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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상담심리학과 박사과정 박선영 님께서
<또 다시 부르는 죄인들의 희망노래-닫힌 문>이라는 글을 읽고 보내오신 메일글을
본인의 허락을 얻지 않고 올립니다.
선생님......
저는...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90학번이었어요.
한참 데모를 많이 하던 80년대에 비하면 훨씬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있던 90년대 초반 학번이고,
전대협 회장이 배출된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문제점보다는 본능적으로, 좋은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터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비판 따위는 내 영역이 아닌 세상에서 살았거든요.
대학 들어오면 미팅이나 하고, 예쁘게 꾸미고 놀러 다니는 게 다인 줄 알았었는데,
저는 단 한번도 문제라고 느껴보거나, 불평등하다고 느껴본 적 없는 부분에 대해 토로하고,
다들 데모에 앞장 서서 나가느라 수업이 제대로 안될 지경이었으니
그 무섭고, 낯선 분위기란....
대학 다니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했었다는 후회에 쭈욱 빠져 있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변혁이라거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 등등....
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관심 갖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답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참 싫어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는 집회를 싫어하고,
통기타 가수들 별로 안 좋아하고,
체질적으로 술 자체를 못 마시고,
담배 싫어하는...
마감에 쫓기고 있다고 하셨던 그 원고....맞지요, 선생님.
선생님 글을 기다리고 계실 많은 분들께 선보이기도 전에
[사회 의식]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기 힘든 사람에게
먼저 보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대학교 때의 상황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선생님과 저의 차이를 확연히 깨달았어요.
단순히 삶의 깊이 차이만이 아닌 그 이상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답니다.
겉으로는 비슷한 류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은 사회에 대한 현실인식과 더불어,
본인이 바라는 바, 추구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에
초월하고 살 수 있으신 것 같아요.
반명,
저는 그런 현실 사회위 부조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살아오던 대로, 제 수준에 맞게 편안(안일^^)하게 살고 있는거구요.
ㅋㅋㅋ..
분명히 다른 삶이잖아요, 그쵸...
선생님은 순수하게 사신다면,
저는 순진하게 사는.. 뭐 이런 거? (한 끝차이가 엄청 나잖아요..하하하~)
그냥..
뭐..
그런 느낌이 확 들어서요...
이렇게 귀한 글 먼저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부분에서 허를 찌를듯이 깜짝 선물을 하시는 바람에
더 깊은 늪에 빠지네요...하하하~
제가 (잘못?)생각해오던 아니면, 장말로 (편협하게?) 인식했던 어떤 한 부분이
선생님의 미발표 원고 덕에 삐거덕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ㅡ
여튼...
제 마음 속에서 왜곡되게 인식했던 부분이 흔들~ 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 보면,
배움은 <학교>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시장통 부대끼는 사람들 틈바구니...
그 어디라도 배움의 공간이 되고.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을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경험하게 되네요...
카톡 한 줄, 느낌표 하나에서조차도 자꾸만 뭔가가 전달되어 올려고 발버듕치는 것 같아요.,..
흠~~~
이렇게 감동을 퍼다가 왕창 부으시면 곤란한데요..... (감동의 바다 허우적 허우적...^^;)
감사합니다~~!!!
-박선영 올림-
From : "로제"<kimrogerio@hanmail.net>
To : "박선영(인하대 박사과정 대표)"<keymind@chol.com>
CC :
Date : Tue, 15 Oct 2013 23:3:10 +0900 (KST), Tue, 15 Oct 2013 23:03:07 +0900 (KST)
Subject : 또 다시 부르는 죄인들의 희망노래 ‘닫힌 문’
* 격월간 <공동선> 11~12월호에 실릴 글이어서 아직 공개되지 않을 것을 미리 보내 드리옵니다. 또 다시 부르는 죄인들의 희망노래‘닫힌 문’
프롤로그 문을 두드립니다.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되새기며 오늘이 백 년 째입니다. (이상규 시 / 김정식 곡 「닫힌 문」일부)
열린 문은 언젠가는 닫히게 되어있으며, 닫힌 문은 반드시 열리게 되어있다. 문의 속성이므로 필연적이다. 전주에는 6.25때 헤어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60년 동안 거처를 옮기지 않고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고, 독일 베를린에서는 동서로 갈라지면서 헤어진 연인이 38년을 기다려 만났다. 그러므로 백년을 기다리면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의 가슴에는 반드시 오고야 말, 아니 꼭 와야 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 터인데, 그 희망이 올 듯 올 듯 오지 않는다면...
