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간다고 하자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가?"하는 식이었다.
물론 동부 지역은 쿠르드족의 내란으로 항상 시끄럽다고도 했었고, 1999년엔 대규모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지만, 막상 목적지를 정하고 나니, 그런 두려움은 커녕 터키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만 커져 갔다.
영어가 통하는 터키인들은 대부분 여행관계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행 중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터키에서는 "살만한" 생활을 했다.
여행의 마지막에는 실컷 먹으며(그곳 요리가 세계 3대요리 중의 하나인 걸 가서야 알았다) 편안히 보낼 수 있었다.
우리의 터키 여행 일정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괴뢰메) - 파묵칼레 - 셀주크
아테네서 이스탄불까지 버스여행....
아테네에서 이스탄불까지 오는 버스여행은 시간이 24시간 걸리는 관계로 동행친구들이 생겼다.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역 옆의 국제 버스 터미널에서 장거리 버스가 저녁7시에 출발한다)
나와 친구 말고 우연히 여행길에서 만났다는 두 한국인 여학생들과 아르헨티나 여자였다. 이 '아르헨티나'는 통성명까진 안했지만 버스에서 그녀가 우리에게 들려준 얘기나 보여준 행동때문에 재미있었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 고교를졸업하고 스페인으로 공부하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중이며, 애인은 빠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정열적이고 감상적인 여인이 버스 안에서 우리와 얘기 나누고 있는 동안 차는 그리스 내륙을 달리고 달려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고 사람의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바로 그 일몰 직전의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그녀는 얘기도중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남자 친구가 그립다고 한다.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더니, 참을 수 없다며 아테네로 돌아가 빠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겠다고 하며, 차장에게 가서는 차를 세워 달라고 한다.
함께 얘기하던 우리도 황당하고, 차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해는 지고 거기는 그저 내륙 산간 지대였다. 잠시 논의 후에 차장과 운전사, 그리고 승객들이 안된다는 결론을 완강히 하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후에도 그녀는 우울했다가 헤헤웃었다가 했다. 감정의 기복이 그렇게 심한 사람도 처음 봤지만, 그녀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되었다. 이스탄불 도착 후 그녀는 우리와 헤어졌다. 아마 애인을 만나러 온길을 다시 갔겠지...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지만 아무에게나 설명할 필요도 없고, 하루 이틀 목적이 같으면 함께 하다가도 아무런 부담없이 헤어진다.
모두들 바람 같다.
이스탄불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이스탄불 구시가 아시아지구에 있는 "Yesil"이라는 펜션이었는데, 이스탄불 도착후 끈질긴 그곳 삐끼를 따돌리고 우리들이 찾아가 흥정했고, 또 터키일주 후에 다시 이스탄불에 돌아와서도 또 묶었던 곳이다. (성수기여서인지 가이드북에 나온 유스호스텔은 모두 만원이었다.)
그래도 성소피아 사원이나 블루모스크와 가깝고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괜찮았다. 또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 주인은 아주 억척스런 아줌마였는데, 우리는 그 아줌마를 예실(Yesil)이 아줌마라 불렀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바람을 맞으며 성소피아 사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장이 선다. 토마토나 당근, 바나나 등 과일과 채소도 팔고 그릇이나 실 같은 물건도 판다. 우리나라 시골장 같은 풍경이다. 사람들이 이국적이고 장수(?)할 것처럼 보이는 터키인들이라서 그렇지... 시장이니만큼 부산스럽다. 동행 친구가 토마토를 샀는데 아무리 영어로 얘기해도 못알아 듣고 한 두어개만 사려한 걸 열 댓개를 준다.(그 친구 그날 하루 토마토만 먹었다.)
아무가게에나 들어가 애그맥이라는 바게뜨 빵 비슷한 그 사람들의 주식 빵을 사서 뜯어먹으며 다녔다. 정말 싸고 크다.
참, 가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나라의 환율 이 정말 재미있다.
환율 변동이 심해 가이드 북마다 정말 환율 표시가 다르더니, 우리가 간 1997년 시점에서는 1달러에 16만터키리라 였다. 돈단위가 이렇게 크다보니 100달러만 환전해도 1600만 리라가 되어, 우리는 돈에 써 있는 '0'의 숫자 세느라고 즐거웠다.(부자들 기분 알겠더라)
기분 좀 내느라고 '리라'를 '원'으로 바꿔 부르니 '1600만리라'가 '1600만원'이 되어 정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100달러만 바꾸면 1600만원(?)이니...
