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세기 말~2세기 초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적 배경
로마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 살아남은 유대 민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로서 알려진 유대 기독교 공동체 일부는 주님의 동생(사촌) 시므온의 영도로 요르단 강 동쪽의 펠라라는 곳으로 옮겨갔고 이후 에비온파 공동체로 전환되었다. 바리사이파 주요 세력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영도로 서쪽으로 이주하여 지중해 연안 얌니야(현재는 텔-야브네라고 불림)라는 곳에 정착하였다. 그 외 세력들.. 사두카이파나 에세네파, 열심당은 예루살렘 파괴와 그 이후에 이어진 마사다 항전에서 무자비한 로마 군대의 토벌에 의해서 소수만 살아남고 사실상 진멸되었다.
그리고 얌니야 지역에 정착한 바리사이 계열 유대 랍비들은 민족성과 종교의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1) 민족 공동체 내부의 율법적 규제를 강화하였다.
2) (제사장 계급이 진멸하였으므로) 유대교 예배의 중심을 제사 의식에서 기도로 이동시켰고, 기도문을 공식화하였다.
3) 제사의 성실한 참여보다도 자비와 희생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2. 얌니야 회의 가설을 둘러싼 논란
이 시기에 바리사이파 유대 랍비들이 유대 민족 내부의 타 당파 배척을 통한 주도권 획득을 위해서, 특히 나자렛파라고 불리던 기독교 세력을 이단으로 몰아서 배척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상당 기간 동안 학자들에 의해서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주장 중의 하나는 19세기 후반 유대인 학자 하인리히 그래츠에 의해서 제기된 이른바 '얌니야 회의' 가설이었고, 이 가설을 당시에 명성이 높던 기독교 진영의 구약학자인 프란츠 불과 에드워드 라일이 적극 지지함으로서 그 후 약 60년 동안 이론의 제기조차 없는 학계의 정설로서 받아들여져 왔다.
천주교 진영에서는 얌니야 회의 가설에 힘입어 외경 논쟁에 있어서 그동안의 학술적인 열세의 입장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얌니야 회의 가설에서 나온 유대교의 타나크의 목록 결정과, 70인 역을 저주하면서 그니자로 만들어 폐기한 것은 유대교에서 기독교의 배척을 의도한 일련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대교의 성경 목록을 적극 수용한 개신교 측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의 포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러한 천주교 측의 반격에 대처하여 개신교와 유대교 측에서는 얌니야 회의 가설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얌니야 회의의 실존성을 의문시(아우네)하거나, 타나임 전기 시대의 얌니야 공동체에서 기독교가 배척되었다는 명백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유대교의 타나크 목록 확정은 기독교의 배척 의도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레위스로부터 반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일련의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서 기존의 얌니야 회의 가설로 인해 통념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가르침.. 1세기 말에 있었다는 소위 얌니야 회의에서 성경 목록 확정 작업을 통해서 유대교 내부에서 70인역을 사용하는 기독교 세력에 대한 축출을 의도했다는 종전의 가설은 신뢰성 있는 역사적인 사실적 근거의 뒷받침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던 개신교 측의 주장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성서학계의 인정을 점차 획득하고 있다.
개신교 측에서는 실제로 얌니야 모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존 가설의 산 헤드린(공회) 주장처럼 기독교 배척을 위해서 갑자기 성경 목록을 결론지은 회의체가 아니라 학당(베이트 미드라쉬)나 랍비 학교(예쉬바)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설령 성경 목록 결정의 산 헤드린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특정 종파 배제를 위해 없었던 성경목록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서 유대교 안에서 정경으로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오던 목록을 산헤드린의 명의로서 공식적으로 선포한 경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요세푸스의 증언(레위스)과 프로토-루시아닉 교정본의 존재(레이만), 그리고 집회서의 서문(백위드)을 그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현재는 유대교 및 신/구교를 막론하고 학계 내적으로는 그래츠가 제시한 종전의 얌니야 회의 가설에 비해서 더 높은 설득력을 인정받아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통념은 얌니야 회의 가설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 극복을 위한 학술적인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개신교 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얌니야 회의 가설 극복을 위한 논리는 일찌기 근대 초반에 천주교와 개신교 진영에서 전개되었던 '외경 논쟁'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경 목록 결정, 특히 2경전의 경전성 인정 문제에 대한 개신교 측의 맹공격에 대하여 당시 천주교 측에서 방어적 입장에서 제시하였던 논리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이다.