노래에 관하여 여자는 끝내 미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자에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차례로 잃고 만 것입니다. 아직 젊은 시절, 여자의 남편은 깊은 숲에서 나무를 하다가 홀로 죽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여자는 큰 소리로 마을이 떠나가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귀엽게 자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므로 이내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아들이 고기잡이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여자는 아들을 삼킨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울음도 울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다만 돌멩이처럼 바닷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들 하나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아아, 그런데 이제 마지막 남은 아들까지 여자를 떠나 버린 것입니다. 이름도 모를 병으로 사흘 밤낮 펄펄 끓다가 숨이 진 아들의 시체를 놓고, 여자는 마침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한없이 가늘고 부드러운 명주실 같은 노래였습니다. 여자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한데 녹아 길고 긴 노래의 실타래가 되어 입술 사이로 풀려 나오는 듯 했습니다. 여자는 지금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들어가 보지 못 한 사람은 모르지 슬픔의 문을 들어가 보지 못 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눈물 뒤에 침묵 뒤에 노래 뒤에 다시 영원한 아픔의 노래 (이현주 시 / 김정식 곡 「슬픔의 문」)
여자는 지금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여자의 노래들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여자의 슬픔을 빼앗을 수가 없기에. (이현주의 작은 동화 모음 『미운 돌멩이』중 「슬픔의 문」)
이현주 목사께 왜 저렇게 슬픈 이야기를 쓰셨는지 물었더니 히브리 철학서에 실린 한 구절을 보고 떠올랐다고 말씀해 주셨다. ‘조금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그 보다 더 슬프면 침묵하며, 극한의 슬픔이 오면 노래를 부른다.’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지만 극한의 슬픔이 와도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염원할 때도, 절망의 끝에서도 노래가 나온다.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림 ‘새만금 갯벌 살리기’라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문규현 신부와 형 아우가 되었다. 서울, 광주, 전주, 목포를 비롯하여 무모한 간척사업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계화도 까지 들어가 노래공연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갯벌을 살리지 못한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 ‘부안 핵 폐기장 건설 반대’ 라는 새로운 운동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부안 읍내 한 가운데 가설무대를 마련해 놓고 노래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핵 폐기장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행사진행을 방해하기 위한 조처였지만, 공연을 멈출 수 없기에 천신만고 끝에 발전기를 공수해 와서 행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한참 노래하고 있는데 무대 스크린으로 쳐 놓은 천막을 찢고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순간 위험이 감지되었지만 멈출 수 없어 예정된 노래들을 부르고 있을 때, 바람처럼 무대로 뛰어들어 나를 감싸 안은 사람이 있었다. 문규현 형님이다. “어이 동생~. 이러다 돌에 맞아 죽겄네. 그만 허고 내려가세~” 준비된 차에 태워 부안 성당 사제관 당신의 방에 나를 쉬게 해 놓고는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그날 밤 형님은 고속도로 점거 시위를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지병을 안고 공연을 강행하다 저지된 나는 사제관 방에 누워 ‘희망 없는 세상에서 말라 죽어가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잠들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못 다 부른 노래를 가만히 혼자 불렀다. 자칫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거나 생명이 오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나를 보호해준 형님을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무대에 올라 나를 감싸 안은 것은 날아오는 돌멩이를 자신이 맞겠다는 것인데, 그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오지 않는 희망을 끝까지 붙들고 기다리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가는 비 꽃잎에 삽삽이 내리고 강 건너 마을은 비안개로 흐리다 찔레꽃 찬 잎은 발등에 지는데 그리운 얼굴은 어느 마을에 들었는가 젖은 몸 그리움에 다시 젖는 강기슭 (도종환 시 / 김정식 곡 「세우(細雨)」전문)
장다리꽃밭에 서서 재 너머를 바라봅니다. 자갈밭에 앉아서 강 건너 빈 배를 바라봅니다. 올해도 그리운 사람 아니 오는 보리 팰 무렵 어쩌면 영영 못 만날 사람을 그리다가 옵니다. (도종환 시 / 김정식 곡 「보리 팰 무렵」전문)
생태보전과 인권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사회운동에 노래로 동참하게 된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꼭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지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 날 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싸움이지만 그래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내게 늘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지병악화와 무리한 사회운동으로 지친 내가 오며가며 쉬었던 곳은 대부분 절집이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성당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기도 하지만 생태보전이라는 사회운동에 동참했던 스님들과의 교분 때문이기도 했다.
