫祖女神)이 숭상되는 것과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오구굿의 오구는 오귀, 오기로도 표현하는데 퉁구스어의 오기(orgi)와도 관련되어 있을 수가 있다. 오기(orgi)는 해가 지는 서방 또는 서천국(서방정토)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바리데기는 서천축국 즉 인도의 하리티 신과 관련될 수 있는 것이다
10. 카리테이모와 일본의 성모 마리아상
바리데기 무속은 일본으로 건너가 '카리데이'가 된 것은 '데기(宅)'의 음운을 유지하면서 무속에서 저승의 제왕의 의미를 지니는 '데이(帝)'로 대치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데이(帝)'는 본래 여성 신모를 의미한 표현이었다. 바리댁을 표현하기 위하여 '帝母'를 붙여 카리테이모(訶梨帝母)라고 표현한 것이다.
* 태양신의 이미지를 가지는 광배를 한
코야스칸논보사츠(子安観音菩薩). 愛知・徳蔵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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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토 여신 모자상인 코야스칸논 보살상(子安観音菩薩) 일본 愛媛・光明寺 |
성모자상은 일본에서 지보칸논(慈母観音)을 기본으로 하여 카리테이모는 물론 칸기모 (歓喜母), 코야스키시모진(子安鬼子母神), 아시모(愛子母), 때로는 미주노 카미사마(水の神様)로 모셔진다. 거기에 에도시대에 천주교의 영향으로 '마리아 모자상'이 일부 가미되었을 뿐이다.
태양숭배시대의 여신들의 문화가 불교에서는 남성화되어 표현된 것들로는 관음보살, 약사여래(藥師如來), 지장보살, 십나한, 등으로 변이되어 있다. 그 가운데 십일면관음상은 두 모자상 주변 소불 아홉이 합친 11면으로 전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의 태양의 여신은 바다의 신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수이진은 그래서 신라의 선도성모와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수이진은 바다의 신이면서도 다산의 신으로 수신(水神)을 말한다. 그래서 모자상으로 표현한다. 수이텐, 수이오우 라고도 부른다. 또는 미주 노 카미사마, 쿠니 노 코타치, 아메 노 미나카누시((天之御中主)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바다의 신을 말하고 순산을 위한 기원의 대상이기도 하다. 타카미무수비(高御産巣日)、카미무수비(神産巣日)도 같은 계열이다. 대표적으로 수이텐구(水天宮) 신사에서 모셔진다.
Mizu no Kamisama (水の神様); Shinto Water Goddess, Water Kami; also called Suijin (水神) or Suiten (水天) or Suiou (水王). Mizu no Kamisama is worshipped widely throughout Japan, and shrines dedicated to this deity are called Suiten-gu Shrines.
흥미로운 것은 미주 노 카미사마(水の神様)에 서원하는 암각 표시가 동굴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여신이 거하는 암호 석굴에서 물과 그로토는 한 세트이다.
일본의 수신ㅇ느 논밭 또는 동구 밖 인근에서도 발견된다. 다산과 풍년신으로 받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미주코(水子)란 물에서 난 아기라는 의미로서 일본에서는 태어나는 아기들은 모두 물 즉 바다의 어머니 신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바다 건너온 태양의 여신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Votive stone markers for Mizu-no-Kamisama can be found in caves, near rice paddies, and near village boundaries. Farmers in mountainous regions in particular pray to this deity to keep their fields alive with water, or to spare the village from too much rain, which could kill the crops or cause mudslides.