블루모스크 는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 이스탄불의 명소이다.
외벽에 사용된 타일이 푸른빛을 띠어 블루모스크란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신발을 벗어들고 노출이 심하지 않은 긴 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사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밤에 보는 대부분의 유적들(어떤 나라이건 간에)은 모두 아래서 비추는 등으로 건축물을 비추어 아름답게 하지만, 특히 블루모스크는 밤에 정말 아름답다.
성 소피아 사원 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오래된 건물이면서도 이번 1999년 대지진에도 무너지는 현대 건축물과는 달리 건재했다고 하니 정말 세계의 불가사의라 할 수 밖에....
안의 벽은 예수님과 마리아등의 벽화로 이루어 졌는데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하자 회벽으로 발랐다고 한다.
현재 복원작업이 한창이며, 그중에서 자연의 색만으로 그렸다는 복원된 벽화의 아름다움에 정말 놀랐다.
지하 물 저장고 는 옛날 칩입자들이 독극물을 이용해 아군을 괴롭히자 지하에 궁정을 지어 깨끗한 물을 보존했던 장소이다.
여기에 있는 기둥들은 그리스 신전을 그대로 떼어다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메두사의 얼굴이 거꾸로 놓인채 기둥을 받치고있다.
물론 이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찍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줄서있는 인파때문에...)
보스포러스 해협에 자리잡은 돌마바체 궁전 은 황제와 대통령의 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스탄불 구시가에 머물고 있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신시가 어디엔가 있는 이곳을 찾아가기위해 버스와 트램은 잘 탔는데, 거의 다 와서 찾아가느라 고생했다.
(나중에 보니 탁심광장에서 약 10분 거리였다. 비가 와서 인지 어쨌든 너무 힘들게 찾았다.)
또 도착했는데, 막상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우리는 내부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그 이름도 찬란한 "돌마바체 궁전"을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이상한 오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이스탄불엔 꼭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과 더불어 그곳을 남기고 비에 젖어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비도 피하고 사원 내부도 보고 싶어 근처의 이슬람 사원에서 일반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도 보고, 맘을 가라앉혔다.
톱카피 궁 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이슬람의 유적들도 눈길을 끌고 중국이나 일본자기까지 전시되어 있어 이슬람세력의 영향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황금의자 등이다.
여기에는 따로 요금을 받는 "할렘"이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줄을 서 있어 그만큼 기다리는 시간과 맞바꾸기 싫어 그냥 나왔다.
궁 뒤쪽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정말 잊지 못할 장면이다. (우리가 머물던 곳도 이근처였다.)
우리는 시간을 잘 쪼개서 이스탄불 대학 과 슐레마니에 모스크, 그랑 바자 도 가봤다. 이스탄불의 트램을 타고 가보는 일은 즐겁다.
(이스탄불은 또 가보고 싶은 참 사랑스런 도시였다).
그랑바자는 우리나라의 남대문과 같은 곳이다. 터키 특유의 돔형 지붕 아래 수많은 상가가 모여있다.
특산품인 카페트나 가죽제품, 악세사리, 옛날 물건 등 별 게 다 있다. 나도 여기서 가죽 가방과 수제 컵을 샀다.
가게에 들어가면 무척 친절하고 그들이 항상 마시는 애플티도 마실 수 있다.
한 가게에서 들은 말이 기가 막혔다.
동양인인 우릴 보는 상인들의 기준은 꼬레, 자파니즈, 아니면 차이니즈인가 였다. 일본인이면 부르는게 값이고(그들은 부자라서 인지 값엔 관심도 없다나?) 중국인이면 무조건 부르는 값의 절반이상 깎아줘야 하고, 한국인은 30%정도면 된다고 하였다.
카파도키아(괴뢰메 마을)
카파도키아는 블루모스크나 성소피아사원같은 웅대한 인위적 건축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석회암 동굴집과 성당, 지하도시, 기암괴석등이 있다.
윌귀프와 괴레메, 아바노를 잇는 삼각지대를 카파도키아라고 한다.
