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박 영 보
뒷마당에 앉아 잡초를 뽑고 있으면서도 며칠 전 녀석의 그 한마디가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걸 보면 작으나마 나에게도 충격이었던가 보다. 왜 이리도 미안한 생각이 들까.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토록이나 매정했던 이 부모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오죽 했으면 만 삼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이 서른이 넘은지도 여러해가 됐고 결혼을 하여 큰 손자가 만 세살이 된 지금이다. 과묵한 성격인 녀석은 자신의 속내를 바로바로 내놓지 않는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녀석의 그때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녀석의 이런 성격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내가 퇴근을 하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완이 한테 왜 이렇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 왼종일 완이 생각이 드는 거야.” 란다. 나는 “나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였다.
며칠 전 집수리를 위해 집을 비워두어야 할 일이 있었다. 부부가 녀석의 집에 가서 이틀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는 그 집에서 출근을 해야 했고 아들 부부도 일을 하기 때문에 그날 낮 시간에는 내가 손자를 봐 주기로 했다. 평소 어린이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나 혼자 있기 보다는 녀석을 데리고 공원이나 학교 놀이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녀석에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공원에는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많이 와 있었다. 엄마와 함께 와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 틀에도 오르내리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손을 뿌리치고 안으로 뛰어들어 이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린다. 여러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나온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녀석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계속하여 미끄럼틀에 오르내리던 녀석이 갑자기 슬라이드 계단 밑에 털석 주저 않는다. 무언가를 뚤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모래 바닥에는 붉은 색과 파란색으로 된 플라스틱으로 된 무언가가 있었다. 녀석은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그 물건이 있는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손을 대지는 않는다. 대신 손에 한 웅큼식의 모래를 집어 그 물건쪽으로 던지기를 반복한다. 딴에는 자기 물건이 아니니까 직접 만지거나 가지고 놀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나마 즐기려는 것이였으리라.
녀석에게 다가갔다.
“니키, 이게 뭐야” 라니까 “스파이더매앤~.”이란다. “니키도 스파이더 맨 갖고 싶어?”라 재차 물으니 “야아~” 란다. “그래, 할아버지가 니키한테도 커다란 스파이더맨 하나 사줄 께.” 라니 오케이라며 씨이 웃는다. 얼마나 그게 갖고 싶었을까. 흐음, 녀석의 생일 선물로 무엇을 해 줄까 생각을 해오던 나에게 해답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며칠 후 일요일이면 녀석의 만 세살이 되는 생일이다.
여러명의 또래 친구들과 부모들이 모인 생일파티가 끝내고 집에 와서 각종 선물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선물은 스파이더 맨과 스파이더 맨 캐릭터가 있는 퍼즐 북이었고 아내가 고른 것은 신발과 몇가지 옷들이었다. 다른 선물들을 풀면서도 “와우~, 와우~”를 소리쳤지만 그중에서 스파이더맨이 요샛말로 짱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스파이더맨에 취해있는 니키의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던 아들녀석이 한마디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스파이더맨이었는데 엄마 아빠는 끝내 사주지 않았다.”며 웃는다. 우리 부부는 그때의 그런 기억마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에 이민을 온지 삼년 이내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이렇게 미안한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일까. 아마 내 탓이었을것 같다. 아내는 아이들의 웬만한 요구에는 나를 속이면서까지 응해주는 편이었지만 나는 ‘교육’이라는 명분을 세워가며 한번 ‘아니다’면 끝까지 버티는 성격이었다.
얼마나 그게 갖고 싶었을까. 녀석의 아들 니키가 놀이터에서 발견한 스파이더맨을 만져보기라도 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일주일만 있으면 아들 녀석의 서른 일곱번째 생일이다. 또 하나의 조그만 스파이더맨을 사야겠다. 서른 일곱살짜리 베이비의 생일 선물로. 결국 이것도 어린 니키에게 가게 되겠지만 삼십여년전 아무 생각도 없이 어린 가슴에 야속함과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부모로서 사죄의 의미이기도 하고. 한바탕 즐거운 웃음으로 맞게될 녀석의 서른 일곱번째 생일이 될 것 같다.
첫댓글 그날은 모두가 행복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삼대가 함께한 자리는 행복했습니다. 생각없이 지나쳐 버린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삼십이 훨씬 지난 두 아들이 오히려 도움을 주려드는 모습들이 오히려 거북하게 느껴집니다만 속으로는 그리 싫지가 않는 걸 보면 속물근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고, 자식이 부모가 되었어도, 부모의 눈에는 언제까지나 어른이 된 자식들을 바라 보는 마음은 애뜻함이 가득 하다는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스파이더맨'을 선물 받은 '니키'의 신나는 얼굴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또한 서른 일곱의 아들도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받고, 웃음 만큼이나 가슴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생각하니 뭉클합니다.
생각했던대로 조그만 크기의 스파이더맨 하나를 샀습니다. 위의 글과 함께 포장된 작은 상자를 열어보며 크게 웃어제끼는 큰 아들. 한국어가 서툰 그들 부부를 위해 글의 내용을 다시 영어로 설명을 해줘야 했지만 온 집안엔 웃음 꽃으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이 스파이더맨 하나가 자기 몫으로 여기고 있는 '니키' 녀석의 환호가 집안을 뒤 흔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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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글입니다.
서른 일곱 어른이 된 아들에게 어린 시절 갖고 싶어하던 스파이더맨을 사 줄 생각을 한 아버지가 순수하기도 하고요. 아들이 크게 웃었다니 서운한 여운이 싹 가셨겠네요.^^
그날 서른 네살의 작은 아들에게 "너는 아쉽거나 서운했던 것이 없었느냐"니까 "셀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여 "야, 한 가지만 이야기 해 줘야 뒤 늦게 나마 해 줄수 있지 않겠느냐"니까 "됐어~" 라는 말에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한 아버지와 아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