흔히 일본의 성모자상을 천주교 성모상으로 오해하는 것은 도쿠가와 시기에 기독교가 박해되고 있을 때 관음상을 만들어 그 뒷면에 십자가를 그어놓는 이른바 '마리아 관음'으로 받들었던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보칸논(慈母観音) 등의 모든 전통 일본의 '모자불상'을 의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During the Tokugawa shogunate period in Japan, when Christianity was banned and punishable by death, some underground Christian groups venerated the Virgin Mary disguised as a statue of Kannon; such statues are known as Maria Kannon. Many had a cross hidden in an inconspicuous location." http://www.nationmaster.com/encyclopedia/Guan-Yin
Another source says: "In Amakusa peasants hid their Christianity from government agents by employing extraordinary tactics. They worshipped Christianity by making the articles of the Christian faith look like the articles of Buddhism. For example, figurines of the Buddhist goddess Kannon were altered so that they could double as Mother Mary. They hid crosses behind statues of the Buddha so as to worship the cross behind the Buddha."
http://www.town.ariake.kumamoto.jp/kataru/
*일본 에도시대의 천주교 카쿠레 성모 마리아상.
자모관음을 닮아 있지만, 머리와 아기 옆에 십자가가 있다.
http://homepage1.nifty.com/sawarabi/4kakurenoseibo.htm
일부의 '마리아 관음'이 마치 일본의 전통 모든 모자불상들인양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 자아도취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모자관음상 중에서 준테이관음(准胝観音)은 산스크리트어로 쿤디(Cundi)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석가의 어머니(the "mother of the Buddhas")라는 뜻이다. 쿠니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여신으로서 '하리티(Hariti)라고 불리었는데 일본에서 카리테이모(訶梨帝母)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의 관음보살상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은 이러한 카리테이모류이다.
*코야스 관음, 일본 弥谷寺
KOYASU KANNON (Goddess of Easy Delivery)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suijin.html#jibo
*일본의 준테이 관음(准胝観音)
11.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축제는 동지 해돋이 축제
일본인들은 카리테이모에 대한 인도 원류의 프로토타입으로 힌두교의 '칼리데비(Kali Devi)'로 믿고 있다. '카리테이'와 '칼리데비'는 서로 유사한 음운이기도 하다. '하리티'가 '카리테이'로 와전되어 일본 고대 무속적 여신을 불교화시킨 것이다 (She is a gentler "Buddhicized" form of Kariteimo: Skt. = Hariti; the "mother of demons"). 그런 동시에 카리테이모는 우리나라의 바리데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카리테이모는 <法華經 the Lotus Sutra> 26장에 나오는 성모로서 일본의 니치렌 불교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왔다. 카리테이모는 대약차여환희모병애자성취법(大薬叉女歓喜母并愛子成就法)을 바탕한 일본의 많은 모자불상의 하나이다.
카리테이모(訶梨帝母)는 키시모진 설화(鬼子母神説話)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그 설화를 보면 태양숭배시대의 여신에서 불교의 관음상으로 전이되늰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일본의 「雑宝蔵経」에서 필자가 번역하여 여기에 덧붙여 둔다.
*카리테이모좌상(訶梨帝母座像) 滋賀県 園城寺
한 손엔 아기를 다른 한 손엔 길상과(吉祥果)인 석류(柘榴)를 들고 있다.
その画像とは、訶梨帝母座像、鎌倉時代の滋賀県園城寺蔵の重要文化財彫刻の写真(⇒)です。この神像は、、他人の子供を奪って食べてしまう鬼神だった訶梨帝母(ハーリティ)に対し、釈迦が彼女の末子を隠して子を失う母の悲しみを悟らせたことから、彼女は仏教に帰依して子供の守り神となったという鬼子母神説話(「雑宝蔵経」)に由来し、この説話は密教とともに日本に伝えられ、平安後期には安産祈願の修法が盛んに行われたといいます。この訶梨帝母が天女の姿で右手に柘榴(吉祥果)をもち、子を抱いた像は、ルネッサンス時の聖母子像にも似た慈愛に満ちた母性を感じさせる刻像です。
日蓮宗系では、鬼子母神説話に基づく子を抱いた訶梨帝母像を、子安観音像に似た子安神として祀るとのこと、その事例を萱田町長妙寺の子安鬼子母神像にも見ることができます。
http://sawarabituusin.cocolog-nifty.com/notebook/cat3561182/index.html
"위의 카리테이모좌상(訶梨帝母座像)은 카마쿠라(鎌倉時代)의 신상이다. 남의 아들을 빼앗아 먹어버리는 귀신이었다는 하리테이(ハーリティ)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하여 석가모니가 그녀의 막내아들을 숨겨버려 그녀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하이케이 귀신은 불교에 귀의하여 아이를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카리테이모 유래를 보여주는 키시모진(鬼子母神) 설화는 「雑宝蔵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탄트릭 불교의 하리티(ハーリティ): 인도불교의 Hariti 여신을 말함, 필자 註) 여신 신앙이 일본에 전해져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순산을 기원하는 일이 성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카리테이모가 선녀의 자세로 오른손에 길한 과일로 여겨졌던 석류(柘榴)를 들고 아들을 안고 있는 상으로 르네상스기의 성모자상聖母子像)과 유사한 자애가 가득한 모성을 느끼게 하는 조각상이다.