12년 전 미국 쌍둥이빌딩이 테러로 무너졌을 때, 지구촌 전체가 뒤흔들렸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전에 가족과 함께 그 앞을 지나쳤던 나는 텔레비전에서 무한반복으로 보여주는 테러 장면을 대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했다. 그 즈음 지방공연(새만금갯벌 살리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범능 스님이 주지로 있었던 대전 대진정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대학 후배이며 노래하는 도반이어서 친형제처럼 편한 사이였다. 고요한 절집에 누워 쉬려는데 때 아닌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자면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스님을 깨워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어 차라리 잠을 포기했다. 볼륨을 낮춘 채 텔레비전을 켜 놓았는데 어디로 채널을 돌려도 다 테러동영상 뿐이었다. 마침 낮에 누군가 내게 선물했던 시집이 생각나서 펼쳐보다가 만난 시가 도종환의 ‘세우(細雨)’와 ‘보리 팰 무렵’이다. 오지 않을 희망을 기다리는 이 두 노래는 쌍둥이빌딩 테러사건 때문에 생겨난 쌍둥이 노래이다.
희망을 가불(假拂)함 긴 어둠을 뚫고 새벽 닭 울음소리 들리면 안개 낀 강물 따라 꽃등 들고 가는 흰 옷 입은 행렬 보았네. 때론 흐르는 물이 막히우고, 때론 흐르는 길이 멀다 해도 아아~ 흐르는 일이야 우리 행복하지 않나 아아 ~ 우리의 땅 되살리고 그 길 따라 님 오시면 꽃등 들어 불 밝히리라 님 오실 길 불 밝히리 꽃등 들어 님 오시면. (김용택 시 / 정세현 곡 「꽃등 들어 님 오시면」전문)
‘광주출전가’라는 민중노래로 잘 알려진 범능 스님(민중가수로 활약할 당시 예명 정세현, 본명 문성인)은 ‘통일의 나라로 가자’ ‘내 님’ ‘먼 산’ 등 국악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지난 6월 12일 갑작스럽게 준비 없는 타계를 맞았지만 서편제 가락을 이어받아 노래를 쓴 남도 후배 노래꾼으로서 ‘국악가요’와 ‘절집노래’에 한 생을 바친 셈이다. 그의 노래 중 가장 뛰어난 노래로 내가 이 노래를 꼽는 이유는 우리 가락을 차용했다는 점과 오지 않지만 올 수 밖에 없는 희망을 미리 앞당겨 가불했다는 점이다. 님 오실 것을 알기에 꽃등을 밝혀들고 마중놀이를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노래는 절망감에 지친 내게 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언젠가 대한민국 종교음악제에서 그와 내가 듀엣으로 부른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망을 말한다.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할 길 오늘 비록 눈물일지라도 절망은 하지말자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도 앞만 보고 가다보면 기쁜 날 오잖겠소 절망하지 말자 멀지만 가야할 길 길은 비록 험하고 멀어도 절망은 하지말자 시냇물 흘러흘러 큰 강물 이루듯이 한 걸음씩 가다보면 새날은 오잖겠소 (정세현 사/곡 「절망하지 말자」전문)
그래도 되는 사랑과 그러면 안 되는 정치 지난 10월 5일 공주와 부여에서는 제59회 백제문화제 중 전야제 행사 중 하나인 ‘토크콘서트’에 초청되었다. 공주시를 가로지르는 금강 변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풀꽃시인’ 나태주 님의 진행으로 ‘아름다운 시 아름다운 노래’라는 주제의 대담과 함께 여러 시인들의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 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이 내게 있어도 차마 모진 말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남에게 모진 말 들으면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맘 내게 있어도 차마 그 말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듣고 있을 때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졌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나태주 시 / 김정식 곡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 있어도」전문)
외롭고 슬픈 마음을 차라리 숨기며 살고 싶은 한국인의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했던 시인께서 뒤풀이 자리에서 숨김없이 하신 말씀이 이랬다. “제가 몇 년 전에 췌장암 수술을 했는데 모든 의료기관에서 살아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정식 씨가 병상에 누워있는 내게 찾아와 내 시로 만든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어요. 병원 측에 부탁을 하여 병동 휴게실에서 동료 환자들을 초대하여 깜짝 콘서트를 했는데, 그날 노래를 듣고 엔돌핀이 솟아났는지 기적처럼 다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절망과 죽음을 곁에서 함께 체험했던 아내가 내게 말합니다. 연애를 하든 바람을 피우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구요.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 살아났으니 그래도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가끔 예쁜 여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러시면 안 된다’는 답을 듣는데, ‘그래도 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랑이지 않나요?” 