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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웅변인협회 임원 프로필 수록 순서(48명)
⦁ 원로회의 의장/ 이종래
⦁ 상임고문/ 정진기
⦁ 고문/ 김영호, 김기태, 이순임
⦁ 자문위원장/ 김수웅
⦁ 자문위원/ 이재갑
⦁ 지도위원장/ 김영신
⦁ 총재/ 송양호
⦁ 부총재/ 박종길, 전대수, 이경태, 태종호, 강성기, 심긍보, 김 석, 성장현
⦁ 직전 회장/ 김승기
⦁ 회장/ 정덕권
⦁ 부회장/ 김기장, 이미선, 이연미, 한서정, 권숙희
⦁ 수석 공동의장/ 박미화
⦁ 상임 공동의장/ 김두진
⦁ 공동의장 겸 감사/ 이종원, 홍현수
⦁ 공동의장/ 한기종, 이재학, 김만수
⦁ 사무총장/ 김우현
⦁ 이사/ 이희청, 김칠곤, 예영미
⦁ 사무국장/ 심진숙
⦁ 교육국장/ 이영자
⦁ 법률지원단장/ 이현수
⦁ 연구원장/ 김효근
⦁ 학술원장/ 이택곤
⦁ 전국 각 지역본부장/ 강민선, 김동일, 변재홍, 박성연, 김성동, 김종래, 박해경, 문선희
▰ 이종래/ 원로회의 의장
대한웅변인협회 원로회의 의장 이종래 선생은 대통령상 수상 웅변가로서 평생을 웅변운동과 민족정신의 계승에 바쳐온 한국 현대웅변사의 원로 지도자이다.
충청남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애국선열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충청남도는 3,1운동과 항일 무장 투쟁의 전통이 강한 고장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는 그의 웅변 정신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웅변에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강한 신념과 정의감이 담겨있었다. 그이 음성에는 선열들의 민족혼이 서려 있었고, 그이 연설은 청중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젋은 시절인 20대 후반에 대한웅변인협회 간부로 참여하여 본격적인 웅변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김상현, 주준수, 서호석, 이석점 신순범, 정진기 선생 등과 함게 한국 웅변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새대를 대표하는 웅변인의 길을 걸어왔다. 또한 그는 전국웅변대회에서 강렬한 신념과 호소력 있는 열변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웅변가로 줄곧 웅변인협회와 함께하며, 조직의 발전과 웅변 정신의 계승에 힘써왔다.
특히, 그는 1980년 제30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회장으로 협회를 이끌며 오랜 세월 한국 웅변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선배 웅변인들이 지켜온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웅변문화의 방향을 모색하며 협회의 안정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하여 웅변의 이론과 실천 경험을 후대에 남기고자 노력하였다. ‘연설과 축사’, ‘웅변가이드’, ‘성공하는 리더의 식사축사’, ‘모범웅변원고선집’(이상 일신서적 출판)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여 웅변교육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으며, 후배 웅변인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정당 활동과 사회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다. 민주자유당 중앙정치교육원 교수로 활동하며 당원교육과 정치의식 함양에 기여하였고, 서울시 민방위 정신교육과 안보강연 등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민정신 함양에 중점을 둔 계몽운동을 하였다.
아울러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효창원 8위선열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선열 정신 계승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리고 효창원의 애국선열들을 기리는 각종 추모사업과 정신선양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처럼 웅변가 이종래 선생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볼 때, 그는 강한 민족정신과 투철한 신념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대한웅변인협회를 이끌어왔으며, 웅변을 통해 후진 양성과 정신계몽은 물론, 선열 정신 계승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헌신해온 현대 웅변운동가요, 원로 웅변지도자였다.
▰ 정진기/ 상임고문
신념과 철학으로 웅변인의 길을 밝힌 선각자
웅변가 정진기 선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웅변의 대가이며,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존경받는 웅변계 지도자이다.
1960년대 중학생 시절 웅변 연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성동공업고등학교 변론부장과 동국대학교 변론부장으로 학생 웅변운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상 3회를 비롯하여 3부요인상과 장관상, 군 참모총장상 등 무려 60여 회에 이르는 수상 경력을 쌓았고, 각종 웅변대회를 석권하며 당대 최다 입상기록을 세운 웅변가이다.
정진기 선생이 웅변을 할 때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슴으로 말하는 사상과 철학이 뚜렸한 신념의 웅변가였다. 실제로, 선생을 잘 아는 웅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선생의 웅변에는 사람의 신체에 피가 흐르듯 언제나 강한 웅변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선생은 웅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 시절부터 웅변운동가였다. 1961년 동국대학교 변론부 주최 전국웅변대회는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치러냈으며, 연 이틀간이나 진행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60년대 초, 서울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거행된 대한민주청년회 주최 용공세력 규탄 시민궐기대회의 5천 여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등 반공 운동에도 앞장선 대학생 웅변운동가였다. 이는 곧 선생이 웅변운동을 활성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진기 선생은 1971년 4월 27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찬조연설자로 탁월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아 정부의 특채로 성업공사에 입사하여 과장에게 주어진 자산의 관리업무를 수행하며 책임을 다해 왔다.
이어 한국토지개발공사로 자리를 옮겨 감사와 홍보실장, 그리고 재개발사업처장 등의 임원으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남부권 택지처장과 부산지사장을 비롯하여 인천과 대구지사장을 두루 역임하며 한국 토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조직의 운영과 지역개발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국토지공사 감리공단 감사를 끝으로 건설부 산하 공기업에서 웅변가적 사명감을 바탕으로 28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명예롭게 정년 퇴임을 맞이하였다.
한편, 선생은 대학생 시절이던 1965년 대한웅변인협회 학생부장으로 참여하여 김대중, 김상현, 신순범, 이석점 등과 함께 협회의 기틀을 다지고, 1997년도에는 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협회 조직 강화와 웅변문화 창달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가 하면, 정부 기관에 봉직하면서도 웅변에 대한 애정과 협회에 대한 소속감은 변함이 없었으며, 퇴직 후 협회의 총재로 추대되어 전국적 웅변운동 확산에 앞장섰고, 협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그뿐 아니라, 선생은 아흔을 바라보는 9순의 연세에도 상임고문의 위치에서 변함없이 협회를 이끌며 웅변운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웅변가 정진기 선생의 일생을 볼 때, 젊은 시절 그의 웅변대회 입상 전적은 단순히 상을 받은 기록이 아니라, 웅변을 할 때마다 민족혼을 담아 가슴으로 외친 값진 웅변의 훈장이었다.
그리고 그 웅변 정신이 연설 현장에서 빛났으며, 정부 공기업의 중요한 국정과제를 수행하며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온 또 다른 웅변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대 웅변가 정진기 선생의 웅변 정신은 시대가 변해도 영원할 것이며, 그의 삶과 업적은 대한웅변사와 함께 후세 웅변인들의 등불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김영호/ 고문
국회의원 김영호는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웅변가 김상현 선생의 아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정치 명문의 후광에 의지한 인물이 아니라,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쌓아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다.
특히, 그가 대한웅변인협회 고문으로 추대된 것은 단순히 부친과의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삶과 활동을 살펴보면, 그가 지닌 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사회를 향한 설득과 소통의 자세 속에 웅변 정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따라서 그가 협회의 고문이라는 것만으로도 웅변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영호 의원의 부친인 웅변가 김상현은 민주주의 신봉자요, 한국의 정치와 국가 발전에 헌신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정치란 권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이며, 정의와 양심을 지켜야 하는 공적 책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국민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히고 설득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정신은 자연스럽게 아들인 김영호 의원에게 이어졌다. 그는 젊은 시절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사회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을 키웠고,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인의 사명을 배웠다. 이후,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대중을 선동하기보다는 논리와 품격으로 설득하는 정치를 추구해 왔다. 그런 점에서 김영호 의원의 삶은 현대의 웅변가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외교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 국제정세와 국가 안보문제에 대한 깊은 식견을 보여주었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익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의정 활동을 전개하며 국민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그는 제22대 국회 전반기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과제라는 철학을 실천하였다. 교권 회복, 교육 환경 개선, 미래 인재 양성, 디지털 교육 혁신 등 다양한 교육 현안을 다루며 교육정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니처럼 그가 교육위원장으로서 보여준 활동은 단순한 정책 집행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6년, 그가 펴낸 저서 ‘교육을 반대합니다’를 보더라도 그의 교육철학을 여솔 수 있다. 그는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인격과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웅변계가 추구해온 인재육성의 가치와도 깊이 연결이 된다.
무엇보다 김영호 의원에게서 주목할 점은 신사적 품격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이 빈번한 가운데 그는 절제된 언어와 품위 있는 태도로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진정한 웅변가의 자세와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대한웅변인협회와 웅변계의 입장에서 볼 때, 김영호 의원의 존재는 매우 의미가 크다. 그는 웅변이 과거의 문화가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사민 교육의 도구임을 보여준다.
김영호 의원의 정신과 활동은 부친 김상현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민주주의 정신과 국민을 향한 봉사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활동은 현대적 웅변가의 모델이요,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김기태/ 고문
정의와 애국의 웅변 정신을 실천한 웅변가 김기태 선생은 전라남도 장흥군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아 전국 규모의 각종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한국반공연맹이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정상급 웅변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공수특전여단에서 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국가유공자로 대한상이군경회 이사를 역임하며 12만 보훈 회원의 권익 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하였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의 명예와 권익을 지키는 일에도 앞장서왔다.
또한 한국내외문제연구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사단법인 통일미래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안보와 통일정책 연구에 기여하였다. 국가보훈처와 육군 문무대 강사로도 활동하였으며, 공무원 연수원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과 각종 기관에서 안보 강연을 실시하여 국민의 국가관과 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학술 분야에서도 그의 활동은 돋보인다. 그는 한국웅변학술연구원을 설립하여 웅변을 학문적 대상으로 발전시키고,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대한웅변인협회 이사와 감사,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협회의 발전과 웅변문화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였고, 현재는 수석 부총재로서 대한민국 웅변운동의 발전과 웅변문화 창달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정치 분야에서도 그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1991년 고향인 장흥군에서 제4대 전라남도 도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다. 당시, 전남지역은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이 매우 강해서 전체 당선자 74명 가운데 73명이 민주당 공천 후보였으며, 그는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그의 높은 인품과 봉사 정신은 물론,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보여준 뛰어난 웅변 실력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이어 5대 도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하여 더욱 폭넓은 의정 활동을 펼쳤다. 특히,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도정질의에서도 그만의 웅변역량을 바탕으로 도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수준 높은 의정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는 도의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참여하여 공정하고 적정한 예산 분배에 기여한 공로로 2회에 걸쳐 도의회 의장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퇴임 후에도 공기업인 열병합발전소 감사로 일하면서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에 기여하였고, 주식회사 한국냉장의 사업본부장으로 재직하며 냉장식품의 유통구조 근대화와 저온 유통체계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김기태 선생은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며 신민당에 이어 평화민주당 중앙당 대의원과 전남도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주연합청년동지회 교수와 대통령 선거 중앙 유세위원으로 유세 활동을 하며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총재의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웃을 위한 봉사 정신도 빛났다. 서울 강남의 대단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조합에서 부당하게 집행한 수 십억 원의 예산을 환수하여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봉사 정신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김기태 선생은 웅변가, 국가유공자, 안보 강사, 학술연구자, 지방의원, 사회봉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요, 한국 웅변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 이순임/ 고문
대한웅변인협회 고문 이순임은 함경북도 성진 태생으로 한국 현대 여성웅변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웅변가이다. 그는 뛰어난 웅변 실력과 실천정신으로 평생을 웅변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하며 웅변인의 사명과 역할을 몸소 실천해온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81년도 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의 웅변은 진정성과 소신이 담겨있었으며,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호소력으로 청중과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이미 그 이전부터 전국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한국반공연맹이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탁월한 역량을 입증하였고, 그 외에도 다수의 장관상을 수상하며 여성 웅변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서울 신촌에서 웅지웅변학원을 설립 운영하며 본격적인 웅변교육 활동에 나섰다. 이후, 경기도 이천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평생을 웅변교육과 함께 지역사회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리고 그는 올바른 인성과 자신감,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데 힘써왔다.
그동안 그가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은 전국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전국 무대를 석권해왔다. 이는 오랜 세월 현장에서 축적된 그의 교육경험과 철저한 지도력,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남다른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제자들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로 성장하며 그의 교육철학과 웅변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그는 1997년 대한웅변인협회 지도위원으로 협회를 이끌었으며, 사단법인 한국웅변단체총연합회 부총재로 활동하며 단체 발전과 웅변인의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단체의 조직 강화와 웅변문화 창달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웅변인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앞장서왔다.
그런가 하면, 대한웅변인협회 고문으로서도 협회의 주요 사업과 운영 전반에 대하여 선각자적 안목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낌없는 조언을 해오며 협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는 대외 활동도 활발하여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루는 일에도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청의 조정위원으로 위촉이 되어 30여 년간 화해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합리적 판단과 따뜻한 인간미를 바탕으로 당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로 법조계로부터 표창과 더불어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봉사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국제로타리 3600지구 이천 설봉로타리클럽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사회와 국제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실천에 앞장서며 참된 봉사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었다. 이처럼 여성 웅변가 이순임 고문은 뛰어난 웅변가이자 교육자이며, 조직의 지도자이자 지역사회 봉사자로서 평생을 실천의 삶으로 걸어온 여성 지도자이다.
남다른 웅변가 정신으로 웅변문화 발전과 사회봉사에 헌신해온 그의 발자취는 한국 웅변운동의 역사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며, 후배 웅변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 김수웅/ 자문위원장
김수웅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귀국하여 광주에서 성장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광주 웅변계의 원로이자, 민족정신을 실천하며 살아온 이종식 선생에게 웅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웅변술만 익힌 것이 아니라, 웅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사회적 사명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김수웅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광주 정신과 웅변 정신을 배우며 성장하였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웅변 연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웅변 속에 민족정신과 시대정신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는 학창시절 수많은 웅변대회에 참가하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특히,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한국반공연맹이 주최한 반공웅변대회를 비롯하여 각종 웅변대회에서 다수의 장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한 전국 불교웅변대회에서 전체특상에 올라 국회의장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그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떠나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웅변하였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그의 웅변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웅변이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는 수단임일 입증하였다.