일본의 니치렌(日蓮宗) 불교는 키시모진 설화(鬼子母神説話)에 기초하여 아들을 안고 있는 카리테이모상(訶梨帝母像)을 자안관음상(子安観音像)과 유사한 자안신(子安神)으로서 모시는 일을 萱田町의 長妙寺의 코야스키시모진상(子安鬼子母神像)으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옛 태양숭배시대의 여신의 하나였던 하리티(Hariti 訶梨帝) 여신을 인도의 초기 불교에서 과거의 신앙을 비판하여 악마로 규정하여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으로 규정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하리티 즉 카리테이모(訶梨帝)를 불교의 이름으로 순화시켜 일본에서는 자식을 귀하겨 여기는 귀신 어머니라는 의미의 '키시모진(鬼子母神)' 불상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카리테이모 모자불상은 서 있는 모습도 있다. 그럴 경우 오른 손엔 아기 대신 연꽃을 들고 관음상의 자세가 된다. 때로는 보석으로 장식된 기단에 앉은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카리테이모 성모는 손에 털 파리채(fly-wisk)를 들고 두 시종 소녀가 옆에서 보좌하는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카리테이모를 모시는 곳은 토오쿄오의 메구로 템플과 조시가야 템플이다. 카리테이모는 어린이들의 병을 낫게해주는 신유의 성모이기도 하다고 믿어져 왔다. 카리테이모를 모시는 날은 11월로서 동지축제와 관계된다는 것은 석굴암의 태양신처럼 바다의 태양의 여신 바리데기 성모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
When represented standing, she holds a lotus, an attribute of Avalokitesvara (Kannon), in the right hand. In painting, she is sometimes seated under an octagonal dais capped with a jewel. She holds a fly-wisk and has two little girls as acolytes. The most famous temples where she is worshipped are those of Meguro and Zoshigaya in Tokyo. Her followers believe that she also possesses the power of curing sick children. Her feast day is celebrated in November.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kariteimo.html
*일본의 산노 곤겐(山王権現) 성모자상, 히에신사(日枝神社)
Sannou (Sanno) Gongen
Female with babe and male monkey guard the gates
at Hie Jinja (日枝神社), Akasaka, Tokyo, Japan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monkey-koushin-p3.html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원숭이를 닮았다'고 한 것은 조롱거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일본의 산신 신앙에서 히데요시를 산신의 화신으로 보고자하는 신화적인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불교의 성모자상에는 산신인 원숭이 모자상이 있다. 그것을 산노우 곤겐(山王権現)이라고 한다. 기후상 원숭이가 산에 많이 사는 일본의 산신은 원숭이 성모자상까지 생기게 했다. 원숭이를 산왕(山王)이라고 표현한 이러한 성모자상은 특히 쿄토 인근 시가현에 위치한 히에산의 히에 신사에 모셔져 있다.