3. 타나임 시기 얌니야 유대교 공동체의 기독교 저주 기도 문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서서 기도(아미다)를 하고 축복 기도문(쉬모나 하스레)을 외운다. 이 아미다 기도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실질적으로 행할 수 없게 된 성전 제사를 대신하여 새로 제정되었고, 쉬모나 하스레의 종전 18개 기도문은 타나임 1세대 랍비 가말리엘 2세에 의해서 대폭 수정되었다. 이 수정된 기도문의 가장 초기 형태의 원문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토세프타 브라코트'에 나온, 논란의 출발이 되는 12장의 '저주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악자에게는 희망이 없게 하소서, 무례한 왕국(로마?)이 근절되게 하소서.
이단들이 속히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 백성의 적들이 넘어지게 하소서.
그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소서, 그들이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그런데 이 아미다 기도문에 나온 '이단'의 구체적인 예로서 '나자렛 인'이 좀 더 후기 형태의 기도문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자료들은 얌니야 회의와 함께 천주교 진영에서 이른바 외경 논쟁에 있어 개신교 측에서 유대교 성경 목록 전통을 채택한 것에 대한 비판의 보조적 근거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찌기 초대교회의 교부 에피파니우스와 히에로니무스는 유대교 안에서 바리사이파의 나자렛파에 대한 저주에 대해서 증언하는 결정적인 기록을 남겼고, 이 자료는 나중에 얌니야 회의 가설과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유대교 성경 목록 결정을 따른 개신교를 논리적 궁지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 역시 개신교 측의 노력에 의하여 얌니야 회의 가설과 마찬가지로 기존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유대교 내의 기독교 축출 작업이 가말리엘 2세에 의한 타나임 1세대, 세칭 얌니야 회의 시기를 전후하여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는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인해 인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서는 통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앞의 기도문에 나오는 '민'(이단자)의 정체에 대한 단서는 유대교 랍비 자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발견된다.
1) 랍비 엘리에제르 벤 히르카누스(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제자)의 할라카
=> 부활의 축복을 고백하지 않는 자, 하느님의 통치 섭리를 부인하는 자,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축원하지 않는 자,
무례한 자들의 패망을 기도하지 않는 자
2) 랍비 아키바(랍비 엘리에제르 벤 히르카누스의 제자)의 '민' 대상 추가
=> 벤 시라 등의 외경을 읽는 자, 이단 서적을 읽는 자 (마술 서적, 이원론적 영지주의 서적 등)
(필자 주 : '벤 시라'는 기독교 측에서는 '집회서'라고 부른다.)
3) 기타
=> 사마리아 이단(미드라쉬 하가돌), 우상숭배자들(토세프타 훌린), 조로아스터교도(바빌론 탈무드)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제 2차 유대 항쟁(C.E. 132~135)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세기 전반 로마의 압제에 맞서서 유대 민족의 항쟁을 이끌어 나간 바르코크바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바르코크바의 민족 저항 운동을 물심 양면으로 적극 지지한 유대교 지도자가 바로 랍비 아키바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메시아를 자처했다는 이유로 인해 바르코크바를 지지하지 않았던 유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유대교 내부에서 본격적인 출교 작업이 전개되었던 것이 유대교 및 신/구교의 진영에 상관없이 대다수 학자들에 의해서 현재 통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크코바 반란이 있던 시기인 타나임 3세대에서 본격적으로 유대교로부터 기독교 세력에 대한 축출 작업이 이뤄졌고, 그 주도 인물인 랍비 아키바가 이단 축출의 명분으로서 타나크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벤 시라의) 외경을 읽는 자'를 아미다 기도문 12장에 나온 이단자의 유형으로서 제시하였다는 점은 오히려 기독교 배척을 위해서 얌니야 회의를 개최하고 타나크를 확정하였다는 종전의 가설보다도 원시 유대-기독교 공동체에서 집회서 등의 외경을 성경으로서 받아들였다는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역사적인 반증으로서 제시된다.