또한 그는 1971년 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이 개최한 지방자치제실시 촉구 전국웅변대회에서 1위에 입상하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독립운동가 출신 김홍일 신민당 대표의 상을 수상함으로써 뜻깊은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김수웅 선생에게 있어서 웅변대회는 단순히 입상이나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는 민족정신과 계몽 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연단에 오를 때마다 청중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시민의식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신념은 대한웅변인협회 활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오랜 기간 협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후배 웅변인들의 성장을 지원하였고, 협회 자문위원장으로서 정신적 중심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는 후학 양성에도 열정을 가지고 웅변과 화술교육에 필요한 지침서인 ‘나도 화술의 왕’과 ‘화술대학교’를 집필하였다. 이들 저서는 웅변을 배우는 학생들은 물론, 강사와 지도자들에게도 널리 활용되며 실질적인 웅변교육 지침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저술 활동은 단순히 기술 전수가 아니라, 인재를 길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편, 김수웅 선생은 웅변가로서 문학인의 삶도 함께 살아왔다. 조선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문학적 감수성과 이해를 바탕으로 시를 창작하고 발표하며 문화예술 활동에도 참여해 왔다. 또한 그는 자신의 국가관과 통일 의지를 더욱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경기대학교 통일안보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주식회사 메카오토메이션의 임원으로 재직하며 산업현장의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였고, 국가 산업발전에도 일조하였다.
대한웅변인협회 자문위원장 김수웅 선생의 삶은 한 마디로 민족정신과 시대정신을 실천해온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늘날에도 원로 웅변지도자로서 후배들에게 올바른 웅변인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진정한 웅변인의 정신을 실천해온 신념의 웅변운동가이다.
▰ 이재갑/ 자문위원
원로위원 이재갑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사무총장으로 협회를 총괄 운영하며 웅변인으로서의 사명감과 확고한 웅변 정신으로 무장한 웅변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웅변 실력이 돋보여 초, 중, 고등학교 졸업식 송사와 답사를 6회 연속 독차지하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1960년대 한국인권옹호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인권웅변대회와 4,19의거 기념 웅변대회에서 연달아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더불어서 1960년대 말 군 복무 중에는 육군참모총장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웅변 실력을 보여준 정통 웅변인이다.
그가 웅변단체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군 제대 후인 1971년도 대한웅변인협회 이석점 회장으로부터 사무총장으로 발탁이 되면서부터이다. 젊은 청년웅변가 이재갑은 협회의 운영을 총괄 운영하며 웅변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협회 부회장의 중책을 맡아 조직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원로위원으로 추대받고도 협회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며 조직의 확대와 웅변문화 창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편, 그는 웅변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서울 퇴계로에 대한웅변인협회 부설 대한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 배출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역시 웅변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민족정신을 배우며 사회 각계의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또한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정치 노선을 함께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로 민주화추진협의회 설립 당시 인권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민주산악회 회원으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여 유신 철폐 운동에 앞장섰다.
그후, 그는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선전부장으로 정당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1990년 3당 합당에 따라 민주자유당 중앙교육원 연수부장으로 임명받아 당직을 수행하였으며, 이어서 중앙연수원 교수로 1997년도까지 집권당의 당원 교육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6,29선언을 이끌어내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탄생에 기여하였고, 중앙당 지원 연사로 각종 선거의 유세 활동을 하였다.
그가 정당 활동을 마무리하고 퇴직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대한웅변인협회의 동지들과 함께 웅변계의 발전을 위하여 활동해 왔으며, 원로위원으로 추대를 받고도 웅변인 간의 의리를 중시하며 화합에 힘썼을 뿐 아니라, 웅변계의 발전 방안과 국가에 기여하는 방안 등 웅변인들의 활동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웅변문화 창달에 기여해 왔다.
이처럼 강한 웅변 정신으로 웅변계와 정치계에서 활약해온 원로위원 이재갑 선생은 민주주의 신봉자요, 실천적 웅변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 김영신/ 지도위원장
대한웅변인협회 김영신 지도위원장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나 평생을 웅변운동과 기독교 복음 사역에 헌신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이다.
그는 웅변을 통해 민족정신을 전파하였으며, 복음과 사랑을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의 웅변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되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중학생 시절부터 인정을 받아 장학 혜택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역시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웅변 명문으로 알려진 영생고등학교 웅변 장학생으로 진학하였다. 그는 재학 기간 동안 수많은 웅변대회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전성기를 보냈고, 전북지역의 기대주로 성장하였다. 그 후, 그는 한국인권옹호협회가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서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대회의 최고상인 대법원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처럼 웅변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1982년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웅변인협회 사무총장으로 발탁이 되었다. 당시,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추진력과 조직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협회의 핵심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세 차례 연속 사무총장을 맡아 협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종 웅변대회와 교육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였으며, 회원간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 협회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지금도 협회의 지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배 웅변인들에게 민족정신과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웅변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그는 웅변운동뿐 아니라, 기독교 복음 사역에도 평생을 헌신해 왔다. 200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로 임직한 후 본격적인 목회의 길에 들어섰으며, 2006년에는 광명일직교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광명일직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교회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김영신 목사의 설교는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삶의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그의 진정성 있는 목회 활동은 교회의 성장과 부흥으로 어어졌다.
그는 또한 한국 교계의 다양한 지도자 역할을 맡아 활동해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서울총회장과 한반도복음중앙협의회 대표회장으로영적 회복을 위한 사역을 이끌었다.
또한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으로 한국교계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21세기영성본부 상임총재와 서울노회 증경회장으로 활동하며 영적 성장과 목회자 양성, 그리고 교계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아울러 여러 부흥사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 교회를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고 신앙 부흥을 이끌고 있다.
대한웅변인협회 김영신 지도위원장은 웅변가로서는 민족정신과 정의를 외쳐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며, 목회자로서는 사랑과 희망의 복음을 전파해온 종교지도자이다.
그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굳건한 신념, 그리고 복음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살아온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웅변사와 기독교계에 의미 있는 유산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송양호/ 총재
웅변가 송양호 선생은 대한웅변인협회 제38대~40대 화장과 제49대 총재로 협회를 이끌어온 지도자이며, 평생을 후진 양성과 웅변운동에 헌신해온 대한민국 현대 웅변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이 갖는 민족정신을 계승한 웅변 정신과 웅변문화 발전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국 웅변사에 한 축을 이룬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웅변은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권유로 당시 문교부가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 출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중,고등부 전체 특등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학교 공로 장학생으로 장학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후, 동대문상고 웅변부 장학생으로 발탁이 되어 웅변 연사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국무총리상을 비롯한 각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장학생 선발 웅변대회에서 특등상을 수상하며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 대학교 웅변 장학생은 장학 혜택이 주어졌지만, 그보다 그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발탁되었다는 자부심이 더 컸다. 그만큼 대학교 웅변 장학생은 많은 웅변 연사와 대학생들 간에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하나의 명예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송양호 선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줄곧 웅변 특기 장학생으로 명예롭게 학업을 이어간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후에도 수많은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최고의 웅변가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국무총리상 2회 수상과 국회의장상 수상에 이어, 1980년 대한웅변인협회가 개최한 충무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최고 권위의 웅변가로 인정받았다. 당시, 그의 웅변은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힘 있는 발성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담아내며 수많은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가 하면, 송양호 선생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웅변가일 뿐 아니라, 조직을 위해 헌신한 웅변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대한웅변인협회 활동에 참여하여 학생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연수원장과 이사, 부회장, 회장, 명예회장, 부총재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마침내 제49대 총재에 취임하여 협회를 이끌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조직의 확대와 회원 간의 화합, 그리고 웅변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였다. 특히, 후임 지도부에 조직을 맡긴 후에도 남다른 웅변 정신으로 무려 16년 동안이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베트남 참전 중 순직한 웅변가 고 허훈 선생의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며 웅변인으로서의 의리와 동지애를 실천하였다. 매년 현충일이면 직접 참배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웅변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그는 오랜 기간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후배 웅변인을 양성하였고, 전국웅변대회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웅변문화 창달에 힘써왔다
아울러, 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통한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국토통일원 전문위원과 서울시 민방위 정신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국민 안보의식 함양과 통일운동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송양호 부총재는 우리나라 웅변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로 ‘대한웅변사’의 출간을 제안하였으며, 본 웅변사의 역사성과 정통성, 그리고 객관성을 잃지 않도록 편찬 방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출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기지 않았다.
이처럼 평생을 웅변교육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웅변운동에 헌신하며 사회 봉사에도 기여한 시대를 울린 웅변가 송양호 선생은 대한민국 현대 웅변사의 산 증인이자, 웅변인의 사명과 웅변 정신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 지도자로 그의 공로는 한국 웅변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 박종길/ 부총재
웅변가 박종길은 웅변을 바탕으로 교육, 안보, 통일, 사회봉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펼쳐온 실천적 사회운동가이자 전천후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평생 웅변인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간직하고 국민 계몽과 인재 양성, 그리고 건전한 사회문화 조성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웅변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다. 광복절 기념 전국웅변대회에서는 전체특상으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정상급 연사로 이름을 알렸고,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3,1절 기념 전국웅변대회에서는 대법원장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입상 전적을 쌓으며 대한민국 웅변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웅변인협회 연수원장을 맡아 후진 양성과 웅변지도자 교육에 힘썼으며, 현재는 부총재로 활동하며 협회 발전과 웅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입시 명문 배영학원과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학원 경영을 통해 교육사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사단법인 한국능력교육개발원 전임교수와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 화법교수로 교육생들의 역량 향상에 기여하였다.
그는 사회활동도 매우 폭넓게 펼치고 있다. 2002년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며 성공적인 월드컵 문화조성에 참여하였고, 서울특별시 홍보대사와 대통령 국정 홍보위원을 역임하며 국가 정책과 시민의식을 높이는 홍보 활동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국가의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안보 분야 통일분야에서 그의 공헌은 매우 크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안보교육원장, 한국자유총연맹 민주 시민교육 전임교수, 내무부 민방위 소양 교육 전임강사, 통일부 통일 교육 전문위원,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전임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안보의식과 국가관 확립을 위한 강의 활동을 이어왔다.
그런가 하면, 현재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 교수와 국가보훈처 법인 독도의용수비대 전임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나라사랑 정신과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교육과 안보뿐 아니라, 문화와 복지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도봉어린이문화정보센터(도서관) 관장으로 청소년의 독서문화 진흥에 기여하였고, 한국노인복지사협회장으로 노인 복지 향상과 사회봉사 활동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리고 BBS 동아방송 유투브방송 사장으로 활동하며 건전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 보급하고 있으며, 한국문학협회 상임이사로 문학 발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웅변가 박종길의 이러한 활동은 다양한 포상으로 그 공로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 국민포장을 수훈하였으며, 국회의장 표창, 대법원장 표창, 국무총리 표창, 내무부장관 표창,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올해를 빛낸 대한민국 교육대상, 서울 보훈대상,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대상, 2025년 시낭송 대상 등 수많은 상훈을 받았다. 이는 교육과 사회봉사, 안보, 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 박종길은 웅변가를 넘어 교육자, 안보전문가, 사회운동가, 문화예술인, 복지 활동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과 함께해온 실천적 지도자이다. 또한 그는 웅변 정신을 삶으로 실천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천후 웅변운동가이다.
▰ 전대수/ 부총재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 전대수는 한국 문단에서 활동한 수필가요 저술가이며, 서울시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또한 그는 웅변교육자요, 웅변을 통하여 한국 사회에 기여한 웅변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웅변술을 연구하며 웅변학원을 통한 지도 활동을 하였으며, 향토예비군 정신교육 강사와 서울시 민방위정신교육 교관, 그리고 경제기획원 경제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안보교육과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97년도에 한국스피치교육센터를 설립하여 스피치교육 활동에 힘쓰게 되었으며, 더불어서 외부 기업체나 정부 기관에서 강의를 하였고, 10여년 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로 스피치 협상과정 강의를 하는 등 여러 대학에서 스피치 교육 강의를 하였다.
그는 전통적 웅변술의 정신을 현대적 스피치 커뮤니케이션과 접목시키며,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고, 각종 세미나와 강연, 그리고 저술 활동을 통하여 올바른 언어문화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그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부위원장과 보건사회위원회 위원, 그리고 운영위원회 위원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비롯하여 시의회 부대변인 등을 역임하며 남다른 활동 역량을 보였다.
또한 그는 서울시정에도 참여하여 서울시 환경영향평가위원회 위원과 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 위원, 그리고 지하수관리위원회 위원과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의 수립과 환경 보전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위원회 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정책을 시정에 반영하였는가 하면, 그의 소신과 역량에 따른 날카롭고 비중 있는 시정 질의는 신문과 TV 등 언론에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가 되면서 시민의 권익 보호와 시정 발전에 공헌하는 그의 활동이 시민들의 찬사를 받는가 하면, 그의 임기 내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수도이전반대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 수도사수 운동의 중심에서 1천만 시민결의대회를 세 차례 연속으로 이끌며 서울시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나아가 정부 주도의 수도 이전 관련 공청회에 절차적 문제점을 제기하여 공청회 자체를 요식행위에 그치도록 하는 등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지켜내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웅변가 전대수는 초등학교 시절 웅변을 시작하였으며, 중, 고, 대학 시절 다수의 장관상 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는 1987년도 한국인권옹호협회 주최 인권웅변대회에서 사전 원고 검열을 통하여 상당 부분 삭제 권고를 받았음에도 소신껏 웅변을 하여 청중의 뜨거운 환호와 찬사를 받으며, 전체 최고상인 대법원장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대한웅변인협회 활동은 1982년 중앙훈련원장을 거쳐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며 스피치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등 협회의 스피치강사 양성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부총재의 위치에서 협회의 발전과 웅변문화 창달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정부의 통일정책 수립에도 참여하였고, 월간 ‘수필문학’ 추천으로 수필작가가 되어 수필문학작가회 감사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문단 활동을 하였다.
이처럼 웅변가 전대수는 확고한 웅변 정신으로 때로는 정치계에서, 때로는 문단에서 사회에 기여하였으며, 전통적 웅변과 현대적 스피치의 연구와 보급에 힘썼을 뿐 아니라, 협회 활동을 통한 웅변문화 창달과 한국 사회를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한 웅변운동가이다.