산노우 곤겐은 오카야마현의 츠야마시의 나카야마 신사에서는 사루가미(猿神)로 불린다. 나카야마 신사는 헤이안 시대 작품인 콘자쿠 모노하타리(今昔物語集)에도 나오는 것으로서 일본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신으로서 원숭이 모자상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카리테이모 모자불상
하세데라(長谷寺), 카마쿠라 일본
12. 열 나찰녀(十羂刹女)로 비하된 태양의 여신과 아홉 얼굴들
인도의 초기 불교에서 일본의 신곤파 불교에서 카리테이모(訶梨帝母)는 '가리테이(訶利帝. かりてい)로도 불린다. 지방에 따라서는 칸기모(歓喜母. かんぎも)로도 불린다. 라세츠 즉 나찰녀(羂刹女)는 무속적 여신에서 불교에서는 나찰천(羅刹天)으로 받아들였으며 라세츠 가운데서도 주라세츠-뇨(十羂刹女, じゅうらせつにょ)는 열 명의 라세츠 여신을 말하는데 힌두교의 신들이다.
나찰녀(羂刹女)는 나한상과는 달리 태양숭배시대의 여신 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나찰녀(羂刹女)는 남성종교화 된 불교에서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약화시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경남 밀양시 만어사(萬魚寺)에 전해져 오는 나찰녀(羂刹女) 이야기에서도 그런 한 에를 볼 수 있다.
만어사(萬魚寺)를 올라가는 골짜기가 마치 거대한 그물에 걸린 수많은 물고기떼들처럼 바위들이 깔려 있는데, 전해오는 전설에서 그곳 만어산(萬魚山)의 산신이 나찰녀(羂刹女)로 나오며 그녀는 뇌우와 우박을 내려 무서운 위력을 보인다. 김수로왕이 가야왕국의 왕으로 등장하여 그 나찰녀의 권위를 막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불교가 들어와서 만어사(萬魚寺) 사찰을 세워 만어산의 나찰녀(羅刹女) 의 권위를 겨우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지배자들의 종교가 태양숭배에서 불교로 바뀐 결과에 대한 내용을 불교적으로 해석한 내용에 불과하다. 태양숭배시대에 커다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만어산(萬魚山)의 산신인 나찰녀(羂刹女)는 불교 영향이 적었던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남아져 라세츠뇨(羂刹女)는 불교의 나한(羅漢)으로 변이 표현된 것이고 십나한(十羅漢. 十羂漢)은 십나한녀 즉 일본의 쥬라세츠-뇨(십나찰녀 十羂刹女)에 그 명맥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열 나찰녀(十羂刹女)는 사실상 태양의 여신 성모와 그 주변의 아홉 선녀들을 격하시킨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女'란 본래 '여신' 또는 '성모'였던 것을 비하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심 여신이든 주변 선녀든 합쳐서 '열 명의 몹쓸 여자들'이란 듯으로 열 나찰녀(十羂刹女)라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불교식으로 다시 순화하여 받아들인 것이 십나한(十羅漢)이며 십대왕(十大王)이다.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시왕'으로 불려지는 십대왕(十大王)은 사실상 본래는 십나찰녀 (十羂刹女) 즉 열 선녀에서 비롯한 것이다. 시왕이란 저승을 관장하는 열 명의 대왕을 말하는 것으로, 진광(秦廣)대왕, 초강(初江)대왕, 송제(宋帝)대왕, 오관(伍官)대왕, 염라(閻羅)대왕, 변성(變成)대왕, 태산(泰山)대왕, 평등(平等)대왕, 도시(都市)대왕, 전륜(轉輪)대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십대왕들의 이름들은 십나찰녀(十羂刹女)에서는 악한 표현으로 표현된다. 열 명의 라세츠신들은 각각 람바(Lamba), 빌람바(Vilamba), 굽은 이빨(Crooked Teeth), 꽃이빨(Flowery Teeth), 흑치(Black Teeth), 많은 머리타래(Many Tresses), 불만족자(Insatiable), 목걸이집(Necklace Holder), 쿤티(Kunti), 혼령납치자(Spirit Snatcher or Plunderer-of-Vital-Energy-of-All-Beings)이다. 이 얼마나 살벌한 이름들인가. 불교에서 철저히 여신들을 격하시킨 결과이다.
