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빠가사리님.
참으로 독특한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빠가사리로 불려지는 어종인 물고기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에서 나름대로 그 의미에 자신을 적용하는 것 속에서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의미로서의 닉네임이기를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그것은 님의 진정한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서로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에서 교제의 선명함과 진실함의 신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터넷이란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현장에서는 그 필요성을 더욱 갖습니다. 해서 이름이나마 본인의 실명을 알고 싶습니다. 하오니 빠가사리란 닉네임을 사용하는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부득불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실명으로 바꿔주시지 않겠습니까?
님의 질문을 대하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것은 님의 질문 이전에 먼저 앞서서 질문하신 분이 몇 분 계시기 때문입니다. 님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질문과 답란에 이미 두 분이 질문하고 계시며 또는 다른 방법으로도 그러한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아직 그분들에게 답변을 해 드리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해서 순서적으로는 앞서의 질문자들에게 먼저 답변을 해 드리는 일을 마친 후에 님의 질문에 답변해 드려야 옳습니다. 이것이 질서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님의 질문의 성격을 볼 때 급박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만큼 님을 많이 기다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만큼 속히 답변해 드리는 것이 님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앞서 질문하신 분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여기면서 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먼저 답변해 드립니다. 본 답변이 속히 필요한 것인만큼 여유를 가지고서 쓸 겨를이 아니었기에 얼마나 님에게 도움과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모릅니다. 다만 님의 질문에 성실함으로 충실히 답변하고자 하였다는 나의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
그러면 님의 질문이 무엇인지를 보겠습니다.
"정관수술에 대한 문의
우선 제입장을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결혼한지 만5년이 넘었고 지금 딸 둘에 올해 5월이면 출산이 준비되있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신경도 안쓰던 문제였는데 제입장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매우 급박합니다. 제아내는 유난히 아픈걸 못견뎌 합니다. 첫째애 낳고도 다시는 애못낳는다고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둘째애가 생겨서 두번째 출산을 했습니다. 둘째애 가져서부터 저보고 수술하라고 하는데 제가 은혜받고 주님앞에 사랑을 맹세한 처지에 아무래도 이게 죄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인데 우리맘데로 조절하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도 생각나고요.
그래서 제아내에게 저의 이런 신앙적 고민을 애기 했더니 아내왈 “목사님들도 다하는데 당신이 뭐라고 그래, 수술할때 아플까봐 그러지 나는 애낳는 것도 참았는데” 이러더라구요. 논쟁하지 않고(저는 절대 아내와 논쟁안하자 주의 입니다.) 그냥 속으로 만 고민중에 있었습니다.
한번은 소아과 가는 길에 비뇨기과가 있어서 수술할려고 했는데 미리 예약하고 평일날 오라고 그러드라구요, 직장에 매어 있는 처지에 어디 시간을 맘데로 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하나님께서 내 고민을 들으시고 섭리로 인도하시는 구나 했습니다.
그러던중 아내는 둘째애를 낳고 5년만에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헌데, 취직한지 한달만에 임신이 확인되서 직장을 그만두게 됐습니다.(저는 좀 맞았습니다.)
셋째애도 뱃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무럭무럭 자라고 5월이면 출산입니다.
얼마전에 평일에 쉬게되서 제아내의 강권으로 수술을 하게 됐는데 비뇨기과로 아내가 전화를 하는데 수술은 아무때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서 20만원이 든다는 군요 의료보험할때는 예약하고 어렵게 되던 것이 의료보험에서 제외되니까 가장 우선순위의 업무가 됐나 봅니다. 어쨌든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잠시 당황하더니 유야무야 넘어 가게 됐습니다.
이제 또 수술하라고 할텐데 과연 정관수술 해도 되는 건가요? 어떤 목사님은 목회에 전념하고자 아예 자식을 안가지려고 수술했다는 예기도 들었습니다. "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어보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정관 수술은 해도 된다고 하는가요? 아니면 하면 안 된다고 하는가요?
성경에서는 이에 관한 어떤 가르침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암시조차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계시하여 주시고 있는 것이지 이것 외에 인간이 사는 방편과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이런 저런 것에 대한 해답과 해설을 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정관 수술의 여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나요? 그것은 정관 수술 여부 앞에 놓여 있는 당사자에 의해서 입니다.
