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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해 시조 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들까치
우리詩 여름자연학교 특집 - 감동 깊은 詩, 어떻게 쓸 것인가?
한밤중에 쓴 3통의 편지
이승하 (시인 ․ 중앙대 문창과 교수)
1. 세상의 한 아내에게
배우식 씨로부터 시집 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떤 형식으로 쓸까 고민하다가 성함도 모르는 그대에게 편지를 올리는 식으로 발문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대는 시인 배우식 씨의 아내입니다. 저는 그대를 병원에서 몇 번 뵈었지요. 집에 문병을 가서 뵌 적도 있었습니다. 아니, 그 전에 그대는 아픈 남편을 대신하여 강의 시간에 들어와 발표를 해서 그 강의를 들었던 모든 학생과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분입니다. 출장 간 남편을 대신하여 아내가 예비군복을 입고 예비군 훈련장에 나타나 화제가 됐던 일이 예전에 있긴 했습니다만 그날의 일은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름 모를 병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어버렸고 남은 한쪽 눈마저 멀어져가는 남편, 그 남편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직장 생활을 작파하고 대학원생이 되었는데 그만 학기 도중에 의식이 혼미해지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배우식 씨는 아내에게 유언을 하듯 부탁을 했습니다. 아무 날 아무 시에 내가 학교에 가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당신이 나 대신 가서 발표를 해달라고.
대학원생 수에 맞춰 복사를 해 갖고 온 그대는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를 끝낸 그대에게 저와 수강생 모두가 큰 박수를 쳐 드렸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대 남편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처음 만난 배우식 씨는 참으로 진지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시를 대하는 자세가 고지식할 만큼 진지해 제가 강의 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말조심을 해야만 하는 판국이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저는 부군이 지병을 앓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 눈 한쪽이 잘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거의 실명이 되었고, 남은 한쪽 눈마저 멀어져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맹인으로 살아갈 운명이라고. 얼마 뒤에 저한테 전해진 소식은 다년간 다니며 눈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수술을 종용하였고, 드디어 실명과 광명의 갈림길에 부군이 서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은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립암센터에 가서 진단을 한 번 더 받아보기로 했다지요. 그 병원에서는 다른 진단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뇌종양이라는. 뇌에 생겨난 종양이 시신경을 눌렀던 것이며, 그 종양이 커져감에 따라 눈도 점점 더 멀어져갔던 것입니다. 이제 실명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뇌종양 수술 결과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뇌종양 수술은 사람을 살릴 수는 있지만 반편이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놓을 확률이 높은 아주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이니 기억상실증이나 실어증도 수반될 수 있었고, 그 무엇보다 수술 후 시를 쓸 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습니다.
국립암센터와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하나의 팀을 결성, 장비를 모아서 수술을 시도한 예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또한 뇌종양 수술을 칼을 대지 않고 한 경우도 많지는 않을 겁니다. 코 속으로 기계를 넣어서 레이저로 뇌 깊숙한 곳에 난 종양을 녹여버리는 수술은 성공하면 삶이요 실패하면 죽음인 끔찍한 수술이었습니다. 현대의학의 개가!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부군에게는 잃어버린 시력이 회복되는 기적까지 일어났습니다.
실명과 검사, 진단과 수술, 그리고 회복의 과정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 모든 과정을 기도하며 지켜본 이는 바로 그대였습니다. 기도하고, 간병하고, 울고, 울음을 참고, 벼랑에 서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실명이 되는 과정에서 부군은 학업을 닦았고, 수술과 회복의 과정을 거친 후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 그 상간에 영어시험과 종합시험에도 합격했었지요.
그 끔찍한 투병의 과정과 몇 년을 이어진 회복의 과정에서 부군은 또 하나 다른 일을 했습니다. 바로 시 쓰기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마지막 소원’은 사실 시 쓰기였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학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를 쓰고 싶어서였습니다. 부군의 시 짓는 실력은 부쩍부쩍 늘어나 월간 시문학에 투고해 등단을 했고, 마침내 시집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완벽한 무명 시인이 문예진흥원에서 주는 문예진흥기금 수혜 대상자가 된 것도 기적적인 일이긴 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 간절히 원한 ‘시’ 덕분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군은 저에게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를 위해 순교하고 싶습니다. 그런 각오로 쓰고 있습니다.”
