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공부방 강연 : 김세명 교우님
비가 오는 화요일입니다.
이제는
조금 추운 듯한 기운마저 느껴지고 여름은 이 비로 다 끝난 듯 싶네요.
그래도 우리 따뜻한 법동지들이 모인 공부방은 너무 훈훈하기만 하네요.
오늘 공부방은 전농교당의 똘똘이 김세명 법우님께서 “공익심없는 사람을 공익심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로 강연해 주셨습니다.
어떤 얘기가 나왔을까요?
저는
과학공부를 하든 도학공부를 하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교당에 나올 때마다 유무념을 하나씩 잡아서 실행을 하려고 하고, 공익심을 나투는 데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 공익심의 첫걸음은 자신을 비우는 것.
공익심의
첫걸음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비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저는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은
1. 시키는 대로 해라.
2. 남 모시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라.
는 말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비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교당에서 나투는 공익심과 일터에서 나투는 공익심도 구체적으로 목표를 잡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 교당 올 때마다 유무념 한 개씩 잡아가기.
저는 교당에 올 때마다 유무념 한 개씩 잡아가는 것을 하는데 최근엔
아침에 일어나 염불좌선하는 것
밤에 좌선하는 것.
을 유무념삼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의 위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기특하고 대단합니다. 세명교우님.^^)
여러분들도 저처럼 교당에 올 떄마다 유무념 하나씰을 잡아 실행하고,
우리 모두 자신을 깨우칠 만한 효율적인 말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그림은 제가 그린 것인데, 공익심을 나투었을 때 어떻게 낙원생활로 갈지를 그림으로 그려본 것입니다.
그림보니 무슨 뜻인지 잘 아시겠지요?
"아따 이게 뭔소리다냐?"
1. 무아, 대아, 텅빈 나, 온 우주의 유기체인 나를 깨닫고
2. 일원의 자리를 발현하기 위한 실행방법을 쓰면
3. 충만한 공익심에 의한 사과 포도 등등 결실이 맺고
4. 그것이 수도꼭지에서 물 흘러나오듯이 흘러나와 궁극의 지향점인 낙원세상의 싹을 틔우리라는 그림입니다.
(^^)
"김세명 교우님 강연 너무 잘 들었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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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질문들입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토론들이 많이 벌어졌는데요.
최진수 : 공익심없는 사람을 이러한 논리로 공익심있는 사람으로 돌린 경험이 있습니까.
김세명 : 제 친구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진수 : 이렇게 공익심없는 사람을 공익심있는 사람으로 돌리도록 하는 사회시스템에 도전해본 적은 없습니까?
김세명 : 아직 없으나, 나중에 그런 직업을 가질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혜원
: 나누어주신 자료에 보면 "단순히 맛있는 건 너 주고 맛없는 것은 내가 먹는다는 마음가짐의 공익심으로는 낙원 세상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 대종사님의 개교의 동기에 부합되는 공익심이어야 할 것이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이끎이 필요하다" 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
김세명 : 저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개벽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가지고 공익심을 가지라는 뜻하는 의미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서혜원 : 저는 "맛있는 것 너주고 맛없는 것 나먹는다"는 위의 말이
첫째로
"내가 너한테 이렇게 했다"는 오만과 아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하고,
둘째로 자리이타와 관련해서, 나와 남을 둘다 좋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윤호 : 맛있는 것을 누가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명성
: 자리이타와 무아봉공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세명 : 아직 생각한 적이 없는 데요.
김명선 : 무아봉공은 나를 좀 더 키워서 생각하면 내가 곧 남과 하나인 존재이니 자리이타와 결국 같지 않겠습니까?
김명성 : 정답.
(웃음. 김명성 법우님. 굉장하십니다.)
최윤호 : 제가 알기로 교전에 나와있는 의미로는 자리이타를 해야 할 때와 무아봉공을 해야 할 때를 구분지어 따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자리이타가 확장된 것이 무아봉공이어서, 자리이타와
무아봉공은 같지만. 실제로 행동을 할 때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김명선 : 그렇게 구별을 해야 하는 구체적인 예가 있나요?
최진수 : 자리이타는 이를테면 자신의 직업적 선택을 가지고서, 자기도 좋게 하면서 남도 좋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무아봉공은 직업적인 것을
완전히 놓고 현실적으로 전무출신하는 것, 전무를 출신하는 것을 무아봉공으로 본다고 봅니다.
.
김명성
: 그러나 무아봉공을 하다보면 자리이타가 되지 않을까요?