그런데 왜 정관 수술은 해도 되는지 아니면 하면 안 되는지를 알고 싶어합니까?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고 싶어서입니다. 즉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 답변을 통해서 안도의 숨을 쉬는 방편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옛날에는 자녀의 출산 여부를 고민하는 것이 현재에 비해서 현저히 미미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잉태하면 출산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출산은 곧 가문과 관련이 있었으며 출산은 그 집에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출산이 노동력과 연관되어서는 다산뿐만이 아니라 아들 선호 사상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서도 출산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는 일은 있어왔습니다. 소위 낙태인데 가령 원치 않는 잉태일 경우 독한 약재의 사용이라든지 등의 강제적 방법에 의해 태아를 죽여서 유산시키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자연적 피임법에 대한 지식을 갖고 조절을 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부인의 월경에 의한 날자 계산법에 의한 자연적 불임을 이용한다거나 또는 남편이 부인과의 관계시 질외 사정을 한다거나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출산과 이것의 다산을 원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서 출산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복으로 생각했지 이를 겪고 싶지 않은 고통으로 생각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출산이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으로 단순하고 계산적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 문제입니다. 소위 양육비가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나친 양육비로 인해서 기본 생활인 먹고 사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어지구요. 특히나 노동이 현대 산업화 된 세상에서는 전에는 그래도 가장만 노동해서도 자녀 양육이 어느 정도는 되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부부가 노동의 현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힘든 세상이 되었고 이제는 국민소득이 10,000불이니 20,000불이니 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부부가 노동의 현장에 다 뛰어들어도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출산이 가속화되어 갑니다.
인간의 이러한 저출산에는 첫째 피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적 피임법이 있을 것인데 인위적으로 피임할 수 있는 기술도 함께 개발되고 또한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가 한 자녀 낳기 운동'을 전개한 때부터는 정관 수술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는 예비군 훈련을 가면 그곳에서 바로 정관 수술을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에게는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주는 보상을 해 주면서요. 그런데 이제는 저출산에 의한 인구의 억제 정책을 수정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지방에서는 자녀의 출산을 장려하여서 아이를 낳으면 축하금(출산장려금)으로 000만원을 지원한다면서요?
님이여!,
정관 수술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콘돔을 사용하는 것에 의한 것이든, 그것도 아니면 소위 질외 사정에 의한 것이든 이 모두는 인간의 인위적인 기술적 방법에 의해 자녀의 출산을 억제하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님이 정관 수술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임태와 출산을 원치 않는다면 그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관 수술이든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정관 수술을 하여서 인위적으로 자녀를 갖는 것을 억제한다고 할지라도 또 자녀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복원 수술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간에 생명이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고 억제하고 그래서 조절해 보고자 하는 '죄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무슨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인간은 악하며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님의 질문을 보니 부인이 왜 그렇게 남편의 정관 수술을 원하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만일 남편의 정관 수술을 정 원하면, 이는 남편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부인 자신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난관 수술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하려 든다는 생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남편에게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녀를 더 이상 낳지 않겠다는 의도를 남편의 눈치 속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남편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것을 통해서 사실은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남편이 정관 수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에 그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남편에게 정관 수술을 원하는 것은 유난히 아픈 것을 참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에 대한 님의 설명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자녀를 출산하는 통증을 부인이 참지 못해서 그렇게 남편의 정관 수술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요즘 발달된 무통 출산법도 있을 것이고, 하다 못해 그야말로 복강 수술을 할 수도 있구요.
이제 좀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연적 방법에 의한 것이든 인위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든 그래서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거나 또는 자유롭게 풀거나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님의 의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님은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를. "둘째 애 가져서부터 저보고 수술하라고 하는데 제가 은혜 받고 주님 앞에 사랑을 맹세한 처지에 아무래도 이게 죄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인데 우리 맘대로 조절하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도 생각나고요............이제 또 수술하라고 할텐데 과연 정관수술 해도 되는 건가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려먼서 님은 한 목사님을 예로 들었습니다."어떤 목사님은 목회에 전념하고자 아예 자식을 안가지려고 수술했다는 예기도 들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사실 말이죠. 님은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정관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거나, 그리고는 그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성을 성경을 통해서 찾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까? 또는 최소한은 목회에 전념하고자 아예 자식을 갖지 않기 위해서 정관 수술을 한 목사님을 통해서라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까?