남편이 벌이 좋은 건설회사의 중견간부 직을 그만두었을 때, 시를 쓰기 위해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눈이 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며 그나마 모았던 돈을 여기저기 자선단체에 조금씩이나마 희사했을 때, 조용하고 공기 좋은 데로 가서 시를 쓰겠다고 아무 연고가 없는 강화도로 이사가겠다고 말했을 때, 고개를 좌우가 아닌 아래위로 끄덕였다는 그대를 저는 감히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조’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것이지요. 부군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의 영역으로 귀환한 것도, 석사와 시인이 된 것도, 시집을 내게 된 것도, 저는 그대의 내조 덕분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 이혼율 증가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이 때, 두 분의 신뢰와 사랑을 저는 두 분이 주고받는 눈빛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웃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자진해서 실업자가 된 남편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한 그대에게 저는 힘찬 마음의 박수를 보냅니다. 사지로부터의 귀환은 물론 부군이 시인으로 재탄생하여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런 뜻에서 기적이 아니라 사필귀정이었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그대였습니다. “이 분이 시를 쓰신다는 말을 듣고 내 반드시 낫게 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고 한 국립암센터의 이승훈 의사도 기적을 행한 신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부군의 시를 향한 집념에 감동했기 때문에 뇌 절개를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제 배우식 씨의 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애당초 발문의 형식으로 쓰는 글인지라 시 세계에 대해서는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씌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단지 몇 편 시에 대해 소박하게 감상문을 써볼까 합니다. 4부로 되어 있으니 각부에서 딱 1편씩만 골라 써보겠습니다.
3호선 전철 안에서
하모니카 부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시각 장애인인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하모니카는
세상을 보는
눈
―「하모니카」 앞 4연
저도 지하철에서 종종 맹인 걸인을 봅니다. 하모니카 부는 노인을 본 적도 있고요. 노인에게 있어 하모니카 불기는 밥벌이를 위한 수단인 셈인데 그래서인지 부군은 하모니카를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이 여기서 그친다면 시가 밋밋하게 끝났을 것입니다. 배우식 씨는 제4연에 가서 시적 전환을 꾀합니다. 일단 “눈이다”라고 일갈한 뒤, “하모니카를 심장처럼 들고 다닌다”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심장을 분다”고 상상력을 확장시킵니다. 시는 여기에서부터 아연 긴장감을 띱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눈이다
할아버지는
하모니카를 심장처럼 들고 다닌다
할아버지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심장을 분다
빈 구멍에 고여 있는 웃음 가득한
심장을 불면 빈 눈에는
맑은 웃음꽃
―「하모니카」 가운데 2연
상상력의 확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인이 빈 구멍에 고여 있는 웃음 가득한 심장을 불면, 빈 눈에는 맑은 웃음꽃이 가득 피어납니다. 그래서 하모니카 부는 노인은 맑은 웃음꽃으로 세상을 부는 사람, 다시 말해 천사인 것이지요.
맑은 웃음꽃이 가득 핀다
맑은 웃음꽃으로 세상을 보는 하모니카 할아버지는
천상 천사다
―「하모니카」 끝 2연
아마도 이 시는 부군이 눈이 멀어져갈 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다가 목격한 것을 갖고 썼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듯 두 손을 모르고 하모니카를 부는 노인을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이 시는 배우식 씨의 처지를 모르고 읽을지라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는 가편입니다.
제2부의 시 가운데 그대를 직접 등장시킨 「호박꽃」이 있습니다. “입이 큰 아내” 하면서 그대를 놀리는 듯하지만 실은 호박꽃의 포용력과 생명력에 빗대어 은근히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 시임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보다는 시집의 제목이 된 시에 더욱 주목했습니다.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두운 몸을 본다
나는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햇빛 받으며 피어나는 나팔꽃
햇빛 가득한 그 꽃잎
한 조각이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바람 속의 별빛
혹은 달빛이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아니, 그도 저도 안 되면
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두운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내 몸을 구부려 따뜻하게 감싸면서
천년을 더 그렇게,
―「그대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전문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시론입니다. 자신의 몸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소망은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주는 것입니다. 시에서 그는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팔꽃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몸은 늙고 병들게 마련, 한마디로 말해 어둡습니다. 그래서 부군은 ‘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고 말합니다. 햇빛 벌레라는 벌레가 있는지, 아주 작은 햇빛인지 그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부군은 지금 “내 몸을 구부려 따뜻하게 감싸면서/천년을 더 그렇게” 불을 켜고 싶어합니다. 저는 이 시의 뜻을, 이타적인 삶을 살려는 한 인간의 간절한 소망으로 이해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를 시 쓰기의 한 목적으로 삼았음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에서 배우식 씨의 인간관과 인생관을 읽어냈습니다. 부군의 시정신은 고통을 넘어 환희로 나아갔던 베토벤의 정신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마지막 연은 뼈아픈 역설로, 고통의 뜻을 아는 자의 육성입니다.