석굴암 벽면에 새겨진 십나한(十羅漢)은 불교 영향으로 남성화된 것이며 본래는 주라세츠-뇨(十羂刹女)의 열 선녀가 석가여래를 호위하는 것으로 윤색한 결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중심 여신의 위치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이름도 남성화된 십나한이 된 것이다.
일본의 카리테이모 여신에 대하여 왕(王)의 내궁 의미인 '오오쿠(大奥)'에서 보이는 '오쿠(奥)'는 신비한 여신의 의미에 포함된다. 그 '오쿠'는 우리나라 전남지방의 '오구시왕'의 '오구'에서 보듯이 한반도의 우리말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오구시왕'의 시왕(十王)은 불교의 열 명의 판관을 의미하고 있지만, 본래는 십나찰녀(十羂刹女)였을 것이다. '오구시왕'은 일본에 주라세츠-뇨(十羂刹女)의 열 선녀의 불교화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리라.
*카리테모(訶梨帝母) 모자불상. 12세기 헤이안시대 일본.
왼손 바닥에 아기를 들고 있다.
Gohou Zenshin. aka Hariti (Jp. Kariteimo)
Heian Period, 12th Century
Onjou-ji Temple, Shiga Prefecture
태양숭배시대의 그로토의 대지지모(大地之母)가 불교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로 받아들여졌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장승에서 '地下女將軍'이라는 것은 '大地之母'에서 비롯된 것이다.
'地藏'이란 그 뜻 그대로 땅 속에 거하는 그로토(grotto)를 의미하며 대지지모(大地之母)는 보살(菩薩)로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근원적으로 여신에 연결되어 있어 모자불상으로 표현한 지장보살을 일본에서는 코야스지조보사츠(子安地藏菩薩)이라 부른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본의 이와같은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카리테'는 우리나라의 '바리데기'에서 유래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바리데기 즉 바리공주(鉢里公主) 또는 사희공주((捨姬公主)로도 불리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카리테이'(訶梨帝)는 '바리데기(捨姬)'의 일본식 한자의 와전으로 볼 수 있다.
13. 원효의 해골 바가지와 토굴(그로토) 속의 '성모의 오줌'
'바리데기'의 바리(鉢里)는 불교 승려들의 밥그릇을 의미하는 '바리때(鉢)'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카리테이모나 바리데기 성모는 큰 그릇처럼 작은 동굴 즉 그로토 안에 모셔졌다. 승려들의 밥그릇을 '바리때(鉢)'라고 한 것은 어쩌면 그러한 그로토의 모양과 닮아 있어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이 아니었을까? 선도성모를 모시던 화랑들의 '바리때(鉢)'는 동굴 속의 물이 생명수였을 것이다.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신 곳이 토굴이었다. 원효는 분명 초기에 태양의 여신 성모에 대한 전래의 종교적 풍습과 신앙 풍토에서 토굴로 들어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가 마신 물은 감로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태양의 여신의 생명수였을 것이다. 좀더 진하게 말하자면 감로수는 '성모의 오줌'이었다.
원효가 바리때라고 생각한 것은 해골이었으며, 그가 마신 물은 '성모의 오줌'이었으며, 그것을 거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그는 어거스틴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마니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태양의 여신 숭배를 배척한 설화로 그와같은 토굴(그로토) 속의 '성모의 오줌물'을 해골바가지 썩은 물의 설화로 윤색하여 태양의 여신 성모에 대한 종교를 버렸다는 것을 시사하고자 한 것이다.