특별히, 그는 본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장으로 집필을 주도하였으며, 그의 공로는 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이경태/ 부총재
전라북도 정읍 태생인 웅변가 이경태는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로 대범한 성품과 포용력으로 선후배 간에 확고한 동지의식을 심어주며 웅변운동을 이어온 웅변계 지도자이며, 민주주의 신봉자요 정치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전국웅변대회에 출전하여 탁월한 웅변 실력을 발휘하여 50여 회의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969년도부터 심리변론학원 강사로 경력을 쌓은 뒤 웅변학원을 설립 운영하며 많은 인재를 양성한 웅변교육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학문 탐구의 열정으로 대학에서 기독교 성서신학을 전공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과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을 거쳐, 일본정치대학교 정치학부 특별 연수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는 뛰어난 연설 능력과 학문적 기반은 물론, 확고한 정치 소신에 따라 정계에 입문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 노선을 함께 하면서 옹골차게 정치 활동을 이어왔다.
웅변가 이경태는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와 1987년 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의 연설원으로 연단에 올랐으며, 그 후인 1992년도에도 민주당 중앙당 유세본부의 찬조연설원으로 활동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가 하면, 조순 서울시장 후보와 고건 서울시장 후보의 찬조연설을 하는 등 유력 정치인의 여정을 함께 하였다.
그 외에도 그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탁월한 정치역량과 연설 솜씨를 인정받아 지방자치 선거의 유세 부위원장과 서울시장 선거 유세본부 특별 유세위원장으로 역할을 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유세 부위원장으로 당선을 도왔으며, 그런 그의 유세 역량은 연설부문으로 한국기네스인증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정치 여정을 살펴보면, 그는 젊은 시절 정계에 뛰어들어 원일민립당의 대변인을 거쳐 평화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당명이 신민당으로 바뀌었을 때는 중앙당 정책위원으로 당의 정책개발에 기여하였다. 이어서 민주당 중앙위원으로 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였으며,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으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인재를 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는 민주화의 열망과 열정도 남달라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창립 발기인과 4,19와 6,3동지회 운영위원으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헌신했던 세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 시민의식을 확산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는 장로교 신학대학 교수로 설교스피치학 강의를 하였으며, 언론사 논설위원과 컬럼니스트로 활동하는가 하면, 정치 동지들의 친교 모임인 인연산악회 감사이며, 성균관 전학(典學)의 직위에 올라 유교의 학문과 전통 의례를 관장하는 등 웅변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이어온 전천후 웅변가이다.
특히, 그는 그의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 대한웅변사의 편찬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활동상은 편찬사와 더불어 오래 기억될 것이다.
▰ 태종호/ 부총재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 태종호는 전라북도 임실에서 ‘의로운 정신과 강인한 기개’를 배우며 성장한 웅변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 선친의 권유로 웅변을 배우게 되었으며, 초등학교와 중학생 시절 각종 웅변대회를 석권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웅변 명문고인 전주 영생고등학교에 전 학년 A급 웅변 장학생으로 발탁되었고, 고교 시절에도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군 복무 중에도 30여 회의 수상 경력을 기록하였다. 특히, 그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웅변인협회 주최 백범 정신 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국무총리상 2회 수상을 비롯하여 80여 회가 넘는 입상기록을 남기며 한국의 대표적 웅변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관록에서 보듯이, 그는 웅변을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친으로부터 배운 ‘의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언제나 시대적 사명감과 민족의식을 담아 가슴으로 웅변을 하였으며, 훗날 웅변학원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 협회 운영에 참여하고, 지도위원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리고 3회 연속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혼란했던 시기에 웅변인들의 단합을 이끈 통합운동의 지도자였으며, 협회의 부총재로 단체의 조직 강화와 운영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웅변계 지도자이다.
또한 웅변가 태종호는 통일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통일부 통일 교육위원과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그리고 통일연수원 교수와 통일신문 논설위원 등을 맡아 평생을 평화통일 운동과 국민 통일 교육에 헌신하였다. 아울러 한국정책개발원 선임연구원으로 정부 정책 연구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그리고 세계일보와 월간 ‘통일한국’ 등 주요 언론에 시사평론과 평화통일 관련 칼럼을 기고하며 언론을 통한 웅변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분단의 상황에서 남측대표로 개성과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교류와 화해 협력에 기여하였고, 광복 70주년 기념 ‘8천만 통일의 노래’ 가사를 작사하는 등 문화적 통일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수훈하였으며, 통일원 및 통일부장관상과 ‘만해평화문학상’, ‘백두산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백두산문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과 ‘한국불교문학’ 신인상 평론가상 수상으로 문단에 등단한 문인이요, 평론가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학문 탐구에도 열정을 기울인 지성의 웅변가였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수료에 이어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과 하와이주립대학에 이어 러시아 모스크바대학과 프랑스 마르세이유대학, 그리고 호주 시드니대학과 중국 연변대학 등 해외 여러 대학에서 학문 연구와 더불어 국제적 식견을 넓혀왔다.
그는 ‘통일적설’, ‘통일기행’ 등의 저서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향한 자신의 철학과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였으며, 시집 ‘천년학 어머니’와 ‘동행사계,’ ‘우리는 하나’ 등을 통해 문인의 감성으로 그의 효심과 민족애를 담아냈다.
더불어서 그는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서 웅변사가 출간이 되기까지 역사성과 정통성, 그리고 객관성은 물론, 역사서의 체계적 정립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웅변가 태종호는 웅변과 문학, 그리고 언론과 통일운동의 길을 함께 걸으며 지성과 행동으로 시대정신을 실천해온 신념과 열정의 웅변운동가이다.
▰ 강성기/ 부총재
강성기 부총재는 독립운동가들의 의로운 저항정신과 계몽 교육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출신의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웅변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성장하였고, 평생을 인재 양성과 사회활동, 그리고 웅변운동에 헌신해온 실천적 지도자이다.
그의 웅변 인생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1957년 학교 대표 연사로 선발되어 보성군이 주최하는 농어촌살리기 웅변대회에 참가하여 3위로 입상하면서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중, 고등학교 학생 시절에도 매년 학교 대표 연사로 각종 웅변대회에 출전하며 꾸준히 입상 실적을 쌓아갔다.
그런 과정에서 전라남도지사상과 서울시장상, 교통부장관상 등을 수상하며 탁월한 웅변 실력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한 개인적 재능을 넘어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민족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웅변뿐 아니라, 연극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무대 경험을 쌓았으며, 광주 학생의 날 기념 연극제와 진주 개천예술제에 참가하여 주연 연기상과 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는 극단 산울림의 계몽 사극 유치진 작 ‘원술랑’에 출연하였고, 3,1운동과 독립정신을 주제로 한 이강백 작 임영웅 연출의 ‘조국’에 출연하였는가 하면, ‘탄경부’에서도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되어 배우로서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이는 어려서부터 지역 독립운동가 정신을 접하며 성장한 영향으로 그의 예술 활동 속에도 민족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깊이 스며들어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지역 웅변운동으로 이어졌다. 1976년에는 고향 벌교에서 새청년운동분부(본부장 안광양) 주최 전국웅변대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지역 정치인과 유지들의 후원은 물론, 전국 웅변인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한편, 그는 누구보다도 웅변에 대한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국웅변단체총연합회 공동의장과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를 역임하며 웅변계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또한 그는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을 순회하며 대통령상 전국웅변대회를 비롯하여 각종 웅변대회 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강성기 부총재는 후진 양성에도 각별한 열정을 보여왔다. 그는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인천대학교와 광주 송원대학교, 그리고 부산 동의대학교 등에서 ‘스피치와 교수법’을 주제로 강의하며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또한 경북테크노대학 서울분교에서 다년간 화술교육 강의를 담당하는 등 체계적인 화술교육 보급에 힘썼다. 그뿐 아니라, 파르코 동방문화센터에서도 ‘현대인의 화술과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그의 사회적 실천은 환경운동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사단법인 한국그린피아연맹 교수단장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환경보호 운동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뛰어난 연설 역량을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세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연설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강성기 부총재는 평생을 웅변교육과 문화예술, 그리고 환경운동과 사회참여 활동에 헌신해온 전천후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웅변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본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역사성과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공로는 웅변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심긍보/ 부총재
심긍보 부총재는 학창시절부터 웅변에 남다른 열정을 품고 평생을 웅변운동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서울 한영고등학교 변론부 학생으로 활동하면서 웅변의 기초를 다졌으며, 전국적으로 웅변 열기가 뜨거웠던 1960년대 말부터 각종 웅변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타고난 설득력을 바탕으로 웅변대회에서 잇따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그는 전국웅변대회 최고상인 전체특상으로 국회의장상을 받음으로써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웅변가로서 큰 기대를 받았다.
웅변가 심긍보는 일찍부터 웅변을 개인의 성공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보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봉사의 길로 인식하였다. 그는 이러한 신념으로 학창시절인 1960년대 말에 대한웅변인협회에 참여하였다.
심긍보 부총재는 어려운 시기인 1990년대에 수석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협회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협회의 주요 사업은 물론, 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하여 조직의 활성화와 웅변문화 창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는 웅변이 국민을 바르게 이끌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며 웅변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의 웅변은 언제나 신념과 소신이 뚜렷하였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국가를 위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산시키기 위한 웅변을 하였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책임과 사명을 중시하였다. 또한 그는 웅변을 하는 동료들 간에도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았으며, 신념을 바탕으로 진실을 말하고 바른길을 제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웅변가 심긍보의 또 다른 장점은 사람을 아끼고 조직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 정신이다. 그는 동지애가 매우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선후배 간의 예의와 의리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왔다.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협회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회원간 화합과 결속을 위해 언제나 솔선수범하였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구성원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웅변인협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해 왔다.
특히, 협회의 부총재로 활동하면서 협회의 위상을 높였고, 웅변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화려하게 앞서 나가기보다는 묵묵히 조직을 뒷받침하는 리더십을 실천하며 협회의 신뢰를 받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그는 기업인으로서도 성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경영하며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사람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정직과 책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기업을 운영하였으며, 이러한 경영철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사업에서도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를 실천함으로써 웅변가의 올바른 품격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었다.
웅변가 심긍보 부총재는 언제나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살아왔다. 그는 웅변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확산시키는 데 힘써왔으며, 의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의 삶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실천의 삶이었으며, 웅변가가 갖추어야 할 책임과 품격을 몸소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그는 변함없이 웅변에 대한 애착심과 사명감을 간직한 채 후배 웅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의 굳은 신념과 애국심, 그리고 의리를 중시하는 든든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는 대한웅변인협회의 지도자상이 되고 있으며, 그의 삶은 우리나라 웅변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대표적인 웅변운동가로 존중받고 있다.
▰ 김 석/ 부총재
김석은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로서 평생 웅변 정신을 실천하며 협회의 발전과 웅변문화 창달을 위해 헌신해온 웅변가이다. 그는 어린 서절부터 남다른 웅변 재능을 보이며 성장하였으며,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연단 위에서 당당하게 외쳐온 실천적 웅변 연사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웅변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사직하였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꾸준한 노력과 연마를 통해 전국웅변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것은 전국 정상급 연사로 인정받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김석은 화려한 수상 경력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웅변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 정의를 위한 사자후를 힘차게 토해내며 국민의식을 일깨우는 계몽 웅변을 하였다. 그이 웅변은 정의와 신념이 담겨있었으며, 청중에게 깊은 감등을 주었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웅변가일 뿐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진 교육자였다. 1980년대 초,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청소년들에게 발표력과 자신감, 그리고 국가관을 심어주는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각종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김석은 지역사회에서도 봉사 정신을 실천한 인물이다. 지역의 다양한 사회단체와 지역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재능기부와 봉사 활동을 이어왔으며, 그는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참된 웅변인의 자세라고 믿으며 봉사를 실첨해 왔다.
그는 오랜 세원이 흐르는 동안에도 웅변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웅변 환경이 달라지는 가운데서도 처음 품었던 신념을 끝까지 지켜왔으며, 대한웅변인협회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협회 발전을 위해 변함없는 애정을 쏟아왔다. 어려운 시기에도 협회를 떠나지 않고 함께한 그의 모습은 많은 웅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말년에 그는 서울을 떠나 강원특별자치도 홍천으로 터전을 옮겨 개인사업을 운영하면서도 협회와의 인연은 이어갔다. 비록, 생활의 기반은 달라졌지만, 웅변운동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로서 각종 사업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후배 웅변인들을 격려하며 협회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언제 어디에 있든 협회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자세는 ‘의리의 웅변인’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웅변가 김석은 뛰어난 웅변 실력과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그리고 사회를 향항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평생 웅변의 길을 걸어온 웅변운동가이다. 무엇보다도 신념과 의리를 끝까지 지키며 웅변인의 긍지로 협회를 위해 헌신해온 그의 삶은 우리나라 웅변 운동사의 소중한 발자취로 남을 것이다.
또한 그는 정의를 외치는 연사이자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이며, 협회를 떠나지 않고 지켜온 의리의 웅변지도자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성장현/ 부총재
대한웅변인협회 성장현 부총재는 웅변가이자 정치인이며, 행정가와 기업인의 역량을 두루 갖춘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실천형 지도자이다. 그는 웅변 정신을 바탕으로 지방행정과 사회봉사, 외교 활동과 기업경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며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인물이다.
그는 전남광주특별시 순천의 매산고등학교 웅변부 장학생 출신 연사로 학창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특히, 웅변부 부장으로 활동하며 조직을 이끌고 후배들을 지도하는 등 일찍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그는 전국웅변대회 고등부 연사로 보건사회부장관상과 체신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군 복무 중에도 군 사령관상과 다수의 군 지휘관 상을 수상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연사였다. 그는 이러한 역량에 따라 젊은 시절 용산구 지역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과 웅변문화 확산에 힘써왔다.
그러던 중 그의 웅변 정신과 뛰어난 추진력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구의회 의원에 당선이 되어 지방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지방자치시대의 행정가로 성장하여 용산구 제34대 구청장에 당선되었으며, 이후 4선 구청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발전과 지역 주민의 복리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 재임 중, 그는 도시 환경 개선과 주민 중심 행정을 펼치며, 지방행정의 모범적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특히, 그는 한미친선협의회 한국 측 위원장으로 국제교류와 민간외교 분야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또한 전국기초단체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어 지방자치 발전과 국가 정책 제언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 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공직에서 명예롭게 퇴임한 이후에도 대한노인회 부회장으로 경로효친 문화 확산과 노인들의 권익 옹호에 힘썼다. 또한 그는 그의 뛰어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레저산업 분야인 무주 덕유산리조트의 대표이사로 영입되어 기업경영을 맡아 그가 가진 행정 경험과 조직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리조트 경영 발전과 관광 레저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며 새로운 영역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그는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적 지도자로 풍부한 학식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있다.