제3부는 일종의 투병기요 병상일기입니다. 시 「목숨은 외롭다」만 보겠습니다.
혓바닥이, 불에 탄 돌덩어리 같다
뇌수술로 폐쇄된 콧구멍,
혓바닥이 혼자서 바삭바삭
부서질 것 같은 숨을 삼킨다
불에 녹아 오그라든 비닐봉지 같은
목구멍이 오그라든 숨을 삼킨다
이렇게 코가 막혀 뚱뚱 부은
목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은
죽음 속에서 길을 잃은 것보다도
더 아프고 더 외롭다
중환자실에서 간신히, 간신히 삼키는
목숨이 온몸을 태운다
바싹 탄 입 속에 섬처럼 떠 있는
검은 혓바닥으로 죽음이 달려든다
죽음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달려든다
죽음이 끌고 가는 검게 탄 목숨 뒤를
눈동자 둘이 따라간다
울지도 못하고
죽음아 서둘지 좀 마라, 라는 말이
눈동자 안에서 쓸쓸히 흩어지고 있었다
―「목숨은 외롭다」 전문
이 작품에는 수술 후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부군이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나 보니 위로해주는 이 한 사람 없는데 의식은 말짱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수술 전보다 더 심한 듯합니다. 소생에 대한 희망을 갖기는커녕 “목숨이 온몸을 태운다”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사후 모습을 보기도 하지요. 회복이 될 것인지 악화일로로 갈 것인지 모르겠는데 몸은 사정없이 아프고……. 제3부의 시는 이렇듯 시인의 아픔과 절망에 십분 공감이 가게 할 만큼 실감나는 투병기입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런 시가 많은데, 이는 부군의 첫 시집이 갖고 있는 특장점(特長點)의 하나일 것입니다.
제4부의 시를 저는 일종의 생명 예찬으로 읽었습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살아 숨쉬는 것들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생명체들의 생명 현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의 결과물이 제4부에 모여 있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폭풍우가 다 지나간 이후의 자연 풍경은 우리를 감동케 하고 감격케 하지요. 엄청난 비바람을 이겨낸 생명체는 마음껏 생명력을 구가하게 됩니다. “샛노란 음표를 달고/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개나리(「생명의 태엽을 감다」), 종일토록 햇빛처럼 쏟아지는 뭐라뭐라 말하는 새 소리(「새가 창을 풀다」), 압력밥솥처럼 끓고 있는 찔레꽃 봉오리(「서울 찔레꽃」), 고요마저 벗어놓고 환하게 맨발로 가는 갈대(「갈대의 맨발이 환하다」) 등 생명력을 표상하는 것들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새롭게 시작하게 된 삶에 대한 벅찬 감회는 다음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마도 회복이 된 이후에 쓴 시가 아닐까요?
아아, 내 몸의 인공부화기에서
해의 알이 환한 빛으로 부화되었다
내 몸이 환해졌다
―「해알이 부화되었다」 끝 부분
뭇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나도 또한 마음껏 생명력을 구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전언이 담겨 있군요. 그래서 “오래 뇌종양을 앓아온 아픈 봄이,//내 몸 속에다 초록빛 산새들을 토해낸다/나, 살아 있어요!”(「환희」) 하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구요. “화사한 나를 열면/맛있는 봄이 환하게 끓어 넘친다”로 끝나는 「이 맛있는 봄」 같은 시도 죽음의 강을 건너지 않고 돌아온 부군이 믿기 어려운 이 현실에 감사하며 쓴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멋들어지게 형상화된 시는 「트럼펫 소나무」와 「트럼펫 소나무가 보내온 이메일」 두 편이 아닌가 싶은데, 이 가운데 뒤의 것만을 감상해보겠습니다.