오줌을 산마루에서 누자 경주가 오줌으로 가득찼다는 이야기는 보희와 문희의 꿈 이야기에서 나온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무열왕이 된 김춘추의 아내가 여신의 화신임을 강조하려던 당대의 종교적 배경을 보여주는 내용인 것이다. 말하자면 성모의 오줌이 신라의 서울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신의 오줌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보희와 문희 이야기 외에도 더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석굴암과 그로토 주제의 글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나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석굴암은 선도성모(또는 동신성모) 태양신의 바리데기 여신의 그로토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곳에는 성모의 그로토의 입지를 보여주는 샘물이 지하에 흐르고 있다. 그것을 감로수라고 하지만, 본래는 성모의 성수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4. 석굴암 창건한 김대성의 설화는 바리데기 설화를 윤색한 것
우리의 전통 해원 굿의 하나인 오구굿의 '오구풀이' 마당은 바리데기 즉 '카리테이모'를 불러내는 것이다. 바리데기 여신은 나중에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적인 스토리로 윤색되어 미륵과 혼용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진오기굿의 마지막에 장고를 세우고 방울을 흔들며 몇시간씩 주문을 한다. 전국의 모든 무당들이 바리공주를 조상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지리산 성모인 선도성모의 다른 표현이 바리데기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일본의 카리테이모 여신은 한반도의 선도성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리테이모의 그 오리지날 칭호는 '바리데기' 또는 '바리성모'였다고 생각한다. 카리테이모 옆에 여러 아이들을 함께 묘사했다고 하는 것도 바리데기와 그대로 통한다. 바리공주 사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왕이 있었는데 혼례를 일년 미루어야 아들을 낳고, 길하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한 탓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만 계속 낳다가 마침내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버렸다.
바리공주가 태어나자 왕이 공주를 버려,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부모를 위해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바리공주가 이를 알게 되어,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약이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수문장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수문장과 일곱
아들과 함께 약을 갖고 이승에 돌아오는데, 궁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영약으로 되살렸다. 왕이 바리공주에게 물어 바리공주의 남편이 된 저승의 수문장은 장승이,
일곱 아들은 칠원성군이 되었고 바리공주는 이러한 연유로 왕에게 자청하여 모든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 (Dachaja.net - 우리모두의 백과사전)
바리공주 신화에서 바리데기 공주는 이 세상의 어느 왕의 일곱 딸 중에 일곱째 막내 공주로 태어났으나 버림받고 어느 노부부에게서 자란다. 실제 부모인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어 그것을 고치는 약은 저승에 있다. 그 약을 구하러 저승까지 가서 그곳의 수문장과 바리데기 사이에 일곱아들을 낳고 함께 약을 구해 이 세상에 돌아와 부모인 왕과 왕비를 살렸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주목되는 것은 이 세상에 바리데기와 함께 돌아온 저승의 수문장이 '장승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물론 '천하대장군(天下女將軍)'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바리데기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데기 신화에서 보여주는 두 장승은 결국 석굴암 그로토 바로 앞에 세워진 두 석물의 모습에 남아 있다고 필자는 추정한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나라의 석굴암 해석에서 필자가 처음 내리는 새로운 해석이라 자부한다. 석굴암의 정면 두 개의 돌기둥은 장승의 감투머리와 같은모양을 하고 있다.
*석굴암 앞의 두 장승
바리데기 성모 신화의 두 남녀 장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석굴암의 정면 두 개의 돌기둥은 장승의 감투머리와 같은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장승
바리데기 공주 신화에서 나오는 장승은 결국
불교의 영향으로 토함산 석굴에 두 개의 장승과 같은 모양의
돌을 세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 신화의 구조를 필자가 살펴보니 석굴암을 건축한 김대성의 생애와 유사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태어난 곳에서 다시 죽어 다른 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김대성은 석굴암을 만들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대성 환생설화는 필자의 신화학적 비교에 의하여 바리데기 선화와 그 구조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바리데기 공주 설화와 다음의 김대성 설화를 비교해보라. 필자가 김대성 환생 설화를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모량리(牟梁里)에 사는 가난한 여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대성(大城)이라고 불렀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아이를
기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김문량(金文亮)이라는 재상의 집에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말하기를 '모량리의 대성 아기가 이제 너의 집에 환생할 것이다'고 하였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모량리에 가서 찾아보니 과연 대성이란 아이가 죽었고, 그 날 뒤로 김문량 재상의 부인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쪽 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만에 펴는 것이었다. 펴진 손을 보니 손 안에 대성(大城)이라
새겨진 금간자(金簡子)가 있어서 이로 인하여 이름을 대성으로 짓고 그 생모를 모셔다 함께 살도록 하였다.