최진수 : 세상을 건져야 할 때가 되면 자리이타를 놓고 무아봉공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대종사님께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김도정 : 그래도 크게 보면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서영철:
굳이 제가 예를 틀어 설명하자면, 어떤 어린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너도 살고 나도 살자”고 하는 것이 자리이타요, 그러한 생각조차 놓아버리고
나를 죽여서라도 너를 살리자 하는 것이 무아봉공인 것 같습니다.
(이제야 모두들 이해가 되는 듯..)
교무님 : 재미있네요..
배성원
: 자신의 가족의 일과 공도와 상충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진수 : 자신이 보는 견지, 지각의 틀, 확장성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김인식 : 주산종사님은 가족을 다 돌보지 않고 모든 일을 공도에 투신하시다가 과로하여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원한 바 서원에 따라
다른 선택이 되지 않을까요?
배성원 : 수신제가치국평천하처럼, 자신의 집안을 잘 보살피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소성대할 수는 없을까요? 저는 양자를 같이 할 수
있는 묘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해 본 것입니다.
김인식 : 자기와 같이 있는 사람과의 마인드를 많이 높여주면 될 것 같고, 육신의 의식주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은진 : 여기서 공도자가 되자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공도자를 높이려는 메리트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공도자를 숭배하여 두가지(가족과
공도)가 상충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최진수 : 그 묘안이라고 하면, 자리이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의 독립투사들이 어디 가족 돌보고 자기 몸 돌보면서 투신하였겠습니까.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비분강개하여 나서면 자기 것은 돌볼 겨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자신이 보는 견지에 따라서 그 대처방법이 달라질 것 같다.
김세명 교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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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전농 최고의 피아니스트 박효인 교우님의 멋진 반주에 맞추어 함께 성가 135장 "고요한 법당"을 불렀습니다.
효인 교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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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김제원 교무님의 강평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사실은 공부방에서 많은 질문이 오고가서 심화되고, 오픈마인드가 되어 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는데 오늘
그것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화요공부방에서 사람 숫자가 많아지면, 잘 서로 토론이 안 되는 것이 아쉬웠었는데 오늘 아주 잘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 공익심이란 무엇인가.
공익심(公益心)이란 무엇인가.
도를 행했을 때 덕이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경받는 사람=덕을 가장 많이 내놓은 사람=은혜를 가장 많이 내놓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이익”이라 하는 것은, “정신 육신 물질 방면, 공부와 사업 부문에서”의 모든 이익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자들은 이 세상에 가장 유익을 준 인물이다. 성자가 종교적 카테고리에 속한 것으로 보통은 생각을 하지만, 성자는
이미 종교적 국한을 넘어서셔서 이 세상에 가장 큰 이익을 주신 인물이다.
사요(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고육 공도자숭배)는 “복지사회를 이루자. 대 사회 인류 불공법”이라 하셨다. 일상수행의 요법 6,7,8,9를
싷행함으로써 이 세상을 복지사회 낙원세계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성자가 짜놓으신 법이다. 바로 그 안에는 신앙이 있는 것이다.
# 균등사회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것
정치가들은 균등하고 행복한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 갱제”를 꼽는다.
그러나 성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시는 분들이다. 대산종사님 법문에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절대 그런 사회가 오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공도정신이 필요하다. 공도정신이 있어야 이 사회가 좋아질 것이다.
# 공(公)과 사(私)
아까 배성원님은 “한 가정과 공도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해 주셨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공이라는 개념은 사를 포함한 것이지만, 사와는 대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공과 사의 개념에 대해 세 가지 제시해 주신 것이 있다.
① 빙공영사 : 공을 빙자하여 사를 경영하는 것.
② 선공후사 : 공이 먼저이고 사가 후다.
항상 내가 몸이 아프다거나 일이 꼬였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의 넓이 공심 취사력이 드러난다. 사실 선공후사만 되어도 굉장한 경지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나라는 존재는 원래 원만구족 지공무사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참 나는 지극히 공변되어 사사가 없다.
③ 지공무사 : 이것이 바로 참 나다.
아까 배성원 교우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쉽게 그리고 가까이 말하여 나 김제원을 보라. 현실적으로 가정에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① 첫째 천록이 있음을 믿으므로
② 진리적 안목이 있으므로
③ 사요 중 하나인 공도자 숭배 조항을 알기 때문에.
④ 장기적으로 볼 것.
.
현실적 시각, 진리적 안목이 없는 시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바보다.