햇빛에 손을 씻고 이메일을 연다
트럼펫 소나무가 보내온
이상한 거울 같은
트럼펫 소리가
받은 편지함 속에 걸려 있다
표면이 맑은 소리의 거울,
눈 동그랗게 뜨고 들여다본다
내 얼굴이 소년처럼 푸르다
얼굴이 솔잎의 새순으로 가득하다
손에도 솔잎의 새순으로 가득하다
으하하 웃어본다
으하하 웃음도 솔잎의 새순으로 가득하다
저 트럼펫 소리 속에는
머리도, 눈도, 다리도, 모두다
솔잎의 새순으로 가득하다
―「트럼펫 소나무가 보내온 이메일」 앞부분
트럼펫 소나무가 보내온 트럼펫 소리라……. 배우식 시인은 소나무를 보고 트럼펫 소리를 떠올렸던 것이 아닐까요. 맑고 밝은 소리를 내는 트럼펫 소리와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의 이미지가 같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누구나
트럼펫 소리를 들여다보는 순간
솔잎의 푸른 생각, 푸른 말소리, 푸른 행동,
솔잎의 푸른 숨소리까지도 그대로 복사되어
트럼펫 소리와 하나가 된다
마술 같은 소리의 거울,
나도 트럼펫 소리와 하나가 된다
푸른 생명,
트럼펫 소리에 종일 밝은 햇빛 내린다
―「트럼펫 소나무가 보내온 이메일」 뒷부분
이 시의 특징은 공감각적인 이미지의 구사입니다. 그것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제4연이지요. 이어지는 “나도 트럼펫 소리와 하나가 된다”는 제5연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자연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뒤섞임을 통해 구현해낸 수법은 경이롭습니다. 푸른 생명인 트럼펫 소리에 종일 밝은 햇빛이 내린다고 인식하게 된 그간의 사연을 제가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까요. 물론 그런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시적 완성도는 어느 누가 보아도 인정할 것입니다.
자, 성함도 모르는 배우식 씨의 아내에게 올리는 편지는 이제 다 썼습니다. 죽음의 강을 건너다가 이승으로 되돌아온 시인의 앞날은, 시인이 되었기에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배우식 씨는 그 어떤 가혹한 시련의 날이 또 온다고 할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일입니다. 제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몇 방울의 눈물과 함께 이 편지를 그대에게 전합니다.
2004년 겨울날
이승하 올림
2. 남○○○ 형께
이렇게 공개된 지면에 서간문을 올리면서 형의 존함을 밝히지 않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는 사실, 형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니, 익명으로 호칭을 삼은 이 편지의 의미를 형이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남형은 지금 무기수로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형은 벌써 9년째 복역하고 있고, 3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지요. 문학사상사를 통해 낸 졸저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을 어떻게 구해 읽은 남형은 작년에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습작시의 수준을 가늠해보고 싶고 시 창작 지도를 받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답장을 보내드리는 편에 책 보기가 쉽지 않을 그곳으로 간간이 책도 보내드렸지요.
「자정 무렵의 기도」를 현대시학에 발표할 때는 부제가 ‘무기수를 위하여’였고, 소월시문학상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나희덕 시인의 수상작품집에 함께 수록될 때는 부제를 ‘사형수를 위하여’로 고쳐서 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사형 폐지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언론에서 자주 접했기에 부제를 그렇게 고쳤던 것이고, 시도 좀 수정을 했습니다. 시는 당연히, 남형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고 싶을 때 잠자리에 들지만 그곳은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지요? 식사는 입맛에 맞는지, 동료들과 불화는 없는지, 노동은 할 만한지요? 무기수이니 출옥이 어느 시점에 이뤄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일 테지요. 때때로 엄습해 올 외로움, 죄책감, 불안감, 좌절감……. 형의 나이 어언 40대 중반,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출옥 후에 직업을 무엇으로 할지 생각하면 암담하겠지요. 혹 출옥 전에 병이 들어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게 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일 겁니다.
벽 안쪽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남형을 떠올리며 저는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무렵에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이 한 편의 시를 썼던 것입니다. 저는 형의 출옥을 기도할 순 없었지만 마음 편히 계시라고, 몸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시작(詩作)에 진전이 있으시라고 예수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를 읽어보셨다고요? 소월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누가 보내주었는지 형은 이 시를 읽었고, “특히 「자정 무렵의 기도」는 제가 주인공인 듯했습니다”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남형을 모델로 해서 쓴 시입니다. 마음을 다치게 할까봐 보여드리지 않은 이 시를 그만 보게 되었군요.