그는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주석으로부터 최고우호훈장을 받았고, 프란치스코 교황 축복장과 세계자유연맹 자유장 등을 수훈하며 국제 친선과 외교 활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는 그의 폭넓은 국제감각과 민간외교 활동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웅변가 성장현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도 대한웅변인협회 부총재로서 웅변단체의 조직 강화와 웅변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으며, 웅변계 활동뿐 아니라, 정치 활동과 기업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 김승기/ 직전 회장
김승기 직전 회장은 대한웅변인협회 제40대 회장부터 제46대까지 오랜 기간 회장직을 연임하며 협회를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한국 웅변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강한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포용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협회의 안정과 발전을 이끌었으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웅변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그는 웅변계 저변확대와 웅변문화 창달을 위해 스피치교육 강사 육성에 힘쓰며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또한 그는 웅변과 스피치 분야의 전문성 강화를 위하여 웅변 스피치 관련 교재를 출간하여 지도 활동을 도왔다.
그리고 그는 백범 정신선양 대통령상 전국웅변대회를 연례행사로 개최하며 수많은 연사를 발굴하였고, 국민 계몽과 시민의식 함양에 기여하였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협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웅변지도자 김승기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정통웅변가이기도 하다. 그는 1997년 백범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1998년 통일부장관상과 국회의장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탁월한 웅변 실력을 과시하였다. 이어, 대한웅변인협회 주최 바다의 날 기념 해양의식 함양 전국웅변대회에서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웅변계를 대표하는 웅변가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그의 화려한 입상 경력은 그에게 큰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게 하였으며, 이후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과 국가 사회 발전에 헌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웅변 실력과 사명감에 따라 웅변학원을 설립하여 다년간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신감 훈련과 자기표현 능력을 기르는 교육 활동을 하였다. 이 교육 활동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세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 그가 협회의 목적 사업 중 하나인 스피치 강사 육성에 힘쓴 것도 미래세대 지도자 육성을 위한 하나의 교육사업이요, 웅변운동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김승기 회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과시하거나 앞세우지 않고 묵묵히 실천해온 지도자라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서 후진들을 격려하고, 조직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웅변인의 긍지와 사명감을 몸소 실천해 왔다. 이러한 그리고 그의 삶은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 정덕권/ 회장
정덕권 회장은 대한웅변인협회의 조직 강화와 웅변문화 확산, 그리고 웅변을 통한 공익 실현을 목표로 협회 발전을 이끌어온 현대 한국 웅변계의 대표적 지도자이다.
그는 협회의 창립 정신과 시대적 사명을 계승하면서도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정관을 수정 보완하고, 다양한 목적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조직의 내실화와 외연 확대에 힘써왔다. 특히, 전통적 웅변 정신을 바탕으로 현대적 스피치 문화와 시민의식 함양 운동을 접목시키며, 새로운 시대의 웅변운동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의 웅변운동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교내 웅변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중학생 시절에도 지역민 결의대회 연단에 올라 시범웅변을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웅변 명문고로 알려진 순천 매산고등학교 웅변부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웅변술 수련과 대회 출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 시절에도 학업과 웅변 활동을 병행하며 수많은 대회에 출전하였고, 상공부장관상과 법무부장관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장관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웅변가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1981년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서 대학 일반부 특상인 대법원장상을 수상함으로서 탁월한 그의 웅변 실력을 과시하였다. 또한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웅변 연사로서 활동을 이어가며 장병의 정신교육과 사기진작에 기여하는 등 웅변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대학교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며 웅변운동의 조직적 확산에도 힘썼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지역 학생웅변대회를 개최하며 지역 청소년들에게 웅변을 통한 지역 주민 계몽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미래의 웅변 인재 발굴과 웅변문화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1984년부터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하며 웅변 실력은 물론,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교육철학을 실천해 왔다.
그는 동시에 2013년도부터 한국웅변단체총연합회를 이끌며 전국 웅변단체 간의 협력을 도모해 왔으며, 2020년도 대한웅변인협회 대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출되며 폭넓은 신망과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그가 오랜 세월 웅변 현장을 지켜오며 쌓아온 경험과 신뢰, 그리고 화합을 중심으로 하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웅변지도자 정덕권은 협회 창립 당시의 정신인 민족정신 계승과 공익 실현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독립선열 정신 계승 전국웅변대회를 비롯하여 다양한 웅변대회를 개최해 왔으며, 웅변운동의 폭을 확대하기 위하여 사단법인 한국지역신문협회와의 업무 협약(MOU) 체결을 통한 향토문화의 발굴 보존 운동을 전개하는 등 공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였고, 이를 통한 웅변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왔다.
그는 무엇보다도 웅변인들 간의 화합과 동지애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로 알려졌다. 선후배 웅변인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힘써왔으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전통적 웅변의 가치를 지켜내며 현대적 스피치 문화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웅변가 정덕권은 대한웅변인협회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고 웅변문화 발전에 헌신한 지도자요,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웅변지도자이다.
특히, 정덕권 회장은 한국 최초로 대한웅변사를 출간한 지도자로 그의 웅변 정신과 업적은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 김기장/ 부회장
대한웅변인협회 부회장 김기장은 젊은 시절부터 대한웅변인협회와 함께 하며 협회의 발전과 지역사회 봉사에 헌신해온 실천적 웅변인이다. 그는 웅변계 분 아니라 지역사회 운동과 대통령 자문기구 자문위원으로 폭넓은 활동을 이어온 전천후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백범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통일부장관상을 수상하며 그이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정무장관상과 국가보훈처장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수상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김기장 부회장은 1995년 대한웅변인협회 교육국장으로 임명된 이후 본격적으로 인재육성에 기여하며 협회 운영에 참여해왔다. 이후, 운영실장과 운영본부장을 역임하며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전국웅변대회와 각종 행사의 운영, 그리고 조직 관리와 화원 간의 화합 등 협회 운영 전반에 걸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협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협회 사무총장을 맡아 단체를 이끌어왔으며, 이사와 등기이사 겸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단체의 체계적인 운영과 제도 정비에도 힘써 왔다. 특히, 부회장으로서 협회의 중추적 위치에서 웅변계 지도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무엇보다도 그는 대한웅변인협회의 사단법인 등기 과정에서 법인 설립과 관련된 각종 행정 실무 절차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며 단체의 법적 기반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 단순한 협회 운영을 넘어 미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은 웅변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직속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국가의 평화통일 관련 자문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는 웅변인의 사회적 역할과 공적 책임을 실천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 화합을 위한 직능 단체 활동과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르게살기 천호2동 위원장과 명예위원장을 비롯하여 주민자치회의 문화예술분과장, 자율방재단 단장, 강동구 통장회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에서 그는 늘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왔다.
이와 같은 헌신적 사회활동의 공로로 그는 행정안전부장관상과 서울특별시장상을 비롯하여 각종 표창을 받았으며, 강동구청장상 2회와 강동구의회 의장 표창 2회 등 다수의 수상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는 그가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실천적으로 헌신해온 지도자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김기장 부회장은 오랜 세월 웅변운동과 지역사회 봉사 현장을 함께 지켜왔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웅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삶 속에는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봉사 정신, 그리고 웅변인의 사명감이 깊게 담겨있다. 이처럼 그는 국가와 지역사회, 그리고 웅변계의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동해온 실천적 지도자이자 전천후 웅변활동가라고 할 수 있다.
▰ 이미선/ 부회장
대한웅변인협회 부회장 이미선은 평생을 웅변과 스피치교육에 바쳐온 여성 웅변교육자이다. 그는 오랜 세월 현장에서 수많은 인재를 육성하며 웅변문화 발전과 인성교육에 헌신해온 지도자이다.
그는 2002년 대한웅변인협회 교육국장으로 본격적인 협회 활동에 참여하며 웅변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온화한 성품, 그리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으로 조직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해 왔으며, 협회를 중심으로 건강한 웅변 만화 창달과 후진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미선 부회장은 웅변의 명문으로 알려진 서울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웅변 특기 장학생 출신이다. 학창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으며, 연사로 활동해 왔고, 성인이 된 후에도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999년도 에너지 절약 전국웅변대회에서 일반 성인부 최우수상에 입상하며 중소기업청장상을 수상하였고, 이어서 바다 살리기 및 환경오염방지 전국웅변대회에서는 해양수산부장관상을 수상하였는가 하면, 그 외에도 다수의 수상 기록을 세우며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웅변가이다.
특히, 그는 1987년부터 약 40 여년 가까이 웅변학원을 설립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써 왔다. 또한 그는 오랜 기간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으며, 그의 제자들은 각종 전국웅변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상위권에 입상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웅변 기술교육을 넘어 올바른 인성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그의 교육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그는 서울 광진문화센터를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에서 웅변 발표력과 스피치 리더십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웅변교육이 자신감과 인성, 그리고 사회적 소통 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교육이라고 강조하며 현장 중심의실천 교육에 힘써왔다.
또한 그는 동화구연가와 청소년 인성지도사, 예절교육 강사로도 활동하며 어린이와 교육 활동은 사람다운 품성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평소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교육 활동과 웅변 활동에 임해 왔다. 그의 삶과 교육철학 속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따듯한 마음이 담겨있다.
이처럼 웅변가 이미선 부회장은 오랜 세월 웅변과 스피치 교육에 헌신하며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여성 웅변교육자이자, 인간다운 품성과 소통의 가치를 실천해온 교육자라고 할 수 있다.
▰ 이연미/ 부회장
대한웅변인협회 부회장 이연미는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웅변역량과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교육과 사회활동, 그리고 웅변운동에 헌신해온 대표적인 여성 웅변가이다.
그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뛰어난 호소력으로 웅변대회장의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온 연사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백범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탁월한 웅변 실력을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그의 웅변은 기교나 표현을 넘어 민족혼과 애국심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와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진정성 있는 호소력은 웅변의 감동을 더욱 더 배가시켰으며,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을 시대적 가치로 승화시켜 전달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는 웅변가 이연미가 단순한 기능적 웅변이 아니라 주제의 가치를 청중에게 심어주는 연사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풍부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웅변인협회 재정국장을 맡아 협회 경영에 일조하였는가 하면,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중심적 역할을 해 왔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후빈 양성에 힘써왔다. 청소년들에게는 자신감과 발표력을 길러주는 스피치 교육을 실시하고, 성인들에게는 스피치 리더십과 인간관계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활발한 교육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유아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아교사들에게 효과적인 스피치 기법과 의사소통 방법을 전수하고 있으며, 지역의 여러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의 자기표현 능력과 발표 자신감을 길러주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과 인성을 강조하는 그의 교육철학과 어린 시절부터 바른 언어습관과 표현력을 길러주는 그의 교육방식은 학부모들과 교육 관계자들로부터 공감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니어세대를 대상으로 스피치와 인지 향상 교육을 실시하며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과 삶의 활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웅변이 특정 연령층만의 교육이 아니라, 전 세대를 위한 소통 문화 운동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지역사회와 정치, 사회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요청에 따라 총선과 대선의 선거 유세 활동에도 참여하여 특유의 설득적 연설로 유세장에 모인 유권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정치 활동을 돕는다. 이것은 웅변가 이연미의 역량이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APPLE TREE SENIOR CARE CENTER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노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봉사 활동도 하고 있으며, 모교인 중,고등학교 총 동문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공익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1997년 대한웅변인협회 재정국장을 시작으로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소속감을 가지고 전국웅변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아 웅변 인재육성에 힘쓰는 등 미래세대를 위한 웅변문화 확산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웅변교육자이자 사회 활동가이며,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 교육 실천가인 이연미 부회장은 오늘날 많은 웅변인들의 귀감이 되는 열정적인 여성 웅변가이다.
특히, 그는 그의 웅변정신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웅변사 편찬 작업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웅변운동의 역사 정리와 편찬 작업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활동상은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한서정/ 부회장
웅변가 한서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애국심, 그리고 봉사 정신을 실천해온 사회를 밝히는 실천적 여성 웅변가이다.
그는 웅변을 통해서 정의와 진실을 실천하는 삶의 자세를 익히며 살아왔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하여 웅변 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해온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창시절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전국웅변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웅변을 단순히 말하기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신념은 평생의 삶과 사회활동으로 이어졌다.
대한웅변인협회에서는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협회의 주요 사업과 조직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회원 간의 화합을 이끌고, 각종 웅변대회와 목적 사업의 추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또한 그는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 웅변운동의 발전과 웅변문화 창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따듯한 리더십으로 협회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웅변인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웅변가 한서정 선생의 활동은 웅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이천시에 거주하며 오랫동안 환경보호와 자연 보전 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이러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도에는 여주 이천 환경대상을 수상하였다. 깨끗한 환경은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신념으로 다양한 환경보전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써온 실천적 환경운동가이다.
또한 그는 동화구연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어고 있다. 사단법인 색동어머니회 경기도지회장을 맡아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동화를 들려주며, 올바른 인성과 꿈, 그리고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 봉사에 헌신하고 있다. 동화구연은 어린이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키우는 문화 교육인 동시에 미래세대의 인성교육이라는 점에서 그의 활동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문학 분야에서도 그의 재능은 인정 받았다. 그는 1998년 ‘문예사조’ 현대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섬세한 감성과 따뜻한 그의 시선을 작품에 담아내며 문학 활동을 해왔다. 그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연,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이 담겨있으며, 웅변인으로서의 호소력과 시인의 감성이 조화를 이룬다.
시민사회에서도 그는 적극적인 실천가이다. 언론소비주권국민캠페인 초대 상임대표를 맡아 건강한 언론문화와 올바른 시민의식을 확산하는 데 힘썼으며, 촛불시민연석회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등 민주사회 발전과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회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책임 있는 시민운동가로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해 왔다.
한서정 선생은 뛰어난 친화력과 따뜻한 인품으로 조직원들의 화합을 이루며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은 물론, 우리 사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특히, 그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강한 실천력을 바탕으로 웅변문화 발전과 환경보호, 그리고 아동교육과 문학, 시민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헌신해온 실천적 여성 웅변운동가이다.
