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지나온 한해를 뒤돌아보고, 다시 맞이할 새해를 설계하게 된다. 무한히 흘러가는 세월을 날(日)과 때(時)로 나누고, 마치
부나비처럼 그 날줄과 씨줄에 얽혀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어쩌면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사다난했던 2013년 연말을
맞아서 멀리 남도 끝자락에 있는 순천만을 찾아서, 길게 그림자를 지으며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또 한 해 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짐들을 훨훨 던져버리고 일어서는 것도 새로운 한해를 맞는 좋은 청량제가 될 것이다.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전경. |
순천만은 순천 시내에서 흘러내리는 동천(東川)과 상내면에서 흘러나온 이사천(伊沙川)이 만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약3㎞에 이르는 물길 양편으로 빽빽하게 자란 개펄과 바다를 말하는데, 동쪽으로 여수반도와 서쪽으로 고흥반도 사이에서 냇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약40km에 이르는 해안선이 S자로 물길을 이루고 있다. 순천만은 냇물을 따라 유입된 토사와 유기물 등이 바닷물의 조수 작용으로 밀물 때에는 약5.4㎢가량 개펄이 썰물 때면 약22.6㎢으로 넓혀지는 광활한 해안가에서 낙조와 겨울철새들의 군무를 바라볼 수 있는 풍광 좋은 곳이다.
순천만은 내륙에서
흘러나오는 냇물의 오염원이 적어서 국내에서 가장 깨끗한 갯벌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갈대밭이 무성해서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검은머리 물떼새, 먹황새, 노란부리 저어새 등 국제적 희귀조류 11종과 한국조류 220여종이 서식하는
천혜의 습지로서 2003년 12월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 2004년에는 동북아 두루미 보호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하였으며, 2006년
1월20일에는 세계 5대 연안습지이자 갯벌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기도 했다.
2007년 7월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사업으로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6월16일 문화재청은 생물학적 가치가 크고 해안 생태경관이 수려하다고
명승(名勝) 제4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순천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8km쯤 떨어져 있는 순천만은 여수로 가는 17번 국도를 직진하다가 청암대학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약10분정도
지방도를 달리면 되는데, 행정구역상 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에 걸쳐 있다.
순천만생태공원 입구에는
주차장이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고,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큼지막한 순천만 자연생태관이 있다. 1층에 들어서면 3m 높이의 커다란 흑두루미가
관람객을 맞는데, 이곳에서는 순천만에서 사는 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영상관, 낮에는 새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천문대 등이 있다.
자연생태관을 가로질러 제방으로 올라서면 순천만 생태공원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놀이열차가 있고, 그 옆에는 겨울철새들과 순천만 습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생태체험선을 타는 대대포구 선착장이 있다. 생태 체험선은 바다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서 갈대군락지와 갯벌 사이 약3㎞거리를
왕복하는데, 약30분 정도 걸린다. 이처럼 짧은 순간이지만, 탐방객들은 눈앞에 먹이를 찾아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수많은 철새들이 펼치는 군무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선착장 왼편에는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갈대밭과 갯벌을 질퍽이지 않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게 만든 인공데크가
아치형으로 놓여있는데, 탐방객들은 생태체험선을 타지 않고서도 생태공원과 순천만 곳곳을 감상할 수 있다. 또, 그 갈대밭과 개펄에서 서식하고 있는
온갖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데, 순천만의 갈대밭과 철새를 보기 위하여 사계절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멀리 외국에서 찾는 탐방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갈대밭과 연안습지. |
사실 갈대밭은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순천만에서처럼 어른 키보다 훨씬 더 큰 갈대들이 정글처럼 무성한 초록빛의 대향연이 펼쳐지다가 가을이면
북슬북슬한 씨앗 뭉치가 햇살의 기운에 따라 은빛 잿빛 금빛 등으로 채색되는 갈대꽃이 피고, 또 겨울이면 탈색된 줄기들만이 바람에 나부끼듯 춤추는
우아하며 매혹적인 곳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순천만 갈대밭을 ‘하늘이 내린 정원’이라고도 말하는데, 사실 갈대밭은 멀리서 바라보면
갈대밭 일색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물억새, 쑥부쟁이 등이 곳곳마다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염도에 따라 일 년이면 계절마다
다른 색깔로 일곱 번이나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칠면초(七面草)가 갯벌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펼쳐진 것은 순천만에서만 볼 수 있는데,
붉은빛을 띠는 칠면초 사이로 흰색의 철새들이 날아오르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순천만은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용산전망대를 오르지 않고
순천만을 봤다고 할 수 없다. 갈대밭 산책로를 따라 야트막한 용산(龍山)은 용이 승천하다가 순천만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려와 머물렀다는 전설을
가진 산인데,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여의주로 불리는 자그마한 언덕도 있다.
선착장에서 약2.6㎞ 떨어진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질녘의 순천만의 풍경은 순천만을 상징하는 S자로 굽이도는 물줄기와 사이사이에 둥근 원을 그리며 자리 잡은 갈대 군락과 붉은 빛깔의
칠면초 군락과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철새들을 바라보면 세속에 찌든 인간들의 마음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할 것 같다. ‘S’자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물줄기와 갈대밭 그리고 낙조가 어우러진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오며, 물길을 가르며 달리는 탐사선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물결 위로 노을이
비치는 또 다른 그림에 깊이 빠지게 된다.
순천만 자연생태관에 전시된 흑두루미(왼쪽)과 산책로 인공데크. |
모래가 많은 서해안 갯벌과 달리 진흙으로만 이루어진 순천만 갯벌에는 게와
짱뚱어가 또 하나의 명물인데,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 게들은 갈대를 뜯어먹기도 하고 연신 집게로 젓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낮은 곳에
깃드는 생물이란 의미의 짱뚱어는 남해안 서부와 서해안 남부 지역에서만 서식한다고 하는데, 순천만을 찾은 이들에게 색다른 입맛을 느끼게
해준다.
순천만은 추우면 추울수록 수많은 겨울 철새가 몰려오는 곳으로서 국내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이지만, 2003년 습지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 개체수가 이전보다 약66%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이 주는 혜택을 인간 스스로 파괴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보호하고 가꾸면서 인간과 동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의 보고인 순천만에서 한해를 보내며 새로운 한해를 맞는 갈림길에서 찾는 것은 최고의
힐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