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김지희
동지의 서늘한 석양, 날숨으로 잦아든다. 세상이 꽁꽁 얼어 거울 같은 강 위로 수천 마리 까마귀가 군무를 춘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저리 새까맣게 떼로 몰려다니는데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마치 오랫동안 맞춘 안무처럼 날갯짓한다.
새들도 둥지를 찾는 어스름한 시간이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해가 저물어 간다.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 무렵, 들판에 땅거미가 내려앉아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안갯속같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내 삶도 어느새 겨울의 초입에 들어 숨을 고르고 있다. 내가 마중한 적도 배웅한 적도 없는데 작열하는 태양과 폭풍우를 몰고 왔다, 가을 햇살 들어 막 영글어지기 무섭게 멀어져 갔다. 그런가 하면 속절없는 시간은 언제부터 석양빛 길게 누운 서쪽 산언저리에 무심히 데려다 놓았다.
겨울 해는 여느 때와 달리 바쁘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동장군의 칼날을 피해 어영부영하다 보면 땅거미가 내려온다. 이제껏 뒤돌아볼 틈 없이 낮과 밤을 지우며 달려와 정년의 고개를 넘어온 지금, 별 탈 없이 심심하게 사는 게 내 바람이었다. 새벽마다 보채는 알람 대신 눈 떠지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늘어진 음반처럼 사는 거 말이다.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에 이 정도 사치는 선물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스멀거리며 고이는 불안은 백세시대를 눈앞에 두고 청년도 노인도 아닌 지금, 아직은 풀어야 할 삶의 과제가 남아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글 나부랭이를 쓴답시고 책상머리에 앉아 좌판을 두드린 지 십여 년이 지났다. 눈곱만한 재주와 얕은 지식으로 머리 싸매고 원고 마감을 채우곤 했다. 그나마도 올해는 애꿎은 날씨를 핑계 삼아 서너 달째 한 편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그 사이 계절은 노란 물 빠진 가을을 지나 눈 감고 따라와 진눈깨비 날리는 겨울이다. 마음 다잡아 보려 책상 앞에 앉았지만 한번 떠난 마음이 쉽사리 돌아올 리 만무하다. 고리에 걸린 잡생각들이 머릿속에 똬리를 단단히 틀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시시한 일상의 루틴이 변화한 삶의 조건에 맞춰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나이 드는 법이라고 역설한다. 황혼도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하며 새벽을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어쩌다 보니 생의 꼭대기까지 올라왔고 이제 다시 내려갈 수는 없다.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 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한다.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라 생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느슨해진 내 삶에 올된 지침이 된다.
이른 아침, 마당에 새들이 찾아와 게으른 나를 깨운다. 밤사이 산수유 열매는 살얼음이 되어 더 투명하게 빨갛다. 새들의 조찬 시간이다. 저들과 눈인사나 하고 싶어 창가에 앉았는데 모처럼 시장기가 돈다. 아침나절 누웠다 일어나 다시 소파에 기대 다짐할 필요도 없는 생각들로 보내다 보면 아침은 거르기 다반사다. 매일 아침 찾아와 조잘거리는 저 새들처럼 나도 지금부터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봐야겠다.
장날에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간다는 옛말이 있다. 친구의 권유로 문화재 해설 양성자 과정을 수강 신청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두 시간씩 4개월 과정이었다. 대게는 40대에서 60대이고 7~80대도 있었다. 놀라웠던 건 90대도 한 분 있었다. 그분은 누구보다 일찍 출석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의 내용을 열심히 옮겨 적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벌써 배움은 뒷전으로 듣는 둥 마는 둥 어설프게 수업일수만 때우는 내가 더없이 못나 보였다. 노신사의 깨어있는 생각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끝까지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건네는 일침 같았다.
서산에 간신히 걸려 불그스름해진 의욕과 세상 만물이 다 가진, 그 이름 하나마저 희미해져 간다. 밤새워 영화를 보고 고전을 읽으며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에너지 충만했던 때가 언제 적이었는지. 퇴직과 함께 명함을 반납했다. 그 후로 십여 년 넘게 누구의 엄마로 불리어온 내게 요즘은 가끔 사람들이 명함을 물어보곤 한다. 적지 않은 나이와 이름 석 자 말고는 새겨넣을 것도 하나 없는데 … 더 늦기 전에 명함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할까.
화훼기능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학원에 등록해 매주 하루에 6시간씩 화훼이론과 실기 습득을 위한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론과 실기시험에 합격해야 하기에 만만치 않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랫동안 전업주부로만 지냈던 터라 하루 꼬박 수강하는 게 처음 몇 주는 버거웠다. 학원 문을 나설 때면 짧은 겨울 해도 맥없이 지쳐 뉘엿뉘엿해져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잔액 한 푼 없는 통장처럼 떨떠름한 생각들로 보내던 날보다, 해를 문 해바라기처럼 생기가 돈다.
‘섬마섬마’가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에게만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경력단절과 함께 무기력해진 내게는 다시 걸을 수 있는 응원이자 주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설거지 자원봉사도 하기로 했다. 이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찾아보고 손 놓고 있던 고전 읽기와 글쓰기도 다시 해볼 작정이다.
붉은 띠를 두른 저녁 하늘, 겨울바람이 뒤란을 쓰다듬고 슬픈 방언을 중얼거려도 아직은 다 스러지지 않은 시간. 내 삶에 편지를 쓴다. 시시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포기하라고.
-수필과 비평 2026 -2월, 292호
-수필과 비평 2026 -3월, 293호 다시 읽는 문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