대성이 장성하여 토함산(吐含山)에 올라가서 곰을 잡은 후 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대성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나를 죽였느냐? 내가 환생하여 너를
잡아먹으리라'고 하였다. 대성이 몹시 두려워하여 용서하기를 청하였다. 귀신이 말하기를 '그러면 네가 능히
나를 위하여 절을 세워 주겠느냐?' 하니 대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절을 세우니
장수사(長壽寺)라 하였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는 석불사(石佛寺)를 세웠다. 이에
불상 등의 상설(像設)을 화려하고 정교하게 지어 자신을 키워준 이승과 저승의 부모에게 노고를 갚으니 한
몸으로써 두 세대에 걸쳐 부모에 효도하였음은 드문 일이다.
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려 하고 한 큰돌을 다듬어 감개(龕盖)를 만들다가 돌이 갑자기 세 토막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다가 그 자리에서 어렴풋이 졸았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서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이를 본 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남쪽 고개에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곳을 향령(香嶺)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불교화된 김대성의 환생은 태양숭배시대의 잔흔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의 일연의 기록은 바리데기 여신 신화가 불교화 되고 윤색 변이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 곰으로 표현되는 웅녀와 같은 산신성모에 대하여 장수사를 세워줬다는 것은 산신신앙의 구조를 보여준다.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달불놀이'를 했다는 것은 태양숭배 신화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설화 속의 향령(香嶺)이란 달불 제사를 놓던 성모제단이라 볼 수 있다.
2)곰 즉 불교 이전의 태양의 여신 신앙이 다시 환생하여 불교를 '잡아먹을까' 두려워하여 장수사 절을 세워주었다고 했다. 이것은 '웅녀 성'모 등의 태양의 여신 숭배시대의 설화를 불교 중심으로 바꾸어 김대성 환생설화에 꾸며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바리데기가 부모를 위하여 죽어 저 세상을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과 김대성의 환생은 유사하다. 바리데기 공주가 부모를 위하듯이 김대성 또한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石佛寺)를 세웠다.
4) 재상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 것은 바리데기가 저승에 가서 수문장과 일곱 아들을 낳고 살 정도로 그곳에서 한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으로 아들들과 수문장 남편을 데리고 돌아온다는 것에서 김대성 설화와 플랏이 일치한다.
김대성은 다시 태어나서 자신의 전생의 이름을 새긴 금간자를 꼭 쥔 자신의 손을 '7일만에 폈다'는 그 7이 바리데기 설화에서 '7 딸'과 저승의 '7 아들'로 표현되어 있다.
5) 전생의 부모를 위한 석불사는 바리데기에게서 저승의 수문장이 이 세상에 돌아와 장승이 되었다는 것과 프레임이 같다. 석굴암 본존불 정면에 두 개의 '장승 스타일'의 돌 문의 정체는 두 개으 장승을 연상케 한다.
아래의 그림은 우리 민족의 태양숭배시대의 잔재가 결코 삼족오류의 봉황만 남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이 글을 마치는 의미로 첨부한다. 여기에서 나는 모자상 아래에 아홉 사람을 보았다.
*백제시대 벽돌.
