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음악 세계]
슈베르트는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14년 간의 작곡생활 동안 만들어진 1천 여 곡의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천재적인 예술성으로 빛을 발해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음악작품이 절대적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원동력은 아름다운 선율의 무한한 가능성에서 부터 비롯된다.
그의 음악이 그리고 있는 사랑(깊은 사랑에 빠진 경험은 없지만),인생의 충만함(그가 결코 알 수 없었던), 바다(그가 한 번도 본 적이없는), 황홀한 춤(그가 추어보지 못한), 행복·불행 등 그가 현실세계에서는 맛보지 못한 모든 가능성들이 멜로디로 환원 되어 그리움처럼, 꿈처럼 새롭게 되살아나곤 했다.
이러한 무한한 선율의 가능성은 주로 그의 리트에서 현실화되었다. 그의 이러한 가곡은 그의모든 음악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성악곡에서 뿐만 아니라 기악 음악에서도 이러한 선율의 서정성과 가곡 형식의 도입은 그의 음악적 특징을 규정 짓는다.
[슈베르트]"그대는 나의 안식"
- 첼로 : 미샤 마이스키 -
=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 =
발트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미샤 마이스키는 리가의
음악원에서 처음 첼로를 배웠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부속 음악학교, 모스크바 음악원을 마치고 로스트로포비치와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하며 이 시대 최고의 두 거장에게 모두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첼리스트로 인정 받는다.
1965년 러시아 전국 음악 콩쿨,
1966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1973년 가스파르 카사도 국제 첼로 콩쿨에서 차례로 수상하며 말 그대로 혜성같이 첼로계에 등장한 그는 그러나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체제운동에 관계된 것으로 간주되어 2년간의 옥중생활을 해야 했다.
그 사이 연주도 할 수 없었으며 자유마저 빼앗겼던 마이스키는 마침내 1972년, 24세 때 출국허가가 내려져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부터 자유를 찾게 된다. 이때의 충격으로 잠깐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그는 이후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첼로를 마음껏 연주하며 본령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루돌프 세르킨으로부터 말보로 음악제 초청 연주를 시작으로, 피츠버그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또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등에 객연하여 마이스키의 음악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이스키의 강점은 윤기 있는 음색. 지나치게 감성과 기교에 치우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연주는 훌륭한 성악가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매력을 지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인데, 마이스키는 아주 아름답고 서정적인 바흐를 표현하여 바흐 작품의 원류에 취해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바하의 서정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한 연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 음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주’ 라는 평을 받으며 바흐 모음곡의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흔히 미샤 마이스키 특유의 화려한 무대 의상으로 ‘쇼맨쉽’이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그런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즐겨입는 이유는 단 하나 연주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 “음악은 종교다”라는 신념으로 음악을 대하는 사람, 미샤 마이스키. 그는 분명 우리시대 최고의 첼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