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며 남령~수리덤~월봉산~금원산~기백산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줄기가 합천의 황매산, 의령 자굴산을 거쳐 진주 남강으로 빠져드는 진양기맥을 형성하지만, 금원산(1,352.5m)과 기백산(1,330.8m)은 이렇게 긴 능선에 솟은 주산이라 할 수 있다. 주변에는 거망산, 황석산, 오두산, 현성산 등 이름 있는 산들도 즐비하다.
기백산(箕白山)은 1983년 함양군이 군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옛 이름은 지우산(知雨山)이다. 기백산 자락의 거창, 안의 지역은 기백산의 날씨 변화에 따라 비가 내릴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는 뜻이다. 백두대간 상의 큰 산인 덕유산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농경사회 당시의 기상예측은 산이나 자연환경의 변화로 가능했다는 사실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기백산은 ‘28수 별자리의 하나인 箕(기)와 인연이 있다거나, 음양 가운데 陽(양)인 남성적인 산으로 보아 흰 것을 상징하는 학(鶴)을 불러 산 아래 마을이 고학(皐鶴)이고, 산은 희다’는 뜻으로 기백(箕白)이 되었다는 등의 지명해석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예부터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고 했던가. 월봉산에서 갈라진 거망산~황석산 능선과 금원산~기백산 능선 사이에는 40리 용추계곡이 있다. 지우천, 또는 장수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골짜기만 깊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얘기와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심진동(尋眞洞)’이라 했다. 지금은 계곡을 대표하는 용추폭포의 명성으로 인해 용추계곡으로 이름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심진동은 인근의 농월정이 있는 화림동(花林洞),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猿鶴洞)과 더불어 옛 안의삼동(安義三洞)으로 유명했다. 당시 선비들은 주변 풍치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골짜기에 정자를 세우고 이곳을 찾는 시인 묵객과 함께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한여름이면 이곳을 찾아 더위를 식히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냉장고 속을 연상케 하는 서늘한 계곡
끝물 피서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피해 산행길을 재촉한다. 산행 들머리에 자리 잡은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德裕山長水寺曹溪門)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54호다. 이곳은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가 창건했다는 장수사(長水寺)가 있었다. 절집 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으며, 기거하던 승려만도 200여 명에 달할 정도의 대찰이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의상과 원효를 비롯해 조선시대는 무학, 서산, 사명대사 등 고승들이 수도했던 이름난 사찰이었으나 6.25전쟁으로 절집은 타버리고 일주문만이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조선 숙종 28년(1702)에 건립됐다고 전한다. 좌우 하나씩의 기둥에 떠받쳐진 특이한 형태의 지붕은 그 규모가 장대하다. 오히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지붕 때문에 기둥이 작아 보일 정도다. 기둥머리의 봉황 조각은 길게 돌출된 서까래와 함께 처마선을 타고 올라 천상세계의 출입문임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장수사 일주문을 출발, 시흥(시영)골~기백산 정상~도숫골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은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관계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일주문 옆을 지나 제법 넓은 도로를 따라 5분여면 도숫골 등산로 입구를 지나친다. 도로는 콘크리트 포장길로 변하고, 여름이면 승용차와 승합차의 왕래가 빈번하다. 도숫골 들머리에서 도로를 따라 다시 10여 분 가면 왼편의 낙차 큰 용추폭포를 지나 용추사를 건너는 다리를 만난다.
용추폭포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을 안고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비가 온 뒤라 수량이 불어난 폭포수의 굉음은 우뢰와 같다. 폭포 옆 산속에 자리한 용추사는 옛날 장수사에 딸린 부속 암자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해인사의 말사다. 장수사와 함께 6.25전쟁 때 소실됐던 것을 1959년에 재건했으나, 최근의 불사로 인해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일주문에서 25분 정도면 산골의 조그만 마을인 사평 마을이 나온다. 옛날에는 산골짜기의 아주 작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민박과 음식점 등으로 엄청나게 변해 버렸다. 이곳은 여름이면 용추계곡을 찾아 더위를 식히려는 피서객들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곳이다. 도로를 따라 곧바로 오르면 용추 자연휴양림이 있고, 수망령으로 오를 수 있다.
산행은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 장수산장 옆으로 이어지는 시흥골 등산로를 따르면 된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짙은 숲터널을 이루고 녹음으로 우거진 골짜기는 냉장고 속을 연상케 한다. 어둠과 시원함이 더해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마저 감돈다. 왼편 계곡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계곡물 소리에 산새들의 지저귐마저 묻혀 버린 듯하다.
50여 분간 땀 흘려 오르면 계곡을 건너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며 흐르는 물에 땀을 씻고 일어서면 ‘정상까지 3km’라는 푯말이 서 있다. 계곡에서 15분여를 오르면 숲속에 옛날 화전민들이 살던 주거지 흔적을 만난다. 인적이 멀어져 간 세월 속에 돌담이며 축대 등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 삶의 애환을 발견할 수 있다.
화전민 터에서 얼마 가지 않아 로프가 걸려 있는 된비알을 오르면 또 다시 로프가 매여 있다. 이 경사 가파른 오름길을 넘어서면 등산로는 서서히 평탄한 길로 바뀌고, 금원산~기백산 능선이 이어지는 갈림목에 다다른다. 표지목이 서 있는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금원산(2.5km)이며, 기백산(1.5km)은 오른편의 완만한 능선길로 접어든다.
금원~기백 능선은 야생화 천국
금원산~기백산을 잇는 이 능선은 원추리를 비롯한 야생화 천국이다. 한동안 흙길이던 능선길이 암릉으로 바뀌면서 기가 막힌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 암봉에 선다. 능선 따라 정면에 책을 쌓아 둔 것 같은 바위봉이 누룩덤이다. 누룩을 쌓아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누룩덤, 그 너머로 기백산 산정이 보인다.
갈림목에서 산정까지는 40여 분이면 닿는다. 정상에는 케언을 쌓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며, 사방팔방의 전망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금원산, 월봉산, 덕유산 능선이, 서쪽에는 황석산과 피바위, 거망산 그 아래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가 숨어 살았다는 은신암이 새집처럼 자리 잡고 있다.
멀리 가야산부터 가까운 곳의 오두산, 현성산 등등이 눈 안에 들어온다. 동편에는 기백평전이 있고, 여기는 샘터(지우샘)도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마다 친절하게 세운 안내판이나 표지목이 많아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하산은 한수동을 거쳐 점터나, 기백평전 너머 고학리 상촌 마을로도 가능하다. 남서쪽 능선길을 따라 20여 분이면 안부 갈림길에 표지목(정상 1.3km, 하산길 2.9km)이 서 있다. 오른편은 시흥골로 빠지며, 표지목이 가리키는 하산로는 도숫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갈림목에서 도숫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왼편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을 두 번 건너 꺾어지는 지점에 벤치가 놓여 있다. 숲그늘 아래 제법 운치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며 하산길을 마무리해 본다. 장수사 일주문까지는 10여 분이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