▰ 권숙희/ 부회장
웅변가 권숙희는 대한웅변인협회 사무부총장을 거쳐 부회장으로 조직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여성 웅변가이다. 특히, 그는 확고한 웅변 정신으로 폭넓게 활동해온 스피치 교육자이자 문화예술인이요, 방송인이다.
그는 한민족통일여성협의회 주최 전국 통일스피치대회에서 통일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독립 선열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는 등 전국적으로 그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웅변은 자신의 신념과 진정성은 물론, 주제를 드러내는 민족정신을 담고 있어서 청중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러한 웅변역량을 바탕으로 청소년과 시민들의 자기표현 능력과 소통 역량 강화를 위한 스피치 교육에 힘써왔다. 특히,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기표현 활동 지원에도 참여하며 따듯한 교육자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도서관 공모사업과 지역 문화재단, 그리고 대한노인회 등 여러 기관에서 스피치 교육 활동을 펼쳐왔으며, 이러한 열정적인 교육 활동은 한국청소년신문사 주최 청소년지도자 평가에서 스피치 교육부문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스피치 교육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시인과 시 낭송가, 작가, 연극배우,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문화예술인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시낭송 지도 활동에 애정을 쏟으며, 한국시극협회 운영위원장과 샘문평생교육원 지도교수, 나래PBL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하는 등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예술적 역량은 제1회 한용운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수상과 대한민국 시 낭송 명인 인증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았으며, 모노극 ‘엄마라는 바다’와 ‘마트료시카’에 출연하여 우리들의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FM 방송 ‘권숙희의 힐링 숲’ 진행과 유튜브 ‘권숙희의 감성 채널’ 운영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따듯한 감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전자책 에세이 ‘엄마라는 바다’와 ‘삶의 품격, 시 낭송으로 꽃 피다’를 비롯하여 동화집 ‘오복이’, ‘나 거인 되면 어쩌지?’, ‘느티나무 할아버지’와 공저 수필집 ‘서로의 계절’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역량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웅변가 권숙희는 웅변과 스피치, 그리고 시 작품활동과 시 낭송뿐 아니라, 무대 연기와 방송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품격 있게 만드는데 힘써온 예술가적인 웅변가이다.
그는 웅변단체 활동도 적극적이어서 전국웅변스피치대회 심사위원으로 웅변 인재 발굴과 국민정신 계몽에 힘쓰고 있으며, 협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행사 실황을 기사화하여 언론과 블로그에 소개하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열정을 보이는 등 대한웅변인협회와 함께하는 참 웅변인이요, 스피치 교육과 문화예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현대 여성 웅변운동가이다.
특히, 그는 한국 최초의 웅변 역사서인 본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편찬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공로는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김우현/ 사무총장
웅변가 김우현은 대한웅변인협회 사무총장으로 협회의 운영을 총괄하며 대내외적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웅변가이다. 그는 조직 운영 능력과 뛰어난 기획력, 고리고 현대적 감각을 바탕으로 협회의 각종 사업과 행사를 안전적으로 이끌어가며 웅변문화 확산과 스피치 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웅변을 통한 공익 실현과 시민의식 함양이라는 협회의 정신을 실천하며 현대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웅변문화 창달에 힘쓰고 있다.
또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웅변 연사로 활동하며 국민의식 개혁과 건강한 시민 정신 함양에 기여하겠다는 신념 아래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그는 도지사상 2회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그의 입상 전적은 이후 웅변인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으며, 웅변단체 활동은 물론, 다양한 행사의 사회 진행 등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더욱 더 강화해 왔다.
이는 훗날 그가 스피치 교육과 사회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는 2007년도부터 시대 변화에 맞추어 리더스스피치와 키즈스피치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왔다.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자기표현 능력과 소통 역량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체계적인 스피치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전국 체인사업을 전개하며 스피치 교육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신감과 발표력을 길러주는 교육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웅변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스피치 교육을 통해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왔다.
또한 그는 직접 교육 현장에서 지도 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표현 능력과 리더십을 길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교육은 단순한 스피치교육에 머물지 않고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께 길러주는 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위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그런가 하면 그는 협회 운영상 필요한 기획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사무총장의 중책을 맡아 협회를 총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국웅변대회 집행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행사 운영 능력을 발휘해 왔으며, 메인 사회자로서 탁월한 진행 역량을 보여왔다.
그는 각종 행사에서 안정감 있는 진행과 뛰어난 순발력, 그리고 청중과 호흡하는 소통능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전국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차세대 인재 발굴과 웅변 스피치 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각종 선거에서 유세 연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뛰어난 연설 능력을 발휘해 왔다. 동시에 선거 공약 개발팀에 참여하여 정책개발 능력을 보여주는 등 기획과 전략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오랜 기간 대한불교조계종 삼보사의 청소년불교학교 교장으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심어주며 불교 문화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그의 웅변 정신이 인간교육과 사회봉사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우현 사무총장은 웅변 연사와 교육자, 사회자, 기획자, 그리고 조직 운영자로서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며 현대 웅변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여성 웅변지도자이다.
또한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사무총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본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매번 회의를 진행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지 않도록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공로는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 박미화/ 수석 공동의장
대한웅변인협회 수석 공동의장 박미화는 웅변 정신을 삶으로 실천해온 한국 여성웅변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한국인권옹호협회 주최 전국 인권옹호웅변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전체특상에 입상하여 대법원장상을 수상하였으며, 각종 전국 규모 웅변대회에서 3부요인상을 비롯하여 30여 회의 장관상 수상 실적을 가진 뛰어난 실력의 웅변가이다.
일찍이 그는 여성연설인협회 회장을 맡아 여성 웅변운동과 지도자 양성에 힘써왔으며, 여성의 사회참여와 권익 신장을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웅변계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리고 그는 1997년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오랜 세월 협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대한웅변인협회의 이사 겸 수석 공동의장으로서 협회를 이끌며 한국 웅변문화의 발전과 조직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특히, 미래 도전 글로벌 시민 정신 함양 전국웅변스피치대회의 대회장을 맡아 미래세대 인재 발굴과 웅변계 저변확대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시민 정신, 그리고 리더십을 심어주었다.
또한 그는 지역 정치에도 참여하여 서울특별시 용산구의회 제8대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발전과 주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왔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기자협회에서도 인정하여 2020년도 ‘지방자치 의정대상’ 수상과 ‘지방의정 봉사상’을 수상하는 등 지방정치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의정 활동은 생활 정치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통일부 통일 교육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통일 교육과 국민 통합운동에도 힘써왔으며, 민방위정신교육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며 국민의식 개혁에 기여해 왔다.
아울러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환경교육 분야에서 재능기부 교수로 활동해 왔으며, 언론사 시민기자로 ‘정론직필’의 정신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봉사와 사회참여 활동을 펼쳐왔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 그는 풍부한 학식과 실천력을 겸비한 지성적 실천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박미화 수석 공동의장은 정통 웅변인의 길을 걸어왔을 뿐 아니라, 언제나 과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기여하며 여성 웅변운동가로 활동해 온 그의 발자취는 역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특별히,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웅변운동가로 본 대한웅변사 편찬 작업에 참여하여 역사성과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정신과 활동은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김두진/ 상임의장
김두진 상임의장은 오랜 세월 웅변교육과 웅변단체 활동, 그리고 선거연설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오며 우리나라 웅변문화 발전에 기여해온 대표적인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남다른 친화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하며 웅변계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김두진 상임의장의 웅변단체 활동은 1990년 대한웅변인협회 친교부장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특유의 활달한 성품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회원 간의 친목과 단합을 이끌며 조직 활성화에 앞장섰다.
그는 2005년 대한웅변인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협회의 주요 사업과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웅변문화 발전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2024년에는 상임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협회 운영의 중심역할을 수행하며 협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2010년도부터 한국웅변단체총연합회 경기도본부장에 이어서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웅변인들의 화합과 조직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웅변문화 확산을 위한 언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웅변신문사 서울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웅변인 상호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 웅변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김두진 의장은 교육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1982년부터 꿈나무웅변학원과 백문학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왔다. 그는 학생들에게 발표력과 설득력은 물론, 자신감과 리더십을 길러주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고 있다. 이는 그가 걸어온 교육자의 길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 영역은 웅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정치 분야에서도 선거연설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의 초빙을 받아 각종 선거 후보자들의 선거 전략과 유세기법을 지도하며 효과적인 대중연설 방법을 전수해 왔다. 특히, 오랜 기간 연구와 현장 경험을 통해 축적된 선거연설 노하우를 바탕으로 후보자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실제로 그가 지도한 경기도의원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면서 그의 전문성과 지도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거연설이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문화 성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대학 내 관련 학과 개설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그는 주식회사 대한조경의 전무이사로 기업경영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다양한 조직 운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김두진 상임의장은 단순한 웅변가가 아니라, 교육자, 조직가, 언론인, 선거연설 전문가, 기업인의 역할을 두루 수행하며 웅변운동의 외연을 넓혀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특별히,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로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활동상과 공로는 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 홍현수/ 공동의장 겸 감사
웅변가 홍현수는 평생 교육자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인재 양성과 사회교육에 헌신해온 대표적인 교육운동가이자 웅변지도자이다. 그는 웅변을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교육의 한 분야로 인식하며, 오랜 세월 후진 양성과 국민의 소통 역량 강화를 위해 힘써왔다.
그는 젊은 시절인 1982년 웅변학원을 개설하여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자신감과 의사 표현 능력, 그리고 인성을 길러주는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교육의 흐름도 바뀌어 기존의 웅변교육을 실용적인 스피치교육으로 전환하여 스피치학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공직자, 기업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의사소통 능력과 리더십 향상 교육을 실시하며 자기계발과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서울 강남권인 서초구에서 오랫동안 교육 활동을 펼치며 뛰어난 교육 성과를 인정받아 명교수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스피치 역량 강화와 프레젠테이션 기법,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 등을 강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서경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출신으로서의 식견과 스피치 역량을 바탕으로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비롯한 각종 공공 교육기관과 삼성이나 현대 등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직무역량 강화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농협중앙회 등에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동기부여, 변화와 혁신을 주제로 활발한 교육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의 강의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내용을 지도하여 많은 교육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또한 그는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로 오랜 기간 미래의 지도자와 사회지도층에게 설득력 있는 정치연설과 토론, 그리고 연설기법 등을 지도하며 우리나라 정치문화의 품격을 높이는데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웅변가 홍현수는 평생동안 교육 현장을 지키며 웅변과 스피치교육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온 사회교육자이자 교육운동가이다.
대한웅변인협회에서의 활동에서도 그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는 협회의 공동의장으로서 웅변운동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협회의 주요 사업을 이끌어왔으며, 집행부 감사로서 협회 운영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또한 협회의 목적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민국 웅변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대한웅변인협회와 국가보훈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독립선열 정신선양 대통령상 전국웅변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아 공정하고 권위 있는 심사를 이끌었다. 그는 심사평을 통해 참가 연사들에게 “과거의 형식적이고 과장된 웅변기교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표현으로 청중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웅변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웅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그의 교육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협회 공동의장 겸 감사인 홍현수는 지적인 통찰력과 열정적인 교육열을 함께 갖춘 웅변가이다. 그는 웅변과 스피치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사회교육을 실천해 왔으며, 대한웅변인협회 핵심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웅변문화 발전을 위하여 꾸준하게 헌신해 오고 있다. 이울러 그는 특유의 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협회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왔다.
한 마디로, 웅변가 홍현수는 교육자의 사명감과 웅변가의 열정, 그리고 지도자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평생을 인재 양성과 사회교육, 그리고 웅변문화 창달에 헌신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또한 그는 그의 지적 역량과 철학을 바탕으로 본 웅변사의 편찬작업에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공로는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이종원/ 공동의장 겸 감사
웅변인 이종원은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 겸 이사회 감사로, 뛰어난 웅변 실력과 음악적 재능, 그리고 탁월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웅변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재다능한 웅변가이다.
그는 자유수호 전국웅변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입상 경력을 가진 실력파 웅변가로, 강한 전달력과 설득력 있는 웅변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관을 주제로 하는 그의 웅변은 힘 있고 진정성 있는 음성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며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는 웅변은 원고 내용도 중요하지만, 연사는 반드시 복식 호흡을 통해 안정된 발성과 깊이 있는 음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슴이 아닌 배에서 나오는 힘 있는 소리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신념 아래, 웅변에서 호흡과 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후배 연사들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웅변과 음악이라는 두 분야를 함께 경험한 삶 속에서 더욱 깊이 체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종원은 웅변가이면서 동시에 대중가요 가수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배호를 기념하는 단체‘의 가요제에서 입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각종 무대와 행사에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배호 관련 단체의 가요제 진행 사회자로 활동하며, 특유의 입담과 무대 진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음악과 웅변은 모두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해당 단체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조직 운영과 행사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뛰어난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뛰어나며, 지역 향우회 활동과 각종 사회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시지부 사무처장을 맡아 회원 간 화합과 교류를 이끌며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 겸 이사회 감사라는 중책을 맡아 협회의 발전과 화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웅변문화 창달과 협회 목적 사업의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특히, 그는 후배 웅변인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며, 웅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통의 문화라는 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뛰어난 웅변 실력과 음악적 재능, 그리고 사람을 아우르는 친화력을 가지고 폭넓은 활동을 하고있는 이종원은 오랜 기간 대한웅변인협회를 통하여 웅변문화 발전과 조직의 화합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웅변지도자이다.
특히, 그는 그의 풍부한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본 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공로는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한기종/ 공동의장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 한기종은 뜨거운 신념과 민족정신으로 살아온 웅변가이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 변요한이 설립한 순천 매산고등학교 웅변부 장학생 출신으로 학창 시절부터 민족정신과 정의로운 사회의 가치를 배우며 웅변 연사로 활동해 왔다.
특히, 매산고등학교는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지 않고 자진 폐교를 선택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학교로, 민족적 양심과 신앙심, 그리고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의 터전이었다. 이러한 학교의 정신은 훗날 웅변가 한기종의 가치관과 웅변 철학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한기종은 1976년 광주 학생의 날 기념 전국웅변대회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웅변으로 전체특상에 입상하며 국회의장상을 수상하였다. 이처럼 그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게 된 것은 웅변을 통하여 그가 가진 신념과 민족정신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고향인 순천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웅변문화 발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특히, 그는 고려말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최석 선생의 숭덕 정신을 기리는 ’팔마비‘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고자 팔마기쟁탈 전국웅변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의 대표적 웅변 행사로 자리 잡게 하였다.