나는 그중 괴뢰메 에 머물렀다. 발음이 좀 이상하지만, 거기 괴뢰메는 여행에 지쳐있던 나에게 평온과 안식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가 터키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꼭 다시가서 한달만 살다오고 싶은 곳이다.
괴뢰메는 그저 작은 산골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과 근처의 5세기경 그리스교도들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살던 지하도시나 석회암 동굴집, 그리고 캐러반 사라이 같은 실크로드시대의 유적들은 거기 여행사에서 하는 일일 투어로 볼 수 있었다.
이 투어에서는 우리와 또다른 한국인 재숙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이 언제나 그렇듯, 그 다음 날 약속도 안하고 간 산상 박물관에서 다시 만나 이 언니가 목적지인 앙카라로 가기 전까지 이틀을 함께 했고 터키 피자를 맛있게 먹으며 여행과 인생에 대한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언닐 기억하는 것은 앙카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며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하는 한 마디 때문이다.
사람과의 이별에 익숙하지 못하고 의미부여 해가며, 너무나 안타까워 하는 나와는 달리 그 언니의 한 마디는 내게는 해탈한 스승의 가르침처럼 들렸다.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책에서 백번도 더 읽었을 그 말 한마디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이해되는 순간.
괴뢰메에서의 풍경......
우리가 본 것과 비슷한 동굴같은 집에서 푹자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맑은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흙먼지 이는 길을 걸어 가는 동안 어제 만난 동생과 여행왔다는 대만 언니가 이곳은 너무 좋다며 여행 잘하라고 인사해 준다.
친구와 난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수십만 리라를 내고(!) 기분 좋게 물과 빵과 과일을 산다.
조금 더 즐겁게 걷다가 그늘이 있는 강둑의 나무아래에서 음식을 꺼내 상큼한 바람과 햇살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평온, 자유, 거기에 살랑이는 바람, 이것들을 잊을 수 없다.
파묵칼레
파묵칼레는 하얀 색으로 눈처럼 보이는 석회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파묵칼레란 '하얀 솜'이란 뜻이다.)
뒤로는 고대 로마의 도시 히에로 폴리스가 있으며, 이곳은 유네스코에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카파도키아를 거쳐 파묵칼레로 여행을 했다.
온천은 가뭄으로 말라있어 물이 충분해 보이지는 않았고 온천욕하는 사람은 없었으나(온천욕은 호텔에서들 하는 것 같았지만, 우린 거기에 아침에 도착해서 숙박 안하고 나왔기에 목욕까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발 담그고 재미있게 놀았다.
하얀 절벽길을 따라 멋진 풍경이 시야에 펼쳐진다..
데니즐리라는 곳을 거쳐 다시 파묵칼레로 버스를 타고 갔는데, 여기서 잠깐 터키의 버스여행 에 대해 말하겠다.
터키라는 나라의 버스는 우리가 상상하는 버스와는 다르다.
버스는 50인승의 좋은 차이며, 10시간이상 장거리 여행이 대부분이어서 버스는 중간 중간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식사는 할 수 있도록 정차를 한다.
기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장이 있다. 차장들은 주로 남자로 나비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차안을 돌아다니며 비행기안에서처럼 콜라, 커피와 같은 각종 음료수와 빵, 과자 같은 음식을 서빙해 준다.
이것도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셀주크
파묵칼레 뒤의 히에로 폴리스와 에베소는 고대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중심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썼다는 에페소 를 찾으러 셀주크로 갔다. 셀주크에는 시박물관도 있고 에페소의 유적인 원형극장도 보았다. 원형극장에 갔을 땐, 우리말이 들리는 것 같아 뒤돌아 보니, 우리나라 교인들이 성지순례하는 단체관광이 있었다. 그분들이 오히려 먼저 우릴 알아보시고 학생들이 기특하게 여행한다며, 함께 안내를 받을 것을 권유하셔서 함께 다니며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과, 성악을 전공했다는 그분이 고대 원형극장 한가운데서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를 거기에 있던 우리와 다른 외국인 관광객까지도 감상하고 큰 박수를 쳤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소리의 공명이 잘 되어 듣기 좋았다.
그리고, 수천년전 세워진 낯선 옛도시 모퉁이의 극장에서, 예기치 않게 우리 말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여행"이란 게 정말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터키 요리인 케밥을 먹었다.
맛있는 식사, 좋은 풍경....소화도 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