아까 은진교우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너는 해라. 나는 못한다”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천록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요, 진리적 안목이 없기 때문이며. 공도자숭배(원불교 교도의 의무)를 모르기 때문이다.
교무님이 공도자숭배 조항을 이용해 대우받으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나. 나는 “원불교에서만은 공도자숭배가 사요 중에 있으니 공도자숭배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였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여한이 없는 것은 나에게 장기적으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나의 가정이 너무나 힘이 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나와 나의 가족에게 복록이 될 것을 안다.
사실 내가 공도자를 하는 데는 시비이해가 항상 따른다. 그러나 시비이해가 무서워 공도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어떻게 공도자가 되는가.
어떻게 공도자가 되는가.
1. 참 나를 알면 공도자가 된다.
2. 공도자숭배를 하면 공도자를 가까이하게 된다.
그리하여 선근자를 가까이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선근자를 가까이하는데는 선근자를 존경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근자가 되라는 말이 있다.
공도자숭배는 공도자를 숭배하라는 이야기와 내가 공도자가 되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있다.
# 그일그일에 불공하는 마음이 공익심/ 공익심은 자력있어야 나오는 것.
대종사님 - 진리를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구하라 하셨다.
처처불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사사불공, 일마다 불공하라는 것은 대종사님의 엄청난 사상이다.
그러므로, 공익심이라 하는 것은, 그일그일에 불공하는 것이요. “그일그일에 불공하는 사람”은 공익심잇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익심은 나의 상황따라 달라진다. 내 자력이 있는 만큼 공익심이 나오게 된다.
앞으로 세상이 욕심만 많은 사회로 될 것 같지만. 앞으로는 공익심을 강조하고 알아주는 단계가 될 것이다. 미국에 NGO단체가 1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NGO단체가 많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의식주가 해결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피은된 바가 있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보은하는
순서로 된 것이다.
NGO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전문가이며 어느정도 의식주 해결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력없는 사람은 공익심을 발휘할 수 없다. 우리는 “대보은자가
되자”고 하였는데, 자신이 실력이 되어 의식주를 해결하여 놓지 않으면 크게 봉사를 할 수 없는 것이며, 봉사를 하더라도 자신의 정신적 육신적
자력이 갖추어진 봉사를 하여야 순서에 맞다고 할 것이다.
# 대산종사님이 말씀하신 공심과 보통사람의 공심
대산종사님은 불보살과 중생의 공심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① 불보살 : 국한없는 공변된 밭에 교화의 종자를 심는다;.
② 중생 : 국한있는 사사로운 밭에 이욕의 종자를 심는다.
따라서 중생들은 평생 골몰하기는 하나 별 거둬갈 것이 없다고 하셨다.
(예)
그 예를 들어보면,
보통사람들 목표는 집장만, 좋은차, 예쁜 마누라, 토끼같은 자식들, 자신의 명예, 자신의 취미활동, 돈 등이고,
거기에 다 쏟아붇고 남은 잉여에너지를 조금 공(公)에 두겠다,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심이다.
교당 나오면서 “교무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돈많이 벌어 여유생기면 그때는 도와드리겠습니다”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나,. 취미활동으로서의 공익심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옛날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이겠다.
예전에 스님과 노인이 함께 먼길을 갔다. 둘이 돈을 아끼기 위해 같이 잤는데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하고 나서 옆에서 잠자는 노인의
머리를 보니, 반은 대머리로 뒤에 몇가닥 남지 않은 상투를 틀어 달랑달랑하게 매달아 놓은 것이다. 스님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 소중한 대머리를
몰래 자르고 도망가버렸다.
그러자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상투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그 노인이 말하기를 “스님은 온데간데 없고 나는 또 어디있냐.”라고 했다 한다.
참 자기를 상투 튼 나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상투 튼나, 명예있는 나, 잘난 나가 나인 줄 알고, 명예가 갑자기 하락을 했다거나, 시험에 떨어졌다거나, 하면 바닥을
치고 퉁곡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 자신을 공(公)이 아니라 사(私)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차이점이 굉장히 크다고 할것이다.
간단한 비유이지만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교당 나오다가 명예가 떨어졌다거나 하면 안 나와버릴 것입니다.
여기 앉아있는 분들 중에서 그럴 분은 딱 한 사람밖에 없겠지만..
(누굴까요??호호호)
모두들 "난 아니야.."하고 생각하고 있음.
