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인줄 알고 미리 가서 한시간만 대구 구경을 하기로 하고 7시 못되어 집을 나섰다.
7시 20분 차를 타고 3시간 40분 소요의 대구행은 11시가 못되어 닿는다. 수첩을 꺼내 보니 2시에 개막이다. 3시간이 남아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동대구역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덥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가야할까? 출장지인 대구광역시 교육청은 30분이면 가겠고 점심도 30분이면 될테니 두 시간은 대구 시내 관광을 해 보자. 말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이 외국을 여행하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가?
내가 대구를 와 본 것은 작년이던가 금년 초던가? 인터불고 호텔에서의 교육과정 우수사례 발표회 때 와서, 아침에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있는 망우 공원과 영남제일루가 서 있는 강변을 달린 기억,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전 사촌 복남이 누님이 형제계 유사할 때 어느 동네인가를 왔다 갔었다. 아, 또 있다. 2003년 전직을 앞두고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식에 조두정 교육장과 박모 교육장 부부와 왔다가 밤에 경주로 간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많다.
일단 반월당으로 가기로 한다. 환승역이 있는 그 곳에 내려 왔다갔다 하다가 주변의 지도를 본다. 잠깐 이상화 고택이 보이고, 관덕정 순교지도 보이고 약령시도 보인다. 중구라, 그럼 여기가 가운데겠군. 관덕정, 유학하는 선비들이나 관리들이 덕을 기른다며 활을 쏘는 곳에서 순교를 했다? 중학교 때인가 읽은(줄거리는 기억에 없는) 천주교 순교자들의 이야기 ‘구원의 정화’를 떠 올리며 현대식 고층 빌딩 앞을 걷는다. 아파트인가 고층 건물 뒤에 숨어있는 성당은 긴 굴뚝 앞에 갓 쓴 이의 동상이 서 있다. 사진 촬영 금지다. 그 앞에 구멍 뚫린 돌이 있는데 사람 죽일 때 쓰는 형구란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녀님과 지긋한 아줌마가 안쪽 작은 창 뒤에서 한번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애기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명작가의 작품이라는데 사진을 못 찍는다. 2층 3층보며 사람 벌주는 죽이는 기구들을 본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행적과 말을 몇 개 읽어본다. 배교와 순교를 가르는 그들의 ‘용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3층에서 신발을 벗고 주변을 본다. 세상은 변하는가? 어떻게? 이젠 돈으로.
나와서 도로를 가로질러 약령시 안내판을 보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현대백화점을 짓는다고 높게 울타리를 막은 탓인지 골목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날씨 탓이겠지. 몇 백년 지켜 온 전통도 이젠 힘을 잃고 새로운 상품들에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당연한 일일까?
약령시 골목은 사람이 없다. 한약을 파는 가게는 많은데 차만 서 있고 가끔 걸음을 방해하는 차가 지난다. 약령시문화전시관 옆에 푸른 담쟁이덩굴을 뒤집어 쓴 교회당이 서 있다. 대구제일교회인데 유형문화재란다. 교회를 찍어보고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1층 앞엔 ‘약’이라고 한자로 쓰인 커다란 약탕기가 가로막고 있어 못들어 가고 엘리베이터로 3층으로 가게 한다. 넓고 느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시원하다. 왼쪽의 모형 앞의 모니터를 한국어를 눌러 지켜보고 있는데, 마당에서 다른 이들과 있던 여성이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한다. 웃으며 광주에서 왔다고 하니, 내 행색이 일본인처럼 보였댄다. 방학 숙제로 체험학습 온 가족 외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분이 다가 와 설명을 해 준다. 서울 가는 영남대로며, 성안과 성밖, 약령시와 섬유 시장이 발달한 까닭, 일제의 와해 공작, 국채보상 운동, 달성서씨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인삼 건빵과 초콜릿까지 사고 나오며 이상화 고택을 물으니 따라 나온다. 신식 아파트 뒷켠에 기와집 몇 채가 있다. 바닥에 깔린 돌길은 옛 한양길의 흔적도 있고, 성벽의 흔적인 듯하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잠깐 읽는다. 80년 대 노래 불렀던 것이 새삼 생각난다. 그 분이 해설을 해 주신다. 7살에 부모를 여의고 여걸 홀어머니 아래서 4형제가 모두 뛰어난 일을 해서 ‘용봉인학’이라 일컫는댄다. 방 앞에 한자로 써져 있고 안에도 설명이 붙어 있다. 마당엔 맥문동 위에 몇 그루의 석류나무가 서 있고, 담 아래 세 개의 하얀 돌 시비는 조화롭지 않은 느낌이다. 그 분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신다. 바로 앞에 서상돈의 가옥이 있다. 일본이 대구의 민족자본을 와해시키고자 한 것은 얼마나 성공했을까? 오늘날 새로운 고층 빌딩 속에 버티고 있는 그 분들의 유지가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잠깐 생각해 본다.
나오며 대구에서는 뭘 먹어야 하느냐고 하니 막창이란다. 그건 저녁에 술안주 아니냐며 다른 것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사양하시는 걸 같이 가자고 하여 안내를 강청하니 골목을 걸어 칼국수집으로 들어간다. 상마다 오가리에 파와 고추를 버무린 장양념그릇이 놓여있고, 군데군데 사람들이 뜨거운 칼국수를 먹고 있다. 고춧가루가 뭉쳐있는 겉절이 배추김치를 맵게 먹는데, 뜨거운 국물에 입이 얼얼해도 별미다. 경영학을 공부하였으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공부하다가 문화해설사가 된지 1년이 되었다는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시 전시관에 올라가 커피를 얻어마시고 시교육청 길을 안내받아 뜨거운 거리로 나와 지하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