10월 9일 자로 쓰신 편지에서 형은 비로소, 자신의 ‘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헤어졌던 여자를 정리하지 못해 살해하게 되었고 무기징역을 받았다고요. 사건이 일어났던 때가 서른여섯 살이라 했으니 9년을 복역한 지금 형의 나이는 마흔다섯입니다. 언제쯤이나 출옥이 가능할지……. 아마도 남형은 그 여인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런 파국을 자행한 것이 아닐까요. 열렬한 사랑이 초래한 극한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보다 더욱 저를 놀라게 한 것은 형의 시였습니다. 부쳐온 5편의 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일전에 봤던 시보다 월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저는 문예지 신인상 투고를 권해드렸는데 남형은 2008년 신춘문예를 목표로 하고 있고, 여기에 안 되면 문예지 등단을 모색하겠다고 했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꿈은 크게 가져야지요.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보니 너무나 아끼던 조그만 책상이 없어졌다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교도소에서 허가하지 않는 부정물품이라는 이유로 간수가 가져가버려 형은 두꺼운 국어사전 3권을 포개놓고 편지를 쓰고 있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서재에서 사무용 책상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다가 이 편지를 투닥투닥 쓰고 있는데 말입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시를 쓰고 계신 남형!
저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시를 쓰면서도 형편없는 태작만 쓰고 있는데 형의 시는 상상력과 표현력, 긴장감과 호소력이 편편에 넘쳐흘러 저는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학부 학생들에게도, 대학원생들에게도 복사를 해서 낭독시키고 남형 시의 수준을 논해보았습니다. 학생들은 문예지 신인상 정도는 거뜬히 당선될 수준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춘문예는 운이 꽤 작용하므로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 정도면 등단 소식이 조만간 전해질 것입니다.
그곳의 겨울은 사회의 겨울보다 더 춥고 그곳은 여름은 사회의 여름보다 더 덥다면서요? 저는 아직 영어(囹圄)의 경험을 해보지 않아 교도소 한 방에 몇 명이 생활하고 있는지, 노동 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신문과 텔레비전은 얼마나 볼 수 있는지, 식단은 어느 수준인지, 하나도 아는 게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유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책 읽고 싶을 때 책 읽고 시 쓰고 싶을 때 시 쓸 수 있는 자유, 자고 싶지 않을 때는 밤도 새우고 자고 싶을 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자유, 여행의 자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유,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연애할 수 있는 자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자유…….
이 모든 자유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면서도 “더 치열하게 습작할 시기”라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남형! 부디 이번 신춘문예에서 좋은 소식 있기를 기원합니다. 당선 통지가 오지 않더라고 좌절하지 마시고 더욱 열심히 습작하십시오. 형의 시를 읽고 제가 감동하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삶에 연습이란 없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고 한 남형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겁니다.
감기에 안 걸리게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2007년 12월 20일
이승하 올림
3. 눈먼 후배에게 주는 글
상현아, 잘 지내고 있니?
너는 재학 중에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왔고, 졸업 후 ‘들꽃세상’이라는 출판사의 편집부에 다니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빗길 차도를 건너다 그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지. 1991년의 일이었다.
친구는 그리 큰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니어서 회복의 속도가 빨랐지만 너는 한동안 의식조차 회복하지 못해 이른바 ‘식물인간’의 상태로 있어야 했다. 너를 사랑하는 많은 문예창작학과 학우들은 계절이 몇 번 바뀌는 기나긴 투병의 기간 동안 조를 짜 돌아가면서 병상을 지켰다. 병상을 지키면서 학우들은 우정 어린 일지를 썼고, 그 노트 매 페이지에 여실히 드러나 있는 그들의 소원은 아주 조금씩 이루어져 갔다. 네가 병원을 옮겨가며 몇 차례의 수술을 받는 동안 기적적으로 소생해간 것이었다. 어느 날은 손을 움직였고, 어느 날은 발을 움직였다. 어느 날부터는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또 어느 날에는 목발을 짚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는 날이 왔다. 실로 눈물겨운 투병기였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이 되는 동안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다. 너의 지금 상태는 몸의 반쪽이 아직도 마비되어 있고 말로 어눌하다. 그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시력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책을 한 줄도 읽을 수 없으며,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다. 텔레비전도 영화도 소리는 들을 수 있되 볼 수는 없다. 바다와 강과 노을과 별을 볼 수도 없다. 앞을 못 본다는 것은 시인이 될 꿈을 갖고 있는 너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시인이 되고자 했던 꿈은 의식이 돌아온 이후 너의 내부에서 불꽃같이 타올랐다. 날이 갈수록 그 불꽃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좌절이며 회의 따위는 너의 사전에는 없는 낱말이었다. 외부세계와 시를 통해 교감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일까. 시인이 되려는 꿈은 사고가 나기 전보다 훨씬 강해져 일종의 집념이 되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너보다 더 열심히 시를 생각하고 쓰며 살아갈까.