#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사사로운 밭에 이욕종자 부린 사람은 자리이타, 무아봉공이 안 되지만. 국한없는 공변된 밭에 서원의 종자, 교화의 종자를 뿌린 사람은 자리이타와
무아봉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리이타가 안되고 겹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라고 하셨다. 여기서 그 사람의 공심의 유무, 진리적 안목의 유무, 깨침의 유무가 드러나는 것이다.
대종사님-공익심에 대해 3가지로 너무너무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1)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하게 여기는 것.
(2) 이로운 것은 저사람에게 주고, 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것.
(3) 편안한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것.
참 말은 쉽다. 그러나 이것은 일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일이 진행중일 때는 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일이 끝나면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할 때는 객이 되었다가 일이 끝나면 겁나게 적극적이 되더라구요.”
일 중에서도 궂은 일은 안하려고 하는 사람은 중생이다.
진리적 안목이 있는 사람은 궂은 일 안궂은 일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 따지는 사람은 진리적 안목이 아니라 현실적 체면의 안목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다.
# 참 나의 이치를 알아야 공도자
공도자는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공도정신을 밝히지 않고 수많은 정책들이 나오나 그것은 실패하기 쉽다.
참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살만큼 살다가 “취미생활로 한번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고려대에 평생동안 모은 돈 10억을 내는 사람이 신문에 난 적이 있다. 그 사람도 대단하지만, 사실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 자린고비로 일생동안 벌은 것.죽을 때 허망하니 내고 마는 것일 뿐이지, 그 사람이 참 나의 자리, 공의 자리를 알아서 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공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한 때 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된다. 그러나 공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한 때 한 순간일 뿐이다.
# 방향을 공심으로 잡고 구체적인 유념조항을 잡으라.
공익심은 서원과도 맞물려진다.
내가 내 일생을 어떻게 공도에 투입하겠다, 정말 영생의 주인으로 살고, 공도의 주인으로 살겠다 하는 서원이 있으면, 구체적인 유념으로써 잡혀야
할 것이다. 목표를 구체화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이를테면,
-나는 교단의 공적인 부분으로서 내가 맡은 부분을 하나 해주겠다
-나는 교당을 하나 짓겠다
-나는 돈이 되지 않으므로 입교연원을 1000명 하겠다,
하고 구체적인 유념을 잡으라.
막연하게 “나는 나 살만큼 살고 남으며 잉여자본으로 하겠다” 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하는 인생이 되기가 쉽다 할 것이다.
정신육신물질로 구체적인 유념조항이 잡힌 사람은 철든 신앙인이다.
김제원 교무님은 출가식할 때 이미 내 인생의 목표를 잡고 종법사님께 말씀드렸다고 하십니다.
공부가 “경계따라 공심으로 돌리겠다”하는 사람은 사실은 이기적인 것이다. 정말 공심있는 사람은 방향을 그것으로 잡아서 정말로 공심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수행의 요법 최종목표는 공익심있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라 하겠다.
삼학은 공심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촉진제일 뿐이다. 원불교 들어와서 삼학을 잘 이용하는 데만 그치는 것을 교법을 갖다 자기 좋은 데 이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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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질문들입니당..
양정민 : 공익의 범위가 있을까요? 공익에 범위가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고속도로를 깎으면 인간들에게는 무척 편리하지만, 거기에서
사는 많은 생물들이 죽지 않습니까.
교무님 : 참 좋은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의 개념이다. 이 세상의 내 몸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내 몸은 공변된 자연법칙에 따라
굴러가게 되어있고, 사실은 모든 것이 공인 것이며, 크게 볼 때는 모두가 공도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또 공과 사, 이기가 현실적으로 있지 않은가.
우리의 잘못된 개념 중 하나가, 국가단위 이상만 공으로 본다(공무원, 공복 등)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한 가게를 열어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면, 자신이 이미 공적인 부분을 맡아서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나와 공을
구분해 본다면, 참 공의 문제에서 공과 사가 겹쳤을 때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공이 먼저가 되겠다.
서혜원
: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교무님 : 대종사님께서 보신 자연은 서구에서 본 이용의 대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사은의 덩어리이며 법신불이다.
서영철 : 서품 2장에서 보면,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이며..”라고 하시어, 만물을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말씀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비하지 말고 부처님으로 모시고 살자는 것이다.
새만금 공사와도 관련하여 우리 교단에서는 갯벌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대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기 때문에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교무님 : 공심에는 전체공심과 부분공심 두 가지가 있다.
대종사님께서는 방언공사를 하면서 “인의가 주체다”라 하셨다. 그리고 사요도 인류에 대한 불공이요 자연에 대한 불공은 없다. 사요가 인류에 대한
불공이다. 그리하여 “최령한 인간”이라 하셨다.
