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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시 23: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신 것을 믿습니까? 믿는 대로 됩니다.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지만,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의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크게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작게 믿으면 작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크든 작든 믿으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만, 믿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편 19:7-8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기를 북돋워주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주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우리의 눈을 밝혀 줍니다.
시편 119:105절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십니다.
시편 119:130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되씹어 드시기 바랍니다. 꼭꼭 씹어 드십시오. 그리할 때,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이십니다. 인도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풀발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평안한 삶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절망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 어둠의 골짜기, 염려의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
한 번 흘러가면, 똑같은 물이 다시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늘 똑같은 물 같은데, 어제 흐르던 물과 오늘 흐르는 물과 내일 흐르는 물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청춘인데, 우리의 겉모습은 날마다 달라집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아,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시간들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어느 날 모임에 나갔는데, 어느 젊은 목사님이 저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태백에 계실 때, 고등부 학생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짧은 기간 그들을 맡아 지도했기 때문에, 얼굴도, 이름도 영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세월이 벌써 많이 흘러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월이라는 바다를 따라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세월을 하루하루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잔잔한 바다 위에 낭만처럼 떠 있는 달과 하늘 가득 보석처럼 뿌려진 별들을 보면서, 가슴 뿌듯이 차오르는 시적인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라는 찬송을 행복감에 젖어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갑자기 하늘이 캄캄하여지면서, 사나운 비바람과 풍랑이 엄습함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일 때도 있습니다. “이렇다가 죽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두려운 때에라도, 우리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평안한 때보다도, 오히려 그런 고난의 밤에, 하나님이 자기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심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 여름, 휴가를 맞아 영월을 지날 때가 있었습니다. 영월에 가면 “별마로천문대”가 있습니다. 밤이고, 날씨가 좋아서, 별 구경을 하고자 천문대에 올라갔습니다. 천문대가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로 오르고 올라갔는데, 마지막 순간 차 앞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래 가지고,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그 꼭대기까지 긴급서비스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차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차에서 연기가 났다” 내 생각으로는 차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이 전혀 없다”라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고는 안심하고, 별 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휴가 내내, 차에 아무 이상 없이,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면,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조차도 없어야 합니다. 늘 평안하여야 합니다. 늘 건강하여야 합니다. 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야 합니다. 있어야 될 것은 있어야 합니다.
염려와 걱정, 근심, 두려움과 무서움, 이러한 것은 우리 곁에 얼씬거리지도 않아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 같은 것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단어조차도 모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은 낮에 볼 수 없습니다. 없어서 안보이는 것입니까?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이 너무 밝기 때문에, 별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별은 밤이 되어야 보입니다. 아주 캄캄한 밤일수록 잘 보입니다.
별은 밤이 되어야 보이듯이 고난의 날에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뙤얕빛이 내리 쪼이는 광야에서, 오히려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비바람이 부는 밤에 따스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항해에서 때로 건강이나 사업, 부모나 자녀들 때문에 고난을 만날 때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성도들의 바른 자세입니다.
“오, 하나님, 이러한 고난의 밤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더 깊이 체험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줄로 믿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모세가 가시떨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불길을 본 것처럼, 지금 가시떨기가 가득 찬 내 인생 속에서 주님의 불길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요한 웨슬리의 일기”에는 이런 체험담이 나옵니다. 웨슬리는 어느 날, 엄청난 전염병으로 6개월 동안, 무려 아들 딸 여섯을 잃었고, 남편마저 바다로 나갔다가 죽은 비운의 여인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처럼 참담한 일을 당한 가정에 가서, 무엇이라고 위로할 수 있습니까?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웨슬리는 그 가정에 가서, 오히려 큰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비극의 여인을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식구들이 죽었다는 고통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나의 모든 가족을 위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그들을 하늘나라에 영접하였으니 안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좋은 때나 어려울 때나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도저히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에서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거듭 말씀드리지만, 시편 23편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 성도들은 양이라는 내용입니다.
양이라는 짐승은 아무 무기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무기가 있습니다. 어느 짐승은 뿔이 있고, 어느 짐승은 사나운 이빨이나 발톱이 있고, 어느 짐승은 무서운 독이 있습니다. 어느 짐승은 아무 무기가 없어도 토끼나 사슴처럼 잘 도망칠 수 있는 빠른 발이 있습니다. 또 어떤 짐승은 몸의 피부색이 변하여,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은 뿔이나 발톱, 이빨이나 독이 없습니다. 잘 도망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맹수에 걸렸다 하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은 한 가지 무기가 있습니다. 그 무기가 무엇일까요? 철저하게 자기 목자를 따르는 것이요, 함께 모여 사는 군집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적절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무기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 후에, 세상의 무기를 다 버렸습니다. 믿기 전에는 거짓말도 곧잘 하고, 수틀리면 싸움닭처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나니, 때려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잘못하여 맞으면, 내가 잘못했으니 맞는 것이 당연하여 맞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맞으면, 예수 믿으니까 그냥 맞는다 하면서 맞고, 이래저래 말씀 따라 살다보니, 피해를 많이 봅니다. 큰 믿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음을 지키려고, 정직하게 살다보니 손해도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끼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고, 잘못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고, 이만저만 믿음 지키려고 하다보면, 손해가 큽니다. 그리고 설령 나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만 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까?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최고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도록 역사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큰 무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은, 이 약속을 믿고, 우리 성도들끼리 흩어지지 말고, 함께 양 무리를 이루면서, 하나님만 무조건 따라 가는 것입니다.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든지,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든지,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인도하실지라도,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은 친히 인도하셔서 평안할 때든지 역경 가운데서든지, 친히 보호하시면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목자되신 주님께서 친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양들은 목장에서 선한 목자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습니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철에 목자의 치밀한 간수가 필요합니다.