이 대회는 청렴과 정의는 물론, 올바른 공직 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 지역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은 물론, 주민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 속에 대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연사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대회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그 호응에 힘입어 연 2회로 확대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국회의장상 등 3부요인상과 15개 정부 부처 장관상이 수여되면서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받게 되었다.
웅변가 한기종은 웅변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뿐 아니라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그는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의 유세 요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연설 분야에서도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선거 유세의 공로로 공기업에 특채되었으며, 국가와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공공분야 업무에 헌신하였다.
현재,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조직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그의 친화력과 포용력으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며 조직원들의 단합을 이끌고 있으며, 협회의 공익사업과 웅변계 저변확대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그는 고향인 순천지역에서 관광숙박업인 펜션 ‘더스카이풀빌라’를 운영하면서도 지역 봉사와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어 학우들의 친교와 권익 보호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웅변가 한기종은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의 벌전에 기여한 민족정신과 정의감으로 활동해온 실천적 웅변가이다.
▰ 이재학/ 공동의장
이재학 공동의장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일찍이 제주특별지치도에 정착하여 제주지역 웅변문화 발전과 후진 양성에 헌신해온 웅변지도자이다.
그는 전국웅변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웅변가로 그의 뛰어난 웅변 실력과 강한 실천력으로 한국 웅변계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해왔다.
특히, 그는 제주지역에서 오랜 기간 웅변교육 활동을 펼치며 수많은 연사를 양성해 왔고, 지역사회에 올바른 스피치 문화와 웅변 정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제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협회의 각종 행사와 목적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웅변운동의 활성화와 협회의 위상 제고를 위해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웅변가 이재학은 1990년 개최된 범죄 추방을 위한 민생치안 확립 전국웅변대회에서 전체특상으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어 여러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에서 수차례 장관상을 수상하며 그이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고, 마침내 1998년 3,1 민족정신 계승 전국웅변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한 웅변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웅변은 힘 있는 발성과 진정성 있는 표현, 그리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뜨거운 사명감이 잘 어우러져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웅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동중학교 1학년 시절 교내 웅변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절에 처음 경험하게 된 연단의 경험이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웅변은 그의 인생을 이끄는 중요한 길이 되었다.
특히, 1978년 명지대학교 장학생선발 웅변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여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웅변가로서의 가능성과 역량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웅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며 각종 행사와 대회에 시범 연사로 초청되어 감동적인 웅변을 선보이는 등 언제 어디서나 역량 있는 웅변 연사로서의 길을 걸어온 열정적인 연사였다.
그는 제주지역에 정착한 뒤 그의 저서 ‘사자후와 웅변’, 그리고 ‘스피치교육 교재’를 바탕으로 웅변학원을 설립하여 지역의 인재 양성과 웅변문화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으며, 제주도의 ‘한라기 쟁탈 전국웅변대회’를 1회부터 6회 대회까지 매년 연례행사로 개최하는 등 웅변대회를 통한 인재 발굴과 국민의식 개혁에 힘써왔다. 또한 그는 1980년대 중반에 대한웅변인협회 제주도본부 사무차장을 시작으로 본부장을 거쳐 협회 본부 조직2부장과 이사,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며 협회 조직의 확대와 지역 활성화에 헌신하였다.
또한 지역의 학원연합회 웅변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와 소방교육대 및 사회단체 강연 등을 통해 스피치교육과 사회계몽 활동에도 앞장섰다.
그런가 하면, 정당인으로 활동하며 1992년 대통령 선거의 유세단장으로 김영삼 후보의 선거 유세를 시작으로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후보 등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중앙당 유세 연사로 활약하며 탁월한 대중연설 능력을 인정받은 정치연설가이기도 하다.
▰ 김만수/ 공동의장
김민수 대한웅변인협회 공동의장은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웅변가로 교육, 학문, 정치전략, 사회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해온 웅변가이다. 그는 웅변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키웠을 뿐 아니라, 평생을 교육과 봉사, 그리고 지역의 웅변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1963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서울 단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와 사회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았으며, 이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학문적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위민(爲民) 변통(變通) 사상’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학문적 기반을 더울 공고히 하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경상북도 포항에 정착하여 대한유치원을 설립 운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포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와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과 인재 육성에 힘썼다.
그는 교육 분야 뿐만 아니라, 장학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북장학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인재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힘썼으며, 경북학숙원장을 맡아 지방출신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필리핀 예베져국제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국제적 교육 교류와 학문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웅변 인생은 초등학교 2학년때 시작되었다. 그는 각종 웅변대회에 참가하며 실력을 보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국청년회의소가 주최한 일본 파견 연사 선발 전국웅변대회에서 전체특등을 차지하며 대법원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이후에도 전국웅변대회에서 무려 20여 차례에 걸쳐 장관상을 수상하며 웅변연사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그는 1987년 3,1절 기념 민족정신 계승 나의 주장 전국웅변대회에서 경상북도 대표연사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웅변가가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웅변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대한웅변인협회 학생부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이다. 이후 그는 고향인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며 대한웅변인협회 경상북도본부장으로 지역의 웅변문화 창달에 힘썼으며, 현재 공동의장으로 협회의 발전과 웅변 문화 창단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그는 정치와 선거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95년 제1회 전국 동시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포항에서 전국 최초로 선거컨설팅 전문기관인 ‘영남정치아카데미’와 ‘선거전략 홍보센터 Y&J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선거전략과 홍보 분야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며 시,도자사와 시장, 군수,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등 114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거두었다. 이로써 그는 정치권에서 ’당선제조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또 국제로타리 3530지구 남포한로타리클럽 회장과 지구 총재로 국내외 봉사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초아의 봉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조국을 위해 가슴으로 말한다’와 ‘성공하는 사람은 스피치가 다르다’, ‘위기의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를 비롯하여 총 26권이 있다.
김만수 공동의장의 삶은 웅변을 통해 꿈을 키우고, 학문을 통해 전문성을 쌓으며, 봉사를 통해 사회에 헌신해온 실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정신과 활동상은 대한민국 웅변사와 지역사회 발전사에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 이현수/ 법률지원단장
이현수 대한웅변인협회 법률지원단장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한 금융인이자 노동운동가, 법률전문가이며 사회봉사 실천가이다. 또한 웅변을 통해 사회 정의와 민족정신을 실천해온 대표적인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그는 동학농민운동과 독립운동의 정신이 강하게 이어져 온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전주상업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주경야독의 자세로 학업과 생계를 함께 해결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이후, 그는 은행원 공개채용에 합격하여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였고, 단국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회 정의와 민족정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20대 초반 은행에 근무하면서 웅변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말을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국민을 계몽하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는 웅변대회에 참가하며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담은 웅변을 펼쳤고, 이를 통해 그는 뛰어난 웅변 실력을 입증하였다.
특히, 그는 1980년 동학농민운동 계승 전국웅변대회에서 농수산부장관상을 수상하며 민족정신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각 부 장관상 수상의 전적을 쌓았으며, 사회 정의의 실천을 주제로 한 전국웅변대회에서는 연이어 전체특등을 차지하며 2회 연속 대법원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로써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웅변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웅변가 이현수의 웅변 철학은 노동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한국주택은행의 노동조합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주택은행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과 전국금융노련 회계감사를 맡아 근로자의 권익 향상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힘썼다.
그런가 하면, 그는 법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법무법인 민주의 법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법률실무의 중심에서 법조계를 움직이는 현장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대한변호사회 사무직원회 회장을 3선에 걸쳐 역임하며 법률 사무 종사자들의 권익 향상과 전문성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특히 약자에게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해 왔다.
그는 교육과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배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시민 생활과 법률 강의하였고,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 최고위과정 법률고문으로서 후학과 사회지도층에게 법률적 식견을 전하는 데 힘써왔는가 하면, 사단법인 서울시민회 법률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법치주의와 시민권익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정신 또한 남달랐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통장으로 활동하며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해 왔고, 사단법인 한국파크골프재단 서울시연합회장으로 국민의 건강증진과 건전한 여가 문화 조성을 위한 봉사 활동에도 헌신하는 실천적 웅변가이다.
현재,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법률지원단장으로 활동하며 웅변인들의 권익보호와 법률지원에 힘쓰고 있다. 또한 협회의 조직 역량 강화와 목적 사업의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웅변운동의 발전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웅변가 이현수의 삶은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역사이며, 정의와 실천의 길을 걸어온 그의 정신과 업적은 많은 웅변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이희청/ 이사
대한웅변인협회 이희청은 협회의 창립이념과 웅변 정신에 깊이 공감하며, 오랜 기간 다양한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실천적 웅변가이다.
그는 웅변을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웅변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청소년 육성과 사회복지, 환경운동, 교육 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웅변이 사회를 밝히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소 그는 청소년 보호와 인성 함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래세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그는 한국청소년보호육성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청소년들의 보호와 육성, 건전한 사회문화 조성, 그리고 밝은 미래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국가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교육과 보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제미래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홍익대학교 만리포수련원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교육사업과 복지 증진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단순한 시설 운영에 머물지 않고 청소년 예절교육과 인성교육, 그리고 공동체 정신 함양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래 세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을 위하여 열정을 바쳐왔다. 특히, 인간 존중과 배려의 정신, 그리고 건전한 시민의식 함양을 중요하게 여기며 활동해온 그의 삶은 한국의 웅변사의 한 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실천적 웅변가 이희청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친환경재단 이사장으로서 환경보호 운동에도 헌신해온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환경 문제와 생태계 파괴는 심각성을 인식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 왔고, 친환경적 가치 확산과 환경보호 의식 함양에도 힘써왔다.
또한 그는 서울특별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감사로 재직하면서 공공기관의 건전한 운영과 시민 생활의 안정을 위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수행하였다. 특히, 그는 농수산물 공급의 안정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운영 전반을 점검하며 시민 생활의 안정과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해 시민을 위한 봉사자의 자세를 가지고 공직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후학 지도와 교육 활동을 해왔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교육이야 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신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실천적 웅변가 이희청은 사회복지와 청소년 육성, 그리고 환경 운동과 교육 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온 열정적 활동가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정치와 정당 활동에도 참여하며 사회 변화와 국가 발전을 위한 역할을 모색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정당의 민주화에 많은 기여를 하며 정당사에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서도 협회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직 관리와 행사 추진, 그리고 사업의 운영 등 다양한 면에서 많은 기여를 해 왔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천적 제안을 통해 협회 발전에 공헌해 왔다.
웅변가 이희청은 확고한 웅변 정신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해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 김칠곤/ 이사
김칠곤 이사는 전라남도 나주 태생의 웅변가이다. 예로부터 나주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맞서 싸운 수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한 충절과 애국의 고장이다. 또한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댕기머리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촉발한 곳으로, 정의로운 저항정신과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고장이다.
그는 학창 시절 당대 호남지역에서 뛰어난 웅변술로 명성을 떨치던 장희정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웅변에 입문하였다. 그 당시, 교내 웅변대회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닦았으며, 마침내 1988년 3,15의거 기념 제22회 전국웅변대회 일반부에서 특상을 수강하고 상공부장관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웅변역량과 정신은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 출생지인 나주가 간직한 애국과 정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0년 서울 강남지역에 현대스피치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교육 운동에 나섰다. 당시, 강남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었지만, 체계적인 스피치 교육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으로 스피치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많은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교육에 힘써왔다.
특히, 그는 제자들에게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웅변술과 발표기법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기본으로 공감과 배려의 가치를 심어주었으며, 미래사회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과 글로벌 시민 정신을 함양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교육철학은 많은 제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지역사회 인재 양성과 건강한 시민의식 함양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웅변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는 협회의 창립 취지와 목적에 따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곧 애국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협회 발전에 힘을 쏟아왔다.
특히, 그는 협회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집행부의 각종 사업의 추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특유의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회원 간의 화합을 이끌고 조직의 확대에 기여하는 등 이사로서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해 왔다.
그뿐 아니라, 그는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화원 단합대회와 워크숍 등 각종 행사에서 여흥 시간을 이끌며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인간적인 매력은 협회의 친목 증진과 화합에도 큰 힘이 되었다.
웅변가 김칠곤 이사는 평생을 웅변과 스피치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며 인재를 양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 왔으며, 웅변인의 사명감과 애국정신을 실천하며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과 한국 사회에 기여해 온 참교육자요, 애국적 웅변가이다.
▰ 예영미/ 이사
여성웅변가 예영미는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웅변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대표적인 여성 웅변교육자이다. 그는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오랜 세월 웅변과 스피치 교육에 전념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고, 지역사회와 협회의 발전에도 꾸준하게 기여해왔다.
예영미는 학창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1983년 서울 수복기념 전국웅변대회에서 고등부 특등상을 수상하며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후, 경찰서장상을 비롯하여 전국웅변대회에서 대학총장상, 국회의원상, 초대 문교부장관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상, 국회부의장상 등 다양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실력 있는 웅변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러한 수상 경력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꾸준한 자기 연마와 웅변에 대한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랜 기간 갈고닦은 웅변 실력과 교육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청에 개인 웅변교습소를 신고하여 본격적인 웅변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웅변학원 강사와 초등학교 웅변 특기 적성 강사로 활동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언어표현 능력과 자신감, 그리고 발표력과 리더십을 길러주는 데 힘썼다.
그의 교육 활동은 웅변교육에만 머물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스피치 교육까지 영역을 넓히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었다. 특히, 논리적인 표현력과 설득력을 높이는 교육에 집중하여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신뢰를 받았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우수한 웅변교육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각급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는 선거연설 기법과 대중연설을 지도하였다. 이 지도 활동을 통해 후보자의 철학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화법,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설득력, 그리고 자신감 있는 연설 자세 등을 체계적으로 지도하여 많은 후보자들에게 당선이 되도록 하였다.
그는 웅변이 단순히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웅변이 단순히 발표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통과 설득의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하며 교육의 범위를 넓혀 왔던 것이다.
예영미는 대구에 거주하면서도 대한웅변인협회 이사로 선임되어 협회의 각종 사업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협회의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전국의 웅변인들과 교류하며 웅변운동을 위해 힘을 보태는 등 조직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맡아 협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교육 활동과 협회 활동 외에도 다양한 봉사 활동을 꾸준하게 실천해 왔다. 지역사회에서 재능기부를 통해 스피치 교육과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주민들과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봉사 활동을 해왔다.