단, 서양에서는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보나, 우리는 자연을 법신불로 본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새만금 문제는 본인의 판단의 문제인데,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기라 믿는다.
새만금을 막는 것도, 새만금을 막지 않고 자연을 살리는 것도 둘다 공심에서 나온 주장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서로 자기가 전체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나중에 역사가 증명하지 않을까 싶다.
서영철 : 그렇다면 원불교에서는 새만금공사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시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지품 13장에 “미래에는 천권보다
인권이다”하시지 않으셨는가.
김제원 : 그것은 각자 시야의 문제이고 판단력의 부재도 있겠다.
최진수 : <문명>에 대해서<유위><무위>를 논하기가 동양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대표적으로<노자>도 그렇지만 다른 사상에서도 상당히 많습니다. <자연>과<개발>에 문제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데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결론은 최대한의 <조화>였습니다.<어쩔수 없이 짓는 개념>으로 귀결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집짓는 기술정도가 무슨 자연을 해치는가?하실지 모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논의를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됩니다. 그 상황에 맞게 최대한의 조화... 그리고 그 기본 관점은 <생명><평화>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본관점을 <근간>으로 하느냐 마느냐가 그 <개발의 정도>를 떠나서 먼저 또 주로 논의가 되어야 됩니다...
김제원 교무님께서 “역사가 증명하리라”하신 것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와닿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파트를 짓느냐 안 짓느냐 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먼저 생각할 것은, 어떤 마음으로 아파트를 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짓는 데
있어서 정말 대의적인 생각으로 짓느냐. 자기 욕심으로 짓느냐는 분명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기본관점이 전체를 살리자는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우선 제기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두 관점 모두가 전체공심이라면 우리는 나중에야 그 문제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의 결정은 누구의 말대로 나든 아무런 문제나 마찰이 없을 줄로 압니다. 둘 다 전체공심이기 때문입니다.
김제원 교무님 : 법회를 와서 김세명 교우가 유념거리 한 가지씩을 가지고 간다 하셨는데 무척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오늘 법회 참 좋았다”로
나가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 개인의 목표를 잡아서 함께 점검해 볼 수 있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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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 이번 주 토요일 단법회 마음공부 일지와 교전 챙겨올 것.
9월 9일 강연은 서혜원 교우님 -염불 좌선 경전 강연 회화
오늘 오랜만에 오신 김명선 교우님 소개를 하였습니다.
김명선 : 분당 삼성물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배워서 신나게 다녔는데, 직장분위기는 원불교 동아리 분위기랑은 달리 낯설음과
서먹서먹함 때문에 마음고생을 조금 하였습니다. 오늘 와서 보고,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첫댓글 화요공부방이 너무 길어서 다시 읽는 데 오히려 도움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약해서 올리는 것이 나을까요? 음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온 엔딩음악이라고 합니다. 방해가 되면 꺼두고 읽으세요^^
잘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올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데요... 물론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공간적으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큰 공부를 전해주는 것이랍니다. 참 고맙네요.
이렇게 상세히 올려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오! 대단합니다. 순명공주님^^ 항상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도 대빵 좋습니다.. 히히~~ 항상 고마운 순명 공주님~~
순명 공주님~ 이렇게 잘 해주실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해요~개강하고 나서 못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잘 들을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정말 감사드려요~^^
오타가 있네요.<문명>에 대해서<유위><무위>를 논하기가 동양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대표적으로<노자>도 그렇지만 다른 사상에서도 상당히 많습니다.
<자연>과<개발>에 문제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데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결론은 최대한의 <조화>였습니다.<어쩔수 없이 짓는 개념>으로 귀결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집짓는 기술정도가 무슨 자연을 해치는가?하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논의를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됩니다. 그 상황에 맞게 최대한의 조화... 그리고 그 기본 관점은 <생명><평화>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본관점을 <근간>으로 하느냐 마느냐가 그 <개발의 정도>를 떠나서 먼저 또 주로 논의가 되어야 됩니다...
알겟습니당..방금 고쳣습니다..붙여넣기 햇습니당 [피시방인데 쉬프트랑 알트키가 안먹네요..] 논의의 핵심을 파악하여 옮기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당. 어렵습니당.. 그래두 사명감을 가지고 분발하겟습니다
사명감 가지고 분발하신다는 말씀이 더욱 우리를 송구스럽게 하네요...감사합니다. 공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