자판을 누르면 기계음으로 글자 내용을 들려주는 맹인용 컴퓨터를 마련한 뒤부터 너의 습작시는 교통사고가 나기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너는 두툼한 시 원고를 몇 번이나 내게 보내주었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나한테 전화를 해왔다. ‘책하고 놀자’라는 라디오 프로를 들었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고, 저번에 보내드린 시의 문제점을 말해 달라고, 어떤 문예지에 투고하면 되겠느냐고, 등단해서 나로 인해 고생하신 부모님께 난생 처음 효도를 해보고 싶다고…….
행과 연 구분과 띄어쓰기, 맞춤법이 엉망인 너의 원고를 정정하여 대신 투고해준 것만 해도 서너 번, 편집자를 알고 있는 문예지에 보낼 때는 상현이의 사연을 적어 보내면서 내가 작품의 내용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음을 내가 그간 쓴 모든 시를 두고 맹세한다는 말까지 첨부하곤 했다. 내 손으로 꼭 등단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는데, 그날이 왜 그리 오지 않는 것인지……. 너는 아직도 시인 지망생이다. 아니, 이제 이 시집 출간으로 당당히 시인이 되었다.
네가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운 좋게 웬 출판사와 끈이 닿아 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 형제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주변 친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우정 덕분이며, 또한 네 자신의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너에게 시는 여유가 있어 쓴 것이 아니었다. 치기도 아니고 객기도 아니었다. 사투였다. 온몸으로, 혼신의 힘으로 쓴 것들이었다. 탕약을 짜듯, 최후의 한 방울까지 영혼을 쥐어짜 쓴 시들이었다. 그렇다. 너의 시는 남들처럼 사지 멀쩡한 상태로, 두 눈을 부릅뜨고 쓴 것들이 아니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시 한 편을 완전하게 머릿속으로 구성해야 했고, 그것을 다시 한 음절 한 음절 타이핑해서 귀로 들어가면서 완성해야 했다. 너의 시는 이 세상을 향한 어눌하지만 조심스럽게 건네는 육성이었다. 아니, 영혼의 부르짖음이었다.
하루는 네가 내게 보여줄 게 있다고 초대를 하기에 장시간 지하철을 타고서 너의 집으로 놀러갔었지. 어머니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너는 집 바깥 공터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앞장선 너의 걸음걸이는 부축해주고 싶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공터에 다다른 너는 지팡이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승하 형, 죽어라 하고 연습했더니 이제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너는 공터 끝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혼신의 힘으로 내딛는 것이었다. 비틀비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8년 만에 지팡이 없이 내딛는 발걸음이었지. 바로 이런 집념으로 쓴 시가 300편을 넘었고, 그 가운데 94편을 가려내 이번 시집을 이루었다. 눈물겨운 집념의 소산인 한 권의 시집 앞에서 나는 벅찬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 시들을 놓고 시세계가 좁으니 어두우니 단순하니 하면서 타박을 놓을 자격이 나한테 없다. 가슴은 떨리고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너는 이 시집을 하나의 지팡이로 삼아서 또 발걸음을 떼어놓으리라. 한 걸음 한 걸음 밝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리라. 너의 시에는 밝은 세상을 향한 소박한, 그러나 확실한 꿈이 담겨 있다. 육신의 장애를 딛고 시인의 행보를 걸어가는 너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차게 치는 박수를.
2000년 5월
이승하 선배가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화가 뭉크와 함께」 당선으로 등단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외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시론집『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외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