흔히 '오만진신. 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양숭배시대의 '성모자상과 아홉공주'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위의 벽돌 부조의 그림은 분명 풍수지리를 생각하고 신화를 생각하던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백제시대의 이 벽돌에서 아래쪽 사람 형상이 모두 아홉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은 대지의 딸(공주)들의 이미지라면, 위쪽 상서로운 구름이 있는 하늘에는 무엇이 있는가? 후대 제왕들의 역사에만 익숙해져 온 사람들이라면 말탄 장수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풍수 신화시대의 중심은 태양과 여성 즉 성모이다. 하늘에는 태양의 여신이 있고 거기에 아들이 앞에 있는 모습의 프로토타입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벽돌 그림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다. 같은 삼국시대 신라에는 마리아상이 아닌 신라 자체의 선도성모(仙桃聖母)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마치는 말: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신라 고유의 성모자상일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그 정체미상의 성모상의 근원을 찾아 수많은 자료를 동원하여 여기에 그 감정 결과를 제시했다. 더 이상 '통일신라시대 성모 마리라상'이라고 선전하는 허위 날조는 없어져야 한다. '불교 모자상'을 단순히 '모자상'이라고 하여 '마리아 성모자상'이라 해서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오히려 신라 시조신화에 나오는 선도성모(仙桃聖母)가 성모자상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모자상이라면 우리 민족의 삼국시대 성모자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최근에 쓴 <불교 이전의 석굴암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글에서 석굴암 자리는 샘물이 흘러나오는 그로토 지형이며 그 안에는 본래 태양을 잉태하는 대지지모 선도성모(仙桃聖母)가 모셔졌던 자리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더불어 그러한 자리에 불교의 영향으로 여래상이 들어선 것이며, 그 모자적 신화는 김대성의 어머니 이야기로 개별화시킨 윤색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석굴암 자리는 본래 태양의 여신 성모(聖母)를 모시던 그로토 암호((巖戶))였다.
석굴암 '태양의 성모상' 앞에는 '선재동자'와 같은 태양이 해중능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선도성모는 현세상을 비치는 태양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불교로 말하면 열반의 세상 저승의 아미타불이 아닌 현세상에 내려온 석가여래이다. 불교의 영향은 선도성모 여신에 대한 잔재를 지우기 위하여 석굴암 석불에 대하여 석가여래가 아닌 '아미타불'을 강조한다. 그러나 태양의 여신 숭배를 강하게 이어온 일본인들은 석굴암 석불을 '석가여래'상으로 본다.
여래(如來)란 다른 고유의 태양숭배시대의 여신들이 부처가 된 것으로 강조하려했던 불교의 재해석으로 여성적 의미가 강하게 자리한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석굴암은 불교유적만이 아니라 전통 고유의 태양의 성모상의 유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 베드로 성당이 기독교 이전의 마그나 마테르(Magana Mater) 여신의 사당터에 지었듯이 석굴암은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시던 샘물이 흘러나오는 그로토 암호(巖戶)에 세운 석굴암 석굴이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불교 입장에서나 기독교 입장에서 볼때도 '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이라는 허구의 주장으로 출처 증거 제시에 대하여 중구난방 말바꾸기로 일관해온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유물은 출처 경로상의 문제를 이미 안고 있으며, 그 유물의 감정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모상이라고 하면 이미 지리산 선도성모(仙桃聖母)에서 보듯이 천년신라 고유의 성모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05/01/09 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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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신라 마리아 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의 정체> (2)
제2장 목차
1. 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은과 카리테이모(訶梨帝母) 주변의 아홉 얼굴
2. '성모상 아홉 얼굴'과 허황옥을 맞이하던 구간(九干)
3.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와 거북 등의 '井'
4. 허황옥 여신이 탄 파사(婆娑)의 바위돌과 세오녀 여신이 탄 '바위 배'
5. '모자불상'과 인도의 하리티(Hariti) 성모 여신상
6. 전통 토속 여신인 '하리티 성모'를 비하시킨 불교문화
삼태극 까페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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