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맛
작년 말부터 한번 만나자고 했던 것이 올 3월 1일에야 그 모임이 성사되었다.
각자 자기 하는 일에 바쁘고 주말에도 마누라 눈치도 봐야 하는지 주말이 아닌 3월 1일 화요일에 만나게 된 것이다.
요티 (요트인)들이 대체로 개성이 강하고 자기 색깔이 두드러져 여럿이 어울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단촐한 작은 모임이지만 참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는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봄을 알리는 보슬비가 대지를 적시며 아직 차가운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어 조금 걱정되었다.
저녁 늦게 하늘과 바다님과 근무를 마치고 대천에서 저녁 7시가 지나서야 출발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 휴게소도 들리면서 느긋하게 가려고 했는데 부안쯤 갔을 때 벌써 대전팀은 도착하여 저녁 먹고 보슬비를 맞으며 마리나 부근에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빨리 가야겠기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휴게소도 들리지 않고 갔더니 저녁 9시20분이 넘었다.
목포에 왔으니 남도의 그 유명한 흑산도 홍어 맛을 봐야 되지 않는가?
목포에서 전통이 있고 유명하다는 홍어 집을 찾아가니 가게 셔터가 내려지고 조그만 입구를 들여다보니 불이 켜져 들어갔다.
알고 보니 영업은 저녁 9시까지이고 예약도 하지 않고 갔으나 하얀 스카프 같은 모자를 쓴 마나님이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방으로 들어가니 세련되고 말끔하지는 않지만 시골의 사랑방 같은 그런 방이었다.
사방 벽에는 여기 들렀던 사람들의 사연들로 방도배를 했으며 심지어 둥그런 형광등에도 어떤 사람의 사연이 씌여있었다.
고향이 남도라 어렸을 적부터 먹어본 적이 있지만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곱게 나이가 드신 주인은 젊었을 때 남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
이 업을 한지도 벌써 30년이 가까워 졌다며 4~5년 전에 좀 쉬었는데 건강이 더 나빠져 다시 이 일을 하면서 건강도 되찾고 삶에 더 활역이 있다고 한다.
요즘은 뭐든지 수입산이 넘쳐나서 공산품들은 거의 중국산, 수산물은 칠레산, 쇠고기는 미국, 호주산 등 모든 것이 경제 원리에 의해 끌려가다보니 국내 농업이나 어업 같은 1차 산업이나 공산품을 생산하는 2차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까 걱정이다.
유명한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잔이 3~4Kg 의 쌀값이니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어떻든 홍어도 값싼 수입산(칠레산)이 판을 치다보니 흑산도 홍어는 가격경쟁력에서 떨어지지만 이 주인은 맛으로 승부한다며 오랜 노하우와 홍어 고유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다고 하였다.
워낙 귀하다 보니 가격이 비싸 두(일인)당 최소 3~4만원이었지만 영업시간이 끝났는데도 홍어 맛을 맛보며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를 주인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식당에서도 느끼지 못한 정감있는 경험이었다.
가끔 형제간에 서울에서 모임이 있을 때 작은 아버지께서 홍어를 준비해 와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돼지머리고기처럼 눌러서 깍두기 모양(편육)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집은 약간 삭혀 회처럼 직접 떠서 상에 올라왔다.
회를 먹을 때 와사비와 간장에 찍어 먹을 때 코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홍어의 특유의 맛을 맛보는 노하우까지 주인 마나님은 알려주었다.
특히 나는 미식가 체질이 아니고 아무거나 먹는 잡식성 체질이어서 그 오묘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지만 나중에 나온 홍어탕이 별미였다.
홍어탕은 먹어본 적이 없어 처음이었으니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의 흐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면서 홍어 맛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아주머니의 인생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저녁 늦게까지 골방에서 홍어를 먹으면서 주인마나님의 정감 있는 이야기는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저녁 늦게 평화공원에 있는 세련되고 따뜻한 모텔을 찾아 온돌방에서 샤워하니 피곤했던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와서 그런지 바람이 강하며 땅바닥은 젖어있었으나 다행히 비는 멈췄다. 예정대로 마리나로 가서 찬바람을 맞으며 요트의 짚세일을 펼치니 제법 속도도 5노트 이상 나면서 선체가 기울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생긴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수록 요트는 기울고 조종하는 요티는 긴장감이 올라간다.
긴장의 정도는 경험의 다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괜히 다른 걱정이 생긴다.
혹시 고장 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출항 전에 반드시 배의 전반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출발하라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 나중에 특히 기상조건이 좋지 않을 때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계류장에 접근할 때 부주의로 제대로 계류 줄을 점검치 않고 성급하게 당기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물속으로 풍덩 빠진 것이다.
만약 뾰쪽한 물체 위로 넘어졌다면 큰 부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특히 뒤통수가 다쳤다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황급히 헌 옷을 갈아입고 체온 유지를 위해 비옷까지 걸치고 샤인 님이 소개한 한식집으로 갔다.
연안여객선 터미널 뒤편 시장 통에 있는 오래된 건물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간판은 마치 구멍가게처럼 생겼으나 안쪽의 실내는 비교적 말끔하고 넓었다.
역시 이름 있는 집이라 그런지 음식 종류도 여러 가지고 푸짐한 상차림이었다.
식사비도 비싸지 않고 부담 없이 남도의 한식을 맛볼 수 있고 여러 종류의 푸짐한 음식을 보기 마음이 넉넉하고 배부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단체로 갔지만 혼자서 와서 식사를 한 분들도 있어 아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목포에 와서 시장기가 들면 꼭 다시 한 번 들리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애들을 데리고 와서 푸짐하고 맛있게 음미하고 싶다.
첫댓글 역시 작가님 글이 현장감있네요. ㅎ
물에 빠진 사진이 없어 서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