이에 대해서 개신교 측에서는 랍비 아키바가 이단의 구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단 서적'의 구체적 범주 안에 신약 복음서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벤 시라 등의 외경을 (경전으로서) 읽는 이단'이 바로 '나자렛파'를 의미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랍비 자료에서 직접적으로 언급이 된 '벤 시라를 제외한 다른 '외경'들은 구체적인 문헌의 이름이 증명될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라는 소극적인 반론만을 일찌기 레위스가 내놓았을 뿐이며, 그 이후에는 랍비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외경인 벤 시라(의 집회서)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다른 개신교 계의 저명한 구약학자들도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조차 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참고문헌
The Canonization in the Old Testament (Minister Paul Yoo, 2012)
- Lewis, J. P. ; “What Do We Mean By Jabneh?” (1961)
- Leiman, S. Z ; The Canonization of Hebrew Scripture: The Talmudic and Midrashic Evidence (1976)
- Leiman, S. Z. ; The Canon and Masorah of The Hebrew Bible (1977)
- Beckwith, R. ; The Old Testment Canon of The New Testament Church and its Background in Early Judaism (1985)
- Aune, D. E. ; “On the Origins of The “Council of Javneh” Myth.” (1991)
유대교의 역사적 과정, 바리새파의 재발견 (정연호, 한국 성서학 연구소, 2010)
첫댓글 얌니아 회의는 중요하다고도 볼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야븐네 회의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근본 이유는 그 회의에서 정경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정경을 재확인 했거나 그보다도 이미 인식되던 정경에 대해서 교제하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경 자체가 증거합니다. 제가 나중에 쓰겠지만
(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혹은 <성경이 증거하는 성경의 정경> 의 글을 읽어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할 때 정경 목록이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정경 목록은 구약에 한하는데,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정경이 유대교의 타나크였겠느냐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이 대다수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서는 유대교에서 외경으로 구분한 일부 문서를 성경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차이점이 유대교가 초대교회를 이단으로 핍박하고 쫓아낸 근거가 되지요.
엄격한 입장으로 간다면, 타나크 중에서도 5권이 당시에 정경성이 의심되었는데, 신약에서 외경의 인용을
배제하는 엄격한 관점에서 정경 중 5권도 인용되지 않았다고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도서는
우샤시대 초기까지 정경성이 부정되는 증언이 다수 랍비에 의해 나오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아무도 마카베서 같은 외경을 정경으로 보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성경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외경을 인용하지 않은 사실은 주목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번도 70인역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인용했다고 믿으면 가져오십시오. 어느 구절입니까?
신약 기자들, 특히 복음사가들이 70인역을 인용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 '알마'와 '네아니스'
논란만 보더라도, 70인역의 인용을 부정할 길이 없을 텐데요..? 더구나 UBS 성경 색인을 통해 우리는 손쉽게
신약에서 구약 어디를 인용했는지, 특히 70인역 만의 고유인용(70인역과 마소라본 내용이 다른 경우)은 어느
구절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일찌기 카타콤베에서도 발견됩니다. 집회서를 기독교에서 보았다는 사실은 유대교가
스스로 기독교 축출을 위한 근거로 사용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870년대에 하인리이 그래츠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올 때 상당한 가설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츠의 가설들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도전을 받았고 오늘날에는 거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얌니아 회의 시기를 저는 90-95AD, 좀더 구체적으로는 91-93AD 로 잡습니다. 위치는 욥바 부근, 오늘날 텔아비브와 아스돗 사이인데, 원레 히브리어 명칭은 야븐네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논할 수 있는데 시간이 좀 아까울 뿐이고, 근본적으로는 구약 성경은 말라키 서를 제외한 모두는 에즈라에 의해 확정되었습니다. 에즈라는 구약 성경에 관한한 최대의 인물입니다. 에즈라 7장 11-12절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윗글도 그래츠의 얌니야 회의 가설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 내부 자료를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성경이 증명합니다. 성경은 칠십인역을 배격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벤하임 맛소라와 동일한 편제의 성경을 보셨음을 증거하고 70인역을 배격합니다.
얌니아 회의 이전에도 얌니아 지역에서 85년경에 회의가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얌니아 회의에서 기독교만이 이단으로 지목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종파들도 있었으며 그들 모두를 비판한 것입니다. 메시야가 이미 왔다고 주장하는 종파는 기독교 외에도 있었다는 것이고 그외의 여러 이슈들을 다루었지 특별히 기독교가 외경을 성경으로 채택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70인역을 배격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70인역은 초대 기독교의 성경입니다. 그를 배척하는 것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 성경이
압도적으로 히브리어 성경보다 70인역을 더 많이 인용하였음에는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동의하지요.^^
님의 비전문성이 여기서 다시 탄로납니다. 저는 70인역을 직접 비교해본 사람입니다. 약 20구절 비교해보고 절대 아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신학교와 그들의 교수들이 덤벼도 자신잇습니다. 70인역을 직접 한 구절 한구절 비교해보십시오. 한 구절도 완전 일치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웬놈의 성경 인용이 그 모양입니까?
UBS는 신약을 검토하여 약 1800 곳에서의 구약 인용을 찾아내고서 70인역에서의 인용이 압도적이라고
인정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벤시라를 읽었다는 증거도 극히 추론에 한정됩니다. 왜냐하면 벤 시라를 읽은 이단이 어떻게 기독교인에 국한됩니까? 이것은 천주교식의 추론에 불과합니다. 천주교는 성경을 정독하면 나오는 정경 문제는 파헤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추론이 아니지요. 이건 확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경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천주교가 강자라고 봐야죠.
