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 悼 辭
지난 10월 22일 저희 일본불교사연구소의 창립멤버이자 『일본불교사연구』의 편집위원이기도 하신 이연숙선생님께서 향년 53세로 타계하셨습니다. 저도 그동안 선생님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18일에 열린 학술대회에서 임종을 맞으시기 위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학문의 성숙기에 접어드시고, 앞으로 일본불교의 연구와 확산에 매진하실 때인데....저희들은 며칠 새 여성불교학자들이 연이어 타계하는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순천대학교의 안옥선교수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던 바로 그 이튿날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선생님의 타계와 발인, 그 어느 순간에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죄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와 나름의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2002년, 동경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한국유학생모임에서 선생님이 회장을, 제가 부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과 저는 <고 金知見교수 추도논문집>(『한국불교학세미나』9호)을 간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었습니다. 선생님은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나오셔서 모연을 하셨고, 저는 논문편집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학생신분이었고 경험이 없던 터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오누이처럼 지내기도 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먼저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고 선생님도 몇 년 뒤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선생님이 유방암에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불교를 전공하셨던 고 沈仁慈선생님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분도 역시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생활비도 없고 박사논문준비 등으로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서였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소식을 듣는 순간, ‘심인자선배일을 잘 알고 계실 텐데, 왜 조심하지 못하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동경에서 같이 유학했던 사람들끼리 십시일반으로 치료비를 보태기도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빨리 타계하신 것은 아마도 생활고와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일본에 두고 온 딸, 미라이(未來).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별거 중이었던 걸로 알고 있지만, 화가였던 일본인 남편. 이들과 떨어져서 서울의 골방에서 혼자 병마와 싸우셨던 것입니다.
심인자선생님과 이연숙선생님은 두 분 다 일본불교가 전공이셨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렵게 일본불교를 공부하신 인재들을 잃어야만 할까요? 두 분 다 나이 들어 공부하셨고, 생활고에 찌달리면서도 불교에 대한 열정만으로 생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계셨기에 일본불교사연구소도 창립되었고, 한국에서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 이연숙선생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2010.11.3. 정영식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