이처럼 평생을 웅변교육과 스피치 문화발전에 헌신해온 이영미는 뛰어난 웅변가이자 후학 양성에 힘써온 교육자이며, 협회의 발전을 위해 봉사해온 웅변운동가이다. 그의 삶은 웅변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교육자의 신념이 담긴 발자취였으며, 오늘날 여성 웅변인의 모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성웅변가 예영미는 우리나라 웅변문화의 발전과 웅변교육의 저변확대에 큰 공헌을 남긴 웅변교육자요, 웅변운동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심진숙/ 사무국장
웅변가 심진숙은 대한웅변인협회 사무국장으로서 사무총장을 보좌하며 협회 운영과 각종 사업 추진에 많은 기여를 해온 여성 웅변인이다.
그는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협회의 실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각종 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의 운영을 비롯하여 행사 진행과 조직 활성화에 힘써왔다. 특히, 밝고 적극적인 성품과 뛰어난 친화력으로 회원 간의 화합과 분위기를 조성하며 협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는 협회에서 개최하는 각종 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의 운영 실무를 도맡아 수행해 왔다. 그중에서도 대회와 행사의 사회자로 활약하며 안정감 있는 진행으로 행사 진행을 도왔다. 그의 사회는 현장 분위기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친근함과 따듯함을 갖추고 있어 웅변인들 사이에서도 신뢰받는 진행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협회 소속 웅변인으로서 남다른 소속감과 자부심, 그리고 웅변문화 발전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협회의 각종 사업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특히, 웅변을 통한 올바른 언어문화 확산과 청소년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며, 웅변문화의 저변확대와 차세대 인재 양성을 위해 꾸준하게 노력을 해 왔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참 웅변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전국웅변대회에 출전하여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웅변 연사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웅변가이다. 그의 웅변은 진실 되면서 호소력이 강해서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가 있다. 이러한 경험과 웅변 실력은 이후 스피치 교육과 지도 활동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으며, 교육 현장에서도 실질적인 지도 역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웅변가 심진숙은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MSL스피치지도사와 어린이 스피치 강사로서 20여 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하며 청소년들의 표현 능력과 자신감 향상에 힘써왔다. 특히, 지역 문화복지센터와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MSL 발표력 스피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말하기 습관과 발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 활동에 헌신해 왔다.
그의 교육은 단순히 발표기술을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인성교육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또한 수업을 통해 실력을 갖춘 청소년들에게는 전국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실제 연단 경험과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평소,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품을 지닌 웅변가 심진숙은 자신의 발전분 아니라 협회의 성장과 웅변문화 확산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웅변가이다. 그는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과 봉사 정신을 바탕으로 협회의 각종 사업과 행사에 솔선수범하며 선후배 웅변인들과의 교류와 화합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처럼 심진숙 사무국장은 웅변 연사와 교육자, 행사 진행자, 그리고 조직 운영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현대 웅변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웅변지도자이다. 특히, 청소년 스피치 교육과 웅변문화 저변확대를 위한 꾸준한 실천 활동을 통해 웅변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이어가고 있으며, 많은 웅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새 시대의 여성 웅변지도자이다.
▰ 이영자/ 교육국장
웅변가 이영자는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웅변과 스피치교육, 그리고 시낭송과 여성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사회 발전과 웅변문화 창달에 헌신해온 교육자요, 여성 웅변가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웅변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올바른 말과 아름다운 언어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온 실천적 웅변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아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에서 장관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여성 웅변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호감 가는 음성과 호소력 있는 웅변으로 청중은 물론, 심사위원들로부터 좋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웅변의 가치와 정신을몸소 실천해 왔다.
그는 자신의 웅변역량을 개인의 성취에 머물게 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오랜 기간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웅변과 시피치를 지도하며 자신감과 표현력,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하여 힘썼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의 교육은 단순히 기능적 측면뿐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소통과 인생을 함께 강조하는 교육으로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웅변가 이영자는 시낭송 분야에서도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전문 시낭송가로 인정을 받았고, 지역의 행정복지센터와 작은문화공간 등에서 시낭송가로 활동하며 시민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과 우리말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그의 시낭송은 단순한 낭송을 넘어 시인의 감성과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문화예술 활동으로 지역 문화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구시 수성구여성단체협의회 홍보이사로 활동하며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여성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특히, 그는 다양한 봉사 활동과 지역 행사, 그리고 공익사업을 통해 여성의 역량을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힘써왔으며, 따듯한 리더십과 봉사 정신으로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대한웅변인협회와의 인연은 2021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그의 풍부한 교육경험과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협회의 교육국장을 맡게 되었으며, 화원 교육에 기여해 왔다. 그는 스피치 강사 양성과정의 전임강사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웅변지도자와 전문 스피치강사를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는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중앙의 교육 현장에 접목시키고, 중앙의 새로운 교육기법을 다시 지역에 확산시키는 가교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웅변문화의 균형 있는 발전에 힘쓰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웅변운동의 저변 확대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대한웅변인협회 교육국장 이영자 선생은 교육자와 시낭송가, 여성운동가, 그리고 웅변지도자로서 각각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사회에 환원해 왔으며, 그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의 힘을 믿고, 교육과 문화, 봉사를 통해서 더 따뜻하고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꾸준하게 헌신해 왔다.
이처럼 이영자 선생은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며 웅변과 스피치교육을 실천하는 교육자이고, 시를 통해 아름다운 언어문화를 전하는 시낭송가이며, 지역사회를 위한 여성운동가이자,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을 이끄는 여성 웅변지도자이다.
그의 삶은 배움과 봉사,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참된 웅변 정신을 보여주는 웅변인의 귀감이 되고있다.
▰ 김효근/ 연구원장
연구원장 김효근은 학문적 연구와 현장 활동을 함께 실천해온 지성의 웅변가로, 한국 웅변과 스피치 분야의 학술적 발전과 교육기반 확립에 기여해온 인물이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독립선열 정신 전국웅변대회에서 대상에 입상하여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웅변역량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협회의 연구원장과 대한웅변스피치학회 회장을 맡아 웅변과 스피치 분야의 전문성과 학술적 체계화를 위해 힘써왔다.
그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웅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문과 실천을 결합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학자적 자세를 바탕으로 웅변과 스피치의 이론적 연구와 교육 활동에 헌신하며, 웅변과 스피치 교육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학술 네트워크 구축과 대외 협력을 활성화하여 국내외 전문가들과 교류를 확대하고, 웅변과 스피치가 단순한 발표기술을 넘어 학문적 연구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왔다.
특히, 대한웅변스피치학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학회의 체계적 운영과 전문성 강화를 추진하였으며, 학술세미나와 연구 발표회,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웅변과 스피치 분야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는 웅변교육이 민주사회 시민의 소통 역량과 리더십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신념 아래 학문적 연구와 현장 교육을 함께 실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재직 중인 지역의 주민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통 역량 강화 교육과 발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발전과 공공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실무형 발표능력과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길러주는데 열정을 쏟아왔으며, 청년 세대가 자신감 있는 표현력과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해 왔다.
이와 함께 각종 웅변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정하고 전문성 있는 심사를 통해 후진 양성과 웅변문화 발전에 힘써 고, 협회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학문적 깊이와 실천적 열정을 함께 갖춘 그는 오늘날 한국 웅변과 스피치 분야의 학술적 발전을 이끄는 대표적인 연구자이며, 지성과 실천력을 갖춘 진정한 웅변가이다.
▰ 이택곤/ 학술원장
대한웅변인협회 웅변학술원장 이택곤은 학문적 깊이와 실천적 교육 역량을 겸비한 웅변가이다.
그는 현대가 요구하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 교육의 방향을 연구하며,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웅변문화의 제시하고 있는 웅변교육자이자 연구자이다.
그는 1981년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 육군대표로 출전하여 국방부장관상을 수상하며 협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한국자유총연맹이 주최한 전국웅변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그는 웅변가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설득력과 지도력을 겸비한 연사로 주목받았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이 설립한 한국스피치능력계발학회를 기반으로 파워스피치리더십(Speech Power Leadership)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 운영하며 새로운 리더십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소양과 소통능력, 그리고 공감과 설득의 리더십을 함께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 을지대학교 The Most 최고경영자과정과 문경대학교 성인스피치과정 강의를 비롯하여 나사렛대학교와 대구매일신문 CEO스피치리더십 등의 강의를 진행하며 수많은 지도자와 성인 학습자들에게 스피치리더십 교육 과정을 실시해 왔다. 그의 강의는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실전형 교육이라는 점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족 중심의 스피치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엄마와 함께하는 동행스피치’, ‘부모와 함께하는 청소년스피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건강한 가정 소통 문화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은 웅변과 스피치 교육을 통하여 가정과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하는 인성교육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그의 활동은 교육과 사회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인 그는 나사렛대학교 기독학부 신학과와 동 대학교 선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캠프미팅사역학교를 운영하면서 설교의 기능적 측면에 필요한 스피치기법과 전달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이는 설교의 본질이 소통을 통하여 말씀에 따라 은혜를 받는 데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는 학구열로 평택대학교와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등에서 스피치리더십 석사과정과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하며 전문성을 넓혀왔다.
그는 이처럼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새누리당의 중앙연수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 스피치 교육 6개 과정의 책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평생교육 발전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지식경제부 공무원과 행정안전부 공무원교육원, 산업안전기술공사 등 정부 기관과 기업체에도 파워스피치리더십 전문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공직사회와 산업현장의 소통능력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대한웅변인협회 학술원장 이택곤은 연구와 교육 활동에 몰두하며 현대 웅변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웅변가이다. 그는 지성과 실천력을 함께 갖춘 스피치 리더십교육 전문가로서 웅변의 학문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는 웅변교육운동가이다.
▰ 전국 각 시,도지역본부장
▰ 강민선/ 서울특별시본부장 겸 연수원장
1994년생으로 협회 서울시본부장과 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강민선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청년 웅변가이자 스피치 교육 전문가로, 웅변문화의 현대적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웅변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하는 독립선열 정신 전국웅변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정신을 담은 원고에 따라 독립선열들의 민족정신을 계승하려는 그의 신념에 따라 진정성 있는 웅변으로 청중을 몰입으로 이끌었으며,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슴으로 말하는 진정한 연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대한웅변인협회 청년국장이었던 그는 이 대회를 계기로 그의 웅변역량과 지도력을 인정받아 협회 중앙 무대인 서울특별시본부장과 연수원장으로 발탁이 되어 서울지역의 웅변운동을 이끌면서 본격적인 후진 양성과 교육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협회 연수원을 중심으로 스피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며 차세대 웅변인과 스피치 지도자 양성에 힘 왔다. 특히,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선거연설 워크숍과 실전 스피치 훈련을 진행하여 정치연설의 전문성과 설득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젊은 강사다운 감각적인 구성과 참신한 교육방식, 그리고 열정적인 교육 진행으로 유명하다. 또한 수강생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현장 중심의 실습 교육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교육의 만족도가 높고 강의마다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협회 활동과 별도로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전문 스피치 교육기관인 ‘리더스 스피치커뮤니케이션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저변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기관을 통해 발표력과 리더십, 그리고 인간관계 소통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며 현대사회에 필요한 실용적 스피치 교육을 보급하고 있다.
웅변가 강민선은 뛰어난 연설 능력과 순발력 있는 진행 능력으로 협회가 주최하는 각종 웅변대회와 기념행사의 사회를 맡아 안정감 있는 진행을 보여주고 있으며, 외부기관과 단체 행사에서도 전문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정치연설에 관한 전문 식견을 바탕으로 뛰어난 선거연설 역량을 갖추고 있어 충청남도지사의 선거 캠프로부터 연이어 요청을 받고 연설 솜씨를 발휘하는가 하면,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후보자 연설 지도와 메시지 전달 전략 수립에도 참여해왔다.
아울러 그는 협회의 각종 목적 사업과 공익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웅변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청년 세대 특유의 역동성과 실천력을 바탕으로 웅변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는 그는 오늘날 웅변운동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표적인 청년 웅변가이자 웅변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별히, 그는 본 대한웅변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자료 수집을 비롯한 편찬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공로는 대한웅변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김동일/ 충청북도본부장
김동일 본부장은 충청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청주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충북 웅변운동의 발전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웅변지도자이다.
그는 뛰어난 웅변 실력, 헌신적인 봉사 정신, 그리고 폭넓은 사회활동을 바탕으로 웅변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온 실천적 웅변가이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남다른 웅변 실력을 발휘하며 각종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그는 전국웅변대회에서 최고상인 전체특상으로 국무총리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에서 주목받는 연사로 성장하였다.
김동일 본부장은 젊은 시절부터 대한웅변인협회에 가입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웅변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는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협회의 각종 사업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전국의 웅변인들과 긴밀한 교류를 이어오며 협회의 발전과 조직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특히, 협회가 주최하는 전국웅변 충북지역 예선대회를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우수한 연사를 꾸준하게 발굴해 왔다. 그리고 그가 지도하고 배출한 연사들은 전국웅변대회 본선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충북 웅변의 위상을 높였고, 이는 지역의 웅변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성과를 지역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웅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국민 계몽과 건전한 웅변문화 창달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의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충청북도내 여러 기관과 사회단체가 개최하는 웅변 스피치대회에도 적극 협력하였다. 대표적으로 교육감기 학생웅변대회와 직지사랑 전국웅변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거나 운영하며 시민의식 함양과 더불어 인재 양성과 국민 계몽에 헌신하였다.
한편, 그는 직장에서도 맡은 바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주식회사 한전 FMS 남청주변전소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투철한 책임감과 성실한 근무 자세를 인정받아 모범사원 표창을 받았으며, 조직의 발전과 화합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청주시 학교운영위원회 회장으로 학교의 교육 환경개선과 교육정책의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동일 본부장의 삶은 봉사와 나눔의 실천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풍년적십자봉사회 회장, 하모니라이온스클럽 회장,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충북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활동은 웅변가가 지향해야 할 봉사 정신을 삶 속에서 몸소 실천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문화 예술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재능 시낭송협회 충북지회장으로 활동하며 시 낭송문화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고, ‘명사 초청 목요 시 토크’를 진행하면서 문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김동일 본부장은 웅변가이면서 교육자이고, 기업인이면서 사회봉사자이자 문화운동가이다. 그는 어느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의 삶은 웅변이 말라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그는 충청북도 웅변운동의 중심에서 후배 웅변인들을 이끌며 협회의 발전과 국민 계몽운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애국정신과 봉사 정신, 그리고 교육에 대한 사명감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웅변 정신은 한국 웅변운동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충북의 대표적인 웅변지도자이자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 변재홍/ 전북특별자치도본부장
웅변가 변재홍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를 중심으로 평생을 교육과 봉사, 그리고 웅변운동에 헌신해온 지역사회의 대표적인 교육자이자 웅변운동 지도자이다.