종교개혁 이전까지, 2정경은 그냥 기독교의 성경이었습니다. 심지어 님이 좋아하는 왈덴시안들도 이 점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침례파도 이 문제는 그냥 개신교 결정에 무임승차한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벤시라를 읽은 이단이 당시 유대교 집단 내부에서 기독교 이외에 누가 있었을까요.^^ 사두카이? 에세네?
이미 그들은 예루살렘 파괴 시 진멸된 상태이고, 오직 바리사이파와 기독교만 남아 있었습니다.^^+ 혹은
자료에도 언급된 사마리아인들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들은 토라만 성경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과 그 성경의 목록은 죄많은 인간들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해도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결정하거나 누락시키거나 편입시키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서는 인간들의 회의가 아무리 그것을 배제하려 해도 그것은 성경 정경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쉐 5경이 그러했습니다. 역사서들이 그러햇습니다. 시편이 그러했고 문제 삼을 만한 책으로는 전도서와 에스더였을 것입니다. 이 모든 논의의 목적은 아마도 정경에서 누락된 외경들을 정경으로 올려서 자기들의 교리들을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에 있다고 믿어집니다.
정경에서 누락된 외경이라.. 그 주체가 누구일까요.^^ 보시다시피, 유대교의 정경 결정은 초대교회 축출에
결과적으로 한 몫 했습니다. 그리고 님은 당시 유대교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초대교회 축출에 한 몫 거드는
셈입니다.
더구나 이 논의는 유대교 측에서 나온 것입니다. 랍비 아키바는 타나임 세대의 가장 대표적 랍비이지요.
따라서 이 자료들은 님이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외경을 보았고, 유대교는 그 사실을
시비삼아 그들을 이단으로 내몰아 축출했습니다. 그리고 님은 유대교를 따라 초대교회를 부정할 뿐이죠.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보며 가르치셨습니다. 거기에 칠십인역은 없었습니다. 오직 벤하임 맛소라와 같은 성경을 보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칠십인역에 끼어 있는 외경을 보아야 제자들이 된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거짓 신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을 아마도 유대인들을 통해서 베제시키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신 성경이 70인역이 아니라는 확증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약 기자들이 인용하는 성경이
주로 70인역이라는 데에는 외경을 부정하는 개신교 성경학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이단으로서 축출했고, 그 근거는 외경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님은 기독교를
축출했던 유대교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고, 이는 님의 정체성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따라서 초대교회를 적대시하는 것이 지금 님의 모습입니다.
제가 곧 글을 쓰면 반박이 될 것입니다. 70인역은 도대체 안맞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신학자들이 달려와도 자신있습니다.
님이 한 20여개 늘어놓는 신약의 히브리어 구약 인용의 추정 내용과, UBS의 신약성경 색인 부분에 신약의
모든 구약 인용 구절을 전부 제시하면서 특히 70인 역이 히브리어 구약과 다른 경우 70인 역의 인용이라고
밝혀놓은 것의 권위가 같다고 생각합니까?
유비에스가 올려놓은 구절 하나만 여기에 가져오십시오. 제가 비교해드리지요. 그들은 대충 대충 성경학자들입니다. 메츠거는 구원받지 못한채 죽었으니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젠 하다하다 못해 님이 메츠거를 심판하는군요.^^ 성경에 '남을 심판하는 자는 (주님께) 심판받는다'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 님의 그러한 오만에 대해 참회하고 회개하기를 정중히 권면합니다.
벤 시라를 킹제임스 성경 1611년판에서 외경에 올려놓았다가 1613년 판에서부터 빼버린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외경 주장자들이 강력하게 가져오는 한 증거로 예수님이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하신 말씀을 벤시라흐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51장 27절은
27 Behold with your eyes, how that I have but little labour, and have gotten unto me much rest.
으로 판이하게 다릅니다.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그런 구절들을 가져옵니다.
또한 목욕탕에서 아버지가 사정한 물에 딸이 들어가서 임신했다는 것도 웃기는 말입니다. 그 손자가 벤 시라흐라는 것이지요.
그런 과학적 관점에서 '웃기는' 표현은 정경에도 많이 있습니다.^^+ 경전을 과학으로 판단하려는 것은 올바른
탐구법이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집회서는 초대교회의 성경이었음을 유대교인들이 기독교 축출을
위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은 초대교회를 배척한 유대교인들의 입장을 추종하고 있지요.
70인역에서 인용했다는 구절 하나만 가져와보십시오. 제가 반박해드리겠습니다.