님은 주님 앞에 사랑을 맹세한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관 수술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대의 개념도 성립이 됩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님에게 더 이상의 자녀를 선물로 주고자 하는 계획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가지기를 바라고 그래서 기도를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쓴다면요? 그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요. 자녀를 갖거나 갖지 않거나 하는 마음 자체가 다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한 부부에게 자녀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른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와 그렇지 않고 지옥에 들어갈 자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자녀의 출산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녀를 갖는 족족 출산하고 그래서 다산하여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시대에는 몰아서 인구를 증가시킨 것이 아니며, 또한 오늘날에는 인구 억제 정책의 결과와 인간의 피임법의 발달로 인구 증가 속도가 크게 감소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인구가 인위적으로 적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서는 님이 정관 수술을 받든지 아니면 부인이 난관 수술을 받든지 아니면 이런 저런 피임법을 이용한다든지 해서 출산을 억제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님에게 주실 자녀의 선물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며 또한 전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님에게 주실 자녀의 선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녀를 선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님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변경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가지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으실 하나님 나라의 충만 수를 이 세상 끝 날까지 채워 가실 것이기 때문이며, 그래서야 비로소 세상 끝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은 자녀를 선물하시는 일을 계속하시며 그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의 언약 안에 두시는 일을 해 나가십니다. 그 일은 님이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해서 부인의 임신을 피한다고 해서 보류되거나 또는 정관 수술을 한다고 해서 중단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언급하며 강조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수를 충만 수에 이를 때까지 채워가십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정관 수술 여부(다른 피임법도 마찬가지입니다)는 하나님의 선물을 내가 받고 받지 않고 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거나 하는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여기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을 자녀를 말하는 것입니다)는 자녀를 출산하는 사람의 생산법에 의해서 공식적(公式的)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집니다. 이는 남녀의 결혼에 의한 자녀의 출산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말이죠. 자녀의 출산은 인간의 창조에서 나타내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결혼한 부부에게 행해지고 있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창조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바른 생각이 아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된다는 것으로 몰아가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 처지대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혹 독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독신자와 동일한 형편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님이 예로 든 목사의 경우처럼 결혼하고서도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독신자나 아이를 아예 갖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히는데 그렇다면 그런 그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주어지는 것이 제약을 받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는 정관 수술을 받는 사람보다 더 악한 죄를 짓는 것입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종말론적 삶의 관점으로서 결혼을 한 자이든 또는 독신이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은 자이든 또는 자녀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한 자이든지간에 그 어떤 형편 속에서도 이 세상은 곧 지나감을 알고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그러한 데에 자기 시간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편으로서의 위치가 있고 그 역할이 있으며 아내로서의 위치가 있고 그 역할이 있는 것이기에 여기에 하나된 몸의 성격을 발휘해야 합니다.
자녀의 출산이 정관 수술이라든지 여타의 방법에 의해서 제약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다음의 사실에서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부부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닌 방법에 의해서도 자녀를 얻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옛날에나 은밀히 행했던 대리모가 직업화되고 있다면서요? 아직 우리 나라에 흔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부터 분명히 있어 온 일입니다. 그러한 것이 점차 돈을 버는 수단화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요 이제는 유전자의 기술에 의한 복제 인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그렇게 복제되어서 태어난 인간에게 영혼이 있겠느냐 하는 여부로 시비가 분분하기도 합니다. 이는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죄의 무서운 힘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이렇게 부부 관계를 떠나서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 내고 또한 그 모든 상황에서도 창세 전에 작정하신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문제는 님의 마음과 그 결정 여부이며, 부인의 마음과 그 결정 여부입니다. 두 분다 믿는 자입니다. 님의 말대로 "은혜 받고 주님 앞에 사랑을 맹세한 사이"라면 이는 님에 대한 부인의 경우도 동일할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부인의 정관 수술 요구를 거절해도 부인이 진정 원한다면 부인은 남편이 하지 않는 정관 수술을 남편 몰래 자신의 난관 수술을 통해서라도 관철시켜 나갈 것입니다. 또한 부인이 그렇게 나가지는 않는데도 남편 스스로가 이런 저런 걱정과 염려로 인해서 마음 한편에서 정관 수술에 대한 마음의 여지가 있다면 이를 주님의 사랑이라든가 하나님의 선물 등을 언급하며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워하는 듯한 표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님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자신을 합리화시켜 나가고 정당성을 주장하여 나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써 죄스러움이 감추어질까요? 그리고 죄라는 것이 발휘되지 않을까요?
정관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부인과 함께 님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나의 이러한 말은 정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하는 권면이거나 또는 정관 수술을 하여도 좋다고 하는 옹호의 말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정관 수술을 하면 죄스러움을 갖는데 만일 정관 수술을 하지 않아 셋째 뒤에 넷째 다섯째 아이도 얻고 그래서 부인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할지라도 님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맡긴 자녀라고 하며 좋아하고 기뻐하였는데 그 자녀를 양육하면서 혹 고생하고 고통을 겪자 만일 이로 인해서 부부 싸움을 하고 또한 좋지 못한 온갖 행태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요?
내가 하는 말의 진정한 의도는 님이 어떻게 처신할지라도 하나님이 가지신 영원한 작정은 조금도 방해받거나 그래서 훼손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님이 원하는 대로 하시라는 것입니다. 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에 몇 명의 자녀를 선물해 주실 것이며 또한 자신은 몇 명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냐(받아 낼 수 있을 것이냐) 하는데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몇 명의 자녀를 주셨든지간에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녀를 맡은 부모로서 자녀를 하나님의 언약 아래 두고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는데 관심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양육하고 있는 첫째와 둘째는 님과 부인에게서 얼마나 큰 기쁨이요 면류관인지요!. 또한 이제 몇 달 후이면 태어날 셋째는 또한 얼마나 큰 기쁨이요 면류관인지요!.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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