수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을 뿐 아니라 이제 고희를 앞둔 할아버지의 장난끼 섞인 일갈이시지만 깊은 통찰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사랑일 수는 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정치여서는 안 된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아픈 퍼포먼스 지난 9월 11일 시청 앞 청계광장 입구에서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기도회’가 있었다. 사제들이 이끌었던 적은 많았지만 천주교 평신도들이 주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추진위원회 발기인 중 한 사람으로서 사회를 맡았던 나는 참가자들의 기도와 발언 사이에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게 하소서’라는 짧은 한 마디짜리 노래를 참석자들과 함께 만트라처럼 계속 반복해 부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날 수도자 한 분이 이렇게 발언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실은 political people, 정치적인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심정으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에둘러 말하지 못합니다. 국정원이라는 정부기관은 존재할 필요성이 전혀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데 국정원은 크나큰 장애물일 뿐입니다. 국정원 사태는 지금 개혁이 아니라 폐기처분해야할 사안입니다. 또한 지난 대선은 국정원이 개입했기 때문에 ‘부정선거’가 아니라 ‘선거 원천무효’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할 것이 아니라 하야해야 마땅합니다. 여기까지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말이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함부로 말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죠? 이게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정치적 염원을 함께 모아서 기득권을 가진 정부의 부정부패를 향해 싸워야 할 야당이 ‘제2의 여당’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거 아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힘을 집결할 수가 없어요. 제발 정치인이 바로 서고 정당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이 국정원 문제를 그대로 둔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며, 현 집권당이 영구 독재화될 가능성이 너무나 깊기 때문에 이것으로 끝장 냅시다~.” 씩씩하게 자리로 돌아가는 수녀님을 붙들고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잠깐만요. 수녀님. 여기서 이러셔도 됩니다.”
죄인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한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과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아픈 몸짓으로 자신을 사루는 사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보다나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사람. 절망 속에서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사는 사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 갖은 폭압과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죄인이 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으며, 억울한 죄인들은 오늘도 희망을 노래한다.
문을 두드립니다.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되새기며 오늘이 백 년 째입니다. 무정한 사람 야속한 사람 비한 사람 그런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더 큰 죄인입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언젠가 나올 희망을 꿈꾸며 내일이 백 년하고 하루 째 입니다. (이상규 시 / 김정식 곡 「닫힌 문」전문)
에필로그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열릴 것입니다. ” (마태 7장8절) 두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속성상 반드시 열릴 수밖에 없는 문이지만 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그저 닫힌 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닫힌 문이 어떤 사람에게는 확실한 희망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절망이 되기도 한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이 글에 실려 있는 노래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볼 수 있음)
이 글 구석구석에
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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