신약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70인역본에서 인용하였다. 결과적으로 구약의 인용구가 구약에 있는 상응하는 구절과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때에는 신약 저자들이 기억에 의지해 부정확하게 인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70인역본에서 인용을 하였다.
한 주석가는 바울이 「로마서」에 58개의 구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히브리어 구약과 70인역본이 일치하는 구절은 25개이다. 나머지 33개 가운데 바울이 70인역본과 정확하게 일치되게 인용한 것은 9개이고, 18개의 다른 구절에서는 바울의 인용구가 히브리어 본문보다는 그리스어 역본에 더 가깝게 되어 있다.
행 15장에 보면 초기 교회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나 유대교의 정결법을 기독교인이 된 *이방인이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를 논한다. 야고보는 구약 암 9:11-12(70인역본)를 인용해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불러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증명한다. 70인역본의 암 9:11-12는 다음과 같다.
주님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키고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다시 강성케 할 것이며 … '그러므로 열방이 나에게 올 것이요, 내가 나의 백성으로 부른 모든 이방인도 올 것이라.'"
히브리어 본문 암 9:11-12는 70인역본과 다르게 되어 있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히브리어 본문에 따르면, 아모스는 사실 이방인들이 기꺼이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선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이 다윗 왕의 시대처럼 다시 강성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다시 정복할 것이며 전에 다윗 왕국에 속했던 주변 국가도 다시 정복할 것이다. 히브리어 본문에 보면, "에돔은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70인역본의 번역자는 이 구절에서 "에돔"을 "아담"(=사람)으로 읽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올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대한 성서공회)
저는 성서공회 오류들을 수없이 파악하고 잇습니다. 이제 심층으로 들어가면 님의 무지와 대충 대충신학이 드러납니다. 70인역이 인용되었다는 구절을 하나 하나 계속 가져와 보십시오!
성서공회도 물론 오류야 많겠지요. 그런데 종종 '카더라' 통신을 인용하는 님보다는 훨씬 신뢰성이 높다고
봅니다. 적어도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자료이니 말이죠.
하나만 제시해 보라더니, 이젠 하나하나 다른 것을 계속 가져오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제시된 하나라도
일단 제대로 반박해 보십시오.^^+ 참고로 아모스서 내용도 천주교 성경(직역본)으로 재검토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님에게 대충 대충 신학 하지 마시고 실제로 직접 비교해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바로
아모스 9장과 행 15장을 70인역과 헬라어 신약 사이를 비교하도록 올려드립니다.
That they may possess the remnant of ''Edom'', and of all the heathen, which are called by my name, saith the LORD that doeth this. (KJV Amos 9:12)
that the remnant of ''men'', and all the Gentiles upon whom my name is called, may earnestly seek me, saith the Lord who does all these things. (LXX Amos 9:12)
That the residue of ''men'' might seek after the Lord, and all the Gentiles, upon whom my name is called, saith the Lord, who doeth all these things. (KJV Act :15:16)
실제로 영어 성경으로 직접 비교해보니, 사도행전 15장 16절은 70인역 아모스 9장 12절의 직접적 인용이 맞군요.^^+
뜻도 파악되지 않는 원문을 가져다 놓고, '봐! 글자가 다르잖냐!! 이게 인용이라고?'라고 장난은 그만합시다.
완전히 100% 글자 하나하나까지 똑같이 베껴야만 표절이던가요? 실질적인 내용 일치로 따집니다.^^
더구나 신약 사도행전 15장 15절에서 구약 예언서를 인용했다고 명시하고 있고, 인용된 예언서가 아모스서
9장 11~12라는 것은 모든 성서학자가 동의합니다. 그런데 마소라 본문 아모스서의 해당 내용은 사도행전이
인용하고 있는 내용과는 분명히 다르죠..? ^^+ 님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
비전문가/ 억지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그냥 생떼 수준일세... 헬라어는 지구상 다른 어떤 문자와도 달라서 문자가 달라지면 뜻이 달라지게 되어있고 그래서 헬라어로 신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보오, 비전문가 양반! 원어를 몰라도 일단 글자가 다르면 뜻이 다르리라는 것은 상식아니오? 한글도 '나'하고 '너'가 다르니 뜻도 다르지 않소?
세힘님.^^ 몇몇 단어가 배열 순서가 다르고, 또 수식어구의 차이가 약간 난다고 해서 내용이 같아도 표절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수식 단어 몇개가 더 들어갔다고, 단어의 배열순서가 다르다고 해서 전체
문장의 뜻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http://cafe.daum.net/Eliyahu/8FM1/189를 읽고 검토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