그는 대학에서 사무자동화와 아동복지학을 전공하며 교육과 복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읍시에 웅변학원을 설립하여 수많은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의사 표현 능력과 건전한 인성교육을 실천해 왔다.
또한 그는 학원교육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한국학원총연합회 정읍시분회 사무국장에 이어 분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전북특별자치도지회 부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학원 교육의 건전한 발전과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아동 복지분야에서도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보육교사 자격증과 어린이집 원장 자격증을 취득하여 어린이집을 운영해 왔으며, 정읍시 어린이집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보육 환경 개선과 어린이집의 안정적 운영기반 조성에 힘썼다. 또한 영유아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며 지역의 보육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변재홍 본부장은 교육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인 애육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왔으며, 장애인 자활공동체인 나눔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의 자립과 복지증진을 위해 힘써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정읍시 평생학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시민들의 평생학습 활성화와 학습문화 확산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교육 및 사회봉사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읍시장 표창과 전북특별자치도지사 표창을 받았으며, 행정안전부장관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표창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그가 확고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정신에 따라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그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보건 복지 분야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한국 케어복지사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 정읍시지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민의 건강증진과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또 청소년 보화와 선도 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읍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회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법무부 정읍지구 범죄예방위원회 학교폭력분과위원장으로서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 환경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는 내장산 자연생태보존협의회 총무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환경운동에도 앞장서왔다.
특히, 웅변가 변재홍은 대한웅변인협회 전북특별자치도본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화원의 화합과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현재도 전북도본부장으로서 후진 양성과 지역 웅변운동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으며, 중앙 본부의 각종 목적 사업의 추진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오고 있을 뿐 아니라, 웅변스피치대회와 교육사업을 통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민주 시민의식을 심어주며 지역의 웅변운동을 이끌고 있다.
변재홍 본부장은 교육자와 사회복지 실천가, 그리고 환경운동가와 지역사회 운동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애국심과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서온 전북의 대표적인 웅변운동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 박성연/ 충청남도 본부장
박성연 본부장은 충청남도 지역의 대표적인 웅변교육자요, 사회교육가이며, 문학으로 인간의 감수성을 깨우려는 예술정신을 갖춘 소설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의 발전과 지역 웅변문화 확산을 위해 헌신하며, 충청남도 본부장으로서 지역 웅변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천안과 아산지역에서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웅변과 스피치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청소년과 시민들을 지도해 온 교육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저서 ‘스며드는 스피치 & 리더십 실전’은 전국의 각 학원에서 실용스피치 교육 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말하기 기술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에 따른 올바른 표현 능력을 길러주는 참된 스피치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전국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하는 등 탁월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그의 역량은 그의 교육 현장에 그대로 녹아들어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 각종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박성연 본부장의 교육이 돋보이는 점은 소설가로서의 문학적 역량을 웅변교육에 접목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연사들에게 단순한 문장 나열식 원고가 아니라, 주제에 맞는 구성과 감동, 그리고 청중을 몰입으로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원고작성법을 지도한다. 그 결과 그의 제자들은 내용이 참신하고 개성이 강한 웅변원고를 바탕으로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강한 전달력과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학원 교육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의 평생교육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 교육청 산하 평생교육원과 초,중,고등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스피치와 발표 교육을 담당하며, 청소년들의 자신감과 자기표현 능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피치 특강과 인성교육 강연을 펼치며 지역사회의 소통 문화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웅변이 단순히 발표기술이 아니라, 민주사회 시민의식과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그는 대한웅변인협회의 각종 목적 사업과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국의 웅변운동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웅변 인재의 육성과 더불어 웅변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널리 알리며 웅변문화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웅변교육자이자 사회교육자이며, 문인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박성연 본부장은 문학적 웅변운동가이며, 구성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말의 예술가요, 언어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 김성동/ 대전광역시 본부장
대한웅변인협회 대전광역시본부장 김성동은 전국웅변대회 입상 전적이 화려한 웅변가이다.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대통령)상 2회를 비롯하여 국회의장상 7회와 국무총리상 1회, 그리고 부처 장관상 28회 등 152회 수상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는 나이 70세까지 총 300회의 웅변대회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통일안보와 충효 정신, 그리고 순국선열 정신의 계승뿐만 아니라, 환경보호나 현대인을 위한 '열정 백신' 등 폭넓은 시대적 메시지 전달하였다.
이처럼 그는 탄탄한 웅변 실력을 갖추고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김성동스피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지역 리더들의 스피치 멘토’라는 자세로 스피치 교육을 통한 인격 변화라는 독창적 철학을 가지고 지역의 소통 문화를 선도해 왔다.
그런가 하면, 한남대학교 동창회장을 비롯한 지역 내 주요 리더와 선거 출마자, 그리고 공공기관장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트레이닝 및 전략적 연설 코칭을 수행하며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또한 매일 아침 단전호흡을 하는가 하면, 독서와 달리기, 그리고 복싱 수련을 거르는 법이 없는 엄격한 자기 관리로 교육자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특히 무술 수련을 통해 얻은 신체적 에너지를 발성법과 결합하여 전 연령대가 힘 있는 목소리를 구사할 수 있는 ‘에너지 스피치’를 보급하고 있다.
그는 학문과 실전을 겸비한 스피치 권위자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며 ‘스피치 교육이 성격 개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학술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그의 독창적 모델인 현대인의 성격 변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김성동 성격 변화 모델 (K-SCM) 12단계’를 창안하여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연구 성과는 2026년 4월, 월간 인터뷰‘와 2026년 5월 ’이코노미 뷰‘에 기고가 되는 등 주요 매체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피치 교육 전문가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김성동의 연구에 관한 집념은 교육 현장에서의 풍부한 임상 사례를 담은 『스피치 교육을 통한 성격 개조』에 심취해 있다. 그리고 단순한 수사학을 넘어 Big Five 성격 특성 검사, NLP 기술(리프레임, 앵커링), 심상화 훈련, 명상, 흥 올리기 기법 등을 체계적으로 결합하여 이를 통해 내성적인 성격을 적극적인 리더형 성격으로 변모시키는 전인적 스피치코칭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 학구파 웅변가이다.
▰ 김종래/ 울산광역시본부장
김종래 울산광역시본부장은 어린 시절부터 웅변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꾸준한 연단 활동을 통해 실력을 연마한 정통 웅변인이다. 그는 수많은 웅변대회 출전 경험을 바탕으로 마침내 전국웅변대회 울산지역 최초의 대통령상 수상자로 그의 뛰어난 웅변 실력을 전국적으로 과시하였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울산지역의 민족정신을 계승하며 시민의식 함양과 건전한 소통 문화 확산,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힘써왔다. 특히, 웅변을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실천적 가치로 인식하고 이를 교육과 봉사, 그리고 정치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해왔다.
김종래 본부장은 울산지역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울산스피치면접학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30여 년간 교육사업에 헌신해 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에게 자신감과 표현 능력을 길러주고,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지역의 건전한 소통 문화 확산이 기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교육사업은 독립운동가들의 민족정신을 계승하여 미래세대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한웅변인협회 울산광역시본부장으로서 지역 웅변운동을 이끌며 웅변 문화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협회 본부 운영에도 참여하여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아울러 대통령상 전국웅변대회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우수 인재 발굴과 후진 양성에도 힘써왔다.
그의 웅변 정신은 지역 발전을 위한 정치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울산 남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의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며 의회 운영과 지역 현안 해결에 앞장섰고,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받는 지역 정치인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그는 지역 주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따라 울산광역시의회 6대 의원으로 당선되어 행정자치위원회와 교육위원회에서 폭넓은 의정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교육위원장을 맡아 지역 교육정책의 수립과 추진 등 지역 교육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학교 운영 환경 개선과 교육 여건 조성에 힘쓰는 등 지역 교육 발전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이어왔다. 이러한 그의 활동 성과는 웅변인으로서의 소통능력과 함께 대학원에서 리더십 개발을 전공한 전문성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은 교육과 정치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울산광역시 시정홍보위원회 초대, 2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카풀시민연합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사단법인 글로벌코칭지도자교육회 설립 회장으로서 지역 지도자 양성에 힘써왔으며, 한국능력교육개발원 울산지회장으로도 활동하며 평생교육과 인재육성에도 헌신하였다.
한편, 그는 탁월한 정치 감각과 연설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역대 대통령 후보 유세 지원단장과 울산광역시장 후보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교육감 후보의 선거 기획과 홍보전략 수립에 참여하는 등 지역 정가에서 인정받으며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해왔다.
웅변가 김종래는 웅변을 통해 지신을 수양하고,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며, 정치를 통해 지역 발전을 실천해온 인물이다. 그는 울산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실천정신을 계승하여 교육운동가이자 지역 정치인, 그리고 행동하는 웅변가로서 지역사회 발전에 꾸준히 기여해 온 실천적 웅변운동가이다.
그의 저서로는 ‘스피치 따라집기’와 ‘논리와 발표앙’ 등이 있다.
▰ 박해경/ 강원특별자치도본부장
웅변가 박해경은 대한웅변인협회가 추구하는 민족정신과 웅변 정신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웅변가이며 문화교육자이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한 독립 선열 정신선양 전국웅변스피치대회에서 대상에 입상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웅변가로 올바른 국가관을 바탕으로 웅변 활동을 이어어고 있다.
그는 강원도 지역에서 여러 교육기관의 강사로 활동하며 스피치와 문학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 사회자로 활동하며 안정감 있는 진행과 뛰어난 전달력으로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그의 웅변 실력과 활동 경험에서 비롯된 전문성과 소통 역량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그는 웅변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대한웅변인협회가 주최하는 각종 웅변대회와 스피치대회의 홍보 및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웅변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힘써왔다.
특히, 그는 청소년들이 웅변과 스피치를 통해 올바른 인성과 표현 역량을 갖추는 것은 물론, 세계 시민 정신까지 함양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으며, 말의 힘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밝게 만드는 것이 웅변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신념을 실천해오고 있다.
그는 또 동화구연과 그림책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문화 교육인이자 전문 교육가이다. 그는 한국동화구연지도사협회 이사 겸 석좌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삐아제책별 수석연구원과 전국동화구연대회와 자격평가 심사위원으로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전국 대학의 스피치 강의와 교육청 그림책 지도 활동에도 참여하며 아동과 청소년교육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의 활동 영역은 방송과 문화 공연 분야로도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세계 책 축제 축하 공연과 동화콘서트, 임신 육아 콘서트 등에 참여하며 책 읽기 문화와 청소년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라고 있으며, KBS와 SBS, 케이블TV 등의 ‘우리 아이 책읽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LG U플러스 아이들 나라의 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등 대중매체를 통한 교육문화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이는 웅변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세대를 위해 봉사하는 그의 사명감과 실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문학성과 동화구연, 그리고 스피치에 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활동과 교육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다수의 교육 동화를 제작하였으며, 저서로 그림책 ‘빵빵방’을 출간하는 등 창작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교육산업 키즈스피치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스피치 교육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직업능력개발원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동영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화구연 어떻게 하나?’, ‘태교 동화’ 등의 동화 전문 프리랜서 성우로도 활동하는 등 폭넓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 웅변가 박해경은 웅변과 문학, 동화구연과 스피치 등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밝게 만드는 활동을 꾸준하게 실천해온 인물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재능과 전문성을 사회와 미래세대를 위해 활용하며 살아가는 실천적 웅변가이자 문화교육형 웅변가이며, 웅변 정신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온 여성 웅변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 문선희/ 제주특별자치도본부장
문선희는 대통령상 수상 웅변가로서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활발한 웅변교육 활동을 펼치며 후진 양성과 스피치 문화발전에 기여해 온 제주 웅변계의 여성 지도자이다.
그는 1998년 한국일보 제주지사 주최 전국환경백일장 웅변부문에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각종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에서 다수의 장관상 수상으로 뛰어난 웅변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주최 백범 정신선양 전국웅변대회 2회의 국회의장상 수상을 비롯하여 총 3회에 걸쳐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입상 전적을 기록하며 뛰어난 웅변역량을 주목받아왔다.
그리고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실력을 쌓고 역량을 다져온 끝에 드디어 2025년 대한웅변인협회 주최 독립 선열 정신 전국웅변대회를 통해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웅변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당시, 그의 웅변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진정성을 담고 있었으며, 삶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울림으로 청중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하였다.
그는 대한웅변인협회 제주특별자치도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제주지역 웅변과 스피치 문화 활성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특히, 그는 전국웅변대회 제주지역 예선을 주관하며 지역의 연사 발굴과 육성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웅변을 단순한 말하기 기술이 아닌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세우는 교육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웅변가 문선희는 제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등에서 스피치강의를 하며 여성들의 소통능력 향상과 자신감 고취에도 힘쓰고 있어 지역사회 교육 활동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전국 재능 시 낭송경연대회 대상 수상과 색동회 동화구연대회 대상 수상을 계기로 웅변과 시 낭송, 그리고 동화구연 분야를 접목한 융합형 말 예술 교육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문화예술 분야에도 폭넓은 식견과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제주문화원 인형극 강사와 평생학습관 시 낭송 강사, 그리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 읽어주는 문화교육 강사 등의 활동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시 낭송 공연과 시를 극화한 포에라마활동을 통해 문학과 말의 예술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전하며, 언어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웅변이 단순한 연단 위의 발표기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공연, 그리고 감성과 인간 소통을 아우르는 종합예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 하겠다.
또한 그는 문화예술교육사와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을 갖추고 지역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는 실천가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자리하고 있으며, 웅변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진정한 웅변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웅변가 문선희는 교육과 문화예술, 봉사와 웅변운동을 조화롭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여성 웅변가이자 문화운동가이며, 제주지역의 웅변문화와 한국 웅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웅변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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