미국 서부 지방이나 팔레스틴 지방의 유능한 목자들은, 여름철이 되면, 양떼를 이끌고, 먼 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양들은 길가에 자라는 풀을 뜯으면서, 목자를 따라 천천히 이동합니다. 양들의 여행은 힘들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목자의 인도함을 따라, 여러 날이 걸려, 힘들고 지루한 여행을 하며, 산간 목장에 이르면, 산 밑에서 그렇게 더워서 맥을 못쓰던 양들이, 시원한 목장에서 마음껏 풀도 뜯고, 싱싱하게 활동을 합니다. 이러다가 가을이 다가오면 높은 산봉우리와 능선에 첫 눈이 내립니다. 그때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산 밑으로 내려옵니다. 이렇게 양들이 살아가는 데는 선한 목자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양들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갑니다. 왜 올라갑니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면, 비록 여름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평창에 있는 삼양대관령 목장에 갔을 때, 정상에 올라가보니까, 잠시 동안이라도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엄청나게 강하게 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풍력 발전기가 여러 대 있었는데, 바람 따라 잘 돌아갔습니다. 바람이 불어, 시원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그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낮은 곳으로 양들이 내려와야 합니다.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 낮은 평지로 내려왔다 해야 합니다.
만약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길목에 음침한 골짜기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가야 합니까? 가지 말아야 합니까? 목자는 아무 머뭇거림도 없이, 양들을 데리고,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골짜기만 지나면, 푸른 풀밭이 있고, 쉴만한 물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주저함도 없이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알고 있습니까? 모르고 있습니까? 전혀 모릅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골짜기만 바라볼 뿐이지, 골짜기 뒤에 있을 푸른 풀발과 쉴만한 물가를 보지 못합니다. 알지 못합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나는 그분의 양입니다.
시편 100:3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양은 어리석습니다. 미련합니다. 당장 눈 앞만 바라봅니다. 그 뒤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양 같습니다.
이사야 53: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자만 바라보고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따라가면 됩니다.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시 62:5)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5)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
여러분! 왜 목자가 양들을 데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갑니까? 그 음침한 골짜기에 살고자 들어가는 것입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공동번역을 보면, 이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쉬운 성경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쉽게 풀어 놓았습니다.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다닐지라도” 이 말은 “지날지라도”라고 할 수 있고, 더 쉽게 표현하면,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입니다.
한 마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머물려고 간 것이 아니라, 단지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것입니다.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합니까?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골짜기를 지나는 데는 예기치 않은 위험이 있습니다. 맹수들이 숨어 있다가 언제 달려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들 주변의 모든 재난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까닭은, 이 골짜기를 통해서 가는 동안 목자를 더 의지하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뭔가 위험을 느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함께 가는 사람에게 딱 달라 붙지 않습니까? 조금 떨어져 있다가도, 무슨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바짝 달라붙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양들은 목자에게 더 달라붙습니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목자만 바라보고, 목자의 음성만을 듣고, 목자의 인도함에 절대적으로 순종합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목자되신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만 골짜기로 밀어 놓고, “잘 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앞서 가십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앞서 가십니다.
이사야 43:2-3절을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어떻게 이 골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우리들이 좋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벗이 되어 함께 하지만, 우리들이 낭패를 당해, 좌절하게 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면, 점점 외로워집니다. 친구도, 형제도, 심지어는 부모와 친지도 함께 갈 수 없는 외로운 골짜기를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가면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에도, 항상 마음 속에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같이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함께 걸어가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친히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이 세상, 그리고 우리 개개인이 경험하는 낭패와 실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우리와 늘, 항상,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근심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4:1절을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외로움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4:8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나 혼자다”라고 외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환난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6:33절을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요한일서 5: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낙심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시편 28:7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병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12:15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을 다 고쳐 주십니다.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십시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시편 118:5-6절을 보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내 편이라는 말은 “내 곁에 항상 있다”라는 것입니다. 항상 내 곁에 계셔서, 나의 편이 되시는 것입니다. 내 편이 되신 하나님이 내게 계시기에, 고통이 온다 할지라도,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편이 되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에 필요한 모든 해답이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다른 데 가서 찾지 마시고, 성경 안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처음으로 갈 때는, 왜 이런 골짜기로 가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몇 번 다녀본 경험이 있는 양은 “아, 저기 산지 목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고전 15:1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지 않고 계십니까? 사망의 골짜기, 죄악의 골짜기, 환난의 골짜기, 염려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 근심의 골짜기, 질병의 골짜기, 별의별 골짜기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골짜기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그러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아주 길게 느껴지고, 실지로 길게 그 골짜기가 이어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골짜기에서 살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골짜기만 지나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은 생명의 길로, 의의 길로, 선한 길로, 푸른 풀발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지금 내 모습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앞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되면, 도와 주시려고,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쓰리라”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겠습니다.
지금껏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우리의 남은 생애를 풍성하게 인도하여 주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